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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 자연인이다-77화 (77/175)

77화 처음 뵙겠소, 옥황상제

옥황상제.

바로 천계의 통치자이자 신령들을 임명한 권위자.

인간계를 내려다보나 관여는 하지 않는 관찰자.

그가 하는 일과 사명에 관하여 아는 자는 없다.

심지어 신령들조차도.

신령들에게 옥황상제란 받들어 모시는 신이며,

동시에 직속 상사이기도 하다.

그 영험함과 절대적 권능에 저절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으며 이름을 부르기조차 조심스러운 존재다.

그런데,

그런 옥황상제를 이제 갓 신령이 된 신입이 만나겠다고?

“설악 신령. 그 말은 무례한 것 같소.”

“그렇지. 감히 옥황상제님을 알현하려 하다니.”

“이잉. 그럼 그렇지. 이래서 젊은것들이란.”

한 마디씩 꾸짖으며 혀를 끌끌 차기도 하는 신령들.

듣고 있던 멍구가 빡친다.

“이 꼰머 새끼들. 뭐가 어쩌고 어째? 이거 순 유령회사 아니야? 아래 직원이 10명밖에 안 되는 소기업에 신입이 들어왔는데 어떻게 CEO라는 새끼가 얼굴 한 번 안 비춰?”

“네 이노옴!!!!”

멍구의 불손한 발언에 소백 신령이 지팡이를 쿵, 땅에 찍는다.

그러자 빛이 번쩍하면서 멍구를 덮친다.

순발력으로 땅을 쳐올려 벽을 세워 막아내는 멍구.

“어쭈? 해보자 이거지?”

“됐어, 멍구. 때려 팬다고 말이 통할 양반들이 아니야. 아가리로 조지겠다.”

“쳇. 힘내 보라구.”

몸을 홱, 돌리고 드러누워 버리는 멍구.

강철남이 한 발 앞으로 나와 입을 연다.

“도사란 무엇이오?”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

“다시 한번 묻겠소. 도사란 무엇이오?”

“허허. 신령 된 자가 도사가 무엇인지도 모르냐? 오냐, 내 알려주지. 도사란 도력을 타고난 존재로서 신령의 제자가 되어 도술을 갈고 닦는 자이다. 힘을 길러 신령과 함께 요괴를 퇴치하고 나아가 차기 신령직을 이어받는 귀중한 인재지.”

지리 신령이 설명충마냥 따박따박 뱉어내자 다른 신령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귀중한 인재라. 그렇다면 또 묻겠소. 그대들에게 있어 모털이 역시 귀한 제자 아니오?”

“모털이? 참한 젊은이지.”

“그런 인재가 또 없지.”

“암 그렇고 말고.”

살짝 빡이 오른 강철남.

하지만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말을 이어나간다.

“그 모털 도사가 지금 어떤 고민을 품고 살아가는지 아시오?”

“알고말고. 탈모로 도력이 담긴 머리카락을 잃어서 고생아니더냐. 참으로 안타까운지고.”

팔공 신령이 눈을 감고 유감이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렇다면!”

“깜짝이야.”

“당신들은 그 모털이를 위해서 뭘 해주었소?”

“우리도 나름 도와주려 해보았다. 하지만 씨가 말라버린 도력의 뿌리를 새로 심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라고 손 놓고 방임만 한 줄 아느냐? 우리 그렇게 정 없는 신령들 아니다!”

한마디씩 변명을 늘어놓는 신령들.

강철남은 참지 않았다.

“아니, 당신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어. 적당히 자기들 선에서 할 수 있는 행동들을 하는 척했을 뿐이지.”

“어허! 말이 지나치구나. 그렇다면 그대는 모털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최후의 수단을 위해서 여기 왔지.”

“그게 옥황상제님을 뵙는 일이더냐?”

“그렇다. 그러니까 만나게 해줘.”

신령들은 얼굴에 노기를 띠었다.

와중에 태백 신령은 입으로 주문을 외우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설악 신령의 말이 거칠어서 그렇지 내용은 틀린 게 없을지도 모릅니다.”

“태백 신령!”

“도사들은 인간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신령을 위해 목숨을 걸고 수행하며 요괴들과 싸웁니다. 하지만 우리 신령들은 도사를 위해 무엇을 해주었습니까?”

“인간을 위해 옥황상제님을 알현하다니.”

소백 신령은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그 말에 강철남이 끼어든다.

“옥황상제를 만나서 이야기만 할 뿐인데 너무 극성인 거 아니요? 그 양반 대인 기피증이오?”

“네 이노오옴!”

소백 신령이 또 한 번 지팡이를 휘두른다.

