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최강 자연인이다-70화 (70/175)

70화 마당에 말려둔 고추 훔쳐 먹은 새끼 누구냐?

가이아가 내민 손을 맞잡는 한지영.

그녀의 손길을 받아 몸을 일으킨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기력을 탕진해 한지영은 몹시 지쳐 보였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본 가이아가 손끝에 마력을 모은다.

[회복]

지친 한지영의 몸에 기력이 다시 솟는다.

“세상에!”

“회복 마법?”

“차원이 다르군. 수준 높은 공격 마법에 희귀한 회복 마법까지.”

팀장들은 회복 마법이란 것을 처음 봤다.

인간 중에 이런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이것이 마왕의 힘인가.”

마왕이란 벽이 이토록 높을 줄이야.

“요괴랑 싸울 생각은 없었는데. 시간을 제법 잡아먹었네.”

태양을 보며 시간을 가늠하는 가이아.

도시 가이아엔 아직 그녀가 할 일이 많다.

그만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가이아 님. 강철남 씨의 친구라고 들었습니다. 묻고 싶은 게 아주 많습니다.”

“후훗. 아쉽지만 시간이 없어서. 백성들이 기다리거든. 궁금한 게 있거든 강철남에게 물어봐. 항상 앞서나가는 남자니까.”

가이아는 웃으면서 홍태진의 권유를 잘라 냈다.

팀장들에게 가벼이 손을 흔들고 정상을 향해 몸을 돌리는 가이아.

그때였다.

“철남 씨는, 설악산에 있어요.”

떠나려는 가이아의 등 뒤로 한지영이 외쳤다.

그녀의 눈빛을 들여다보며 가이아는 웃음으로 화답한다.

“후후훗. 고마워. 또 봐, 아가씨.”

싱그러운 풀냄새만을 남기며 가이아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마법에 홀린 듯한 기분이다.

“요괴라…….”

홍태진은 찢긴 풍속귀의 잔해를 모아 가방에 담는다.

아무래도 새로운 위기에 맞설 방책을 세워야 할 것 같다.

요괴, 녀석들에 대해 더 조사를 해 봐야겠다.

* * *

한편 오늘도 어김없이 분노와 고성방가로 시작하는 설악산의 아침.

강철남은 몹시 빡쳐 있다.

“X바, 어떤 새끼냐. 어떤 새끼냐고!!”

볕에 말리려고 마당에 널어 둔 고추.

애지중지 키워 수확해 낸 고추를 누군가 밤사이 홀라당 훔쳐 먹고 달아난 것이다.

“멍구!”

“나 아냐! 미쳤다고 그 많은 고추를 다 씹어 먹냐?”

그래. 멍구일 리 없다.

그랬다면 지금쯤 피똥을 싸고 난리가 났겠지.

“오늘 할 일은 이 범인 새끼를 잡아서 족치는 것이다.”

하루 스케줄이 공개되자 멍구가 한숨을 쉰다.

어제 고추를 수확하느라 진을 뺐는데 오늘 또 노동인가.

싫은 소리를 해 봤자 소용없다.

먹을 걸 빼앗긴 강철남은 눈에 뵈는 게 없으니까.

“멍구야, 그 잘난 콧구멍을 놀려 보거라.”

“예에, 예에.”

건성으로 대답하는 멍구.

바닥에 코를 박는다.

[탐색]

후각을 곤두세우고 집중한다.

마당으로 접근한 낯선 흔적을 찾는데,

“킁킁. 수상한 몬스터의 냄새다.”

“좋아, 안내해.”

강철 숟가락을 든 강철남의 눈빛이 매섭다.

앞서가는 멍구의 뒤를 쫓으며 범인을 어떻게 조질까 연구해 본다.

“여기야.”

흔적의 끝에 다다른 곳은 버려진 암자.

그곳에서 한 고릴라 몬스터가 경치를 구경하고 있다.

“여어, 이 X쌔야.”

