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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 자연인이다-59화 (59/175)

59화 시끄럽고 베개나 주워 와

설악산.

태백산맥에 속하는 강원도의 산.

산세가 험한 돌산이지만 그로 인해 공룡능선과 울산바위와 같은 장관을 볼 수 있다.

또한 토왕성 폭포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폭포 또한 숨 쉬고 있는 명산이다.

강철남은 다음 주거지로 설악산을 선택했다.

“설악산?”

“멍구는 가 본 적 없지?”

“소문만 많이 들어 봤어.”

“좋은 곳이야.”

이사를 결심하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알고 지내던 몬스터들과 작별 인사 정도는 나눠야겠다.

강철남과 멍구는 청수 폭포 뒤편으로 향했다.

젖은 머리에 물기를 털며 들어오자 수리부엉이가 정중히 맞이한다.

“강철남 님. 오랜만입니다.”

“부엉이 양반. 잘 지냈소?”

“전 언제나 잘 지냅니다. 그나저나.”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수리부엉이.

“들어가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날개로 부리를 가리며 호호, 웃는 수리부엉이.

마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다 알고 있는 모양이다.

“이미 소문이 다 난 모양이군.”

“마계의 새 역사를 쓰셨으니까요. 다른 이들의 태도가 달라질 겁니다.”

마왕을 눈앞에 두고도 수리부엉이는 여전히 품위 있는 태도였다.

그의 충고를 새겨듣고 무쇠 골렘 문을 지나 몬스터 시장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웅성거리던 시장판이 정적으로 굳어 버렸다.

모든 몬스터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그저 한 걸음 내디뎠을 뿐인데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몬스터 무리가 양옆으로 쫙 갈라진다.

“하, 시바. 부담스러워.”

강철남은 갈라진 몬스터 무리 가운데를 저벅저벅 걷는다.

상인들은 양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침을 꼴딱꼴딱 삼킨다.

예전에 강철남에게 시비를 건 적이 있던 몇몇 몬스터들은 아예 허리가 직각이 되도록 푹 숙인다.

“철남이, 이런 기분 나쁘지 않은걸?”

“난 딱 질색이야.”

불편한 마음을 이끌고 간신히 살쾡이 식당에 도착한 둘.

약재상의 비둘기가 술을 마시다 사레가 들려 콜록콜록 대며 벌떡 일어난다.

“아니, 좀. 그냥 평범하게 있어.”

“그래도……”

그때 살쾡이가 헐레벌떡 튀어나온다.

“아니, 이게 누구야. 크레톤의 마왕 강철남 님 아니십니까? 으하하하.”

바짝 긴장한 다른 몬스터들과 달리 살쾡이의 살짝 장난기가 섞인 말투에 강철남은 감동하기까지 했다.

“세상에나 뭔 일이래? 우리 집 단골 인간이 마왕이 다 되고.”

“팔자란 게 알 수가 없는 법이지. 오랜만에 국화주나 한 병 가져다주시오.”

“아이고. 그런 미천한 서민의 술을 마왕님께서 잡수셔도 될지 모르겠습니다요.”

“까불래?”

낄낄대며 창고로 들어가는 살쾡이.

와중에 비둘기는 날개를 잔뜩 움츠리고 긴장해 있다.

“야, 닭둘기! 너 인마, 왜 그러고 있어?”

멍구가 속 터지겠다는 듯 몰아붙인다.

그 기세에 비둘기는 더 움츠러드는데.

“그, 그래도 마왕님이신데.”

“아오, 진짜. 철남이, 이 새끼 크레톤 탄광촌에 보내서 정신 교육 좀 시켜 줘야겠어.”

“히익! 제가 뭔 잘못을.”

멍구의 짓궂은 장난에 오들오들 떠는 비둘기.

“국가가 망하는 한이 있어도 멍구 너한텐 직책 주면 안 되겠다. 비둘기 양반. 편하게 대하쇼. 나는 그냥 자연인 강철남일 뿐이오.”

쭈뼛쭈뼛 대며 비둘기가 강철남의 맞은편에 앉는다.

“강철남 님이 이렇게 대단하신 분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나는?”

“물론 멍구 님도요.”

“징그럽게 무슨 님이야. 그냥 철남이라고 불러.”

“제가 어찌 감히!”

날개를 파닥이며 날개사래를 치는 비둘기.

그 와중에 국화주와 안주가 나왔다.

“오늘은 마왕 취임 기념으로 한 턱 내지.”

“호오. 마다하지 않겠네.”

강철남이 앉아 있어서일까, 다른 몬스터들이 살쾡이 식당으로 먹으러 오질 않았다.

그 핑계로 살쾡이도 장사를 일찍 접고 자리에 앉아 술이나 마신다.

“마왕성으로 가는 건가?”

“아니. 마계는 나 같은 자연인이 살 곳이 못 돼.”

도마뱀 뒷다리를 질겅질겅 씹으며 이야기가 오간다.

“그럼 계속 지금처럼 북한산에서 살게?”

“그것도 아니야. 다른 산으로 가려고.”

“아이고. 그럼 이게 이별주였어? 진작 말하지. 좋은 술 가져올게.”

