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한계령 휴게소
* * *
홍태진.
서울 헌터 연합 파견팀의 총괄팀장.
연합의 행정을 관리하는 것은 부협회장 서필도지만 실질적으로 현장을 책임지는 자는 홍태진이다.
직접 몬스터와 부딪치고 전우들과 목숨을 거는 삶.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또 언제 어디서 무고한 생명을 구하게 될지도 모르는 삶.
사람들은 그를 영웅이라 불렀다.
그런 이명에 대한 압박감 때문이었을까.
홍태진에게는 이 몬스터 시대를 끝내야 한다는 사명감이 더욱 커져 갔다.
때는 2개월 전,
강철남이 마계로 떠난 뒤 서울 헌터 연합이 북한산을 점령했을 때다.
“이번 시간에는 서울 헌터 연합의 파견팀장 홍태진 님을 모셨습니다. 팀장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을 받고 계시는 분이신 만큼 세계인들이 궁금해하는 점들이 참 많은데요. 시간상 모두 다루지는 못하겠지만 많은 분께서 궁금해하시는 질문들을 간추려 드려 볼까 합니다. 괜찮으신지요?”
“성심성의껏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그날, 한국의 한 방송사에서 진행한 생방송 인터뷰는 전 세계에 전파를 타고 동시 방영되었다.
각국은 동시통역이 가능한 한국인을 고용하여 자막을 즉각적으로 띄워 보내느라 바빴다.
커뮤니티와 SNS는 홍태진의 인터뷰에 대한 반응들로 뜨거웠다.
- 대박! 홍태진 나온다!
- 우리 팀장님 존멋
- 방송에서 보기 힘든 사람인데 섭외력 무엇 ㄷㄷㄷ
- 제 블로그에 놀러 오세요. 홍태진 팀장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혼란을 틈탄 광고충 극혐
여론은 들끓었다.
기자들은 그의 발언에서 특종을 잡아내 기사를 쓰겠다는 생각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마침내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질문은 대체로 평이했다.
강함의 비결.
헌터 지망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
헌터로서 살아가는 삶의 현실.
가장 힘들었던 몬스터.
잊을 수 없었던 순간.
방송의 수위를 걱정했던 걸까.
질문들은 마치 자서전에나 나올 법한 수준으로 무난했다.
시청자들은 실시간으로 재미없는 방송국의 대본을 비난했다.
그 반응을 보고 담당 PD는 살짝 강수를 던져 보기로 했다.
진행자에게 새로운 주문이 들어왔다.
“자, 이번 질문은 조금 답변하시기 어려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인류 누구나 궁금해할 질문이라 생각합니다. 팀장님. 이 몬스터 시대는 끝날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고 봅니다.”
“상당히 단호하게 대답하시네요. 혹시 근거를 여쭤봐도 될까요?”
“간단합니다. 인류의 의지가 계속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헌터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이 계속해서 일어나 싸우고 있습니다. 그 결과 수복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북한산을 점령하였습니다. 이처럼 인류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작은 성공의 반복은 곧 자신감으로 이어질 것이고, 자신감은 곧 용기로 이어질 것입니다. 언젠가 인류의 용기가 모든 구멍의 소멸이라는 큰 성공으로 이어질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홍태진의 단호한 답변에 사람들은 환호를 질렀다.
인류에게 희망은 있다.
이 빌어먹을 몬스터들을 끝장낼 수 있다.
사람들은 정말 그렇게 믿었다.
뛰어난 성과를 거두는 참 리더 홍태진이 있고,
인류 최강의 검사 김성남이 있다.
수많은 파견팀의 헌터들이 있고 그들이 배출해 낸 뛰어난 실력자들이 세계 각지에서 활약 중이다.
사람들은 진정으로 홍태진의 말을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간절히 그의 말이 사실이길 바랐다.
인터뷰가 끝났다.
홍태진은 본부로 돌아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뒷좌석에 몸을 묻고 그는 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홍태진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사실 인류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마왕…….”
조용히 중얼거려 본다.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린다.
호세라는 마왕군의 일개 병사 하나 당해 내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인류의 희망인가.
어쩌면 인류의 최대 난적은 마왕일지도 모른다.
홍태진은 마왕에 대한 대책을 세워 봤지만 무의미했다.
결론은 강해지는 것밖에는 답이 없었다.
대체 마왕은 얼마나 강할까.
어떤 존재일까.
인간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몇 달 동안 마왕에 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머릿속이 마왕이라는 두 글자로만 가득 찼다.
“대체 어떤 녀석이냐, 마왕이란 놈은!”
