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헬창 몬스터들과 술 빚는 장인
크레톤의 주점 로이도.
이곳은 상남자들이 맛 좋은 맥주를 즐기러 오는 곳이며,
동시에 주체할 수 없는 혈기를 낭비하러 오는 곳.
“자, 와라!”
“박살 내 주지!”
지금 이곳에서 용족 주인장과 웬 개 한 마리가 혈기를 낭비하고 있다.
“자, 준비하시고.”
심판의 신호를 기다리며 손과 앞발을 움켜쥐는 둘.
이게 뭐라고 긴장감이 흐른다.
“그쪽이 이기면 원하는 정보를 알려 주지, 다만 내가 이기면 오늘 화장실 청소를 해 줘야겠어.”
“화장실이 어딘지는 안 알려 줘도 돼. 어차피 갈 일이 없을 테니까.”
둘의 신경전이 팽팽하다.
팔뚝이 성인 남성 허리통만 한 용족과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한 시고르자브종의 대결.
이 기괴한 승부에 구경꾼들만 신났다.
“시작!”
심판의 구령과 동시에 주인장은 무게를 실어 팔을 휘어 꺾는다.
꺾는다!
꺾는…….
꺾…….
와득!
무슨 소리지?
무슨 치킨 날개뼈를 부러뜨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으아악!!”
주인장이 비명을 지른다.
그 잘난 어깨가 탈골이 된 것이다.
“너 뭐 하냐?”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멍구.
가오에 살고 가오에 죽는 주인장이지만 지금 체면이 중요한 게 아니다.
너무 아프다.
“아악! 어깨, 어깨가.”
“야, 날뛰지 말고 가만있어 봐.”
보다 못한 강철남이 다가가 어깨를 잡는다.
삐그덕—
탈골된 어깨를 바로 맞춰 꽂아 준다.
구경꾼들은 흥미가 식었다는 듯 각자 테이블로 돌아가 술이나 마신다.
언뜻 보기에는 주인장의 실수로 보이겠지만 힘을 겨뤄 본 주인장만은 안다.
마치 바윗덩이와 싸운 느낌이 들었다는 것을.
“당신들 정체가 뭐야?”
“우린 전설의 술 장인을 찾으러 왔소.”
여간내기들이 아니다.
‘무슨 목적으로 그분을?’
“훗, 그분을 이 크레톤에서 빼돌리려고?”
“그런 짓 안 해. 그냥 맛 좋은 술이 마시고 싶을 뿐이야.”
거짓말로 보이지는 않는다.
잠시 주변의 눈치를 보던 주인장.
쪽지에 무언가를 적어 건네주는데,
“여기로 가 봐.”
거기에는 또 주점 정보가 적혀 있었다.
결국 멍구의 인내심이 폭발해 버린다.
“아니, 이 새끼들이 장난하나.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똥개 훈련 시키는 것도 아니고.”
“똥개 맞잖아.”
“개놈의 새끼가. 발모가지도 탈골돼 볼래?”
“히익!”
투덜대도 어쩔 수 없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이 정도 난관은 있어야 술맛이 달콤한 법.
강철남과 멍구는 다음 주점으로 향했다.
세 번째 주점은 ‘가디언’.
“이름 멋진데? 딱 봐도 전설의 술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잖아.”
“흐음. 일단 들어가 보자구.”
문을 열고 들어간다.
내부를 둘러보니 생각보다 특별할 게 없는 흔한 주점이었다.
앞의 두 주점에 비해 개성이 없는 평범하디 평범한 주점.
우선 바에 앉아 술을 주문해 본다.
“테킬라를 마시기 좋은 날이군.”
강철남은 쪽지에 적힌 대로 말했다.
일종의 암호 같은 거랄까.
“오늘 같은 날에는 진토닉 어떠십니까?”
“그럼 코냑으로 부탁하지.”
“…네 알겠습니다.”
그러더니 또 슬쩍 나오는 빌어먹을 종이쪽지.
“이쪽으로 가시면…….”
순간 눈이 돌아간 멍구가 주인장의 목에 헤드락을 건다.
“아니, 이 쌉새끼들이 장난질을 하나. 똥개 훈련을 시켜도 정도가 있지, 이 개놈의 새끼들.”
“켁! 켁! 손님! 손님!”
“야 이, 또라이 새끼야!”
술집은 한바탕 난리가 난다.
