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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 자연인이다-76화 (76/175)

76화 첫 번째 마왕

일전에 마계에서 한 번 물어본 적이 있었다.

베일에 싸여 있는 첫 번째 마왕이 누구냐고.

두 번째 마왕 가이아, 세 번째 마왕 크레톤, 네 번째 마왕 카르텔, 다섯 번째 마왕 강철남.

초대 마황제가 가장 먼저 마왕으로서 인정한 첫 번째 마왕은,

대체 누구일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정보라면 빠삭한 상업 마왕 카르텔조차 몰랐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네.”

언제나 강철남에게 마계에 관한 많은 것들을 알려주던 가이아조차 몰랐다.

첫 번째 마왕은 도시를 통치하지도,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실존하는지조차 논란이 많은 자였다.

“초대 마황제가 바로 첫 번째 마왕이라는 썰이 가장 유력하지 않아?”

“맥거핀이라는 소문도 있어. 아무 의미 없이 그냥 배치해 둔 장치처럼 말이야.”

“이미 죽은 거 아니야?”

“어디선가 숨어서 대반란을 꾸미고 있을지도 몰라.”

살롱에서는 종종 심심치 않게 첫 번째 마왕의 정체에 관한 이야기가 오가곤 했다.

그러나 나오는 이야기는 언제나 근거 없는 카더라 통신, 아니면 신빙성 없는 뇌내망상에 불과한 이야기들이었다.

강철남도 한때 의문을 가졌지만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일단 형식상 마왕이긴 했지만 강철남은 인간계의 자연인.

안빈낙도를 방해하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데 그 첫 번째 마왕과 첫 만남이 아무래도 좋은 분위기가 아니다.

신선계를 습격한 혼돈귀가 첫 번째 마왕과 관련이 있다는 단서를 잡았으니까.

강철남은 신선계가 마음에 들었다.

멋드러진 풍경, 푸릇푸릇한 풀잎의 냄새, 시원스레 쏟아지는 폭포수.

자연인에겐 꿈에 그리던 휴양지나 다름없었다.

그런 신선계를 초토화 시켰으니 곱게 봐줄 수가 없다.

강철남은 [빙의]로 혼돈귀의 정신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첫 번째 마왕으로 추정되는 자의 실루엣이 보인다.

녀석이 이어 하는 말은 강철남에게 제법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혼돈귀여.”

“네, 마왕님.”

“지금부터 하는 말은 네 놈에게 하는 말이 아니니 귀담아 듣지 말거라.”

“예.”

“지금 녀석의 정신을 지배하여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녀석은 듣거라.”

강철남에게 하는 말이었다.

지금 이 장면은 라이브인가?

아니다, 정신을 들여다보는 일은 녹화 방송을 보는 것과 같다.

그렇다는 건 첫 번째 마왕은 이미 일이 이렇게 풀릴 것을 대비해둔 것이다.

“네가 누군지 알고 있다. 넌 아마 다섯 번째 마왕이겠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꿰뚫어 보고 있는 첫 번째 마왕.

“내가 어떻게 알아챘는지 궁금하겠지. 이 요괴들을 박살 내고 기억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는 너밖에 없을 테니까.”

첫 번째 마왕은 강철남에 관해 아주 잘 아는 눈치다.

변태 스토커한테 존나 잘못 걸린 연예인 같은 기분이다.

“너는 나를 모른다.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도 모르겠지.”

이 새끼 말을 빙빙 돌리는 게 마음에 안 든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나는 마계를 집어삼킬 것이다. 다른 마왕들은 쪼잔하게 도시 하나를 통치하는 것으로 만족하지만 나는 그렇게 속 좁은 마왕이 아니라서 말이야. 흐흐흐. 내가 이 사실을 왜 너한테 알려주냐고? 세간에 알리기 위해서지. 첫 번째 마왕이 마계를 정복하고 마황제로 등극한다는 걸.”

첫 번째 마왕의 녹취록을 잠자코 들으면서도 강철남은 놈의 위치를 파악하려 애썼다.

하지만 사방이 온통 검은 공간이라 어딘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철남이, 뭐가 그리 재밌길래 한참을 보고 있어?”

혼돈귀의 머리통을 꽉 쥔 채 미간을 좁히고 있는 강철남.

멍구가 하도 답답해서 물어본다.

“첫 번째 마왕. 녀석이 배후야.”

“오, 그럼 그 새끼 조지면 되겠네. 어딨대?”

“그걸 몰라.”

“신비주의냐? 극혐. 대빵은 혼자 버로우타고 아랫것들 시켜서 손 안 대고 코 푸시겠다? 치사한 놈. 퉤퉤퉤.”

멍구가 넌더리를 친다.

