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크레톤 전쟁
크레톤의 강철 주먹이 강철남을 노린다.
취권처럼 비틀거리는 강철남.
하지만 취권은 개뿔, 요리조리 위빙, 더킹으로 움직여도 다 처맞는다.
깡—
까앙—
깡—
쇳덩이가 두개골을 때리는 소리가 청명하게 울려 퍼진다.
크레톤의 몸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용광로 스킬 특성상 맞부딪칠수록 크레톤의 강철 강도가 올라간다.
“제법 버티는구나, 인간.”
“으으. 시원한 꿀물 한 잔.”
“싸움에 집중해라!”
[강철 이빨]
용족 특유의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크레톤.
그대로 강철남의 쇄골을 씹어 버린다.
으드득—
“오케이, 잡았어.”
“응?”
있는 힘껏 어깻죽지를 씹어 먹는 크레톤.
그런데 갑자기 천장과 바닥이 뒤집혀 보인다.
[수플렉스]
콰앙!
“커걱!”
바닥에 내려 찍히는 크레톤.
강한 충격에 이빨에 금이 가고 피를 뱉어 낸다.
몸을 움직여서인지 술이 조금씩 깨기 시작하는 강철남.
어기적 걸어가 마왕의 의자에 앉아 등을 기대고 잠시 쉬는데.
“건방지게 마왕의 의자에 앉아?”
“손님이 왔으면 자리로 안내해 줘야지, 언제까지 서서 기다리게 할래?”
“인간.”
“왜?”
“너는 대체 목적이 뭐냐?”
“별거 없어. 너네를 쳐부수는 거.”
강철남이 지긋이 눈을 감고 술기운을 날리며 말을 이어 간다.
머리가 얼얼한 크레톤은 잠시 벽에 기대어 앉아 대화를 받았다.
“너는 우리에게 맞설 이유가 없을 텐데? 가이아에서도 그렇고 어째서 싸우는 거지?”
“이유? 그야 가이아의 음식이 X나 맛있으니까.”
“고작 그런 이유인가?”
“고작이라니. 먹는 게 곧 사는 거야.”
어이가 없는 크레톤.
고작 음식 때문에 이 마왕 크레톤이 한낱 인간 따위에게 얻어맞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더 이상 가이아에 손대지 않겠다고 약조한다면 물러날 것인가?”
“나르딘의 차 맛도 훌륭했지.”
“좋다, 나르딘까지도 수탈 항목에서 제외해 주지.”
백 보 양보한다는 투로 말하는 크레톤.
“너희가 다른 건 몰라도 맛집 찾는 안목은 있는 거 같거든. 그 외에 점령하고 있는 다른 도시에도 신기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많을 거야.”
“그 말은 즉, 모든 국가에서 손을 떼라는 얘긴가?”
“이해가 빠르군.”
“우리더러 굶어 죽으란 소린가?”
“차라리 죽어. 남의 고혈을 뽑아 먹으면서 살 바엔.”
크레톤은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면 먹고살 방법을 모르는 마왕이다.
항상 약육강식의 세렝게티처럼 남을 정복하고 갈취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그에게 약탈이란 그의 삶 그 자체.
삶의 방식이 부정당하는 기분이란 유쾌하지가 않았다.
“인간이여. 이건 마계의 룰이다. 약한 자는 당하기 마련이고 언제나 강한 자만이 정답이지. 인간의 논리를 끌어다 빗대는 건 주제넘은 짓이다!”
푸르릉대며 거친 콧김을 내뿜는 크레톤.
몸에서 뜨겁게 달군 쇠 냄새가 퍼진다.
“그래? 그렇다면 마계의 규칙에 따라 주지.”
“나를 쓰러뜨리겠다고?”
“두말하면 입 아프지.”
[강철화]
“으아아!!”
크레톤이 기합을 지르자 벽에 금이 갔다.
아까와는 다른 기백이 느껴졌다.
온몸의 비늘이 날카롭고 단단한 강철로 변했다.
눈빛에는 살기가 잔뜩 서려 있다.
