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싹바가지 없는 요괴는 참교육이 딱이야
분노의 강철남.
주먹을 꽉 쥔다.
콰아아앙!!
분노를 담은 화염의 철권(鐵拳)이 가착귀의 광대를 가격한다.
가착귀의 의식이 끊어진다.
생명을 부여잡고 있던 세포들이 뚜둑뚜둑 끊어지기 시작한다.
화르르륵—
마귀를 태우는 멸귀의 불꽃이 타오른다.
삽시간에 화염에 휩싸인 가착귀는 고통조차 의식할 수 없이 소멸해 갔다.
멍구가 활짝 연 창문을 향해 총알같이 날아간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뜨거운 불덩이.
이내 잿더미가 되어 하늘로 흩어진다.
이미 녀석은 18요괴 중 하나인 무시무시한 마귀가 아니다.
그저 한 톨의 흩날리는 검은 먼지일 뿐이다.
“고놈 참 시원하게 날아가네.”
창문에 매달린 멍구.
가착귀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다.
얄미운 녀석에게 한 방 시원하게 날려 주니 속이 다 시원하다.
속이 후련한 강철남.
다만 아직 속이 메스껍다.
“잠이나 더 자자.”
황토 바닥에 다시 드러눕는 강철남.
열린 창문으로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한낮의 햇볕이 따사롭게 스며든다.
최고의 자장가다.
그렇게 눈을 붙이고 슬슬 잠이 들려는 찰나,
와지직—
“…….”
“무슨 소리여?”
“아, 설마.”
뭐냐, 이 불안한 소리는.
설마 설마 했다.
천장에서 난 벽의 비명.
차마 눈을 뜨지 못하고 망설이던 강철남.
큰맘 먹고 눈을 떠 보는데,
“썅!”
역시 아니나 다를까.
천장에 금이 가 있다.
망할 요괴 새끼.
몇 대 더 때려 주는 건데.
“철남이, 천장이 쌉창 났는데? 자다가 흙 쏟아져서 생매장당하는 거 아냐?”
“집들이 선물로 똥을 싸질러 놓고 가? 옘병.”
일단 밖으로 나온 강철남.
어찌해야 하나 고민한다.
역시 이럴 때는,
“밥이나 먹자.”
“그럴까?”
별수 있나.
배가 고프면 머리도 안 돌아가는 법.
밥은 항상 옳다.
북한산을 떠날 때 몬스터 시장에서 비둘기가 준 약재가 있다.
이 약재들을 팍팍 우려 삼계탕을 끓여 먹으면 기운도 든든하게 날 것이다.
“멍구야, 닭 좀 잡아 와라.”
“너는 뭐하게?”
“약수 우려야지.”
“퍽이나 대단한 일 하십니다. 귀찮은 일은 개한테 떠넘기고.”
“오늘 쫄쫄 굶어서 강제 다이어트할래? 빨리 안 가?”
“뉘예뉘예.”
입으로 씨부렁씨부렁 거친 단어를 중얼거리며 숲속으로 털털 향하는 멍구.
닭이든 소든 만나면 화풀이나 해야겠다.
[탐색]
멍구는 바닥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냄새의 흔적은 수십 갈래로 뻗어 있다.
동서남북 방위 중 발이 두 개인 발자국을 몇 개 찾았고 그 중 발가락의 모양과 땅이 팬 깊이를 추정해 닭을 쫓았다.
[신속]
나무 사이를 벌처럼 날렵하게 쏘다니는 멍구.
마치 설악산을 자기 앞마당처럼 누빈다.
“컹컹! 여기냐?”
나무 사이를 지나 멍구가 이빨을 드러내며 튀어 오른다.
마침 풀숲에 앉아 쉬고 있던 쌈닭.
난데없는 개의 등장에 화들짝 놀란다.
“우왓, 깜짝이야! 넌 뭐야?!”
“보다시피 개다. 지금부터 너한테 새집 선물해 주려고.”
그러면서 배를 탕탕 두들기는 멍구.
“어디서 품종도 미천한 동네 똥개 새끼가 시건방을 떨어.”
[벌크업]
쌈닭은 스킬을 발동한다.
가슴살이 두툼하게 부풀어 오르면서 기세가 상승한다.
우선 상대의 기를 꺾으려는 수작이다.
하지만 멍구에게는,
“이열, 너 내가 퍽퍽살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냐?”
“뭐?”
[화염 이빨]
멍구의 어금니에서 불길이 치솟는다.
번개같이 달려들어 쌈닭의 목을 확 물어뜯으니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가슴살이 풍성한 게 단백질이 풍족할 것 같다.
사냥에 성공한 멍구.
이 와중에 강철남은 무얼 하고 있을까.
* * *
“철남 씨!”
멍구에게 사냥을 보내놓고 삼계탕 약수를 우리는 강철남.