절규에 가까운 울부짖음.
수렁에 빠진 깊은 고뇌.
대체 누구냐, 마왕 네 놈은!
* * *
“나 마왕 됐어.”
강철남은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뭐라구요?”
“크레톤 녀석과 맞짱 뜨고 얼떨결에 마왕이 되어 버렸어.”
“아니, 이해가 안 갑니다. 차근차근 설명 부탁드립니다.”
“귀찮게스리.”
강철남은 마계에서 있었던 일들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구들을 도둑맞은 사건부터 시작하여 카르텔의 초대를 받은 일.
전설의 술에 관한 정보를 듣고 여행을 떠난 일.
나르딘에 들러 키켈과 크레톤의 군대와 부딪친 일.
가이아에 들러 크레톤의 사천왕을 혼쭐내 준 일.
그리고 도시 크레톤에서 마왕 크레톤을 무너뜨리고 마왕이 된 일까지.
중간중간 멍구가 끼어들어 맛있는 음식 이야기로 대화가 새곤 했지만, 그때마다 홍태진이 이야기를 바로잡았다.
파견팀장들은 그가 거짓말 따위를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그런데 이건 너무 하지 않는가.
인간이 마왕이 되다니!
“강철남 씨는 그럼 몬스터들을 다룰 수 있는 건가요?”
“크레톤의 병사들이라면 그렇지.”
“그렇다면 인간계로 접근금지 명령을 내릴 수는 없습니까?”
백진섭이 흥분하여 묻는다.
그럴 수만 있다면 몬스터 시대는 끝이다.
“어느 나라를 가도 똑같잖아. 국가가 하지 말란다고 그놈들이 죄다 말 듣디? 지 맘대로 살 놈들은 죽어도 지 맘대로 살아. 게다가 크레톤 병사들은 인간계에 딱히 관심 없어서 애초에 넘어오질 않아. 가이아나 카르텔도 그렇고. 인간계로 넘어오는 몬스터는 방랑 마물 아니면 다른 이름 모를 국가의 녀석들이지.”
“그럼 구멍을 막을 방법은요? 구멍만 막으면 모든 게 해결됩니다.”
그렇다.
문제는 구멍이다.
구멍이 막히면 더 이상 몬스터들도 넘어올 수 없을 것이다.
“구멍을 뚫은 건 마황제야. 걔는 종적을 감췄어. 아마 모든 구멍을 막는 건 불가능할 거야.”
“그럴 수가.”
맥이 탁 풀려 버리는 백진섭.
그래도 한 가지 희망적인 생각을 품어 본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무슨 소리요?”
“마왕의 존재에 관해 알게 되어서요. 무엇보다 강철남 씨가 마왕이라면 저희도 안심입니다. 마왕군이 쳐들어올까 마음 졸였거든요.”
“다행은 무슨. 난 싫어. 마왕이니 뭐니 감투 쓰는 건 딱 질색이거든.”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젓는 강철남.
“하하하. 그래도 마왕님이 있으면 앞으로 북한산의 몬스터들은 함부로 날뛰지 못하겠군요.”
“아, 말 나온 김에 말인데.”
“뭔가요?”
“나, 이사 갈 거야.”
“…네?”
강철남의 입에서 나오는 폭탄 발언의 연속.
“어, 어째서요!”
얌전히 있던 한지영이 홍태진과 백진섭을 젖히고 벌컥 튀어나온다.
“여러모로 너무 소란스러워졌어. 헌터들도 오고 민간인들도 오고.”
“하긴 그렇죠. 북한산이 워낙 명소가 되다 보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뭐.”
“북한산은 아예 저희 서울 헌터 연합에 맡기시는 겁니까?”
“알아서 하슈. 버리든 가지든.”
강철남은 설렁설렁 일어나 무쇠 팬을 등에 메고 강철 숟가락을 챙긴다.
“어디로 가시는데요?”
한지영이 다급하게 물어본다.
“설악산이요.”
“네?”
설악산.
강철남은 하늘에 구멍이 뚫리기 전의 아름다운 설악산을 그렸다.
새 보금자리로 부족함이 없었다.
“안 돼요!”
“왜지?”
“그게…….”
차마 입을 떼지 못하는 한지영.
백진섭이 대신 설명해 준다.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무슨 흉흉한 소문?”
“설악산에도 작은 구멍이 있죠.”
“그거 다행이군.”
이마를 치는 백진섭.
맞다. 이 인간 제정신 아니지.
“그건 둘째치고요.”
“그럼 뭐요?”