“이 모습은 정말 오랜만이군. 한낱 인간을 상대하기 위해 진짜 힘을 꺼낼 줄이야.”
“그럼 나도 진심으로 싸우게 숙취 해소제 하나만 주라. 여명 707로.”
땅을 팡, 차고 크레톤이 달려든다.
발을 구른 것뿐인데도 그 파워에 땅바닥이 깨진다.
강철로 뒤덮인 주먹이 강철남의 턱에 닿기 전,
“읏차!”
강철남이 몸을 뒤로 젖혀 공격을 가볍게 피한다.
술기운이 조금 가셨는지 거리 감각이 돌아왔다.
다시 주먹을 휘두르는 크레톤.
녀석이 팔을 다 뻗기도 전에 박치기로 막아 충격을 흡수한다.
“크악!”
크레톤은 그 반격에 팔꿈치 관절에 엄청난 통증이 밀려와 소리를 질렀다.
그 틈을 노려 강철남이 크레톤의 허리 깊숙이 발차기를 찔러 넣는다.
제대로 꽂혔다.
하지만 녀석은 쓰러지지 않았다.
“흐흐. 강철화가 단순히 몸을 경화하는 스킬로만 알고 있겠지?”
“장기마저 단단해졌군.”
“눈썰미가 제법 있어.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녀석의 몸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또다시 엄청난 고열을 뿜어내고 있다.
[용광로]
[강철화]
“강철은 두드릴수록 강해지는 법. 나 또한 맞을수록 단단해진다.”
[쇠 기차]
강철남이 로켓처럼 날아오는 크레톤을 받아 내자 처음과의 충격과는 차원이 다른 파워가 느껴졌다.
허풍은 아니다.
녀석은 맞을수록 단단해지고 있었다.
“진화하는 강철이라. 탐나는 소재인데?”
“너는 내가 두렵지 않나?”
“군침이 돌지 왜 두렵겠나.”
“뭐가 군침이 돌아?”
크레톤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죽음의 공포에 벌벌 떨어야 할 녀석이 왜 좋아라 하고 있는 거지?
“마침 숟가락을 바꿀 때가 되어서 말이야.”
강철남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든다.
그건 바로 무쇠 숟가락.
무쇠 골렘의 소재로 만든 그 숟가락이다.
“자고로 맛있는 건 나눠 먹어야 하는 법. 혼자 독식하는 건 어디서 배워 먹은 버르장머리냐? 그런 기본예절도 못 배워 처먹은 네놈에게 밥상머리 참교육을 실시하겠다.”
[광속]
강철남이 번쩍하더니 순식간에 크레톤의 눈앞으로 날아간다.
녀석이 당황하는 사이 숟가락을 마빡에 꽂아 버린다.
카앙!
“끄아악!”
마빡을 움켜쥐며 쓰러지는 크레톤.
뇌가 징징 울리는 충격이다.
“손 치워, 손가락 부러진다.”
“흐익! 이놈!”
까아앙!
머리를 향해 힘껏 내리친 숟가락이 크레톤의 손가락을 아작 낸다.
부러진 손가락을 움켜쥐고 바닥에 쓰러지는 크레톤.
“딱 대.”
아프다. 아파 죽을 것 같다.
하지만 곧 죽어도 마왕이다.
근성으로 일어나 멀쩡한 손으로 힘껏 주먹을 휘두른다.
하지만 피하는 강철남.
주먹의 풍압에 마왕성의 강철 벽이 으스러진다.
쿠쾅!
강철 벽의 잔해가 와르르 무너지면서 아래로 떨어진다.
그 아래엔 멍구와 대치 중인 군대가 있다.
“뭐가 떨어진다!”
“조심해, 강철 파편이야!”
“으아악!”
군집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서로 밀치고 밟히고 난리도 아니었다.
와중에 멍구는 앞발로 열심히 병사들의 뚝배기를 깨고 다녔다.
“아오, X바. 끝이 없네. 뭐 좀 화끈한 묘책 없나?”
“죽어라, 이 개새!”
