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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 자연인이다-53화 (53/175)

53화 급똥은 킹정이지

갑자기 우뚝 멈춰선 멍구.

식량 창고에서 고작 한 걸음 뗐을 뿐이다.

대체 왜?

“뭐야, 멍구. 갑자기 왜 그래?”

“철남이.”

“뭔데?”

“X됐네.”

“또 뭐가?”

“급똥이네.”

이마를 부여잡는 강철남.

이 중요한 순간에 무슨 개소린가.

“그럼 저 구석에 가서 싸질러.”

“내가 동네 똥개도 아니고 어떻게 그러나. 나름 교양있는 견공이라네. 우윽!”

결코 존엄성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멍구.

그러나 급똥 앞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자는 없다.

아마 4대 성인도 견디기 가장 어려운 고행 중 하나가 급똥 참기가 아닐까.

“화, 화장실을 찾아야 해.”

“증말 가지가지 한다. 주방장한테 물어보자.”

“안 돼. 가오 상하잖아.”

“네가 아직 똥이 덜 마렵구나.”

와중에 체면이나 따지는 멍구.

괄약근을 컨트롤 하느라 멍구의 이동 속도는 현저히 떨어졌다.

결국 대신 화장실을 찾아 헤매는 강철남.

“여긴가?”

하고 문을 열었더니 웬 용족이 덤벨을 들고 으쌰으쌰 운동을 하고 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어?’ 하는 반응이 돌아왔고,

강철남은 순식간에 녀석의 손에 든 덤벨을 빼앗아 정수리를 냅다 후려갈겨 기절시킨다.

“이번엔 여기다!”

또 다른 문을 확신하고 열어 보니 용족들이 도끼를 손질하고 있다.

‘어?’하는 반응이 나오자 어김없이 녀석이 손질하던 도끼의 옆면으로 뚝배기를 내리쳐 주는 강철남.

“썅, 도마뱀 새끼들은 똥도 안 싸나? 화장실이 어디야?”

강철남이 화장실을 찾아다니는 동안 멍구는 심각한 정신 분열에 휩싸였다.

죽음의 5단계를 순차적으로 겪으며 멘탈이 탈곡기에 빠진 듯 탈탈 털리고 있었다.

첫 번째는 현실을 부정했다. 마려울 리 없다고. 단순히 지나가는 불편함일 뿐이라고.

두 번째는 분노했다. 왜 하필 지금 탈이 나느냐고.

세 번째는 협상을 했다. 제발 두 시간만 있다가 찾아오면 안 되느냐고.

네 번째는 우울해졌다. 이제 끝났어. 바닥에 똥이나 싸지르는 동네 똥개나 다름없다고.

다섯 번째로 수용을 한다. 원래 생이란 순환하는 것. 들어가는 게 있으면 나가는 게 있는 건 응당 당연한 거라고.

“철남이. 이제 됐네.”

“포기하지 마 인마! 아직 할 수 있어!”

“졌지만 잘 싸웠네. 날 위해 이렇게까지 힘내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네.”

“아니, 누가 누굴 위해? 밥 잘 먹고 개똥 싸는 꼬라지나 봐야 하는 내 심정은 생각 안 해?”

급박한 위기를 느끼자 다짜고짜 눈앞에 보이는 문을 발로 걷어차 버리는 강철남.

쾅!

“어?”

“왜 그러나, 철남이? 설레게.”

“화장실이야.”

“뭣이! 젠장. 하늘이 날 저버리지 않았군.”

멍구는 괄약근을 근성으로 틀어막으며 힘겹게 바닥을 기어 나갔다.

“조금만 더!”

“X병한다.”

멍구의 지랄을 꼴 보기가 싫었던 강철남은 잠시 다른 방에 있기로 한다.

“빨리 볼 장 다 보고 여길 뜨던가 해야지 원.”

투덜대며 아무 문고리나 열고 들어가는데.

가끔 그런 일이 있다.

별생각 없이 벌인 일이 우연한 만남으로 이어지는 일.

“웬 소란인가 했더니 너였냐?”

방 안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상처투성이 몸과 피멍으로 얼룩진 얼굴이지만 알아볼 수 있다.

쇠사슬에 온몸이 묶여 있는 그는 사천왕 중 한 명인 키켈이다.

“너 왜 그러고 있냐?”

“너에게 두 번이나 패했다. 그리고 형제들이 죽었는데 혼자 살아서 돌아왔으니 그 죄가 보통 무거운 게 아니지.”

“사형이냐?”

“그래. 집행일은 내일.”

“초연하군.”

“처음에는 현실을 부정하고 분노도 했다. 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눈물도 흘렸지. 하지만 지금은 모든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치 급똥 마려운 멍구 같군.”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초췌하기 그지없는 키켈의 얼굴.

