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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 자연인이다-57화 (57/175)

57화 전설의 흑우

회의는 잠시 휴식에 들어갔다.

강철남은 가이아와 함께 나르딘 산 홍차를 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다.

“기왕이면 사이좋게 지내거라. 다들 크레톤에 맞서 모인 정의로운 자들이다.”

“네네.”

“건성으로 대답하지 말고.”

가이아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강철남을 건너다본다.

무심한 듯 차만 홀짝이는 강철남.

그녀는 그런 그가 귀엽기만 하다.

“마왕님. 새로 지을 마왕성에 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키켈이 날아와 신축 공사에 관해 묻는다.

“평범하게 돌로 지어. 쇳덩이로 집을 짓는 게 말이 되냐? 아까 불 지르니 사우나가 따로 없더구만.”

“돌로 지으면 방어가 취약해질 텐데요?”

“야, 키켈아.”

“네!”

“마계에서 침공하고 깽판 치는 족속들이 크레톤 말고 달리 있었냐?”

“…없었습니다.”

“적이 없는데 방어는 뭔 놈의 방어. 쉐도우 복싱 하니?”

“…돌로 짓겠습니다.”

할 말이 없어진 키켈.

날개를 퍼덕이며 건설 현장으로 날아간다.

“이걸로 마계도 평화로워지겠구나.”

“농사도 생산도 모두 원만히 돌아가면 좋겠어.”

“정말 그래.”

마왕성 재건이 시작되었다.

건물의 잔해였던 쇳덩이들은 모두 녹여 농기구와 식기를 만드는 데 활용하였다.

크레톤이 떵떵거리며 살던 마왕성의 철벽은 질 좋은 강철이라 비싼 값에 팔 수 있었다.

예전부터 이 소재를 탐내던 카르텔은 강철을 비싼 값에 사들였다.

“카르텔, 쇳덩어리는 그만큼 사서 뭐 하게?”

“흐흐흐. 발명을 할 생각입니다.”

“발명? 수상한데. 위험한 물건 만드는 거 아니야?”

“전혀 아닙니다. 일상을 편리하게 만들어 줄 도구를 개발할 예정입니다.”

그러면서도 음흉하게 웃는 카르텔.

마계 거상의 생각은 좀처럼 짐작이 안 된다.

무너진 마왕성에서 발견된 무수한 보물들은 모두 처분하였다.

마련된 돈은 지금껏 수탈당해 온 국가에게 위로금 명목으로 배상 되었다.

마왕 크레톤은 마계 동굴 깊은 곳 독기의 호수에 수장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육신은 서서히 녹아 내려갈 것이다.

강철남은 휘어진 무쇠 숟가락 역시 독기의 호수 속에 던져 보내 주었다.

크레톤의 비늘을 뜯어 모아 두었고, 대장장이에게 부탁하여 그것으로 새 숟가락을 만들었다.

강철 숟가락.

강철남의 새로운 파트너다.

“수고 많으십니다.”

마왕성 공사가 한창 중일 때 가이아의 빵집에서 빵을 나눠 주러 왔다.

노동으로 땀을 흘리고 먹는 가이아의 빵은 최고였다.

다만 강철남은 따로 붙들려 마왕 가이아가 직접 만든 빵을 먹어야만 했다.

“어떠냐? 맛있냐?”

“맛은 있는데 서른 개나 처먹으려니 미칠 것 같아.”

“인간계에 돌아가서도 잊을 수 없도록 많이 먹어 두거라.”

꾸역꾸역 빵을 입안에 밀어 넣는 강철남.

흐뭇하게 바라보는 가이아의 미소를 보니 차마 남길 수가 없다.

결국 마흔 개나 되는 빵을 다 먹은 강철남.

당분간 밀가루 음식은 거들떠도 안 볼 것 같다.

“총각, 잘 지냈어?”

이어서 나르딘의 생쥐 할머니가 방문했다.

젊은 총각들과 함께 차가 잔뜩 실린 수레를 끌고 와 인부들에게 차를 끓여 대접했다.

연둣빛의 맑은 색에 톡 쏘는 향이 올라온다.

후릅—

한 입 마신 것만으로도 고단함으로 지친 피로가 싹 풀리는 신묘한 차였다.

“이건 무슨 차죠?”

“아홉 번 덖은 바카잎으로 우려낸 바카수라는 차라네. 피로를 말끔히 날려 주는 고마운 차지.”

어쩐지 친숙한 이름이었다.

강철남은 바카수를 두 잔 마시고 다시 작업에 착수했다.

“멍구야.”

“왜 그러냐?”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시 작업이 시작되려던 오후,

가이아는 남들 몰래 조용히 멍구를 부른다.

“혹시 지난번에 알려 준 전설의 흑우는 잡았니?”

“아니, 보지도 못했어. 원체 잽싼 녀석인지 원.”