쌍도끼를 휘두르는 거대한 용족.
뭔가 직책이 높아 보인다.
옳거니 싶은 멍구는 녀석의 발목을 콱 물고 마구 흔들어 재낀다.
“으아아악!”
주변의 병사들이 휩쓸려 날아간다.
거구의 용족은 이리저리 종잇장처럼 나부끼며 척추뼈가 뽑힐 듯한 통증에 비명을 지른다.
녀석을 바닥에 패대기치고 묻는다.
“이봐, 너. 여기 군수 창고가 어딨냐.”
“내가 개 따위에게 그걸 말해 줄 거 같냐?”
“확 씨! 처자식한테 가장이 개한테 물려 죽었다고 통보 가게 해 줘?”
멍구가 으르롱 이빨을 드러낸다.
“으으…….”
마지못해 군수 창고의 위치를 알려 주는 녀석.
[광속]
위치를 알아낸 멍구가 땅을 접어 달리며 전장을 관통하여 군수 창고로 내달린다.
군대는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빠져나가는 멍구를 보지도 못한다.
병사 중 일부는 떨어지는 잔해가 마왕의 방에서 나온 것임을 알고 성안으로 돌격한다.
그들이 마왕의 방에 들이닥치자 시야에 들어온 것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
달랑 숟가락 하나를 든 인간이 서 있고,
그 앞에 마왕 크레톤이 쓰러져 있다.
“크, 크레톤 님!”
“모두 나가라.”
“하지만.”
[강철 가시]
크레톤은 강철 가시를 날려 몰려온 병사들을 모조리 꿰뚫었다.
“네 부하들 아니냐?”
“왕의 명령을 거부하는 병사는 즉결 처분이다.”
“네가 쪽팔리는 걸 왜 남 탓을 해?”
순간 정곡을 찔린 걸까.
크레톤이 몸을 부르르 떤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다.
이 인간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정면승부는 무리다.
꾀를 부려야 한다.
“인간. 내가 용서를 구하면 받아 줄 거냐?”
“그러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어.”
“모든 직위를 버리고 조용히 살아가겠다.”
“구라 까지 마. 얼굴에 다 써 있어.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저, 정말이다. 마왕 크레톤의 모든 명예를 걸고 맹세하지.”
크레톤은 엉금엉금 강철남에게 기어서 다가온다.
바짓단을 붙잡으며 머리를 조아린다.
“부탁하마. 나는 살고 싶어.”
“이 국가는 어떡하게?”
“알고 있나? 도시 크레톤에서는 마왕에게 도전할 수 있고 승리한 자는 마왕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 이제부터 네가 이 도시를 통치하면 된다.”
“통치 따윈 관심 없어.”
“생각보다 좋을 거다. 마왕으로 산다는 거!”
슬금슬금 일어나며 강철남의 허리를 잡는다.
충분히 가깝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부와 명예는 물론이고 인간으로서 누리지 못할 쾌락을 누리며 살게 해 주지.”
크레톤은 알고 있다.
인간이건 마물이건 모두 욕망에 지배당하기 마련.
그 탐욕의 방아쇠만 건드린다면 누구나 유혹에 쉽사리 넘어갈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자연인 강철남이다.
“나는 부도 싫고 명예도 싫다. 걱정과 불안이 없는 것이 곧 내 쾌락이자 행복이다. 아무래도 너와는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을 것 같군.”
강철남은 크레톤의 손을 뿌리쳤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크레톤.
이제는 때가 왔다.
이판사판이다.
와락—
크레톤은 강철남을 덜컥 끌어안는다.
그러고는,
[강철 가시]
푸욱—
온몸에서 가시를 뿜어낸다.
몸통에 붙어 있는 모든 비늘을 날카로운 가시로 만들어 곤두세우는 스킬.
강철남을 끌어안은 채 날을 세운 것이다.
촤아악—
강철남의 몸 구석구석에서 피가 솟구친다.
크레톤은 희열을 느낀다.
‘드디어 이 건방진 인간 놈을 묻어 버릴 수 있겠구나.’