불덩이가 날아오더니 강철남을 휘감는데,

“말로 합시다.”

그 불길을 다시 되돌려 보내니 소백 신령의 소복 자락에 불이 붙는다.

“하아앗!! 후욱! 후욱!”

강한 입김을 불어 간신히 불을 꺼뜨리는 소백 신령.

태백 신령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한바탕 싸움이 벌어질 듯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맞는 말이오. 옥황상제를 뵙는 것뿐인데 우리가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 같소.”

“태백 신령은 왜 자꾸 저 뺀질뺀질한 놈 편을 드시오?”

소백 신령이 진심으로 섭섭한 듯 칭얼댄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머리털 허연 영감이 투정을 부리고 있으니 강철남은 또 한 번 빡이쳤지만 억누르며 참았다.

“모털이는 확실히 실력 있고 성품 좋은 도사요. 그런 인재를 육성하여 훗날 우리 금수강산을 지켜나가도록 맥을 잇는 것이 우리 신령들의 일 아니오?”

태백 신령의 합리적인 설득에 다들 헛기침만 할 뿐 반박은 못 한다.

“여러분. 한 번 부탁해봅시다.”

“크흠. 대신 설악 신령 혼자 가시오.”

“못난 놈들. 이럴 때 총대를 막내한테 맡기냐? 하여간 나이를 어디로 쳐먹었는지.”

멍구가 낄낄대며 비아냥댄다.

소백 신령이 지팡이를 들었고 멍구는 앞발을 든다.

이제 지긋지긋하다는 듯 강철남이 사이를 가로 막는다.

“결심했으면 일이나 진행합시다.”

신령들은 잠시 모여 회의를 하는 듯 하더니 이내 청연 폭포 앞에 둥글게 모여 섰다.

늘어선 신령들이 뒤 각자 지팡이를 들어 빛과 연기를 뿜어낸다.

신묘한 향이 풍기고 영맥의 기운이 흐른다.

신선계는 어느새 하나의 거대한 제단이 되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이 동굴 속에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웅장하고 청명하게 울린다.

“옥황상제님을 뵈옵길 청하옵니다.”

태백 신령이 기도의 마지막 말을 올리자 폭포수가 빛의 계단으로 변하였다.

참으로 눈부시고 놀라운 광경이었다.

“옥황상제님께서 알현을 허하셨다. 올라가 보거라.”

계단에 한 발 얹는 강철남과 멍구.

빛의 계단을 조심조심 올라간다.

마침내 천계의 권위자 옥황상제를 만나는 순간이다.

* * *

주변은 하얀 구름으로 둘러 싸여 있다.

빛의 기둥이 곳곳에 세워둔 걸로 보아 거대한 신전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천장을 보이지 않는다.

“앞을 봐도 끝이 안 보이네. 옥황상제는 어디 있는 거야?”

멍구가 눈을 가늘게 뜨고 멀리 내다본다.

보이는 건 하얀 구름뿐.

“허허허. 저 앞은 무(無)의 공간이니 아무것도 안 보일 것이다.”

강철남과 멍구는 깜짝 놀란다.

기척도 없이 뒤에서 훅 들어오는 목소리.

뒤를 돌아보니 노란 곤룡포를 입은 잘생긴 영감이 커다란 의자에 앉아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장기판이 놓여 있으니,

“우와!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이거 세팅 언제 한 거요?”

멍구는 그게 궁금한 모양이다.

“너희가 안 볼 때 냉큼 했지. 허허허.”

그걸 또 받아주는 옥황상제.

딱딱한 신령들에 비하면 위트가 넘치는 게 아주 예능의 신이라 해도 믿겠다.

“장기 한판 두겠나?”

“장기는 못 두는데 알까기 어떻소?”

“그것도 좋지!”

그렇게 옥황상제와 강철남의 알까기 대국이 시작된다.

딱!

옥황상제는 졸로 왕을 날려버린다.

“거 혹시 스킬 중에 [알까기] 라도 있는 거요?”

“꼭 못하는 애들이 스킬탓 하더라.”

말로도 못 당하겠다.

그렇게 3전 3승으로 옥황상제가 깔끔히 이겼다.

“오랜만에 재밌는 승부였네. 점점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걸 보니 백 판만 더 했다면 한 판 정도는 무승부였을지도 모르겠구나.”

“은근히 돌려 까시네.”

강철남과 멍구가 눈을 한 번 깜빡이자 어느새 장기판은 사라지고 대신에 상과 찻잔이 놓여 있었다.

“우와! 옥형 겁나 빠르네.”

멍구가 감탄에 감탄을 한다.

“옥형? 어허허. 그렇게 불러주니 젊어진 것 같아 좋구나.”

