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아오, 시바 잠을 못 자겠네. 다들 안 꺼져?
멍구는 ‘눈’을 통해 여러 상태창을 봐 왔다.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했고 비교하는 재미도 제법 쏠쏠했다.
같잖은 녀석이 자기 랭크를 부풀리며 허세를 부리는 꼴을 보면 광대놀음 구경하는 기분도 들었다.
별 특별 할 것 없는 상태창을 보며 지루해하던 어느 날.
최근에 가장 주목할 만한 상태창은 전 마왕 크레톤의 상태창이었다.
[크레톤
레벨: 421
힘: RR
마력: RR
맷집: RR
속도: RR]
RR랭크의 괴물.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마계의 최강자라 자칭할만한 실력이었다.
하지만 녀석도 강철남에게 쓰러졌다.
마빡에 숟가락 자국이 깊게 파인 채로.
녀석을 쓰러뜨리고 강철남은 마왕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 밤 그와 반려견 멍구는 전설의 흑우를 먹었다.
그 둘의 시너지 효과로 강철남의 힘은 비약적으로 상승한 것이다.
[강철남
레벨: 542
마력: RRR
힘: RRR
맷집: RRR
속도: RRR]
[멍구
레벨: 441
마력: RR
힘: RR
맷집: RR
속도: RR]
이것이 그들의 상태창.
마계에서 그들을 당해 낼 자가 있을까.
그런 생각에 미치자 문득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철남이.”
“왜?”
“애초에 마황제가 지정한 마왕은 네 명이었지? 그래서 4마왕이라 했고.”
“그랬지.”
“그럼 대체 첫 번째 마왕은 누구야?”
“낸들 아니?”
“넌 관심도 없냐?”
“뭔 상관이야. 이제 다시 인간계로 돌아가서 자연인으로 살 거야.”
“마왕이라는 새끼가 책임감이 없어요.”
멍구는 관심을 지우고 흑우의 뼈다귀나 냠냠 씹는다.
첫 번째 마왕.
그 존재에 관한 의문만 남은 채 마계에서의 마지막 밤이 저물어 갔다.
* * *
강철남과 멍구가 마계를 떠나는 날.
도시 크레톤의 시민들이 마왕을 배웅하러 모였다.
“마왕님. 여기서 계속 통치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얼마 전 심은 씨앗이 싹을 텄습니다. 마왕님 덕분에 농사의 보람을 깨달았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약탈로 먹고살 때는 처자식에게 부끄러운 가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정직하고 떳떳하게 먹여 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왕님께서 알려 주신 목축업으로 우유의 생산량이 늘었습니다. 덕분에 아이들의 영양 상태가 나날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부디 좀 더 지혜를 알려 주고 가십시오.”
모두 마왕 강철남을 붙잡는 분위기다.
하지만 자연인 강철남.
귀찮은 속세의 일에 얽매일쏘냐.
“에잇! 귀찮아! 니들이 알아서 하라니까. 꼬우면 투표로 새 마왕 뽑던가.”
“아닙니다. 마왕님을 두고 어찌.”
“아니, X바, 민주주의대로 하자고 하면 또 나한테만 의존하고, 독재로 밀어붙이자고 하면 또 말은 X나게 안 들어. 이 썅, 어쩌란 말이야!”
강철남은 뒤를 돌아 냅다 달려간다.
그의 돌발 행동에 멍구도 허겁지겁 뒤쫓는다.
“마왕님!”
강철남을 부르는 시민들의 외침 소리.
애타게 부르는 그들의 목소리는 이내 잘 가라는 마음이 담긴 응원의 목소리로 변해 있었다.
열심히 달려 도시 크레톤을 빠져나온 강철남.
적당히 멀어졌을 때가 되어서야 뒤를 돌아본다.
이제 빠져나왔겠지 싶은 그때,
“떠나는 건가?”
어느새 가이아가 뒤에 나타나 말을 건다.
“앗! 깜짝이야. 왜 또 여기 있어? 대체 넌 일은 언제 하냐?”
“크흠. 그대보다는 잘하고 있으니 염려 말거라.”