“북한산이 유명세를 타면서 헌터들이 다른 산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설악산인데 레벨업을 위해 그곳에 발을 들인 헌터들 모두 이상한 일을 겪었다고 합니다.”
“몬스터에게 당한 건가?”
“그 영문을 알 수가 없습니다. 몬스터에게 당했으면 어딘가 다치거나 죽거나 했을 텐데 몸은 멀쩡히 돌아와 마치 정신이 나가 버린 것처럼 머리가 망가져 돌아왔습니다.”
“반쯤 미쳐 버렸다 그 말인가?”
“맞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강철남.
“혹시 뭐 짚이시는 거 있습니까?!”
“없어.”
쿨하게 대답한 뒤 다시 짐을 고쳐 메고 길을 떠날 준비를 하는 강철남.
소문이 어떻건 어떤 장애가 있건 상관 않는다.
계획 따위를 수정할 남자가 아니다.
“멍구야, 가자.”
“잘들 있어라, 인간들!”
팀장들을 뒤로하고 강철남은 산길을 따라 내려갔다.
“철남 씨!”
한지영이 그를 부른다.
“놀러 가도 돼요?”
조금 목멘 목소리다.
“좋을 대로 하시오.”
그러자 그녀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오랜만에 산을 내려온 강철남.
걸어가는 아스팔트가 낯설기만 하다.
가야 할 거리는 북한산에서 설악산까지.
서울에서 강원도까지다.
[광속]
강철남이 땅을 차고 달리자 멍구가 그 뒤를 따른다.
그들이 달려 나가면서 떠난 북한산에는 봄을 맞은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 * *
한계령 휴게소.
설악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꼭 들리는 쉼터.
이곳의 터줏대감으로 일하는 김갑순 할머니는 장사꾼들이 떠나가도 홀로 이 한계령 휴게소를 지키고 있다.
그녀에게 있어 이 휴게소는 삶이자 인생 그 자체였으니까.
세상이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잠시 머무는 여유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을 품어 주는 이곳.
김갑순 할머니는 이곳 한계령 휴게소를 사랑했다.
세상에 큰 구멍이 뚫리고 산마다 작은 구멍이 뚫렸다.
그녀가 사는 한계령 휴게소는 다행히 큰 구멍으로부터도 멀리 있고 작은 구멍에서 나온 몬스터도 내려오지 못하는 목에 위치해 있다.
지금은 이따금 설악산을 정복하겠다며 원정을 나서는 헌터들에게 시원한 감주 한 그릇을 대접하면서 남은 생을 유유히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설악산을 다녀온 헌터들의 상태가 이상해진다는 소문이 돌고 난 후 아무도 설악산을 찾지 않았다.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휴게소는 쓸쓸한 곳이 되어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잘생긴 총각과 개 한 마리가 한계령 휴게소를 방문했다.
“할매요! 여기 있는 거 다 주소!”
청년과 개는 뱃가죽이 등에 붙은 듯 몹시 시장해 보였다.
우선 감자를 쪄 주었다.
통감자에 소금을 찍어 먹는 그의 얼굴에서 행복이 퍼졌다.
냉동실에 얼려 둔 육수를 끓여 물 어묵을 준비했고 소떡소떡도 튀겼다.
소시지와 떡을 동시에 와구와구 씹어 먹는 개가 신기했지만 잘 먹는 모습을 보니 퍽 귀여웠다.
“총각, 어디서 오는 길인감?”
“북한산에서 왔수다.”
“멀리서도 왔구만. 설악산에 올라가시려고?”
“네. 저기서 터 잡고 살랍니다.”
“으잉? 요즘 흉흉한 소문도 도는데. 관두지.”
“우리가 더 흉흉한 놈들이라 괜찮소.”
뜨거운 어묵 국물을 시원스레 퍼먹는 청년.
개도 흉내 내려다 혀를 데고 만다.
“앗 뜨거, X발!”
“이게 어른 앞에서 싸가지 없이.”
“말하는 개로구나.”
“할매. 놀라지 않소?”
“별일이 다 일어나는 세상에서 개가 말하는 것쯤이야.”
김갑순 할머니는 천천히 먹으라며 찬물을 내어주면서 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잘 먹었소. 가끔 놀러 오겠소.”
청년은 5만 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거스름돈 줄 테니 기다리시구랴.”
그녀가 거스름돈을 가지고 나왔을 때는 청년과 개 모두 사라지고 아무도 없었다.
설악산 위에서 내려오는 스산한 바람만이 휴게소 앞을 지났다.
* * *
강철남과 멍구는 우선 집터가 될 만한 곳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철남이, 저게 뭐야?”
“응?”
집터를 찾던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