“그럴 줄 알았어.”

“왜?”

“글쎄 그 전설의 흑우가 이번에는 크레톤 서쪽 지대에 나타났다지 뭐니.”

“뭐? 정말인가?”

“이를 어쩌면 좋아. 이미 소식을 듣고 먼저 달려 나간 마물들이 많은데.”

“그라믄 안 돼. 딴 놈들에게 빼앗길 순 없지.”

[광속]

멍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빛의 속도로 크레톤을 빠져나간다.

‘이로써 방해꾼이 사라졌군.’

가이아는 강철남의 곁에 다가가 조신하게 앉는다.

“철남. 언제 떠날 예정인가?”

“내일. 아침 일찍 떠나려고.”

“그런가. 가끔 마계로 놀러 와라… 아니, 자주.”

“그래, 종종 가이아에 들르마.”

“후훗. 듣기 좋은 말을 해 주는구나.”

가이아와 강철남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철남은 인간계의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안빈낙도의 삶이 얼마나 만족스러운지에 관하여.

“언젠가 엘프의 땅에도 가 보거라. 엘프 역시 자연을 사랑하는 존재들이다. 너와 마음이 통할 것 같구나.”

원래 엘프였던 가이아.

사정에 의해 마황제의 힘으로 마왕이 되었다.

그런 그녀가 스스로 엘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다니 의외였다.

“가이아, 넌 어째서 마왕이 된 거지?”

“엘프를 위해서였어.”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는 가이아.

“믿기 어렵지?”

“믿는다. 네가 하는 말이라면.”

그의 말에 얼굴이 붉어지는 가이아였다.

“언젠가 엘프의 땅에 가게 되면 그때 내 이야기를 들려줄게.”

“흠. 만날 구실을 만드는 건가?”

“바보.”

가이아는 배시시 웃어 보인다.

해가 조금씩 저물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강철남은 다시 장갑을 낀다.

‘남은 작업을 마무리해야지.’

“자, 다들 어두워지기 전에 끝내자.”

“저기, 마왕님.”

말 끝나기 무섭게 다가온 키켈의 표정이 어둡다.

무슨 일이 생긴 듯한 분위기다.

“왜 그래?”

“그게 지금 병력이 모조리 도시 밖으로 나갔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멍구 님께서 무슨 검은 소를 잡으러 간다고 병력을 죄다 끌고 가 버렸습니다.”

세상에나.

뒷목을 잡는 강철남.

듣고 있던 가이아도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온다.

“잡히면 진짜 죽었다.”

[광속]

강철남은 참지 않았다.

곧바로 종아리에 힘을 주고 땅을 박찼다.

도시 밖에서 그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우르르 몰려다니는 용족과 개 한 마리.

실존하지도 않는 흑우를 찾아 여기저기 헤집고 다닌다.

“멍구야! 내가 너 때문에 못 산다.”

“처, 철남이? 아무리 너라도 전설의 흑우는 양보할 수 없어!”

강철남을 발견하자 멍구가 허둥지둥 당황한다.

그런 멍구가 한심하기만 하다.

“이 호구 새끼가! 빨리 돌아가자. 세상에 그런 생물이 존재할 리가 없잖아!”

“아니야! 내 꿈을 짓밟지 마!”

“그러니까…….”

그 순간이었다.

환상이었을까?

아니면 현실?

강철남은 저 수평선 끝자락에서 무언가 일렁이는 검은 물체를 보았다.

사나이 강철남.

초월초를 먹고 젊어지긴 했으나 어쩌면 늙은 마음은 그대로가 아닐까.

적어도 멍구에게는 새하얀 순정이라는 게 있었다.

반려 인간이 되어서 응원해 주지는 못할지언정 그것을 짓밟아서야 되겠는가.

무릇 생각하는 존재는 꿈이 있어야 한다.

진정으로 젊다는 것은 꿈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간절히 염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고.

그래서일까.

멍구의 바람이 간절해서일까.

그래서 저 망망대해와도 같은 황야에 ‘진짜 흑우’가 나타난 것일까.

“모두 동작그마안!!”

멍구가 샤우팅을 지른다.

우레와 같은 고함에 탐색을 멈추는 군대.

“북동쪽 2km 지점에 목표물 포착! 전군 돌격!”

“와아아아아!!”

세상에 소 한 마리 잡겠다고 군대를 출병시키는 또라이는 멍구밖에 없을 거다.

“전군 멈춰!”

강철남이 부대 앞으로 추월해 그들을 멈춰 세운다.

“다들 성으로 돌아간다. 가서 간단히 마무리하고 오늘은 일찍들 들어가 봐.”

“예엡!”

마왕의 명령이다.

우렁찬 대답과 함께 부대는 즉시 귀환길에 오른다.

“흑우는?”