머쓱한 표정을 짓다가도 이내 차분한 얼굴로 돌아오는 가이아.
“인간계로 돌아가서도 잘 지내거라.”
“내가 걱정 끼치는 캐릭터는 아니지.”
“일 벌이지 말고.”
“그건 장담 못 하겠네.”
“후훗. 못 말리겠구나.”
가이아는 멍구와 강철남을 살포시 끌어안았다.
자기 삶의 구원자.
마계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자.
강철남, 그와 작별이다.
그녀의 배웅을 뒤로한 채 강철남과 멍구는 북한산으로 통하는 구멍까지 달렸다.
구멍에 가까워지자 오랜만에 보는 철갑 두더지가 반겨 준다.
“제법 오래 머물렀군.”
“오랜만. 마계 찍먹 하려고 했더니 아예 퐁당 빠져 버렸어. 얼른 산 공기로 리프레시 하러 가야지.”
멍구는 지친 표정으로 혀를 헥헥댔다.
“원래는 뭐 하려고 왔던 건가?”
“맛집 탐방.”
“그런데 겸사겸사 마왕까지 된 건가?”
철갑 두더지도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소문이 마계 전역에 퍼진 모양이다.
강철남은 또 귀찮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 *
북한산.
파견팀의 꾸준한 관리 덕분에 북한산의 위협이 줄었다.
장혜리가 이끄는 헌터 교육생들은 북한산에서 수련 과정을 거쳐 엘리트 헌터로 거듭났다.
나아가 북한산에서 수련을 거친 헌터들은 전국 각지에서 활약을 펼쳤다.
해외로 취업하여 한국의 이름을 널리 떨치기도 했다.
이른바 K—헌터.
대한민국 헌터의 위상은 날로 높아져만 갔다.
현재 백진섭이 이끄는 파견 5팀이 순찰 중이다.
거대한 오우거가 나타나도 혼자서 환도를 휘둘러 단번에 목을 취하는 백진섭.
북한산에서 파견 5팀과 맞설 수 있는 몬스터는 없었다.
세계 최강의 헌터 TOP 10 순위에도 거론될 만큼 성장한 백진섭.
하지만 정작 그는 스스로 알고 있다.
진짜 ‘최강’이라는 자와 자신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강철남 씨!”
그가 돌아왔다.
산 중턱 그의 집 마당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정상에서 털래털래 내려오는 강철남과 멍구를 보았다.
“진섭 씨. 잘 지내셨소?”
“진섭 인간, 많이 강해졌구만.”
멍구는 ‘눈’으로 백진섭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백진섭
레벨: 50
힘: BB
맷집: CC
속도: B]
처음 만났던 경북 헌터 연합의 리더 시절 레벨 4의 백진섭은 없었다.
어느새 어엿한 국가 일류 헌터가 되어 있었다.
“4개월만입니다! 대체 어떤 모험을 하다 오신 겁니까?”
네 달 만에 만남 강철남은 묘하게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조금 지쳐 보이십니다.”
“산 공기를 못 마셨더니 뒤질 거 같아.”
그대로 마루 위에 드러누워 버리는 강철남.
멍구도 벌러덩 드러눕는다.
“이봐요! 당신들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함부로 누우면 안 돼요.”
파견 5팀의 신출내기가 강철남이 외부인인 줄 알고 저지하려 한다.
“됐네. 이 집의 주인들이야.”
“네? 그럼 이 사람이 강철남인가요?”
파견팀원들에겐 늘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북한산 중턱의 빈집 주인 강철남.
팀장들에게 듣기로는 그저 서울 헌터 연합에 기여한 사람 정도로 알고 있다.
겉보기에는 잘생긴 총각과 튼실한 시고르자브종 개 한 마리로 보일 뿐인데.
“대체 저들이 어떤 이들이길래 이런 곳에 떡하니 집을 짓고 사는 겁니까?”
“하하하.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사람과 개라네.”
서울 헌터 연합은 강철남과 멍구의 존재를 세간에 알리지 않았다.