“차가 참 맛있군. 나르딘의 차와 비견할 정도야.”

“이런. 나는 너무 맛있어서 둘 중 하나 죽어도 모를 리액션을 기대했는데. 나르딘이라는 곳의 차가 이 천계의 차와 비등할 정도로 그렇게 대단한 모양이지? 언젠가 한 번 마셔봐야겠구나.”

“오늘은 어찌저찌 빈손으로 왔소만 다음에 올 때는 양 손 가득 꼭 챙겨 오리다. 끝내주는 술도 있으니 기대해도 좋소.”

“허허허. 그거 기대되는구나.”

강철남과 멍구는 차의 맛과 향을 음미하며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옥황상제와 강철남 사이에 사담이 오간다.

“철남 동생은 바쁘겠구만. 신령 짓도 해야 하고 마왕짓도 해야하니.”

“사실 모털이가 도력을 되찾으면 신령 일도 때려치울 거요. 마왕 일은 키켈이라는 똘똘한 녀석에게 맡겨놨으니 문제 없수다.”

“허허허. 다 계획이 있구나.”

“일이라곤 평생 할 만큼 다 해봤으니 이제는 그냥 먹고 놀랍니다. 자연인으로서 안빈낙도요.”

“그러기에는 항상 문제가 끊이지 않는구나.”

“내 말이요. 이놈의 팔자.”

“이런 말이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가 되는 팔자란 복이 있는 팔자란다.”

“싸울래요?”

“허허허허허!”

우스갯소리가 오가면서 강철남은 중간중간 뼈 있는 질문도 던진다.

“옥형은 초대 마황제가 누군지 아시오?”

“마계와 썩 왕래하지는 않았지만 알고는 있었지.”

“어떤 양반이었소?”

“호탕했지. 시원시원했고. 마계를 제법 잘 다스렸어.”

“그런데 왜 사라진 거요?”

“그건 나도 모르겠네. 그건 오직 그만이 알 일. 하지만 영원한 비밀이란 없단다. 언젠가 그의 뜻을 알게 될 날이 올 거라네.”

“옥형이야 오래오래 살겠지만 우리는 그 전에 죽을걸요?”

“그럼 무덤 앞에 가서 썰을 풀어주마.”

“됐네요!”

“허허허허허!”

즐거운 담소가 오갔다.

충분히 즐긴 뒤 강철남은 슬슬 본론을 꺼낸다.

“옥형. 우리가 여기 왜 왔는지 알고 있소?”

“허허. 옥황상제라고 모든 걸 알 수는 없다네. 천천히 이야기를 들려주겠나.”

강철남은 모털 도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사정과 그가 도력을 잃은 것.

그리고 그가 왜 그토록 도력을 되찾는 일에 열의를 올리는지.

모든 이야기를 신중히 듣던 옥황상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고놈 참 딱하게 됐구나.”

“그치? 애가 또 착해서 더 맘 아프지.”

멍구가 한 마디 거든다.

슬슬 가스라이팅 시동을 거는 것 같다.

잠시 생각에 잠긴 옥황상제.

그러곤 천천히 입을 연다.

“잃어버린 도력, 즉 머리카락을 다시 자라게 해 줄 방법이 있네.”

“정말이오?”

“그럼 그럼. 정말이네.”

내심 기뻤지만 마음을 다스리고 진정한다.

“그 방법이 뭐요?”

“그 방법이란 바로 공덕을 증명하는 일이라네.”

“공덕을 증명?”

“모털 도사란 자가 살아오면서 쌓아온 공덕이 참으로 칭송받아 마땅하다면 머리털은 다시 자랄 것이네.”

“잠깐, 옥형. 이해가 안 가는데 그럼 그 공덕은 누가 인정해 주는 거요? 옥형이요?”

“허허허. 나는 아니라네.”

“그럼 어디로 가서 누구를 만나면 되는 거요?”

빙그레 웃는 옥황상제.

“두루미 신령을 만나면 된다네. 하지만 두루미 신령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지. 산과 강을 돌아다니며 더럽혀진 곳을 정화하기도 하고 세상을 둘러보기도 하지.”

“하필 역마살 있는 양반이라니.”

“하지만 이번에는 한 곳에 제법 머물러 있는 듯 하구나.”

“거기가 어디요?”

또 한번 빙그레 웃는 옥황상제.

“허허허. 모든 것이 돌고 돌아 인연의 고리를 만드는구나.”

“갑자기 또 수수께끼 타임이요?”

“정답을 바로 알려주겠네.”“

”어디요?“

”대한산이라네.“

그랬다.

해답의 열쇠 두루미 신령이 있는 곳.

그곳은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인 대한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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