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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 자연인이다-62화 (62/175)

62화 다시 만난 아내

강철남에게 프로레슬링은 낭만이었다.

다 커서 머리가 굳어 버렸을 때야 치고받고 패대기치는 액션이 일종의 쇼맨십이었다는 걸 알았지만,

어릴 적 그에게 프로레슬링은 작은 링 안에서 펼쳐지는 사나이들의 뜨거운 결투로 보였다.

저먼 스플렉스.

뒤에서 상대의 허리를 끌어안아 뒤로 눕듯 몸을 젖혀 상대의 뒷머리를 바닥에 찧는 기술.

숙련자의 낙법이 바탕이 되면 큰 부상 없이 받아 낼 수 있는 기술이지만,

시전자가 작정하고 땅에 메다꽂는다면 아주 강력한 필살기가 된다.

쿵!!

설악산이 울렸다.

강철남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그의 팔에 안겨 있는 강철남의 아내는 눈이 뒤집혀 하얀 게거품을 문다.

“대답은 충분히 됐겠지?”

손을 털고 일어나는 강철남.

일어나 아내를 내려다본다.

그런데 웬일인가?

아내가 누워 있어야 할 자리에는 나무토막만이 하나 놓여 있을 뿐이다.

이건 대체?

귀신에 홀린 기분이다.

한편 멍구도 뜻밖의 만남에 살짝 당황하고 있다.

“이놈아. 여기 있었구나. 얼른 이리로 오너라.”

어떤 꾀죄죄한 남자가 멍구에게 손짓한다.

멍구는 지방 장터 떠돌이 개장수에게 잡혀 팔려 다니던 개.

그 개장수가 지금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어떻게 철창에서 탈출한 거냐? 얼른 이리 오래두!”

그러고는 목덜미를 콱 붙잡는다.

이 느낌.

그때 그대로다.

손의 감촉과 퀴퀴한 냄새 모든 것이 생생하다.

환상이 아니다.

진짜로 여기 있는 것이다.

멍구,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더러운 손 안 치워, 이 개새꺄?”

“뭐? 마, 말을 해?”

화들짝 놀라는 개 도둑.

더 이상 말이 뭐가 필요할까.

몸의 대화를 나눌 시간이다.

멍구는 폴짝 뛰어올라 개 도둑의 턱주가리를 앞발로 후린다.

어금니부터 앞니까지 여섯 개의 치아가 허공에 흩뿌려진다.

“너 같은 새끼들 때문에 견권 신장이 안 되는 거야, 이 개 같은 새끼야.”

“우욱! 컥! 푸헉!”

있는 힘껏 앞발을 휘둘러 개 도둑을 참교육시키는 멍구.

더는 뽑힐 치아가 남아 있지 않았을 때였다.

펑!

“뭐여, 갑자기?”

개 도둑이 나무토막으로 변하고 만 것이다.

이 무슨 귀신의 장난인가.

“멍구.”

“철남이, 방금 그건?”

얼떨떨한 정신을 부여잡고 주변을 둘러본다.

어느 성질 고약한 녀석의 농간임이 틀림없다.

“몬스터의 짓인가? 마법?”

“불 지르고 물 뿌리는 마법 수준이 아니야. 이건 아마 요괴의 짓일 거야.”

“오오, 요괴.”

멍구는 땅에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는다.

낯설고 구린 냄새가 난다.

자신들이 올라왔던 길을 따라 추격자가 따라붙은 모양이다.

“철남이, 밑에 있네.”

“가서 조진다.”

곧장 산을 내려가는 강철남.

빠르게 산을 접어 달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그때 옆에서 뭔가가 튀어나와 강철남의 얼굴을 덮친다.

“키에에에엑!!”

의식귀가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강철남의 오른쪽 귀를 향해 입을 쩍 벌렸다.

인간의 의식을 먹어 요력을 채우는 요괴.

강철남의 의식을 먹어 치워 힘을 키울 작정이다.

빠각—

하지만 어림도 없지.

강철남은 오른손 어퍼컷으로 의식귀의 아래턱을 날려 버린다.

멀리 날아간 의식귀는 너덜너덜해진 턱을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기분 나쁘게 생겼구만.”

온몸이 녹색에 찢어진 넝마를 걸치고 털이 수북한 모습.

몬스터보다 더 기괴해 보였다.

“상태창 한번 구경이나 할까.”

멍구는 ‘눈’을 개안했다.

[의식귀

레벨: 78

요력: A

힘: BB

맷집: BB

속도: B]

“개X밥이잖아?”

“그런데 왜 한 방에 안 죽는 거지?”

이상했다.

저런 허접한 랭크로 강철남의 펀치를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이것도 그 빌어먹을 요력 탓인가?”

“그럼 뒤질 때까지 후드려 까.”

“오케이.”

[광속]

겁을 잔뜩 먹은 의식귀가 채 뒷걸음질을 쳐 보지만,

쿠앙!!

강철남은 녀석의 머리 위로 뛰어올라 핵주먹 꿀밤을 먹인다.

“케에엑!”

의식귀가 비명을 지르며 완전히 짜부라진다.