“다 끝났다는 표정 짓지 마라.”
“어라?”
[발화]
강철남의 몸에서 폭발적인 화력이 뿜어나오기 시작한다.
크레톤은 발버둥 치지만 가시가 박혀 벗어날 수가 없다.
“으아악! 네 이놈!!”
“아직이다!”
[한계 돌파]
마왕성의 천장을 뚫고 불기둥이 솟아오른다.
시민들은 멀리서도 그 열기를 느끼며 겁에 질렸다.
“강철나암!!”
크레톤의 강철은 고온에 달궈지며 녹아내리고 있었다.
“반성도 없이 거짓말이나 지껄이는 나쁜 놈에겐 교육부터 들어간다.”
[밥상머리 참교육]
강철남은 손을 높이 쳐들었다.
꽉 쥔 숟가락을 일직선으로 수직 낙하하며 내리친다.
짧고 뭉툭한 그림자가 크레톤의 얼굴에 드리운다.
크레톤은 알았을까.
고작 숟가락의 그림자가 자신을 향해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일 것이란 걸.
쿠아아아앙!!
마빡 정중앙에 꽂힌 숟가락은 강철 비늘을 박살 내고 뼈를 으깨고 뇌를 파괴했다.
무쇠 숟가락은 휘어 문드러지며 맞닿은 대갈통을 지하까지 끌어내릴 기세로 파고들었다.
바닥에 내리꽂힌 크레톤은 2층 바닥을 뚫고 1층 바닥까지 내동댕이쳐졌다.
“무슨 소리야?”
“마왕성에서 나는 소리야!”
“대체 저기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크레톤의 시민들은 연이어 터지는 굉음에 떨고 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다.
반란일까? 전쟁일까?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런 고민을 하는 와중에,
“비켜, 비켜!!”
“우왁! 뭐야!”
웬 개 한 마리가 쌩, 달려 나간다.
뭔가를 잔뜩 짊어진 수레를 끌고서.
“이건 대체…….”
“꿈을 꾸는 것 같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루다.
“헥, 헥. 화끈하게 마무리 짓자고.”
[광속]
[도약]
병사들은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마왕성을 향해 수레와 개 한 마리가 날아오른다.
상공 10m 높이에 떠 있는 그 개가 있는 힘껏 뒷발로 수레를 걷어찬다.
덜커덩거리며 수레가 흔들리자 그제야 안에 든 것들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포, 폭약?!”
“군수 창고에 있던 폭약이잖아!”
“도, 도망쳐!!”
병사들이 후다닥 도망친다.
그사이 폭약은 마왕성의 깨진 벽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이내,
퍼어어엉!
콰콰쾅!!
거센 폭발음과 함께 마왕성이 붕괴되기 시작한다.
혼비백산한 병사들은 꽁지가 빠져라 달아난다.
폭발과 함께 일어난 소음이 잦아들고 완전히 무너진 마왕성의 잔해가 산처럼 쌓였다.
뿌연 흙먼지가 한참 동안 대기를 떠돌았다.
“콜록, 콜록! 상쾌한 산 공기가 그립구만. 어이 거기 마법사!”
“네? 저희들 말인가요?”
“그래 너희들 인마!”
멍구는 넋 놓고 서서 무너진 마왕성을 바라보는 마법사 용족들을 불렀다.
“물 좀 뿌려 봐라.”
“네? 비구름 마법은 상당히 어려운 마법인데요?”
“아니, 마왕성에 근무한다는 마법사들이 그거 하나 못해? 안 되면 되게 해야 할 거 아냐?”
될 때까지 하라며 앞발로 두들겨 패니 어쩔 수 없이 마법을 시도하는 마법사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한 자릿수 확률로 성공하는 비구름 마법이 성공한 것이다.
“할 줄 아네, 이 새끼들아!”
“악! 저희도 성공할 줄 몰랐죠.”
성공하고도 얻어맞는 마법사들.
비가 대지를 적시며 먼지를 가라앉힌다.
“철남이! 그만 자고 나와!”
멍구가 강철남을 불러본다.
그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