“됐어. 국화주를 마시고 싶었으니까.”

고급 스테이크도 좋지만 가끔은 된장찌개가 당기듯,

고급 양주도 좋지만 가끔은 소주가 당기는 법이다.

으리으리한 성에서 비싼 술을 마시는 것보다,

이렇게 시장 바닥에서 소소하게 살아가는 몬스터들과 친근한 술을 마시는 기분이 정겨워서 퍽 좋았다.

“그럼 이만 가 보겠네. 정리할 것들이 많아서.”

“섭섭해서 어떡하나.”

“가끔 들리지.”

“그렇게 말하고 다시 오는 놈 못 봤네.”

“하하. 꼭 들리지.”

“내가 살다 살다 인간을 기다리게 될 줄은 몰랐네만.”

살쾡이와 강철남은 뜨겁게 악수를 나눴다.

“저, 이건 별거 아니지만 작별 선물입니다.”

비둘기가 보따리 하나를 건넨다.

보따리를 받아들자 온갖 약재 냄새가 팍 올라온다.

“몸에 좋다는 귀한 약재들을 이것저것 챙겨 봤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길.”

“고맙네. 정말 고마워. 근래 받은 선물 중 가장 기쁘네.”

진심으로 기뻐하는 강철남의 얼굴에 미소가 만개한다.

덩달아 뿌듯해지는 비둘기였다.

몬스터 시장을 나와 계곡으로 향했다.

물가를 나와 봄볕을 쬐며 일광욕을 즐기는 붉은귀거북을 발견했다.

“앗! 형님들! 아니지, 마왕님이시여.”

“너까지 지랄할래? 평소처럼 대해.”

“헤헤헤.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요. 동네 노는 형들인 줄 알았는데 대박! 그렇게 출세하시다니요.”

“너 뜨끈한 솥에서 불가마 목욕 한번 조질래?”

“자, 잘못했어요!”

붉은귀거북은 앞발로 눈을 탁 덮는다.

녀석에게 이사 소식을 전하니 제법 아쉬워한다.

그래도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법.

“조심히 잘 살어. 헌터들도 많이 들락날락하는데 괜히 사냥당하지 말고.”

“걱정 마세요. 이 독기가 들끓는 호수에 함부로 발 들이미는 정신 나간 놈들은 형님들 말곤 없으니까요.”

“이 새끼가 아까부터.”

“아이쿠!”

멍구가 앞발로 등 껍데기를 탁 때려 준다.

붉은귀거북과 인사를 나누고 백운산 능선을 따라 올랐다.

소문에 밝은 곰이 사는 동굴에 들어서자 낮잠을 자던 곰이 벌떡 일어나 반갑게 맞이한다.

“쿠어어! 쿠어어어어! (마왕님! 이런 누추한 곳엔 어인 일로!)”

“여전히 못 알아듣겠지만 아까랑 비슷한 레퍼토리인 건 알겠구만.”

“크아앙. 크왕. 크오오오? (소문은 들었습니다. 이사 가신 다면서요?)”

곰이 집을 묘사하는 손짓과 팔을 휘적휘적하는 동작을 보인다.

“소문 한번 빠르군. 그래. 이제 여기서는 있을 수 없어서 떠날 거야. 너한테도 신세 졌다.”

강철남은 꿀이 한가득 들어 있는 꿀단지를 내밀었다.

“쿠어엉! (뭘 이런 걸 다!)”

행복한 표정으로 꿀단지를 끌어안는 곰.

이것으로 작별 인사는 모두 나누었다.

남은 건 서울 헌터 연합에게 이 산을 넘겨주는 일뿐.

* * *

북한산에 아침이 찾아왔다.

무너진 마루 위에서 베개를 베고 늘어져라 잠을 자고 있는 강철남과 멍구.

고요한 정적을 기대했으나 어림도 없지.

산 아래에서 한바탕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아침부터 누가 시끄럽게 지랄이야.”

불쾌한 소음에 깬 강철남.

전투 스타일이 몹시 난폭한 녀석인 것 같은데.

혹시 설마?

“강철남!!”

역시나.

김성남이 엄청난 속도로 산 중턱을 향해 달려왔다.

백진섭으로부터 강철남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김성남은 다음 북한산 순찰만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

“드디어 돌아왔구나. 네놈이 여행이나 즐기고 오는 동안 나는 뼈를 깎는 노력으로 실력을 갈고닦았다. 이제 누가 최강인지 겨뤄 보자!”

“김성남이, 또 저 새끼야? 아침부터 개지랄이야.”

멍구가 인상을 찡그리며 반대편으로 돌아눕는다.

강철남도 잠시 멍때리다가 다시 드러눕는다.

“감히 나를 능멸해?”

[신속]

[강화]

[검압]

김성남의 삼신기가 강철남을 덮친다.

그 순간,

“에라이, X불! 잠 좀 자자!”

멍구가 강철남의 베개를 쏙 빼서 던져 김성남을 맞춘다.

베개를 맞고 산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김성남.

그대로 발목이 삐끗하고 만다.

“아 씨! 왜 남의 베개를 집어 던지고 지랄이야.”