인사 대신 느닷없이 욕부터 박고 보는 강철남.

고릴라가 뭔가 싶어 고개를 돌린다.

“누구냐, 넌.”

“누구냐고? 부처님이다. 지금부터 널 극락세계로 보내 주마.”

성큼성큼 걸어가는 강철남을 막아서는 멍구.

“야, 인마. 진정해. 일단 진상 조사부터 해야지.”

“네가 내 마당에 들어와서 고추 다 처먹었냐?”

“아니.”

짧게 대답하고 다시 경치를 구경하는 고릴라.

“실토할 때까지 패 주지.”

“이 새끼 완전 양아치네.”

눈이 돌아간 강철남은 전투 태세에 들어간다.

그러자 멍구가 바짓단을 물어뜯으며 말린다.

“누군가 네 고추를 훔쳐 먹었나?”

“그렇다.”

“불요괴의 짓일지도 모른다.”

점잖은 톤으로 고릴라가 말해 준다.

“걔는 뭐 하는 새낀데?”

“18요괴 중 하나로 불을 다루는 화마귀(火魔鬼)다. 맵거나 뜨거운 걸 좋아하는 녀석이지.”

“정말이야? 그럼 그 새끼가 어딨는지 알아?”

“그을린 냄새를 좇아가면 될 거다.”

차분히 말하는 고릴라의 목소리에는 전혀 동요의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유유히 앉아 설악산의 경치만을 내려다볼 뿐이다.

“실례했군.”

“아니다.”

어쩐지 머쓱해진 강철남.

후다닥 내려가며 화마귀를 찾는다.

“쪽팔려 죽겠네. 잡으면 진짜 뒤졌다.”

“그러게 성질 좀 죽이라니까. 다 늙어서 무슨 추태야?”

“시끄럽고 빨리 찾기나 해.”

“킁킁. 이쪽에서 그을린 냄새가 나!”

멍구가 이끄는 곳으로 달려간다.

탄내가 짙어질수록 어째선지 물안개 냄새도 뒤섞이는데,

“어라? 여기는.”

또 설악 신령의 연못이다.

뭐가 있나 싶어 안개를 헤치며 걸어 나가는데,

저 멀리서 음흉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쿠쿠쿠. 이상한 고추를 먹었더니 요력이 치솟는군. 설악 신령, 네 놈의 모가지를 따 주마.”

온몸이 시뻘건 도깨비가 연못을 노려보며 음흉하게 웃고 있다.

강철남은 똑똑히 들었다.

방금 저 새끼가 고추를 먹었다고.

“감히 실토했구나, 이 썅노무새끼!”

그대로 뒤에서 화마귀의 머리통을 낚아채 헤드락을 건다.

“크아악!! 넌 뭐야?!”

관자놀이가 바짝 조여 고통을 호소하는 화마귀.

점점 몸이 뜨거워진다.

“뭐냐고? 정성스레 말려 둔 고추를 빼앗겨서 X나게 빡친 인간이다.”

“인간이라고? 헛소리 마라. 인간 따위가 이런 힘을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몸이 극도로 달아오른 화마귀.

마침내 요력이 폭발한다.

[분신]

생명의 위협을 느낀 화마귀는 요력을 최대 출력으로 뿜어낸다.

몸속에서 끓어오르는 모든 요력을 매개로 강렬한 화염을 방출하는 스킬.

강철남이 강하다는 걸 충분히 느꼈기에 화마귀는 모든 힘을 쏟아내어 공격할 셈이다.

이 설악산 전체를 날려 버릴 엄청난 요력이 응축된다.

“철남이, 저 새끼 낌새가 이상해! 산이 날아갈 거야!”

“이 새끼가! 산불은 형사 처벌감이지!”

그대로 연못에 화마귀의 머리를 꼬라박는다.

“어푸!”

구시대적 경찰들처럼 물고문을 시작하는 강철남.

“고추 왜 먹었어?”

“푸하아가디아.”