마당으로 들이닥치는 누군가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모털 도사 아니오?”
헐레벌떡 뛰어오는 건 모털 도사다.
그런데,
어쩐지 꼴이 말이 아니다.
“또 처맞고 다니시오?”
피멍이 든 뺨.
빨갛게 부어오른 콧망울.
피딱지가 앉은 입술.
심하게도 얻어맞은 얼굴이다.
“내가 도사 체면에 서러워서, 흑흑.”
“거, 처맞고 질질 짜는 것만큼 꼴사나운 것도 없소. 뚝 그치시오.”
눈물 콧물을 질질 짜내는 모털 도사.
봄볕에 반짝이는 민머리가 더욱 초라해 보인다.
“무슨 일이오?”
“수련 중에 갑자기 웬 요괴 녀석이 난입하더니 몇 대 맞았어요.”
“몇 대요?”
“…X나게 많이요.”
훌쩍이는 가여운 모털 도사.
“등신 같이 맞고만 있었소?”
“아직 도력이 돌아오지 않아서요.”
“에잉, 쯧쯧쯧.”
혀를 끌끌 차는 강철남.
모털 도사는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딴 건 둘째치고.”
“둘째치기예요?!”
“혹시 이 근방에 유약을 구할 수 있는 데 없소?”
“어려울 거예요. 장사하는 사람이라곤 다 떠났으니. 그런데 유약은 왜요?”
“가착귀인가 뭔가 하는 녀석이 황토집을 엉망으로 만들어 놨소. 이대로라면 빗물도 샐 거고 우풍도 들 거고. 무슨 수를 써야지, 원.”
그 순간 모털 도사의 눈에서 빛이 뿜어져 나온다.
“가착귀를 쓰러뜨리신 건가요?”
“놀래라! 덜 맞았소?”
“어,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 좀 해 주세요!”
“황토집에 들러붙었길래 죽을 만큼 패 줬수다.”
강철남의 말에 격하게 반응하는 모털 도사.
“가착귀는 18요괴 중에서도 퇴치하기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죠. 본디 모습을 잘 감추고 마음에 드는 집이 아니면 출몰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마지막의 마지막 퇴치 후보로 점지해 둔 녀석인데. 그런 마귀를 단번에 잡다니. 역시 철남 씨는 대단해요!”
모털 도사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
대체 이런 사내가 어디 있다 지금 나타난 걸까.
“잡소리 그만하고 같이 집수리 방안이나 좀 생각해 보시오.”
“아, 그거 말인데요! 요괴의 피를 활용하면 될 거예요.”
“요괴의 피?”
“요괴의 피에다 도력을 불어넣으면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어요. 물론 비나 바람을 막는 결계도 가능하구요.”
“정말이오? 나 시켜서 요괴 잡으려고 꾀부리는 건 아니고?”
“진짜예요! 만약 거짓말이라면!”
“거짓말이면?”
“그러면 뭐 봉사했다 치는 거죠.”
“이 새끼!”
믿거나 말거나 지금은 승부를 걸어 보는 수밖에.
요괴 새끼들 몇 마리 잡아 와서 뚝배기를 깨 보자.
“당신이 개같이 처맞은 데가 어디요?”
“개같이 처맞지는 않았는…….”
“닥쳐. 안내하시오.”
모털 도사의 안내를 받아 산길을 걸어간다.
풀숲의 분위기가 음산한 것이 불경한 존재들로 가득 차 있음이 느껴진다.
“철남 씨, 어쩌죠?”
“왜?”
“이미 둘러싸인 거 같아요.”
모털 도사가 걸음을 멈추더니 표정이 굳는다.
그러자 곧 나무 위에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키키키킥.”
웃음소리는 한둘이 아니다.
마치 숲 전체가 웃는 듯했다.
모털 도사는 두려움에 떨었고,
강철남은 기분이 나빠 분노에 치를 떨었다.
“모털이, 대가리 수가 많은 거 같은데 놈들은 어디 숨어 있소?”
“도력으로 찾을 수 있어요. 집중력을 끌어올려 주변을 느껴 보세요.”
눈을 지그시 감는 강철남.
오로지 초감각에 집중하여 주변을 느껴 본다.
나무의 윤곽, 바람의 흐름, 구름의 움직임.
모든 것이 생생히 느껴진다.
그리고,
요괴들의 더러운 숨결.
“쥐새끼처럼 숨어 있군.”
하지만 모두 순식간에 끝내 주마.
[신속]
바람보다 빠르게 몸을 날리는 강철남.
가장 먼저 나무 위에서 기분 나쁘게 웃는 녀석을 향해 달려든다.
도력을 담은 주먹에서 푸른빛이 솟는다.
“끼에?”
푸컥—
눈 한번 깜빡일 새 없이 공격이 들어가자 요괴는 비명 한번 지를새 없이 찢겨 나갔다.
