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산신령의 지팡이
그를 위해서 자연인 강철남으로서 해 줄 조언이란 간단하다.
“나무를 심어.”
“네?”
“나무를 심으라고.”
“열매를 수확할 농업을 하라는 말씀이신가요, 아니면 벌채를 위한 임업을 하라는 말씀이신가요?”
“둘 다 아니야.”
강철남의 조언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카르텔.
나무란 황금처럼 부를 과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물며 나무의 유일한 가치라고 할 수 있는 과일과 목재를 얻으려는 것도 아니라면 대체 왜?
“이해가 안 가는군요.”
“나무의 효용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많아.”
“예를 들면요?”
“그늘의 시원함. 시각적인 산뜻함. 공기의 질 정화.”
“그런 것들은 너무 추상적입니다.”
“이 새끼! 그럼 황금 보고 침 흘리는 건 퍽이나 실체적이냐?”
“끄응.”
조언을 듣기는 했지만 어쩐지 썩 내키지가 않는 카르텔.
지난번 3지구 구들 설치 정책 때도 같은 반응이었다.
정작 카르텔은 시큰둥했지만 결과는 좋았지 않은가.
이번에도 속는 셈 치고 믿어 볼까.
“좋습니다. 실험 삼아 몇 그루 심어 보죠.”
“황금 건물 하나 팔아서 팍팍 심어. 애매하게 하면 하나 마나니까.”
“화, 황금을 팔아요? 절대 안 됩니다!”
“아오, 맘 같아선 여기도 정복해서 건물을 싹 다 황토 건물로 바꿔 버리고 싶은데.”
“그런 무서운 말 하지 마십시오. 강철남 님이 하시면 농담으로 안 들립니다.”
카르텔은 강철남을 얼른 돌려보내기 위해 황토 주문을 서둘렀다.
비서들은 가장 빠른 수단을 이용해 설악산 중턱으로 황토를 배송했다.
“고맙군. 신세를 졌어.”
“하하하. 이 정도 갖고 뭘요. 같은 마왕끼리.”
카르텔과 인사를 마치고 마왕성을 나온 강철남과 멍구.
온 김에 도마뱀 구이 한 꼬치를 사서 입에 물고 느긋하게 카르텔을 나온다.
조금 여유로운 뜀박질로 구멍에 다다른 둘.
구멍을 넘어 설악산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럼 새집을 지어 보실까.”
심기일전 마음을 먹는 강철남과 멍구.
그런데,
“워매, 뭐여 X벌?”
멍구의 입에서 방언이 터진다.
이게 웬일인가?
산 중턱은 그야말로 개판, 아니 요괴판이었다.
“크아아!!”
“인간, 인간이다!”
“요력이 부족해, 요력이!!”
“내놔! 피, 뼈, 살가죽, 골수, 내장, 인간의 몸을 원해! 다 내놔!!”
기괴하게 뒤틀린 몬스터들이 기분 나쁜 소리를 낸다.
요력이 차오른 요괴들이다.
인간의 냄새를 맡고 중턱으로 몰려든 것이다.
“남의 집터에서 뭣들 하는 거야, 이 새끼들!”
강철남이 주먹을 휘두르자 요괴 하나가 주먹을 맞고 목이 180도 돌아간다.
“꺼어억!”
그래도 살아 있는 녀석.
열 받은 그가 한 번 더 대가리를 돌려주니 그제야 숨을 거둔다.
연이어 달려드는 녀석을 좌우 훅으로 쓰러뜨리고 싸커 킥으로 머리통을 날린다.
마무리를 확실히 짓지 않으면 녀석들은 다시 일어섰다.
“철남이, 이 새끼들 기본이 두 방 컷이야. 이거 좀 당황스러운데?”
“에라이, 썅! 뒤질 때까지 조져!”
멍구는 앞발로 요괴의 두개골을 조지고 또 조졌다.
강철남은 마빡에 중지를 세운 주먹을 연타로 갈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한두 놈씩 쓰러뜨리다 보니 어느덧 산 중턱은 어느새 요괴들의 사체들로 즐비했다.
그때 풀숲에서 슬그머니 오크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오크도 있어?”
강철남이 빠꾸 없이 스트레이트를 꽂으려는 찰나,
“아악! 마왕 강철남 님! 저는 카르텔에서 온 황토 배달부입니다!!”
다급한 오크의 외침에 간신히 브레이크를 건다.
녀석은 어쩐지 등에 커다란 짐보따리를 짊어 메고 있었다.