멍구가 폴짝폴짝 뛰며 흑우가 있던 곳을 내다본다.

그러나 흑우는 사라지고 없었다.

귀를 축 늘어뜨리고 실망하는 멍구.

“멍구. 시간이 늦었다, 돌아가자.”

“응.”

털래털래 돌아가는 멍구의 축 처진 꼬리를 보며 강철남의 마음도 좋지 않다.

멍구에게 흑우는 꿈이었던 것이다.

* * *

그날 밤.

“멍구야, 이놈 멍구야.”

둥글게 몸을 말고 자던 멍구는 누군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뜬다.

“우음… 누구야?”

“나다.”

“철남이?”

잠결에 올려다본 강철남은 어두워서 실루엣만 보일 뿐이다.

“선물이 있다. 따라와라.”

“뭔데? 그냥 여기서 보여 주면 안 돼?”

“잔말 말고 따라와.”

졸린 몸을 이끌고 마지못해 걸음을 총총 옮기는 멍구.

비몽사몽 눈곱 낀 눈을 비비며 따라갔더니,

“이, 이게 뭐야?!”

무언가를 보고 잠이 후다닥 달아나고 눈이 번쩍 뜨였다.

강철남이 횃불을 가져다 대어 보인 곳에는,

오후에 놓쳤던 전설의 흑우가 쓰러져 있었다.

“이, 이걸 어떻게? 설마 혼자서 잡아 온 거야?”

“도망치는 게 어찌나 빠른지. 한계 돌파를 두 번이나 썼지.”

자세히 들여다보니 강철남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옷은 찢어져 있고 얼굴에는 때가 꼬질꼬질 묻어 있다.

꼬라지가 자연에 틀어박혀 살 때보다 더 거지새끼처럼 보인다.

“속으로 이상한 생각 했지?”

“뜨끔! 조금 그지새끼 코딱지처럼 생겼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 정도면 나름 준수하지.”

강철남은 기름칠해 둔 무쇠 팬을 꺼내 불을 붙였다.

모닥불 위에서 팬이 달궈지는 동안 불멍을 때린다.

“오랜만이네. 이렇게 둘이서 사냥해서 고기 구워 먹는 거.”

“왜 이래, 철남이? 안 어울리게 분위기나 잡고.”

“하, 새끼. 하여간 낭만이라는 게 없어.”

사내새끼들끼리 감정 한 번 잡기 참 어렵다.

닥치고 고기나 굽자.

도축한 전설의 흑우를 팬 위에 올리자,

치이익—

고기가 기름과 만나 익어 가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향이 피어오른다.

“세상에, 미쳤어! 냄새부터가 달라!”

멍구가 깡충깡충 뛰며 흥분한다.

강철남도 참기가 어려웠다.

하마터면 설익은 생고기를 우적우적 뜯을 뻔했다.

참아야 한다.

완벽하게 익을 때까지 참아야 한다.

고기가 거의 익어 갈 때 으깬 마늘과 버터를 투입한다.

마지막으로 허브잎을 던져 넣어 향을 더하니 풍미가 더해졌다.

“철남이, 나 정신 나갈 거 같아!”

“3분만, 진짜 3분만.”

다리를 덜덜 떨면서 억지로 버티는 둘.

육즙이 골고루 퍼지는 레스팅을 기다려야 한다.

“X바, 미치겠네.”

“지옥의 3분이야.”

그사이 강철남은 소하 선생이 담근 천상주를 잔에 따른다.

전설의 흑우와 전설의 술의 조합이라니.

손이 덜덜 떨린다.

“이 수전증 새끼! 술 흐르잖아!”

한 방울도 아까운지 멍구가 호되게 혼쭐을 낸다.

그 순간, 3분이 지났다.

“드디어!”

전설의 흑우 스테이크를 한 점씩 접시에 나눠 담았다.

마침내 칼로 살코기를 잘라 한 입 입에 넣는데,

“처돌았네.”

“아…….”

말이 안 나왔다.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이미 육즙과 단백질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강철남과 멍구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천상의 맛 앞에 한없이 나약해지는 순간이었다.

“거, 건배.”

침착함을 잃은 둘은 손을 떨면서 잔을 부딪친다.

털어 넣은 천상주가 입안을 개운하게 씻어 주며 또다시 그들을 하늘로 데려간다.

눈이 뒤집히는 마법에 빠져 버린다.

시간이 멈추고 공간을 잃어버린 감각에 빠진 채로 둘은 흑우를 전부 먹어 치웠다.

그러자 그들의 몸에서 눈부신 푸른빛이 휘감긴다.

“뭐야, 이 빛은?”

상태창에 변화가 생길 때 생기는 푸른빛.

그러나 이처럼 밝고 강렬하게 일렁였던 적은 없었다.

멍구는 ‘눈’으로 강철남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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