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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 자연인이다-61화 (61/175)

61화 설악산 신령

멍구가 앞발로 가리킨 곳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자욱하게 피어오른 하얀 안개 사이로 홀린 듯 빨려 들어간다.

들숨을 마시니 촉촉한 공기가 코로 스민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세상은 뿌옇게 변했고,

마치 하얀 허공만이 존재하는 세계로 넘어온 것 같았다.

“멍구. 거기 있나?”

“있네. 아무래도 요상한 마법에 빠진 것 같네.”

서로를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시야가 가로막혔다.

조심히 걸었다.

제법 걸었을 무렵 강철남은 앞쪽에서 눅눅한 습기를 느꼈다.

발걸음을 멈추고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바닥에 대어 본다.

그러자 젖은 흙이 만져졌다.

“조심히 걸어가자. 앞쪽에 물가가 있어.”

신중하게 걸어 나가니 정말로 작은 연못이 나왔다.

연못이 어찌나 맑고 투명한지 하늘이 거울처럼 비춰 보였다.

“철남이 물이 엄청 깨끗해!”

멍구가 연못에 얼굴을 박고 찹찹 물을 맛있게도 마신다.

땀도 많이 흐르고 몸에 열도 올랐다.

강철남도 세수나 할까 싶어 고개를 숙인다.

그때,

참방—

이크!

강철남의 강철 숟가락이 빠져 버렸다.

“이런!”

그가 손을 재빨리 집어넣어 봤지만 깊숙이 잠겼는지 잡히지 않았다.

“그냥 숟가락 하난데 포기해.”

“그냥 숟가락이 아냐! 인체 공학적으로 만든 내 전용 숟가락이란 말이야.”

“거참, 쓸데없는 구석에서 세심하네.”

연못에 손을 집어넣고 휘저어 봐도 도무지 행방을 알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강철남은 신발을 벗고 뛰어들 준비를 하는데.

그 순간이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50년 넘게 살면서 별별 일을 다 겪은 강철남.

갑자기 젊어지지를 않나, 몬스터가 나타나질 않나, 멍구가 말을 하지 않나, 마왕이 되지를 않나.

이제 더는 놀랄 일이 없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또 놀랄 일이 생기고야 만다.

펑!

“흐흠. 너는 어인 일로 신발을 벗고 이 연못에 뛰어들고자 하느냐?”

어깨까지 내려오는 하얀 머리카락.

가슴팍까지 내려오는 코와 턱을 뒤덮은 하얀 수염.

빛바랜 흔적조차 없이 말끔한 새하얀 소복.

구불구불하게 생긴 나무 지팡이.

완벽한 ‘그 이미지’ 그 자체였다.

그래.

산신령이다!

“우왓! 당신은 누구쇼? 혹시 산신령이요?”

“잘 아는구나.”

“산신령이 진짜로 있는 거였소? 전래동화에서 지어낸 건 줄 알았는데.”

화들짝 놀라는 강철남의 태도가 이해 간다는 듯 산신령은 수염을 점잖게 쓰다듬고 말을 잇는다.

“나는 설악 도사라 한다. 예로부터 이 설악산을 지켰지. 너희 선조들이 살던 시대에는 마귀들이 기승을 부렸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마음이 곧 마귀와 다를 바가 없어져 마귀들이 사라져 갔다네. 그 변화에 따라 산신령도 모습을 감춘 것이지.”

“음, 그러니까 할 일이 없으니까 잘린 거예요?”

멍구가 뼈를 강하게 때린다.

“크흠.”

“스읍, 멍구야.”

“아니, 왜? 일감이 없으니까 뒷방 늙은이 신세로 밀려난 거 아니야?”

콩!

“그래도 대놓고 그런 말 하면 실례지.”

“그럼 몰래는 해도 돼?”

“…속으로 조용히 생각해.”

“커험!”

등장하자마자 극딜을 맞은 설악 신령.

정신이 아찔하다.

“그나저나 신령님은 왜 나타나신 거요?”

“이제 나 말 좀 해도 되느냐?”

몹시 억울해 보이는 산신령.

“마음껏 하시구랴.”

“어흠. 그래. 자, 이 황금 숟가락이 네 숟가락이냐?”

설악 신령은 소매에서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숟가락을 꺼내 든다.

그 말을 듣자마자 강철남은 어쩐지 다음 레퍼토리가 예상이 된다.

“여보쇼, 신령 양반.”

“그래, 아니라고? 그럼 다음은… 응?”

“혓바닥 길게 놀리지 말고 그 소매에 있는 숟가락 다 꺼내 보쇼.”

“으응? 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구나?”

“내가 그쪽으로 넘어가서 소매 털어 내 숟가락 나오면 당신 한 대 맞는 거요.”