그제야 풀숲에 숨어 있던 오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역시 마왕 강철남 님이십니다! 저희는 웬 이상하게 변한 마물들의 습격을 받아 이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러냐? 빨리 짐 내려놓고 돌아가. 너희들한텐 위험한 곳이야.”
“네, 넵! 그럼 복귀해 보겠습니다.”
오크들은 황토를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났다.
“멍구, 주변에 좀 더 있는 것 같으니 청소부터 싹 하고 작업하자고.”
“하암. X나 귀찮은 새끼들.”
강철남과 멍구는 숲으로 들어가 요괴 잔당을 휩쓸었다.
처음에는 바닥에 눌어붙은 껌처럼 처리하기 까다로웠지만 요령이 생기니 속도가 붙었다.
단타보다는 연타로 머리통을 박살 내는 것이 팁이었다.
상대를 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 하나,
요괴가 된 녀석들 중에 기이한 능력을 부리는 녀석들이 있다.
불을 던지거나 환상을 소환하는 녀석들.
말 그대로 요물(妖物), 요사스러운 놈들이었다.
그 힘이 마법과는 달라 상대하기가 난해했다.
알게 된 사실 둘,
요괴들에게 마법은 잘 들지 않았다.
점화로 태워 버리려 했지만 들어가는 대미지가 너무 적었다.
여간 까다로운 녀석들이 아니다.
“철남이, 저쪽에도 있는 것 같아!”
“다 뒤졌다.”
요괴의 소란을 듣고 숲 깊숙이 들어간 강철남.
한데 모여 우글우글 대는 요괴 무리가 보인다.
전부 한꺼번에 날려 버리려 주먹을 꽉 쥐는데,
“엇?”
놈들의 발밑에 뭔가가 있다.
정확히는 놈들이 열심히 누군가를 밟고 있다.
사람이다!
요괴에게 집단 린치를 당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게 뭐야. 거, 아저씨, 거기서 뭐 하시오?!”
황당해서 밟히고 있는 남자를 향해 묻는 강철남.
“앗, 누구 계십니까? 실례가 안 된다면 구해 주실 수 있나요?”
“실례된다면 그냥 갈 길 가도 되는 거요?”
“그러지 말고 좀 도와주십시오.”
열심히 밟히고 있는 와중에도 목소리는 참으로 침착했다.
마치 얻어맞는 것에 익숙한 것처럼.
“일어나지 말고 그대로 있으쇼.”
“네네!”
[점화]
[일격필살]
강철남은 주먹을 꽉 쥐었다.
꽉 맞물린 다섯 손가락 사이에서 이글이글 화염이 들끓었다.
불길에 휩싸인 펀치를 있는 힘껏 풀스윙으로 휘두르자 요괴 무리가 한 방에 날아가 모조리 불타 버린다.
“다 끝났소.”
“감사합니다. 후아, 하마터면 옷이 다 찢어질 뻔했군요.”
“걱정되는 게 고작 옷이요?”
옷을 탁탁 털며 일어서는 남자.
그제야 드러난 모습을 자세히 보니 중년의 평범한 아저씨로 보였다.
다만 안쓰러운 것은 머리털이 하나도 없었다.
“크흠, 고생이 많으시겠소.”
“아, 이거요? 참, 저는 아닐 줄 알았는데.”
누군들 자기 머리숱이 영원하지 않으리라 의심하겠는가.
자기는 평생 풍성할 것이라 믿었건만.
남자는 머쓱한 듯 민머리를 반질반질 만진다.
“그나저나 여기서 왜 요괴들한테 얻어맞고 있었던 거요? 위험하게.”
“사실 저는 녀석들을 퇴치하러 왔습니다.”
“퇴치요? 개 처맞던데?”
팩트를 묵직하게 꽂는 강철남.
하지만 남자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요괴들에게 그만큼이나 두들겨 맞고도 멀쩡한 맷집.
보통 사람은 아닐 것이다.
“이것 참, 은인에게 제 소개가 늦었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모털 도사라 합니다.”
“네? 도사요?”
남자는 자기를 도사라 소개했다.
“모털 도사란 이름은 제 스승님께서 하사하신 신명입니다. 머리카락에서 강한 도력이 뿜어져 나온다고 해서 가지게 된 이름이죠.”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단어.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았다.
“혼자 급발진하지 마시고 차근차근 설명해 보시오. 도사란 뭐고 도력은 뭐요? 그리고 스승? 무슨 단체요?”
“앗, 이거 실례했습니다. 일반인들에겐 알려지지 않았을 테니까요.”
