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황토집에 들러붙은 가착귀(家着鬼)
* * *
가착귀(家着鬼).
뜻풀이 그대로 집에 달라붙는 요괴다.
18요괴 중 하나인 녀석은 음습하기 그지없는 성격을 지녔다.
혼자서는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지만 기생을 하면 상당히 강한 힘을 발휘한다.
기생 대상은 당연히 사람이 사는 집.
집에 달라붙어 생명력을 흡수한다.
특히나 집터의 기운이 좋을수록 요력은 더욱 강해진다.
녀석의 가장 무서운 특징은 집에 사는 인간의 기운을 빨아먹는다는 것이다.
“집을 지어라 인간. 날 위한 집을. 크크크.”
가착귀는 원래 설악산의 오래 묵은 마귀였다.
전성기 시절의 설악 신령에게 호되게 혼쭐이 난 후 산속에 숨어 있던 가착귀.
그러다 하늘에 구멍이 뚫리고 몬스터들이 날뛰자 기회를 엿보다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어느 날 한 몬스터가 인간을 먹고 요괴가 되려 하자, 그 몸을 취하여 다시금 강한 힘을 얻게 되었다.
몸을 얻은 가착귀는 설악산을 배회하며 기회를 엿보았다.
“크크크. 기필코 설악 신령을 먹을 테다.”
18요괴의 목적은 설악 신령을 먹는 것.
그리하여 대요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옥황상제의 힘이 깃든 신성한 연못.
그곳은 요괴가 함부로 접근할 수 없도록 결계가 처진 성전.
지금 힘으로는 접근조차 불가능하다.
강해져야 한다.
보다 많은 인간을 먹고 요력을 끌어 올려야 한다.
결계를 통째로 씹어먹을 강력한 요력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18요괴의 목적이다.
“우선 저 맛있어 보이는 인간과 개를 먹어야겠어.”
가착귀는 강철남과 멍구를 보며 입맛을 다신다.
잠시 그들이 한눈을 판 사이 황토 반죽에 숨어든다.
음흉한 미소를 띠며 숨죽인 채 집이 완공되길 기다린다.
* * *
강철남과 멍구는 쓰러진 나무들을 주워 와 황토를 발라 집을 짓는다.
흔들바위로 만든 구들을 깔고 바닥을 황토로 덮는다.
아궁이를 만들어 불을 때 보니 바닥이 금세 후끈 달아올랐다.
황토집의 특성상 벽과 천장까지 집 전체가 뜨뜻해지는 장점이 있다.
이로써 겨울은 추위 걱정 없이 훈훈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자, 다음은 마루가 빠질쏘냐.
여름에 늘어지게 낮잠을 즐길 시원한 마루도 만든다.
지붕도 기와나 초가가 아닌 황토로 잘 발라 높이 지었다.
나무 기둥을 세워 높다란 가림막을 짓고 넝쿨을 얹어 비가 오거나 강한 햇볕이 내리쬐어도 집이 상하지 않게 보호막을 쳤다.
남는 목재로 마당에서 식사할 수 있는 테이블도 만들고 의자도 만들었다.
봄에는 꽃을 보며 식사를 하고 여름에는 풀 내음을 맡으며 식사를 하고 가을에는 단풍 구경을 하며 식사를 할 수 있다.
겨울에는 눈을 보며 차를 한잔할 수 있는 낭만 가득한 테이블이다.
“더할 나위 없군.”
완공된 후 멀리서 바라보니 제법 멋진 집이 완성되었다.
“오오, 이것이 우리의 새 보금자리.”
멍구도 기쁜지 폴짝폴짝 뛰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솔솔 스며드는 황토 냄새가 퍽 마음에 들었다.
안에 들어가 누워 보니 쾌적함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끝내줬다.
“편안하구만.”
“이야, 이게 바로 장수한다는 천연 흙 침대로구만.”
강철남과 멍구는 완공의 기쁨에 몸의 긴장이 풀어졌다.
서서히 몰려오는 피로에 몸을 맡기니 잠이 솔솔 쏟아진다.
그대로 눈을 감자 금방 꿈나라로 빠지는 둘.
그때였다.
그 틈을 타 행동을 개시하는 가착귀.
“쥐도 새도 모르게 잠들었군. 그대로 눈 감고 있어. 영원히 안락한 꿈나라로 떨어질 테니. 크크크.”
가착귀가 요술을 부리기 시작한다.
강철남과 멍구를 암살할 작정이다.
[염동력]
공기의 흐름이 일그러진다.
그러자 멀쩡한 냄비가 허공에 붕 뜬다.
빈 공간을 날던 냄비는 갑자기 거세게 날아와 멍구의 머리를 깡 때리는데.
깡—
“아오, X부럴. 이게 뭐여!”
난데없이 날아온 냄비에 대가리를 처맞은 멍구.
아픈 건 둘째치고 기분이 X나 더럽다.
“이게 갑자기 왜 처 날아오고 지랄?”