멍구는 강철남을 개쓰레기 쳐다보듯 째려본다.

방금 실례니 어쩌니 했던 게 누구더라?

설악 신령은 당황했다.

원래라면 금 숟가락을 보고 자기 것이 아니라고 할 텐데.

다음에 꺼낸 은 숟가락도 고개를 절레절레할 것이고.

그러다 결국 마지막에 꺼낸 강철 숟가락을 보고서야 제 것입니다, 라고 해야 되는데.

정직한 청년이로구나, 라고 말한 뒤에 세 개의 숟가락을 모두 주고 훈훈하게 끝맺어야 하는 건데.

대체 뭔데?

“좋은 말로 할 때 내 숟가락 내놓으쇼.”

“어, 어… 으응.”

왠지 무기력한 대답이었다.

설악 신령은 소매에서 강철 숟가락을 꺼낸다.

가까이 가기가 왠지 무서워서 멀리서 휙 던져 준다.

“고맙소.”

“그나저나 신령 영감. 할 일 없어? 몬스터도 많은데 산책 삼아 몇 마리 때려잡고 놀아.”

아까 놀린 게 조금 머쓱해진 멍구.

위로랍시고 다독여 준다.

“나도 그러고 싶다네.”

어쩐지 눈치를 살살 보는 설악 신령.

이상한 포인트에서 눈치가 빠른 멍구가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낀다.

“알았다! 여기 몬스터들을 상대하기 빡센 거지?”

“크흠.”

“정말 그런 거요?”

“하아…….”

깊은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설악 신령.

산신령 체면이 말이 아니다.

“여기 몬스터가 그렇게 강하오?”

“흔한 마물이 아니네.”

순간 설악 신령의 눈에서 빛이 번쩍하더니 음성이 무거워졌다.

“여기에는 ‘요괴’가 살고 있네.”

“뭐, 요괴요?”

“그렇다네.”

“몬스터, 마물이 요괴랑 같은 거 아니요?”

이 무슨 말장난인가 싶었지만 설악 신령이 설명하는 둘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었다.

“마물이 인간을 잡아먹으면 요력이라는 것이 상승하네.”

“마력과는 다른 힘인가.”

“그 요력이 쌓이고 쌓여 결국에는 요괴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지.”

인간을 먹고 요력을 일정 수준 쌓은 몬스터.

그것이 요괴다.

예전의 박준범과 같은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듣기만 해도 맛없겠네.”

“응? 뭐가 맛없어?”

강철남에게 먹을 수 없는 몬스터는 무가치한 것.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신령 양반.”

“시, 신령 양반?”

“거, 앞으로 할 일 없으면 올라오는 인간들이나 막아 두쇼.”

“내, 내가 왜?”

“요괴를 퇴치도 못 하면 안 태어나게라도 해야 할 거 아니오.”

팩트로 뼈가 부서지도록 처맞으니 설악 신령은 정신이 얼얼했다.

* * *

안개 숲을 빠져나와 강철남과 멍구는 산을 올랐다.

중턱에 이르러서 마땅한 장소를 발견했다.

물가와 멀지 않고 나무 그늘이 있으며 밭을 짓기에 적당한 흙밭이 있었다.

돌산인 설악산에서 이만한 집터를 찾은 건 행운이다.

“좋아. 여기가 이제 우리 집이다.”

“멍멍!”

새로운 출발.

‘그럼 집을 지어 볼까?’

“집은 어떻게 지을 거야?”

“우선 소재를 모아야겠지.”

“어떻게?”

멍구가 묻자 입 다물고 잠잠해지는 강철남.

“정상으로 올라가자.”

“아무 생각 없었구만.”

원래 인생이란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법

교통사고처럼 불시에 닥치는 사건이 도와줄 것이다.

둘은 또다시 무작정 산을 올랐다.

설악산의 경치에 잠시 한눈을 팔기도 하고 우연히 발견한 영지버섯을 채취해 챙기며 유유자적 거닐었다.

그러던 중,

“우오오! 인간이다! 이게 얼마만의 먹잇감이냐! 네놈만 먹으면 나도 요괴가 될 수 있다!!”

웬 바위만 한 거미가 나무 위에서 내려오더니 대뜸 시비를 건다.

침을 질질 흘리는 거미는 여덟 개의 눈으로 강철남과 멍구를 바라본다.

거미는 그들이 어떤 맛일지 몹시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나,

“철남이, 저거 찍먹 가능?”

“쌉가능.”

충식.

강철남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다.

인류가 식량난에 빠졌을 때 어쩌면 가장 훌륭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 바로 곤충일 것이다.