묵례를 꾸벅하고 다시 말을 잇는 모털 도사.
“저희 도사들은 예로부터 마귀를 소탕하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 내력이 오늘날까지 내려온 것이지요. 마귀의 존재야말로 도사들의 존재 의미입니다. 마귀가 사라지고 도사들도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렇게 존재를 감추고 있던 도사들은 세상에 몬스터들이 나타나자 다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특히나 도사들이 상대해야 하는 적은 일반 몬스터와 다른 ‘요괴’들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설악산처럼 요괴들이 들끓는 곳에서 그 힘을 펼쳐야 했습니다. 그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요괴가 가진 요력을 억누르기 위해서는 도사들이 가진 도력이라는 힘이 필요하니까요.”
잠시 강철남이 말을 끊었다.
“그러니까 요력을 가진 요괴를 쉽게 잡으려면 도력이라는 힘이 필요하다 그 말이오?”
“맞습니다. 애석하게도 저는 탈모가 오는 바람에 많은 도력을 상실하고 말았답니다.”
“어허, 그럼 앞으로 어쩔 셈이오.”
“…탈모약을…….”
“있다면 노벨상 받았겠지.”
시무룩해지는 모털도사.
“그 도력이라는 걸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소?”
“앗, 설마 도사 일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X도 없소. 그냥 한 방에 안 죽는 새끼들이 건방져서 한 방 컷 할 방법을 찾는 것뿐이오.”
눈을 반짝거렸다가 이내 풀이 죽는 모털도사.
“으음. 도력을 키우는 건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뭐, 템빨 이런 거 없수?”
“저희 스승님이 짚고 다니시는 지팡이에 큰 도력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그런 법구를 구해서 휘두르면 아마 요괴를 잡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법구.
요력을 억누르는 도력이 담긴 도구다.
“스승님이 어디 사쇼?”
“법구를 얻으시려고요? 요괴를 물리치는 동지가 느는 것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하나 스승님께서 허락을 해 주실지.”
“됐고 장소나 말씀해 주시오. 딜은 내가 할 테니.”
“산을 올라오는 길에 안개가 자욱한 연못이 있습니다. 스승님은 그 연못에 살고 계십니다.”
그때 강철남의 머릿속을 번뜩 스치는 인물.
“혹시 스승 이름이 설악 신령이요?”
“앗, 맞습니다! 만나 보셨습니까?”
“만났다마다요.”
생각에 잠기는 강철남.
전략을 구성해 본다.
“…….”
‘좋다, 완벽해.’
“철남이, 집 지어야지 어디가?”
“먼저 들릴 곳이 있어.”
모털 도사에게는 일부러 집터와 황토를 지키게 시켜 두었다.
지금부터 실행할 계획에 그는 방해만 될 뿐이니까.
강철남은 집 짓기도 미뤄 두고 성큼성큼 산 아래로 향한다.
도착한 곳은 안개가 자욱한 연못.
“여긴 왜?”
멍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대답 대신 입에 손가락을 조용히 가져다 대는 강철남.
강철 숟가락에 낚싯줄을 매달아 퐁당 빠뜨려 보는데,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쭈, 안 나와? 두 번째부터는 유료 서비스라 이거냐?”
줄을 당겨 숟가락을 꺼낸다.
대신 담글만한 다른 게 없나 싶은 그때,
“철남이, 대체 또 무슨 지랄을 할 건지 같이 좀 알자.”
“멍구야.”
“응?”
“부탁한다.”
“뭘? 뭘 부탁해? 이, 이 무슨 짓이야! 이 미친놈, 아, 아악!!”
풍덩!!
연못 한가운데에 커다란 물기둥이 솟아오른다.
멍구가 연못 속으로 강제 다이빙 당한 것이다.
잠시 뒤.
펑!!
“이 황금 멍뭉이가 네 멍뭉이냐.”
나왔다!
이때다.
설악 신령이 물기에 눈을 못 뜨고 있는 순간을 노려,
강철남이 달린다.
[초광속]
번쩍.
번개가 치는 속도로 무엇인가 설악 신령의 소복 자락을 스치고 지나간다.
설악 신령은 뭔가 시원하면서 소름을 끼치게 하는 바람이 자신을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뭔가 허전해진 것 또한 느꼈다.
‘으응?’
“어, 내 지팡이!!”
설악 신령은 뒤를 돌아본다.
“어? 어? 야, 야! 야아!!”
이미 웬 인간 하나가 신령의 지팡이를 들고 달아나고 있다.
“내 지팡이 돌려줘, 이 X불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