강철남 본인도 알려지길 극도로 꺼리기도 했고,
무엇보다 강철남이라는 인류 최강의 전력이 한국에 있다는 게 알려지면 그를 둘러싼 정치적인 다툼이 벌어질 것이 뻔하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일개 팀원들로서는 마루에 드러누워 바로 낮잠에 빠져든 정체불명의 한 청년과 개의 존재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팀장님, 수색조 복귀했습니다. 특이 사항 없습니다.”
“그래? 그러면 슬슬 복귀를…….”
그 순간,
쿵!
산이 크게 울렸다.
정상으로부터 나는 소리였다.
백진섭은 땅울림의 크기만으로도 실력을 알 수 있었다.
이놈은 강하다!
“피해!”
백스텝으로 몸을 피한 순간 산 위에서 거대한 바위가 굴러떨어져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무언가 달려오면서 산사태를 일으키고 있다.
경계심에 날을 세우며 백진섭이 환도를 잡는다.
“우워어어어!!”
트롤이다.
난폭하고 파괴만을 일삼는 괴물.
3m 덩치에 동글동글한 체형.
일그러진 얼굴과 상시 분노에 절어 있는 표정.
오로지 살아 있는 생물을 주먹으로 으깰 생각만으로 가득 찬 녀석이다.
“다리를 노려!”
팀장의 명령에 팀원들이 달려든다.
그들 역시 북한산에서 힘을 키운 수준급 헌터들.
그러나 트롤의 발차기 한 방에 공중으로 높이 치솟는다.
[발도]
트롤이 공격하는 순간, 빈틈을 노려 백진섭이 칼을 뽑아 친다.
타앙!
하지만 트롤이 팔에 힘을 주고 칼을 막으니 날은 피부에 생채기만 남길 뿐이었다.
“젠장, 너무 강합니다!”
“팀장님, 어떡하죠?”
퇴각 명령을 고민하는 백진섭.
그때,
콰아앙!!
날아갔다.
트롤의 배가.
무슨 말이냐면 트롤의 배 한가운데가 뻥 비어 버린 것이다.
트롤의 가슴팍이 있어야 할 자리에 뻥 뚫린 산길이 보인다.
“이건 대체…….”
“시끄럽게 낮잠 자는데 소란이야!”
마루에서 들리는 소리다.
강철남이 잠꼬대를 하듯 중얼거리더니 다시 누워 잠이 든다.
그러고 보니 옆에 같이 누워 있던 멍구가 없다.
설마?
“아오, X바…….”
멍구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강철남은 잠결에 멍구를 집어던진 것이다.
휙 날아간 멍구가 트롤의 몸을 찢어 버렸다.
“팀장님?”
“이건 대체 뭐죠? 꿈인가요?”
헛웃음이 나오는 백진섭이었다.
매번 봐도 봐도 새로운, 이들의 기행에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만 같다.
* * *
파견팀이 복귀하고 해가 살짝 식은 초저녁.
강철남과 멍구는 봄바람을 맞으며 꿀잠을 자는 중이다.
평온함을 만끽하는 둘.
그러나 평범한 일상은 오늘도 어김없이 와르르 무너진다.
찰칵—
“뭐여?”
난데없는 찰칵, 소리에 멍구가 귀를 쫑긋 세우고 일어난다.
“철남이,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냐?”
“무슨 소리? 잠이나 자.”
찰칵—
“봐! 또 찰칵 했다고.”
“찰칵?”
그제야 설렁설렁 일어나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본다.
자세히 집중해 보니 산 아래에서 웅성웅성 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야, 벌써 중턱까지 올라왔어.”
“대박. 이 정도면 우리도 서울 헌터 연합에 들어갈 수 있는 거 아니야?”
“교육생들도 여기서 수련한다면서? 아무리 그래도 우리처럼 단 세 명이서 중턱까지 올라오지는 못할걸?”
“야, 야, 야. 여기까지 온 김에 정상까지 찍어 보자.”
수많은 헌터 지망생들이 서울 헌터 연합의 파견팀을 동경했다.