한편 신령들은 부상 당한 계룡 신령과 한라 신령을 안식처로 데려갔다.

지팡이에 기대 지친 몸을 이끌고 태백 신령은 강철남에게 다가와 감사를 표한다.

“정말 고맙네, 설악 신령. 자네가 아니었더라면 신선계는 요괴들의 손아귀에 들어갔을 것이야.”

“신경 쓰지 마시오. 여기 천도복숭아가 맛있어서 말이야.”

강철남은 난장판이 된 신선계를 둘러본다.

여기저기 움푹 팬 구덩이와 피로 물든 폭포수.

널브러진 요괴들의 사체.

“이거 다 어떻게 치우게요?”

“신령들이 힘을 모으면 금방 정화될 것이네.”

“어흠. 귀찮아질 것 같으니 나는 이만 가보겠소.”

“허허허. 고생 많이 했으니 돌아가서 쉬게.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정리하겠네.”

“조심들 하시오. 한라 신령도 당했는데 당신들이라고 안 당하겠소?”

“그리하도록 하지. 이번 일은 우리도 상심이 크네.”

태백 신령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졌다.

슬슬 배가 고파진 멍구의 얼굴에도 그늘이 드리웠다.

“철남이, 가서 밥이나 먹자.”

“그러자. 이봐 모털이, 돌아갑시다.”

“예에…”

대답하는 모털 도사의 안색이 어쩐지 좋지 못하다.

“머리카락 되찾을 줄 알았는데 아니라서 실망한 거요?”

고개를 가로젓는 모털 도사.

“저의 나약함이 분해서요.”

어깨가 축 늘어진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밥이 꿀떡꿀떡 넘어갈 것 같지가 않다.

“에헤이, 아직 한참 젊은 사람이 밥맛 떨어지게 땅이 꺼져라 한숨이나 쉬고. 허리 펴시오!”

탁-

허리를 세게 치자 모털 도사가 정신이 번쩍 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억지로 쓴웃음을 짓는 그의 얼굴에서 가시지 않는 슬픔을 엿보았다.

“어쩔 수 없군. 뭐라도 해봅시다.”

“네? 무얼요?”

“머리카락 자라는데 필요한 건 뭐든.”

* * *

설악산으로 돌아온 셋.

밥을 후딱 먹고 난 후 곧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그 작업이란,

“야, 이 씹새들아! 전부 대가리 박어!”

멍구가 정상의 요괴들을 전부 쓰러뜨리고 기강을 잡는다.

느닷없이 나타난 웬 개한테 두들겨 맞고 땅에 정수리를 박는 몬스터와 요괴들.

“자, 황무지에서 꽃을 피우는 법을 알고 있는 새끼 있나?”

“그건 상당히 상위 마법에 속합니다.”

“이건 비유야, 비유. 그렇다면 머리카락 자라는 법 알고 있는 새끼 있나?”

“…”

일났군.

탈모는 마법으로도 치유가 안 되는 모양이다.

불편한 침묵에 멍구는 심사가 뒤틀린다.

“아니, 씨바. 하다못해 겨털 자라는 법이라도 아는 새끼가 한 놈도 없어?”

목을 부들부들 떨면서 다들 아무 말도 못 한다.

“거기 너, 고블린 씹쌔.”

“저요?”

“그래, 너 말이야. 자기인 거 알면서 ‘저요?’ 이 지랄 하고 있다, 썅노무새끼. 너도 머리카락 한 올 없는데 탈모약 한 번 알아본 거 없어?”

“고블린은 원래 머리카락이 없는데요?”

“이 썅! 존나 도움이 안 되는 새끼!”

멍구는 뒷발로 걷어차 고블린을 구멍 안으로 날려버린다.

비명과 함께 사라진 고블린.

다른 마물들이 잔뜩 긴장한다.

“잘 생각해보는 게 좋을 거야. 어렸을 때 동네 아저씨들이 술에 꼴아서 머리숱 빠진다고 노가리 깠던 이야기라도 억지로 짜내란 말이야.”

“저기…”

“오! 거기 시금치! 뭔가 생각났냐?”

“전 시금치가 아닌뎁쇼.”

모가지를 부들부들 떨며 고블린 한 마리가 건방지게 말대답을 한다.

“시금치가… 말대꾸?”

“히익!”

“대답 여하에 따라 네 모가지가 네 몸뚱아리와 영영 이별할 수도 있어. 잘 생각하고 말해.”

“네! 그게, 붉은 달이 뜨는 날 자정, 토왕성 폭포를 머리에 맞으면 머리가 자란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야.”

“네에!”

“니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지?”

“으음… 네.”

“이 새끼!”

뻥!