멍구는 앞발로 냄비를 작살내고 싶었으나 요리 도구니까 참았다.
“어휴, 나도 성질 참 많이 죽었다.”
대신에 냄비를 위로 내던지고 다시 잠을 청한다.
보통 개라면 죽을만한 강도로 부딪쳤는데 멀쩡한 녀석.
가착귀는 적잖이 당황한다.
“왜 멀쩡한 건데? 분명 뇌진탕에 걸릴 정도로 세게 때렸는데.”
오히려 자기가 인간과 개에 홀린 듯하다.
[염동력]
다시 요술을 부리는 가착귀.
이번에는 부엌에 있는 식칼을 들어 올린다.
허공에 두둥실 뜬 식칼은 이내 표적을 포착하고 화살처럼 날아간다.
날이 바짝 선 식칼은 자고 있는 강철남을 노린다.
그리고는 허벅지에 푸욱 박히는데.
“앗, 따거! X팔! 왜!”
손으로 허벅지를 탁, 치는 강철남.
“크크크. 고통에 몸부림쳐라!”
이번에야말로 인간이 절규하는 꼴을 보나 기대하는 가착귀.
그러나,
“흠냐.”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벅벅 긁으며 그대로 다시 잠이 드는 강철남.
“다시 잔다고?”
진짜냐?
“왜? 완전 미친놈 아냐? 칼에 찔렸다고! 모기에 물린 게 아니란 말이야!”
도대체가 제정신이 아닌 인간과 개다.
이쯤 되자 가착귀는 분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조금 세게 나갈 필요가 있겠다.
[악몽]
요괴란 간사한 존재.
정면 승부보다는 정신을 장악해 마음부터 무너뜨리는 사악한 모사꾼.
악몽을 꾸게 하여 기를 쪽 빼낼 셈이다.
“크크크. 어디 어떤 악몽을 꾸고 있는지 볼까?”
가착귀는 멍구의 꿈속으로 들어갔다.
멍구의 트라우마는 녀석을 끌고 간 개장수.
만약 100명의 개장수를 소환하면 녀석은 벌벌 떨 것이다.
“크크크. 무서워 죽겠지?”
그러나,
“이 X불롬의 새끼들. 드디어 만났네. 다 죽었어!”
예상과 달리 멍구가 개장수들의 뚝배기를 앞발로 깨고 있다.
피떡이 된 개장수들이 절뚝거리며 살려 달라고 목숨을 구걸하고 있다.
도대체가 어이가 없어서.
“전개가 왜 이래?!”
이해할 수 없는 가착귀.
이건 악몽이 아니라 길몽이 되어 버렸다.
“개는 완전 미친 또라이야. 그래, 인간 쪽을 보자.”
멍구는 포기하고 강철남의 꿈으로 가 보는 가착귀.
하나 이쪽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역시 또라이다.
그는 빚쟁이 시절의 꿈을 꾸고 있었는데 마침 사채업자들이 집으로 들이닥치는 장면이었다.
“돈 내놔!”
“한 푼도 못 줘 이 새끼야!”
갑자기 사채업자의 싸대기를 후리는 강철남.
그러고선 옆에 있는 마누라도 발로 걷어찬다.
‘아니, 아직 마누라는 아무 짓도 안 했다고.’
“대체 왜 이래. 이놈이나 저놈이나. 이 새끼들 정신 구조가 정상이 아니야.”
가착귀는 혀를 내두르며 꿈을 빠져나온다.
악몽이랍시고 판을 깔아 놨더니 그걸 유흥인 양 즐기고 있어?
한시라도 빨리 이 미친 것들을 집어삼켜 버리고 싶었다.
“크크.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온 힘을 다해야겠어.”
[소화]
집안의 모든 생명체를 먹어 치우고 소화 시켜 버리는 가착귀 궁극의 스킬.
강철남과 멍구를 흡수할 생각이다.
집이 마치 춤을 추듯 울렁울렁 거리며 기괴하게 뒤틀린다.
이상한 느낌에 인상을 찡그리는 강철남.
그는 멀미가 올라올 것만 같았다.
“우으. 뭐야? 지진이라도 났나?”
드디어 잠에서 깨 눈을 비비며 일어나 보는데, 어머나 세상에.
방금 갓 지은 황토집이 혼자서 트위스트를 추고 지랄발광이다.
“이게 뭐야! 멍구, 일어나 봐!”
찰싹—
손바닥으로 멍구의 엉덩이를 찰지게 때린다.
그러자 멍구가 시뻘건 엉덩이를 벅벅 긁으며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왜 또 지랄인데?”
“집이 이상해.”
졸린 눈으로 집을 둘러보는 멍구.
흔들흔들 요동치는 집을 보자 눈이 번쩍 뜨인다.
“이게 뭔 개지랄이래?”
일렁거리는 방안에서 혼란을 느끼는 둘.
슬슬 현기증과 구토가 심해진다.
“우윽! 대체 뭔 일이야.”
“X바, 요괴 짓 아냐?!”