이번에야말로 숨통이 끊긴 것 같다.

“기분 나쁜 녀석이었어. 덕분에 개 도둑놈을 때려 줄 수 있어서 속은 후련해졌지만 말이야. 철남이, 너는 뭘 봤어?”

“전 마누라.”

“낄낄낄.”

“빠개지 마.”

짧은 전투가 있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티격태격하며 산을 오르는 둘.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다.

“경치 끝내준다.”

푸른 봄 하늘 아래 펼쳐진 산의 절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이런 경치를 누릴 수 있다니.

자연인이라서 행복해.

“구멍이 있다는 게 조금 분위기가 깨지만 말이야.”

아니나 다를까 정상에 시커먼 구멍이 뚫려 있다.

울산바위 꼭대기에 뻥 뚫린 마계와 연결된 작은 구멍.

몬스터들은 그 구멍을 통해 설악산을 오고 가고 한다.

“그럼 건너가서 재료 좀 건져 오자.”

구멍을 향해 뛰어오르려는 강철남과 멍구.

그런데,

“잠깐, 거기 너희!”

막 마계로 넘어가려는 둘을 누군가가 큰 소리로 불러 세운다.

깜짝 놀랄만한 묵직한 저음의 동굴 목소리였다.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울림에 귀를 부여잡게 된다.

“아이고, 귀야. 넌 뭐야?”

뒤를 돌아보니 웬 웅장한 바위 하나가 떡 하니 버티고 있다.

설마설마했는데 그 설마가 역시나, 말을 건 녀석은 바위였다.

강철남은 그 바위가 어쩐지 낯이 익었다.

“세상에, 너도 요괴야?”

“그렇다. 오래된 바위에 몬스터와 사람의 피가 엉겨 붙어 요력을 갖게 된 것이지.”

말하는 바위가 자기소개를 한다.

바위가 뭐라 떠들건 말건 기억을 더듬어 보는 강철남.

‘앗, 설마?’

“옳거니. 너 흔들바위구나!”

“뭐, 쟤가?”

“맞네! 흔들바위 맞아. 어쩌다가 요괴가 되었냐. 팔자 한번 끝내준다.”

신기한 듯 요리조리 훑어보는 강철남.

흔들바위는 말을 끊겨서 몹시 화가 났다.

“좀 닥쳐 봐라. 말 좀 하자.”

“그래,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

“보시다시피 나는 바위다.”

“그래 보여, 이 돌대가리야.”

“무례한 개로군!”

“그래서 용건이 뭔데?”

“나에게 너희의 피를 바쳐라!”

“에엑?”

뜬금없이 헌혈을 강요하는 흔들바위.

어처구니가 없다.

“개소리 지껄이면 산 아래로 굴려 버린다? 바쁜 사람 불러서 뭔 헛소리야.”

“나는 바위. 거동이 불편하다. 요력을 좀 더 채울 수 있다면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강해져서 뭐 하게?”

“이 산의 주인이 될 것이다.”

“이놈도 주인 타령이네, 이 지긋지긋한 새끼들.”

멍구는 개무시의 의미로 앞발 가운뎃발가락을 척, 날리고 뒤돌아선다.

반면 강철남은,

“잠깐, 멍구.”

“왜, 철남이. 설마 피 나눠 주려고?”

“잘 생각했다, 인간. 내게 피를 바친다면 부하 1호로 임명해 주지.”

“닥치고 있어 봐, 돌대가리!”

“너나 닥쳐라, 멍청한 개 같으니라고. 너는 부하 435호다!”

“무슨 재주로 돌대가리가 부하를 433명이나 모을 건데?”

흔들바위와 멍구가 말다툼을 하는 사이 강철남이 저벅저벅 다가온다.

“자, 인간! 얼른 내게 피를!”

“멍구야.”

“왜?”

“굳이 마계까지 안 가도 되겠는데.”

“엉?”

“구들. 여기 좋은 소재 있잖아.”

영문도 모른 채 피를 기다리며 춤을 추는 울산바위.

어쩐지 자기를 바라보는 인간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이봐, 인간. 너 무슨…….”

까앙—

강철남이 강철 숟가락으로 흔들바위를 내려치니 쩍, 하고 두 동강이 난다.

“멍구, 한 조각 들어라.”

“우쒸, 겁나 무겁네.”

“자, 집으로 돌아가자.”

이사 첫날부터 운 좋게 구들 소재를 구한 강철남과 멍구.

이제는 본격적으로 집을 지어야 한다.

나무집?

식상하다.

강철남은 예전부터 살고 싶다고 생각해 둔 집이 있었다.

* * *

“철남이, 나무 얼마나 필요해?”

“나무는 최소한만 있으면 돼”

“엥? 그럼 집은 뭐로 짓게?”

“황토다.”

“황토?”

황토집.

친환경적인 그야말로 자연인의 자연인을 위한 자연집.

겨울에는 단열이 뛰어나고 여름에는 시원함을 선사하는 숨 쉬는 집.

나무 골조에 황토를 발라 지을 예정이다.

“그럼 황토는 어디서 구하게?”