그 얼굴 위로 곧 죽음을 앞둔 자의 표정이 드리운다.

“멍구가 올 때까지 노가리나 까자고.”

“내 마지막 대화 상대가 너라니. 이것 참 세상일 알다가도 모르겠군.”

키켈은 냉소를 띠었다.

“크레톤은 어떤 녀석이지?”

“그래, 크레톤 님. 내게 사형 명령을 내린 분이지만 개인감정 없이 본다면 정말 대단하지. 마황제에게 두 번째로 선택된 두 번째 마왕. 별명은 강철의 크레톤. 일개 평범한 마물로 태어나 맨손으로 마왕의 자리까지 오른 자수성가형 마왕. 현재는 마계의 다수 국가를 집어삼킨 위대한 정복자. 마계의 지도를 몇 번이나 새로 고치고 역사서의 내용을 갱신해 나가는 마왕이지.”

“입에 발린 소리는 됐어.”

들으면 들을수록 강철남과는 맞지 않는 녀석이었다.

강철남이 인간 사회에서 전쟁 같은 청춘을 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전쟁은 무의미하다.

세상이 영원할지언정 내 인생은 언젠가 끝이 나게 되어 있다.

그 시간 속에 평화로이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

그런데 허락된 시간 동안 악착같이 적을 만들고 남을 파괴하는 삶을 살아간다고?

“참 덧없는 삶이로군.”

“너 이 녀석. 호연지기라고, 남자라면 한 번쯤 그런 인생의 목표쯤은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

“그래, 한 번이면 족해. 나는 이미 한 번 살아 봤거든.”

“무슨 소리냐?”

“그런 게 있어. 인생 2회차라는 인간계의 말이.”

“넌 대체 정체가 뭐냐?”

이 인간의 정체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마물보다 더 강하고 때로는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온 듯한 말투.

적으로 만나면 절대적 공포의 대상이지만,

만약 친구로 만났다면 더 없이 매력적인 존재였을 것이다.

“키켈, 살고 싶나?”

“뭐?”

“살고 싶냐고 물었다.”

“네 놈! 나를 능멸하려는 것이냐!”

“너는 두 번이나 내게 목숨을 구걸했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니야. 나도 젊었을 적 빚쟁이들에게 자존심깨나 굽혀 봐서 알거든.”

“무슨 소리인지 영문을 모르겠군.”

“원한다면 여기서 빼내어 주겠다는 소리다.”

“대체 왜?”

“왜겠어? 이유가 있으니까 그러지.”

키켈을 빤히 바라보는 강철남.

그의 속내를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건 구원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 아닐까.

“원하는 게 뭐냐?”

“간단한 잡일 하나만 처리해 주면 돼.”

강철남이 키켈에게 맡길 일은 바로…….

“우와! 시원하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볼일을 끝낸 멍구가 세상 행복한 얼굴로 들이닥친다.

역시 사람이나 개나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 다르다.

“얘는 여기서 왜 꽁꽁 묶여 있냐?”

“사형이래.”

“헐. 개불쌍.”

“살려 주는 대신 뭘 좀 시키려고.”

“땡잡았네. 목숨 살려 준다는데 뭔들 못해. 크레톤 싸대기 때리라고 시켜도 되겠다.”

“아니, 이봐들. 그건 명을 재촉하는 일인데.”

멍구의 농담에 차마 웃지 못하는 키켈.

“넌 식량 창고로 간다.”

“거기서 뭘 하면 되는데?”

“그쪽에서 곧 맛있는 요리가 완성될 거야. 소하 선생도 보낼 테니 싹 다 챙겨서 이 종이쪽지에 적힌 곳으로 곧장 날아가. 추격대는 없을 거야.”

“영문을 모르겠군.”

“이해할 필요 없어. 그저 운반만 신속 정확히 해라.”

“그래,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뭐냐?”

“이 모든 작전이 순탄히 진행될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지? 소하 선생도 빼돌린 마당에 추격대도 없을 거란 걸 장담하는 거 말이야.”

키켈은 미심쩍다는 듯 말했지만 강철남과 멍구는 그게 뭐가 문제냐는 듯 어깨를 들썩한다.

“껌이잖아. 크레톤 따위.”

세상에 마왕 강철의 크레톤을 ‘따위’라고 부르는 자가 있을 줄이야.

그것도 마물이 아닌 인간이.

“넌 참 알면 알수록 놀라운 녀석이구나.”

강철남은 키켈을 속박하고 있는 쇠사슬을 모조리 잡아 뜯었다.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된 키켈.

몸을 마음껏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기분이 너무나 상쾌했다.