“네 손님이잖아! 대신 치워 줬으면 감사는 못할망정.”

“됐고 가서 베개나 주워 와.”

“싫어.”

“아니, 이 새끼가!”

둘은 눈뜨자마자 기운도 좋은지 티격태격한다.

산 아래에서는 다른 파견팀장들이 굴러떨어지는 김성남을 멀거니 바라본다.

홍태진은 아차 싶어서 그를 멈춰세운다.

“김 팀장. 자네가 이렇게 구르는 걸 보니 그가 정말 돌아왔구만.”

“어째서 그렇게 추론하는 건데!”

정말로 돌아온 모양이다.

강철남이.

반가운 마음에 산 위로 얼른 달려 올라가는 한지영.

“철남 씨!”

환한 미소로 그를 맞이하러 달려간다.

그 역시 자기를 보고 웃어 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잔뜩 기대를 품고 왔는데,

‘왜 개랑 싸우고 있는 건데.’

“우쒸!”

“개 주제에!”

조금 꼴사나워 보였지만 그답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철남 씨, 나 왔어요.”

한지영은 마루로 달려가 주의를 끌어 본다.

“아, 어서 오시오.”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멍구는 뒷발로 턱을 박박 긁는다.

“마계는 어땠어요?”

“나쁘진 않았지만 역시 집 만한 곳이 없소.”

“에헤. 역시 그렇죠?”

한지영은 뒤로 뒷짐을 진 채 몸을 배배 꼰다.

마계 이야기를 좀 더 들려달라고 보채 보는데 강철남은 어떤 이야기를 해 줄까 말을 고른다.

“풍작의 땅이 있었소. 그곳에는 갓 구운 빵과 신선한 과일이 넘쳐 나오. 사계절이 한 도시에 모두 들어 있는 멋진 곳이지. 덕분에 농부들은 보람 있게 수확하고 상인들은 웃으며 물건을 팔지.”

“말로만 들어도 멋진 곳이네요. 다음에 저도 꼭 데려가 주세요!”

한지영이 두 손을 모으고 꺄, 하며 좋아한다.

여행에 관심이 많은 영락없는 스무 살 아가씨의 모습이었다.

“강철남 씨. 오랜만입니다.”

뒤늦게 올라온 홍태진이 창을 등에 메고 악수를 청한다.

“마계는 어떠셨습니까?”

“나쁘지 않았어. 다만 산이 더 좋았지.”

“하하하. 역시 자연인답군요.”

가벼운 인사치레를 접어 두고 홍태진은 본론을 꺼냈다.

그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다.

“혹시 마계에서 들은 정보가 없었습니까? 마왕군이 저희 인간계로 쳐들어올 가능성은요?”

홍태진은 여전히 마왕이라는 존재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 마왕들과 친분을 쌓은 강철남은 정작 그런 우려는 생각도 않았지만 말이다.

심지어는 그중 하나를 쳐부수고 자기가 마왕 자리에 오르지 않았나.

“아, 그건 걱정 마. 걔네 인간계에 딱히 관심 없어.”

“정말입니까?”

“그렇대도.”

아직 완전히 의심이 가시지는 않았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직접 마왕을 만나 보고 싶었다.

마왕을 만나고 싶다라.

마왕은 얼마나 강할까.

만약 만난다 하더라도 그 압도적인 힘 앞에서 대화가 가능할까?

대체 어떻게 생긴 존재일까?

의문만 늘어나는 홍태진이었다.

그런데 그때,

불길한 마음을 품은 것이 원흉이었을까.

산 정상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내려오고 있었다.

“뭔가가 온다!”

“전투 준비!”

김성남을 부축하며 올라온 황기민과 함께 올라온 백진섭.

그들 역시 심상찮은 기운을 느끼고 무기를 뽑는다.

그 기운의 정체는,

“마왕님!”

날개를 퍼덕이는 용족.

키켈이다.

“뭐야? 여긴 무슨 일이야?”

강철남이 시큰둥하게 맞아들인다.

키켈이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

압도적으로 강한 기운을 풍기며 날아오는 몬스터를 하대하는 강철남을 보며 파견팀장들은 손에 힘이 풀린다.

그것도 그것이지만,

뭐라고?

“마왕님?”

홍태진은 아예 창을 떨어뜨린다.

“마왕님. 저한테 권한을 인계하신다는 서류에 서명 부탁드립니다.”

“귀찮게 왜 이걸 이제야 가져와?”

“마왕성 재건에 집중하느라 서류 양식 복구에 늦었습니다. 이것만 처리하면 앞으로 일절 귀찮게 해 드리는 일 없을 겁니다.”

강철남은 대강 서명을 휘갈긴다.

“그럼 옥체 보존하시옵소서.”

깍듯하게 허리를 숙이고 다시 정상을 향해 날아가는 키켈.

너무나 태연한 강철남의 태도에 파견팀장들은 넋이 나간다.

“강철남 님. 방금 그자가 뭐라 불렀습니까?”

“엉? 마왕님이라고 불렀는데?”

“강철남 님.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아, 나 마왕 됐어.”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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