그들이 활약을 펼친 박준범 사건과 드래곤 출몰 사건 모두 네티즌 백과에 등록되면서 꾸준히 회자되고 있으며,
명동과 강남의 전투지는 관광지가 되었고 관련 피규어와 굿즈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특히나 북한산은 서울 헌터 연합이 관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성지가 되었다.
레벨업과 랭크업의 비결은 북한산에 있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으며,
강해지고자 하는 욕심을 가진 헌터들은 몰래 북한산으로 숨어들었다.
박준범 같이 촬영을 시도하는 너튜버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저지당했고 설사 침입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살아남지 못했다.
죽음의 산이라는 이명이 붙은 북한산.
이 북한산에 침입한 세 명의 헌터 지망생은 강철남이 머무는 산 중턱에 막 도착했다.
“어? 야! 집이 있어?”
“무슨 집? 사람이 산다고, 북한산에?”
여자애가 호들갑을 떤다.
또 다른 여자애는 헛소리 말라며 앞으로 나서 본다.
믿기지 않지만 정말 집이 있었다.
남자애는 용기를 내어 집으로 다가가 봤다.
“계, 계세요?”
지망생들은 잔뜩 긴장하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들을 맞이한 건,
“누구요?”
“꺗!”
강철남이 마루에 걸터앉아 말을 건넨다.
순간 놀라 비명을 지르는 여자.
그러나 이내 표정이 꽃밭으로 변하는데,
“어머… 존잘…….”
“어떡해. 완전 잘생겼어! 이런 산속에 웬 배우가 있대?”
여자애 둘은 강철남의 미모를 보고 넋이 나가 있었다.
그나마 제정신인 남자애가 그의 정체를 묻는다.
“다, 당신은 누구죠?”
“그건 내가 할 말 같은데? 남의 집에 쳐들어왔으면서 말이야.”
“집이요? 죽음의 북한산에?”
그때 스산한 바람이 산을 타고 내려온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강철남은 마루에서 일어난다.
“당장 내려가.”
“네? 저희는 정상까지…….”
쿠아앙!!
거대한 코뿔소가 나무를 박살 내며 지망생들을 향해 달려든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던 지망생들.
그들 앞에 강철남이 번쩍, 하며 나타나 코뿔소의 머리를 주먹으로 박살 낸다.
“내려가라고 했지?”
쿠르릉—
이내 불길한 땅울림이 강해지더니 지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망생들을 향해 쓰러지는 나무와 바윗덩이를 쳐 내는 순간,
와르르르—
거대한 두더지가 땅에서 솟아오르더니,
“…….”
강철남의 집을 박살 내 버린다.
“뭐여, X부럴?”
마루가 뜯기자 그제야 눈을 뜨는 멍구.
이제 건물이 무너지는 건 지긋지긋하다.
그런데 이번에 무너지는 게 하필 자기 집이라니.
“야, 이! 썅노무새꺄!!”
강철남은 분노를 담아 두더지를 뻥 걷어찼다.
두더지는 지반을 뚫고 날아가 반대편으로 튀어 나갔다.
북한산에 거대한 터널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오, 오빠. 뭐, 뭐 하는 사람이에요?”
덜덜 떨면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 여자애.
마치 구원자가 아니라 괴물을 보는 느낌이다.
“너희 때문에 집이 무너진 불쌍한 사람이지.”
“헤헤… 그래도 저희가 무사하니 다행이죠?”
여자애가 애교 섞인 콧소리로 아양을 떤다.
“하아…….”
멍구는 말리려 했다.
하지만 그럴 새도 없었다.
쿠왕—
강철남은 지망생들의 머리에 참교육의 꿀밤을 한 대씩 먹여 준다.
힘을 최대한 빼고 쳤기에 두개골 손상은 없었지만 아마 북한산에서의 기억을 잃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철남이, 이게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냐.”
“어차피 잘됐어. 계속해서 이런 녀석들이 찾아올 거라면 때가 된 거야.”
“무슨 때?”
“이사를 가야 할 때.”
“어디로?”
멍구는 강철남을 바라보며 물었다.
마음속에 정해 둔 곳이 있었다.
그곳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