촤아악—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왜 먹었어?”

“아르그그으드그.”

촤아악—

눈코입 모든 구멍이란 구멍에 물이 차 들어온다.

화마귀가 버둥대며 화염을 뿜어내는데,

강렬한 불길에 연못이 달궈지면서 수온이 미친 듯이 끓기 시작한다.

그러자,

펑!

“앗 뜨거! X팔! 진짜 또 뭔데!”

설악 신령이 화들짝 놀라 물에서 튀어나온다.

진심으로 어이가 없는 눈으로 강철남이 하는 꼬라지를 흘겨본다.

“이번엔 양해 좀 해 주쇼. 요괴 퇴치 중이니께.”

“그게 고문이지, 무슨 퇴치야?”

첨벙— 첨벙—

“푸하아!”

“대답해, 왜 먹었어?”

“서, 설악 신령!”

강철남이 묻는 말에 대답은 안 하고 설악 신령을 보자 손을 뻗는 화마귀.

“에효, 됐다. 배 꺼지게 이게 무슨 지랄이냐.”

“서, 설악 신려어엉…….”

덥석—

더 묻는 걸 포기한 강철남이 뒤에서 녀석의 허리를 끌어안고 기마자세를 취한다.

[저먼 스플렉스]

쿠앙—

돌바닥에 화마귀의 머리가 깨진다.

그러자 녀석은 즉사하고 말았다.

“거 참, 도사라는 녀석이 무식하게도 퇴치하는구나.”

“누가 도사요?”

“내 지팡이를 처먹고 도력을 얻었으니 내 제자이자 도사가 아니더냐?”

“배운 게 없는데 무슨 제자 타령이요.”

“그럼 내 지팡이 토해 내거라.”

“우웩!”

“드러운 새끼.”

질렸다는 듯 이마에 손을 얹는 설악 신령.

“그나저나 신령님 왕년에 어떻게 살았길래 요괴들이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거요?”

“요괴들한테 미움받는다는 건 세상에 이로웠다는 증명이라네.”

“18요괴들 전부 때려잡은 거요?”

“전부 잡지는 못했네.”

“나머지는 누가 잡았소?”

설악 신령은 긴 수염을 쓸어내리며 대답한다.

“옥황상제께서 봉인하셨지.”

엄청난 이름이 나왔다.

“옥황상제요? 진짜 있는 존재였소?”

“내가 이 나이 먹고 거짓말이나 하리?”

“그런데 왜 봉인하셨소?”

“옥황상제께서는 인간계에 관여를 안 하시기로 했네. 그런데 18요괴들이 자기 주제를 잊고 상제께 도전장을 내밀었지. 상제께서는 인간계에 영향을 덜 끼치는 선에서 녀석들을 혼쭐낼 방법으로 봉인을 택하셨다네.”

“봉인 됐다면 문제없겠네.”

“문제는 숨어 살던 나머지 18요괴들이 그 봉인을 해제하려고 한다는 거네.”

“감방에 갇힌 동료를 풀어 주는 범죄자 같은 새끼들이구만.”

설악 신령은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중요한 얘기를 꺼낼 참이다.

“도사 강철남. 18요괴를 퇴치하여 주시게나.”

“어디서 명령질이야?”

“크흠. 내 지팡이 먹었잖나?”

“거참, 지팡이 하나로 언제까지 우려먹을 셈이야? 은근히 속 좁네.”

“아, 그럼 한 놈만…….”

“흥정하냐?”

갑자기 절박해 보이는 설악 신령.

대체 어떤 요괴길래?

“18요괴 중 가장 포악하기 그지없는 요괴가 있네. 녀석의 이름은 광폭귀(狂暴鬼). 얼마 전부터 녀석의 요력이 느껴지네.”

“이름부터가 제정신이 아닌데.”

