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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 자연인이다-78화 (78/175)

78화 두루미 신령과 대한산의 고양이

옥황상제는 대한산에 머무는 두루미 신령을 만나보라고 권했다.

두루미 신령이 모털 도사의 공덕을 평가해 머리카락을 다시 자라게 해줄 것이다.

“옥형은 모르시는 게 없구려.”

“괜히 옥황상제겠나.”

“유익한 정보에 재밌는 대화까지, 간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소. 마음 같아서는 좀 더 머물고 싶지만 울고 있을 모털이가 눈에 밟히는구만.”

슬슬 일어날 준비를 하는 강철남.

멍구도 따라나설 준비를 하자 옥황상제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배웅한다.

“방문해줘서 고맙네. 답답한 신령들만 상대하다가 대화가 통하는 젊은 친구를 만나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했구만.”

“훗. 밑에 내려가서 신령 양반들 정신 좀 차리라고 따끔히 일러주지.”

강철남과 멍구는 옥황상제와 악수를 나누고 빛의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천계와 신선계를 잇는 빛의 계단.

계단을 내려갈수록 신령들이 피워올린 연기가 짙어진다.

이내 청연 폭포가 보일 만큼 완전히 내려왔을 무렵 다시 왔던 길을 돌아보니 천계는 원래 없었던 것처럼 모습을 감추었다.

“다녀왔는가?”

태백 신령이 그들을 맞이한다.

“제법 재밌는 양반이던데, 옥형.”

“오, 옥혀엉??”

멍구의 폭탄 발언에 신령들이 유난을 떤다.

“건방지다! 감히 옥황상제님을!”

“아, 당사자가 허락한 호칭인데 왜 니들이 지랄이야? 가만 보면 충성심이 과해 너희는.”

멍구가 또 한 번 신령들을 향해 으르렁댄다.

“여차저차 해서 옥형과 좋은 쪽으로 이야기가 됐소.”

“방법을 찾았는가?”

“대한산으로 가야겠소.”

대한산의 이름을 입에 담자 대부분의 신령은 그 듣보잡 산은 무엇인고, 하는 표정들이다.

“지금 그곳에 머무는 두루미 신령을 만나야 하오.”

“두루미 신령이라니. 그분이 지금 대한산이라는 곳에 있다는 것이오?”

“그렇소만, 왜 그러시오?”

태백 신령을 비롯한 다른 신령들이 깜짝 놀란다.

“두루미 신령은 우리가 신령이 되기도 전부터 신령으로 계셨던 대선배 격이오.”

“두루미인데도?”

“그건 중요치 않소.”

신령들이 웅성댄다.

“우리는 그분을 뵌 적이 없네. 듣기로는 본인께서 인정할 수 없는 자 앞에는 나타나지 않는다하네.”

그렇게 말하면서 소백 신령은 우물쭈물댄다.

“어? 너 이 새끼! 딱 걸렸어. 지금 은근히 우리가 과연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했지?”

“아, 아니다!”

“아니긴 개뿔이 아니야. 너 내가 진작 알아봤어. 소백이, 이름부터가 옹졸하잖아.”

“아니, 이놈이 나만 갖고 그러느냐. 진짜 제대로 한판 붙어볼 터냐?”

멍구와 소백 신령이 시도 때도 없이 으르렁 부딪친다.

“멍구랑 소백 영감이 같이 있다간 신선계가 박살 나겄네. 우린 이만 가보겠소.”

“그렇게 하시게나. 꼭 두루미 신령을 만나 뵙길 바라네. 혹 만나거든 안부도 전해주길 부탁하네.”

“알겠소. 그리하리다.”

강철남은 도력을 모아 분홍색 안개를 피워올린다.

향긋한 향에 취하며 몸을 맡기니 신선계는 멀어지고 어느새 설악산에 당도했다.

모털 도사는 무리한 민간요법에 지쳐 황토집 마루에서 잠이 들어있었다.

“모털아.”

강철남이 낮고 근엄하게 부르자 화들짝 일어난다.

웅크리고 선잠을 자는 모습이 짠하다.

“철남씨 오셨어요?”

입가에 침을 닦으며 졸린 눈을 비비는 모털 도사.

꼭 낫게 해주리라.

“지금부터 우리와 대한산에 가자꾸나.”

“대한산이 어디죠?”

그 물음에 강철남과 멍구가 마주 보며 웃는다.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인 곳.”

* * *

두루미 신령.