다소 극혐인 외모가 진입 장벽이지만 편견 없이 먹어 보면 제법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그 영양소는 조금만 먹어도 사람이 하루 종일 활동할 수 있는 열량을 제공한다.

하물며 보통 곤충이 그러한데 저 커다란 거미는 어떠하랴.

“잘 먹겠습니다!”

거미는 다리를 창처럼 뻗어 강철남을 찌른다.

와직—

“아아악!”

그러나 공격을 한 거미의 다리가 부러진다.

혼자 공격하다 부상을 입고,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는 거미.

강철남은 강철 숟가락을 들고 저벅저벅 걸어가 이마빡을 후려갈겼다.

퍼억!

그대로 즉사.

강철남은 그대로 등에 짊어 멘 무쇠 팬을 꺼내어 모닥불을 지폈다.

캄보디아에서는 아삥이라는 거미 요리가 있다.

가장 정석적인 방식은 통째로 기름에 튀기는 식이다.

녀석을 불에 올리자 보통 거미가 아닌 덕분에 몸에서 천연 기름이 좔좔 흘러나왔다.

[점화]

토치처럼 위에서 직화를 쏘아 주니 요리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튀긴 듯 구운 듯 바삭 아삭한 요리가 완성됐다.

“먹자.”

“잘 먹겠습니다.”

으적으적—

덩치가 덩치인 만큼 속살도 푸짐했다.

맹독이 좀 있는지 톡 쏘는 맛이 느끼한 맛을 중화시켜주었다.

“으아, 배부르다. 그럼 계속 올라가 보자구.”

불을 확실히 끈 뒤 무쇠 팬을 등에 메고 다시 산을 오른다.

강철남과 멍구가 떠난 뒤.

“크크큭. 인간이 왔군.”

그들이 머문 자리에 누군가 불의 흔적을 유심히 바라본다.

놈의 정체는 요괴.

정신을 갉아먹는 의식귀(意蝕鬼).

녀석은 위로 난 발자취를 쫓아 추격을 시작한다.

* * *

정상으로 오르는 길.

강철남과 멍구는 서두르지 않고 풀 내음을 맡고 산바람을 쐬며 느긋하게 걷고 있다.

“철남이, 여기 참 좋구만.”

“그렇지? 괜히 명산이 아니라니까.”

‘언젠가는 울산바위도 가 보고 토왕성 폭포도 들러 봐야겠다.’

‘그전에 집은 어떻게 꾸밀까.’

이런저런 즐거운 상상에 빠져 있는 강철남.

예전에는 몰랐다.

이렇게 자연에서 유유자적 사는 삶을 살 수 있을 줄이야.

사업에 실패하고 결혼에도 실패했지만 그것이 인생의 실패로 이어지진 않았다.

삶에는 2막, 3막, 그 이상이 있음을 살아 보니 알겠더라.

그리고 또 한 가지.

2막으로 접어들었으면 1막으로 되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몬스터가 판을 치는 비현실적인 세상이라도 회귀는 안 되는 세상이다.

그런데.

그런데!

왜지?

왜 과거에 있어야 할 존재가 강철남의 눈앞에 있는 걸까?

“당신?”

“여보!”

아내다.

사업에 실패해 빈털터리가 된 자기를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간 배신자.

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몬스터가 아내의 모습으로 둔갑했었지.

그런데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이건 진짜 아내다, 이런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보고 싶었어요!”

와락 끌어안는 아내.

강철남은 알 수 있었다.

이건 아내의 촉감이고 아내의 향기였다.

눈앞에 있는 건 진짜 아내.

한때 진실로 사랑했었던 그녀다.

“어떻게 여길 온 거야?”

“당신이 여기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내가 다 잘못했어요. 용서해 줘요. 당신이랑 다시 살고 싶어요.”

아내는 눈물로 호소했다.

있는 힘껏 꽉 끌어안는 손아귀에서 절실함이 느껴졌다.

거짓 없는 진심인 듯했다.

강철남은 고뇌에 잠겼다.

어떤 고민일까?

그녀를 받아들일까? 아니면 용서할까?

아니다.

강철남의 고민은 그런 고민이 아니다.

“내가 두 가지 선택지를 줄 테니 그중 하나를 골라 보시오.”

“응. 당신한테 돌아갈 수만 있다면 뭐든지 다 할게!”

아내는 반짝반짝하는 눈으로 올려다봤다.

“하나는 저먼 수플렉스, 하나는 초크 슬램.”

“응?”

“양자택일.”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어.”

“모르겠으면 이참에 배우면 돼.”

“그, 그럼 첫 번째 꺼?”

“오케이.”

에엣? 하는 눈빛으로 강철남을 올려다보는 아내.

다정하게 백 허그 하며 감싸 안는 강철남의 손길에 심장이 두근두근한다.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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