“자, 각자 볼일도 다 끝났겠다. 일들 하러 가자구.”

강철남과 멍구는 돌아서 작업장으로 향하려 한다.

그때,

“고맙다. 강철남!”

머리를 숙이는 키켈.

울컥 눈물이 솟는다.

그에게 목숨을 세 번이나 빚진 것이 서럽기도 하고 굴곡진 삶이 안쓰럽기도 했다.

“어찌 됐든 사는 게 좋아. 살다 보면 좋은 일이 오니까.”

키켈의 마음을 읽은 듯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강철남.

그렇게 둘은 고개 숙인 키켈을 등지고 나아갔다.

마침내 다다른 동쪽 복도 마지막 방문 앞.

“연다?”

“꿀꺽.”

강철남은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구수한 누룩 냄새가 그윽이 파고든다.

번지수를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다.

“계십니까, 소하 선생님?”

“누구요?”

작업장은 다양한 술을 빚는 설비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위스키 증류기부터 맥주 양조기까지.

심지어는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커다란 가마에 쌀을 찌기도 했다.

그 덕에 작업장은 후끈한 열기로 더웠고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코끝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바닥에 잘 말려 널어 둔 보리를 넘어 안으로 들어가니 늙은 도깨비가 서 있다.

그가 아마 소하 선생일 것이 틀림없다.

“소하 선생님 되십니까? 저는 강철남이고 얘는 멍구입니다.”

“내가 소하 맞소만 어찌 오셨소?”

“선생님을 구출하러 왔습니다.”

“뭐라? 나를 구출?”

그의 표정에 놀라움이 가득 묻어난다.

“아니, 나는 가지 않겠소.”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내가 사라지면 크레톤은 도시를 부숴서라도 나를 찾아내려 할 거요. 나만 참으면 만사형통할 것이오.”

강철남의 마음에 들지 않는 전개다.

개인의 희생으로 여럿을 지켜?

허튼소리다.

행복은 각자가 알아서 누려야지 누군가가 디딤돌이 되고 누군가는 그걸 딛고 올라서서는 안 된다.

“안타깝게도 선생님께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뭐라?”

“오늘부로 이 성은 저희가 점령할 것이니까요.”

“고럼고럼.”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 강철남과 멍구.

한동안 그들을 빤히 쳐다보던 소하 선생은 이내 크게 웃기 시작한다.

“으하하하. 역시 젊음이 좋긴 좋구만. 당돌해. 나까지 젊은 기운을 팍팍 받아 가는 것 같아.”

“아니, 이 영감탱이가 우리가 구라 까는 줄 알어?”

퍽—

멍구의 머리에 꿀밤을 먹여 준다.

“선생님.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저희는 크레톤을 X창 낼 것입니다.”

“으하하. 그래, 좋네, 좋아. 말이라도 듣기 좋구만.”

그러면서 소하 선생은 옆에 놓인 장독의 뚜껑을 열더니 국자로 무언갈 푸기 시작한다.

“장독이 있군요!”

“자네도 집에 장독이 있나?”

“있다마다요. 안에 든 건 뭡니까?”

“청주 중에서도 귀신주라고 하는 거네. 자네들 인간계로 따지자면 동동주가 비슷하겠네.”

오호 동동주와 비슷!

강철남은 침이 꼴딱 넘어갔다.

이것이 전설의 술 장인이 만든 전설의 술.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술부터 따라 주시다니.

강철남과 멍구는 이 도깨비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자, 쭉쭉 들이켜.”

사발에 잔뜩 담긴 귀신주를 받아드는 둘.

가볍게 잔을 부딪치고 한 모금 마신다.

그러자 순간 눈앞이 하얘진다.

이건 환상인가.

빛의 우주를 날아다니는 기분이다.

와중에 목구멍을 넘어가는 액체의 감각은 뚜렷이 느껴진다.

시원한 술이 톡톡 튀는 청량함으로 휘몰아치고 따뜻한 술기운이 식도를 감싼다.

위장에 스며든 알코올이 금세 온몸을 취기로 노곤하게 만드는 것이 술을 마신 것이 아니라 천년 산삼과 환각 버섯을 우려 만든 탕약을 마시는 기분이다.

“세상에.”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무릎을 꿇고 있는 강철남.

멍구도 무릎을 꿇고 눈이 헤까닥 뒤집혀 있다.

“멍구야, 정신 차리거라.”

짝—

싸대기를 때려 주니 번쩍 일어나는 멍구.

“선생님. 이건 정말이지…….”

차마 말이 안 나온다.

이런 술은 말도 안 된다.

크레톤의 독점욕이 이해가 간다.

“선생님.”

소하 선생을 부르며 앞을 보는 강철남.

그런데 눈앞에 있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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