결국 어지러움에 머리를 손바닥으로 짚고 바닥에 드러눕고 만다.
“크크크. 바로 맞췄어. 바로 18요괴 중 하나인 가착귀님의 요술이지.”
“이 미친 새끼가! 남의 집에다 뭔 짓거리야! 당장 안 멈춰?!”
“너희는 곧 내게 먹힐 것이다. 이 집과 한 몸이 된 나에게 말이야.”
멍구는 앞발을 꽉 쥐었다.
“미친놈은 매가 약이지.”
힘껏 벽을 때리려는 그때,
“멍구, 그만둬. 집이 무너질 거야.”
“그치만 이 새끼를 너무나 조지고 싶은걸?”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힘겹게 멍구를 말리는 강철남.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저 기분 나쁜 X새를 조질 방법을!
“산신령, 마귀, 요괴.”
“철남이, 무슨 좋은 수라도 떠올랐나?”
짱구를 빠르게 돌리는 강철남.
그때 그의 머릿속에 번쩍, 하고 떠오르는 묘안.
“부적이다! 부적을 써 보자 멍구.”
“부적? 무슨 수로?”
“우리에겐 도력이 있다. 부적을 쓰면 효험이 있을 거야.”
“과연 그렇군. 그렇다면 당장 준비해!”
뭔가를 잔뜩 기대하는 멍구.
강철남은 아직 정리하지 못한 짐보따리를 풀어헤친다.
그런데 문제가,
“보통 부적은 어디에 쓰지?”
“점집에 가면 있는 노란 종이에다 쓰잖아.”
“그 노란 종이가 나한테 있을 리가.”
“아니, X바 그럼 어떡해?”
둘이 고민하는 와중에도 집은 점점 더 심하게 뒤틀려 갔다.
마치 공간이 일그러지는 기분이다.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크윽! 대가리가 X나 피곤해! 그냥 아무 종이에나 휘갈겨!”
이판사판이다.
강철남은 보자기를 뒤엎는다.
와장창—
쏟아지는 건 국자, 집게, 냄비, 밥그릇.
가진 재산이랄게 식기밖에 없다.
“이제 보니 우리는 처먹는 거 말고는 제대로 된 살림이란 게 없구만.”
때아닌 반성을 하게 되었다.
“뭐라도 있을 거야! 창의성을 발휘해 봐!”
창의성.
꿩 대신 닭이라고.
대체할 만한 게 있을 것이다.
그때 마구 물건을 뒤적이다 손에 잡히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식칼을 포장해 온,
중국집 전단지가 있다.
“이거다!”
“지랄, 철남이 진심?”
“이것저것 따질 상황이 아냐!”
강철남은 손가락을 세게 깨물어 피를 쏟아낸다.
중국집 전단지를 펼치니 자장면과 짬뽕 그림이 현란하게 그려져 있다.
글자가 제대로 적힐 리가 없겠지만 지금은 이 전단지에라도 의지할 수밖에.
그런데,
“멍구! 부적에 뭐라고 쓰지?”
“그걸 개한테 처 묻고 자빠졌냐? 아무 한자나 써!”
“나 한자 시간에 졸았는데?”
“자랑이다, 국민학교 세대가 한자를 몰라?”
“에라이 씨! 좋은 우리말 놔두고 무슨 한자야!”
뚝뚝 떨어지는 피로 아무렇게나 휘갈기는 강철남.
붉은 피로 중국집 전단지 위에 그린 글자는 이러하다.
[꺼져!]
그 순간 부적에서 영험한 푸른빛이 솟구친다.
피이이이잉—
마치 용이 춤추듯 빛줄기들이 나선형으로 상승한다.
그 눈 부신 빛의 용들은 서로 뒤엉켜 집을 따뜻하게 쓰다듬는 듯 부드럽게 주변을 훑었다.
그리고 집 구석구석 여기저기를 들쑤시더니 이내,
“크아아악!!”
벽에 숨어 있던 가착귀를 물어 끄집어낸다.
가착귀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회는 지금이다.
“철남이, 저 새끼야! 조져!”
“넌 뒤졌다.”
[한계 돌파]
강철남의 몸에서 강렬한 아우라가 차올랐다.
힘이 급격하게 상승한다.
설악산이 덜덜 떨릴 정도의 전율이 산 전체를 지배한다.
[점화]
꽉 쥔 주먹이 화염에 휩싸인다.
응축된 태양의 덩어리를 손에 쥔 듯한 위압감이었다.
그 위압감에 가착귀는 공포에 질려 덜덜 떨고만 있다.
[일격필살]
뒷일은 생각 않고 풀스윙으로 주먹을 휘두르는, 소멸시키겠다는 의지만을 가득 담은 일격.
이 최강의 삼신기를 이 건방진 가착귀 새끼의 아갈통에 처먹일 생각이다.
“집은 부수지 마!”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멍구가 황급히 창문을 연다.
강철남은 마지막으로 가착귀 녀석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아아악!! 그, 그만!! 멈춰!! 살려 줘!! 내가 잘못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