열 명의 신령들이 임명되기 훨씬 전부터 신령으로서 우리 금수강산을 수호하던 존재.

이슬과 구름을 먹고 살며 욕심이 없어 가벼운 몸놀림으로 산과 계곡을 돌아다니는 신성한 존재다.

진미에 얽매이기보다는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몇 년을 쉬어가 계절을 온전히 즐기기도 하며 좋은 벗을 만나면 그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곁을 지키곤 했다.

하나 세상에 구멍이 뚫리고 혼란에 빠지자 머무르는 풍류를 즐길 새가 없어졌다.

두루미 신령은 신령들이 없는 이 산 저 산을 넘나들며 몬스터와 요괴들을 퇴치하며 다녔다.

그 덕에 마물들 사이에서는 정체 모를 두루미가 두려움의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세상 두루두루 수호 활동을 이어가던 어느 날,

대한산이라는 산에 잠시 날개를 쉬어가던 날이었다.

“너는 누구냐? 굉장히 좋은 냄새가 난다.”

웬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와 말을 거는 것이었다.

자신의 몸에서 풍기는 도력을 맡고 온 모양이다.

두루미 신령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 고양이는 보통내기가 아니다.

마력이 느껴지긴하나 부정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손톱에 무수한 마물들의 피의 기운이 서려 있는 것으로 보아 마물들을 퇴치하는 자 같았다.

“나는 두루미 신령이다. 세상을 떠돌며 마물들을 퇴치하고 있지.”

“오! 두루미인 건 척 보면 알겠는데 신령이라니. 혹시 도술도 부르고 그러니?”

“보여줄까?”

펑!

두루미 신령은 가벼운 도술을 선보였다.

[둔갑술]

휩싸인 하얀 연기가 걷히더니 두루미 신령이 있던 자리에 맞은편에 있는 고양이와 똑같은 고양이가 서 있다.

“우와! 진짜 짱이다!”

“훗. 이 정도야 껌이지.”

“우리 좀 더 이야기하지 않을래? 너는 왠지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알 거 같다!”

고양이는 깡총깡총 뛰어오르며 두루미 신령을 졸라댄다.

두루미 신령은 여흥 삼아 고양이와 어울리기로 했다.

무엇보다 그 고양이에게서 길조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곳에 머물러 시간을 보내면 언젠가 북쪽에서 귀인이 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두루미 신령이 고양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 지 일주일째.

둘은 마물들을 함께 잡으며 전우애를 다져갔다.

한 번은 정상에 올라가니 웬 덩그러니 놓인 솥뚜껑을 발견하는데,

“이보게. 이 솥뚜껑은 뭔가?”

“아, 이거? 예전에 내가 모시던 형님이 대한산 정상의 구멍을 막겠다고 박아놓으신 거야.”

“그런데 튕겨 나와 있군.”

“응. 무슨 첫 번째 마왕 어쩌고 하는 놈의 부하가 와서는 구멍을 뚫고 가버렸어. 놈의 기운이 어찌나 살벌한지 손을 못 쓰겠더라고. 다행히 구멍만 뚫고 사라져버려서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지만.”

“큰일 날뻔했군. 현명했다. 냉철한 판단이었어. 목숨은 한번 잃으면 끝이네.”

강철남이 떠난 대한산.

어느 날 첫 번째 마왕의 부하가 나타나서는 정상의 작은 구멍에 박아넣은 솥뚜껑을 밀어냈다.

그 뒤로 대한산에는 마물들이 들끓었고 이 한 마리의 외로운 고양이는 홀로 마물들을 상대하면서 지냈다.

“그런데 그 형님이라는 양반은 어떤 사람인가? 자네가 모실 정도라면 보통 양반은 아닐 거 같은데.”

“하하하. 대단한 양반이지. 여러모로.”

고양이는 모시던 형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몬스터를 잡아 프라이팬과 솥을 만들어 구워 먹던 얘기,

웬 허접한 헌터들이 와서 허세를 부리다가 된통 혼만나고 달아난 썰,

헌터 연합의 인간들이 몰려와 도움을 구걸하던 전설 같은 이야기 등.

형님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고양이의 얼굴은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

이야기를 듣자하니 두루미 신령도 그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참으로 호인이로다. 나도 한번 만나보고 싶은 위인이로군.”

“나도 보고 싶다. 못 뵌지 얼마나 되었는지.”

조금 쓸쓸한 표정의 고양이었다.

두루미 신령은 날개로 고양이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해준다.