“인간이다! 인간을 먹을 수 있어!”
나무 사이로 몸을 숨기며 기회를 엿보던 요괴.
공격 후 빈틈을 노려 달려든다.
“누가 누굴 먹어?”
“어?”
녀석이 본 것은 워낙 빠른 움직임에 생긴 잔상.
이미 강철남은 녀석의 뒤에 서 있었다.
콰득—
그대로 으깨어지는 머리통.
강철남은 마치 나비가 날아다니듯 부드럽게 숲 사이를 누비면서도 공격할 땐 황소가 들이받듯 압도적인 힘으로 요괴를 찍어 누른다.
“세상에, 전성기 시절의 스승님보다도 더 강하잖아.”
모털 도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강철남의 힘에 놀라기만 할 뿐.
요괴들은 난생처음 공포를 느꼈다.
공포도 잠시.
곧 감각과 생각이 없는 평온한 세계로 사라져 갔다.
“모털이.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요괴를 모조리 때려잡은 강철남.
요괴들의 육체를 꽁꽁 묶어서 끌고 온다.
놈들은 결코 약한 요괴들이 아니었다.
매도 맞아 본 놈이 안다고 항상 처맞는 모털 도사는 놈들에게 맞아 보고 알 수 있었다.
이 산에 있는 그 어떤 요괴도 강철남을 당해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라면 18요괴를 소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리품을 가득 끌고 집으로 돌아온 강철남.
언제 왔는지 멍구가 돌아와 삼계탕을 끓이고 있다.
“어디 갔다 오는 거야? 배고파서 먼저 닭 삶고 있어.”
“손질은 다 했어?”
“털 쫙 뽑고 내장 손질까지 완벽하게.”
아니, 개가 그걸 어떻게 하는 건데.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모털 도사.
“꼴은 왜 그래?”
“싹바가지 없는 새끼들 참교육 해 주고 오는 길이야.”
“손에 든 건 뭐고?”
“지금부터 집에다 피칠갑을 할 거거든.”
“뭐? 썅, 재수 없게 무슨 썩은 피를 처발라?”
“잣 같지만 이게 당장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결계란다.”
지붕 위에 올라가 요괴들의 피를 짜내는 강철남.
집 꼭대기에서부터 피를 흘려보내며 꼼꼼히 바른다.
“지랄 염병! 이게 자연 다큐야, 산중 호러야? 맛 좋은 닭고기 앞에 두고 이게 무슨 토 나오는 그림이야.”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멍구가 치를 떤다.
“철남 씨. 이제 도력을 불어넣으시면 됩니다.”
강철남은 집중하고 도력을 흘려보내 본다.
[결계]
그러자 스킬이 발동된다.
몸에서 따뜻한 기운이 방출되는 기분이다.
푸른빛이 요괴의 피에 스며들더니 이내 빛의 막이 형성된다.
번쩍, 하던 빛의 장막.
이내 사그라든다.
“처음인데 성공하시다니. 역시 남다르시네요.”
“보통은 어려운 편인가?”
“결계 치기는 30년은 수련해야 하는 수준 높은 도술이죠. 철남 씨처럼 느낌만으로 사삭 바로 할 수 있는 도사는 한 명도 없을걸요?”
“도사는 누가 도사요. 나는 평범한 자연인일 뿐이오.”
황토집에 결계도 쳤고 삼계탕도 다 끓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일은 잘 풀린 것 같다.
“삼계탕 좀 드시겠소?”
“괜찮나요?”
[정화]
삼계탕에 들어 있는 마력을 제거한 후 모털 도사에게 대접한다.
뜨끈한 기름 국물에 토실토실한 닭고기.
보양식이 따로 없다.
“잘 먹겠습니다!”
후후 불어 가며 삼계탕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는 모털 도사.
한 그릇 더, 를 외치려는 그 순간,
“어윽!”
배를 움켜잡고 쓰러진다.
“철남이, 얘 왜 이래? 마력 제거했어?”
“분명히 했어. 어이! 모털이! 정신 차리쇼!”
식은땀을 흘리는 모털 도사.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힘겹게 입을 연다.
“제 불찰이에요. 요괴가, 18요괴 중 하나가 이 음식에 요술을 부렸어요.”
“뭐?”
순간 강철남의 이마에 핏대가 선다.
“이 개새.”
“강철남 씨… 저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분노를…….”
“그런 거 아니니까 닥치고 있어 봐.”
“아아… 서운해라…….”
자연인 강철남.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족속들이 있다.
바로 먹을 거에 장난치는 새끼들이다.
“조져 주마.”
강철남의 주먹이 울기 시작했다.
“어디 있냐?”
녀석을 찾는 강철남.
멍구가 직접 나서 본다.
[탐색]
스킬을 발동하는 멍구.
요괴의 기운이 느껴진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어? 너 이 새끼, 요괴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