뒷발로 후려갈겨 고블린을 구멍 너머로 날려버린다.

“다음은 누구냐.”

“저, 공룡능선에 둥지를 틀고 사는 대머리 독수리의 똥을 머리에 바르면 머리카락이 다시 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하다하다 똥을 쳐바르라고? 니가 생각해도 선넘지?”

“조, 조금이요…”

뻥!

한 놈이 더 구멍으로 날아간다.

“자, 빨리빨리, 다음다음.”

그 뒤로 나오는 정보들이랄게 어이가 없었다.

연꽃 차 10L를 마시고 오세암의 불상 앞에서 삼천 배를 올리라는 얘기.

비선대에 솟은 벼락 맞은 대추나무에 머리를 100번 찧으라는 얘기.

등등.

“야, 듣자 하니 몬스터나 요괴의 피를 쓰라는 소리는 없다?”

“흐익! 그건 너무 끔찍합니다.”

“새끼들이. 이참에 시험해볼까?”

“엄마야!!”

멍구가 앞발을 쳐들자 마물들이 죽기 살기로 구멍을 넘어 도망친다.

결국 그럴싸한 정보는 못 얻었다.

“철남이, 얻은 정보랄게 이런 것밖에 없는데.”

“가만 있으면 뭐 하겠어. 싹 다 해보자.”

“진심?”

“진심.”

탁상공론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

그렇게 시작된 모털 도사 발모 프로젝트.

먼저 붉은 달이 뜨는 날, 토왕성 폭포의 물줄기를 맞는다.

“철남씨, 이거 너무 추운데요. 머리도 깨질 것 같아요.”

“참으쇼. 그거 다 죽었던 모근이 되살아나는 감각일 거요.”

엄살을 떠는 모털 도사를 잘 타이르는 강철남.

달콤한 말에 홀라당 넘어가 배실배실 웃는데,

“모근이 살아난다라, 듣기만 해도 반가운 소리군요. 참아보겠습니다.”

결국 여섯 시간 동안 존버한 결과 얻은 거라곤 목 디스크와 붉어진 정수리 뿐이었다.

“우와, 존나 아프겠다!”

멍구가 이걸 버티네, 라는 표정으로 모털 도사를 바라본다.

“그렇게 보지 마십시오. 굴욕적입니다.”

“오케이! 그럼 다음 거로 가보자구.”

펑!

공룡능선으로 [공간 이동]을 한다.

도착해보니 소문처럼 무수한 대머리 독수리들이 날아다니며 둥지를 틀고 있었다.

“이제 어쩌죠?”

“다 계획이 있지.”

강철남은 주머니에서 옥수수 알갱이를 꺼낸내는데.

평범한 옥수수 알갱이가 아니다.

설사를 야기 한다는 독초 세르사르 풀을 찧어 잔뜩 버무린 곡물이다.

촤르륵-

그걸 뿌리니 독수리들이 달려들어 정신없이 쪼아 먹는다.

“자, 저 한 가운데로 가서 가부좌 틀고 앉아있어.”

뭔가 느낌이 쎄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 모든 건 풍성충이 되기 위해서.

그 다음 벌어질 일을 차마 서술할 수는 없었다.

참혹하고 냄새나기 그지없는 사투였다.

그저 풍성충이 되기 위한 모털 도사의 눈물 나는 의지를 찬양할 수밖에 없다.

그 뒤에도 연꽃 차 10L를 마시고 오세암의 불상 앞에서 삼천 배를 올려도 보았고,

비선대에 솟은 벼락 맞은 대추나무에 머리를 100번 찧어도 보았다.

그러나 풍성충은커녕 잔털 한 올 올라오지 않았다.

“흑흑.”

강철남은 안다.

그가 초월초를 먹고 젊어지기 전 얼마나 탈모로 고생을 했는지.

게다가 모털 도사는 한낱 머리카락이 아니라 탈모로 인해 나약해진 자신을 견딜 수 없어 슬픔에 빠진 것이다.

도사로서 요괴를 퇴치하지 못하는 무력감,

세상에 이로움을 줄 수 없다는 비애.

그 고운 마음씨에 마구 상처가 난 것이다.

“안 되겠어.”

강철남은 분홍 연기를 피운다.

“철남이, 어디가게?”

멍구가 강철남의 등짝에 매달려 함께 신선계로 간다.

신선계에선 신령들이 전투의 흔적을 정리하고 있었다.

“오, 설악 신령 아닌가? 어인 일인고? 도와주러 왔는감?”

백운 신령이 그들을 반긴다.

하지만 그런 용무로 온 것이 아니다.

“신령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소.”

모든 신령들의 시선이 강철남에게 쏠린다.

“옥황상제를 만나야겠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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