그때, 구멍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뭐지?”

“불온한 기운이구나.”

고양이와 두루미 신령은 한발 물러서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푸른 화염]

두루미 신령은 입에서 푸른 화염을 분출해 구멍을 태웠다.

하지만 불온한 기운은 죽지 않고 오히려 더 거센 기운을 내뿜으며 달려왔다.

“온다!”

콰아아앙!!

구멍에서 튀어나온 검은 형체가 두루미 신령을 공격한다.

[거대화]

고양이는 몸이 거대해진다.

커다란 앞발로 검은 형체를 두들기니 바닥에 처박힌다.

하지만 별 타격이 없는지 다시 일어선다.

“뭐 하는 녀석이냐, 너는?”

녀석은 모습을 철저히 감추고 있었다.

수인 같은 체형이지만 얼굴과 몸을 천으로 친친 감아 피부와 털을 식별할 수가 없었다.

정체를 완전히 숨기고 있는 자객.

목적의식이 분명한 녀석임이 틀림없다.

녀석이 손에 든 칼을 들고 다시 덤벼온다.

“조심해, 녀석이 노리는 건 자네네!”

고양이는 두루미 신령에게 소리쳤다.

움직임과 살기만 봐도 타겟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자객은 칼은 유려하게 휘두르며 두루미 신령을 공격했다.

펑!

[둔갑술]

두루미 신령은 자객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서 대등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호각으로 다투는 둘을 지켜보며 고양이는 빈틈을 노린다.

지금이다!

[혼 빼내기]

고양이가 날카롭게 자객의 품으로 파고들어 혼을 빼낸다.

혼을 강탈당한 자객은 급격히 체력이 저하되어 주저앉고 만다.

“포기해라. 넌 이길 수 없어.”

무릎을 꿇은 자객은 그 와중에도 살기를 죽이지 않았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싶은 그때,

와작!

자객이 뭔가를 입에 넣고 씹었다.

그러자,

우드드득-

자객의 몸에서 엄청난 요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저 약은 대체 뭐지?”

“요력을 증폭해주는 수상한 약이로군.”

고양이와 두루미 신령은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했다.

다만 드는 한 가지 생각.

여기서 물러나면 산과 산 아래는 끝장이다.

펑!

[둔갑술]

두루미 신령은 봉황으로 둔갑해 공중에서 자객을 노려 고공 낙하 기술을 펼친다.

[독발톱]

고양이는 독이 묻은 발톱으로 자객의 목을 노린다.

하지만,

쿠앙!

자객이 땅을 한 번 세차게 밟자 고양이는 쓰러져 기절하고 만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로 뛰어오른 자객이 봉황의 목덜미를 낚아챈다.

둔갑이 풀린 두루미 신령.

이대로 목이 터져버릴 것 같다.

켁켁…

이대로 끝인 건가.

[부정 도핑 적발]

저 멀리서 웬 부적 한 조각이 날아온다.

부적은 두루미 신령의 목을 조르고 있는 자객의 몸에 찰싹 달라붙는다.

그러더니,

지이이이잉---

보라색 섬광이 번쩍이며 자객의 요력을 빼앗아가기 시작했다.

자객은 괴로워하며 무릎을 꿇고 쓰러진다.

요력을 잔뜩 머금은 부적은 보라색 불꽃을 일렁이며 화르륵, 연소해버리고 만다.

“이 새끼가 비겁하게 맞짱 중에 약물을 쳐먹어?”

목이 졸린 두루미 신령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시선으로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본다.

흐릿한 대한산의 풍경 속에서 웬 인간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한 마리의 개와 민머리 사내도 동행하고 있다.

“철남이, 약물 도핑한 치졸한 새끼는 영구퇴출감인데.”

개가 자객의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자객이 칼을 쥐고 휘두르나 개는 입으로 칼을 으깨고는 다시 한번 자객의 머리통을 후려갈긴다.

“반성의 기미가 없는 새끼로구만.”

“철남씨. 그저 목적 없이 난동을 부리는 마물로는 안 보입니다.”

“닌자 같은 복장에 약물 도핑. 게다가 요력까지. 정신 감정이 필요하겠군.”

그때 잠시 의식을 잃었던 고양이가 눈을 뜬다.

“어?”

“여어, 잘 지냈냐.”

“처, 철남이 형님! 멍구 형님!”

고양이가 펄쩍 뛰어 그들에게 달려든다.

“오랜만이다, 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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