“그 말대로라네. 예로부터 사람의 목숨을 벌레처럼 가벼이 여기고 장난감처럼 여기는 간악한 녀석이었지. 그 횡포가 인간계의 질서를 심각하게 위협하자 결국 옥황상제가 녀석을 봉인하기까지 이르렀네.”

“그런데 왜 옥황상제는 깔짝깔짝 지 꼴릴 때만 간섭하는 건데?”

“생각해 보게. 자네는 땅 밑 개미들의 영토 전쟁에 간섭하는가?”

“신경도 안 쓰지.”

“같은 이유라네. 그런 상제께서 인간계에 개입할 정도라면 그 광폭귀라는 녀석이 얼마나 막 나갔는지 이해가 가지?”

“완전 개망나니였나 보구만.”

“그런 녀석이 깨어났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네. 모쪼록 인간들의 안녕을 위해 자네의 힘을 빌려주게.”

이렇게까지 말하니 강철남도 못 들은 척할 수만은 없다.

“그럼 이걸로 지팡이 빚은 탕감하는 걸로 해도 되겠지?”

“스읍……”

“밑지는 장사 같아?”

“끄응.”

“오케이, 그럼 다음에 맛 좋은 술을 하나 가져오지.”

“술?”

술 이야기에 설악 신령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진다.

“전설의 술 장인이 빚은 전설의 술이지.”

“뭐, 자네가 굳이 그러고 싶다면야.”

“오케이, 거래 성사. 그럼 바로 조지러 가 보실까. 녀석은 어디 있는데?”

“광폭귀 말인가? 녀석은 지금…….”

* * *

속초 동해 바다.

미친 요괴 한 마리가 나타나 날뛰고 있다.

녀석의 생김새는 들소 수인같이 생겼으나 머리에 돋은 뿔은 마치 염소의 뿔과 같이 두껍고 사악해 보였다.

하반신은 말의 형상을 띄었으니 반우반마(半牛半馬)라 해도 좋을 것이다.

상체는 다부진 근육질에 튼실한 하체.

달리는 폼은 들짐승 그 자체였다.

“우하하하! 오랜만에 바깥에 나오니 기분 좋군. 다 덤벼라! 마음껏 날뛰어 주지!”

광폭귀는 눈에 보이는 생물이라면 닥치는 대로 찢어서 먹어 치웠다.

바다로 다이빙해 물밑 깊숙이 서식하는 모든 몬스터들을 뜯어 먹으며 해산물 먹방을 즐긴다.

급기야 몬스터들도 겁을 먹고 도망치기에 이른다.

“거기 몬스터는 당장 난동을 멈춰라!”

바다에 도착한 헌터들.

자동차에 달린 확성기가 엄중하게 경고 방송을 전한다.

강원 헌터 연합의 헌터들이 녀석에게 활을 겨눈다.

수십 명의 헌터들이 스톤 골렘의 소재로 만든 화살을 광폭귀에게 겨눈다.

“우리는 언제든지 발포 준비가 되어 있다. 만약 멈추지 않을 시…….”

콰직!

멀리서 날아온 묵직한 주먹이 차량을 박살 내 버린다.

“안 멈추면 니들이 어떡할 건데?”

“히익! 쏴라, 쏴!”

헌터들은 화살을 날린다.

그러나 탄탄한 가죽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올 뿐이다.

“창을 뽑아라!”

기다란 창을 뽑아 놈을 향해 힘껏 찔렀지만 근육의 단단함에 오히려 헌터의 손목이 부러지고 만다.

“아악!”

[파괴]

광폭귀는 웃으며 헌터들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

피바람이 불며 헌터들이 조각나 날아가 버린다.

푸른 바다는 붉은 피로 물들었다.

헌터들을 잡아먹으며 요력을 회복한 광폭귀.

이미 전성기의 폼으로 돌아왔다.

“으흐흐. 더 큰 난동을 부려 보자고.”

바다로 첨벙 뛰어 들어간 광폭귀.

요력을 끌어모으더니 미친 짓거리를 시작한다.

[해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