“안타깝게도 설악산에서 황토를 구할 순 없지.”

“아, 또 마계, 또계야?”

암석 지대 마계라면 아마 황토 바위도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소재를 가져오자.

툴툴대는 멍구를 잘 구슬려 정상으로 올라간다.

울산바위 꼭대기에 있는 구멍으로 넘어가기 전,

멍구는 슬쩍 뒤를 돌아본다.

“왜 그래?”

“아니, 왠지 이 타이밍에 멈추라고 외치는 황토 바위가 나타날 것 같아서.”

“…똑같은 레퍼토리 쓰면 지겹잖아.”

“젠장!”

요행을 바랐지만 인생은 만만치 않다.

어쩔 수 없이 마계로 넘어가는 멍구.

강철남도 폴짝 뛰어넘어 간다.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 마계의 땅을 밟는다.

몇 번을 와도 익숙해지지 않는 마계의 땅.

강철남은 태양과 거대한 산맥의 모양새를 보고 현재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카르텔로 가려면 저쪽이로군.”

[광속]

한시라도 빨리 목표를 달성하고 산속으로 돌아가고픈 강철남은 속도를 낸다.

다행히 도시 카르텔까지 멀지는 않았다.

“멈추시오. 당신들은 누구… 앗!!”

도시 입구의 경비병이 창을 거두고 무릎을 꿇는다.

“크레톤의 마왕 강철남 님! 어서 오십시오!”

“고생이 많군. 고개들 들어.”

“네!”

카르텔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3지구의 활기가 느껴진다.

아이들은 뛰어놀고 상인들은 활기가 넘친다.

뛰노는 아이들 틈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꼬마 악어 듀크다.

“좋아 보이는구나.”

“가, 강철남 님!”

인사를 건네자 듀크가 달려와 넙죽 엎드리는데.

“이봐, 일어서. 왜 그러는 거야?”

3지구 길 한복판에서 벌어진 소동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그제야 강철남을 알아본 3지구의 몬스터들.

“가, 강철남 님?!”

“저, 저분이?”

“세상에! 직접 뵐 수 있다니!”

갑자기 모든 몬스터들이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기 시작한다.

이런 태도가 적잖이 당황스럽다.

“이것들이 왜들 이러는 거야?”

“이번 3지구 구들 설치 계획은 크레톤의 마왕 강철남 님께서 제안하신 거라면서요? 덕분에 겨우내 따뜻하게 지냈습니다. 저희 3지구 마물들은 강철남 님에게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시끌벅적한 소란이 멈추고 아이도 상인도 주부도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강철남을 우러러 받들고 있다.

강철남은 이런 분위기가 별로 내키지 않는다.

“다들 일어나 일들 보시오. 마음은 감사히 받겠소만 다음부터 또 이러면 내 직접 구들을 다 박살 내 버릴 거요.”

“에헤이, 철남이. 되게 쑥쓰러워하네.”

그제야 슬슬 일어나는 몬스터들.

고개를 푹 숙여 깊은 인사를 올리고 각자 저마다의 자리로 돌아간다.

“강철남 님. 그런데 카르텔엔 어쩐 일이세요?”

“카르텔에게 용무가 있어서 말이야. 아버지는 잘 계시니?”

“덕분에요! 요즘 일할 맛 나신대요!”

“그거 다행이구나.”

못된 하마 상사 녀석의 뚝배기를 털어 준 보람이 있었다.

강철남은 듀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서 마왕성으로 향했다.

“우와! 듀크, 너 강철남 님과 아는 사이야?”

“대단하다. 저분 크레톤의 마왕님이시잖아?”

“엄청 강하대! 마계 최강이래!”

“듀크 부럽다.”

함께 놀던 친구들이 듀크를 잔뜩 부러워한다.

엣헴, 하며 콧대가 높아진 듀크였다.

2지구, 1지구에서 모두 경례를 받으며 프리패스로 통과한 강철남과 멍구는 마왕성 안으로 금방 들어올 수 있었다.

“카르텔, 나 왔소.”

“강철남 님, 멍구 님! 어서 오십시오.”

둘을 반갑게 맞이하는 카르텔.

“나르딘에서 공수해 온 골드메리 꽃차입니다.”

작업실에 향긋한 꽃차 향이 퍼졌다.

얼마간의 잡담을 나누며 대화를 이어가다 본격적인 본론으로 들어갔다.

“황토를 구하고 싶은데.”

“황토라. 구하기 어렵지 않죠. 필요하신 만큼 설악산까지 배달도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친절하군. 물론 시커먼 속내가 있겠지?”

“아하하. 시커멓다니요. 눈처럼 하얗습니다. 딱 요점만 말씀드리죠.”

“뭔가?”

“강철남 님의 말씀을 듣고 3지구에 구들을 설치해 주었더니 시민들의 호응이 상당하더군요. 그래서 말인데요.”

“달달한 말 들으니 중독되지? 지지율을 높일 수 있는 꿀팁 하나를 더 달라는 거로군.”

“역시 눈치가 빠르십니다.”

상업에는 능통할지라도 정치와 복지에 있어서는 식견이 부족한 카르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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