강철남이 멍구를 떼어 내고 주인장이 끼적인 쪽지를 낚아챈다.
“실례 많았소. 이건 성의로 받아 두시오.”
바 위에 골드 몇 닢을 내려놓고 부랴부랴 주점을 떠나는 강철남.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멍구의 머리에 꿀밤을 쥐어박는다.
“어이구, 이 개진상. 거기서 왜 애꿎은 주인장 목을 조르고 지랄이야?”
“빡치잖아. 한두 번도 아니고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 종일 끌려다니기만 하고.”
“너도 고려주랑 신라주 맛을 봐서 알잖아. 그건 보통 술이 아니야. 괜히 꼭꼭 감춰 두는 게 아니지.”
구겨진 종이쪽지를 펼쳐 보는 강철남.
“이건…….”
어쩌면 이 주점 가디언에는 전설의 술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게 쪽지에는 다음 주점의 정보가 아니라 어떤 집의 위치가 적혀 있었으니까.
쪽지가 안내한 대로 따라 걸어가는 도중 도시 크레톤을 유심히 둘러본다.
전사의 도시라 했던가.
그 이름에 걸맞게 터프한 용족들이 넘쳐났다.
차밭을 가꾸고 찻잎을 팔던 나르딘이나 과일 주스와 빵집이 주를 이루던 가이아와 달리,
크레톤은 쇠와 날붙이를 다듬는 대장간과 무기점이 즐비했다.
돌과 강철을 다듬어 만든 운동 기구점에는 손님들이 북적였고 그들은 운동에 관한 열띤 토론을 펼치고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원에 체육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는 점이었다.
서로 자기의 근육과 운동 능력을 뽐내며 트레이닝 중이었고 용족이 아닌 이종족들도 어울려 신체를 단련하고 있었다.
“얘네는 밥만 먹고 쇠질만 하나 봐.”
“전투 국가니까.”
얼핏 보면 건강과 활력으로 가득 찬 도시로 보이지만 엄연히 전투광들의 도시다.
그들의 부는 약탈과 폭력으로 이루어진 도시인 것이다.
힘을 나쁜 쪽으로 사용한다면 그건 폭력에 불과하다.
‘이런 생각이 많아지는군. 마계의 사정 따위는 상관할 바 아니지.’
“목마른데 빨리빨리 술 장인이나 찾자고.”
“오케이.”
얼마나 걸었을까.
제법 걸었을 무렵 드디어 쪽지에 적힌 집에 다 와 갔다.
갈수록 주변에 후줄근한 주택들만 보였다.
“전설의 술 장인이 정말 이런 데 있을까?”
“오히려 눈에 띄지 않고 좋을지도 몰라.”
마침내 도착한 목적지.
이웃한 집들과 다를 바 없는 허름한 네모난 흙집이었다.
갈라진 나무 문에 노크를 해 보는데,
“계십니까?”
노크 소리에 문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드디어 전설의 술 장인과 만나게 되는 걸까.
끼이익—
오래된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자 누군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 앞에 나타난 건 도깨비.
붉은 피부에 뿔이 달리고 호피 무늬 바지를 입고 있는 민담 속의 그 모습 그대로다.
너무나 젊은 모습에 ‘전설’이라는 단어와는 상당히 이질감이 있었다.
“실례합니다. 저는 전설의 술 장인을 만나러 온 이방인입니다.”
“나는 멍구.”
강철남은 예를 갖춰 인사했다.
도깨비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들을 안으로 맞아들였다.
허름한 집에 살림이라곤 낡은 가구 몇 가지가 전부였다.
칠이 벗겨진 나무 테이블 앞에 앉은 그들에게 도깨비가 권한다.
“괜찮으시다면 술맛 좀 봐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해 주신다면 영광이겠습니다!”
“멍멍!”
염치도 불고하고 바로 콜을 외치는 둘.
도깨비는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부엌으로 향했다.
뒤쪽에 작업장이 있는 듯 술병이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표주박과 술잔을 머릿수에 맞게 가져온다.
“이건 가이아의 곡물로 만든 곡주입니다. 담근 지 얼마 안 되어 맛이 깊지가 않을 겁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장인께서 만들어 주시는 술인데.”
도깨비가 따라 주는 술을 양손으로 받은 강철남.
멍구도 똑같이 두 앞발로 잔을 다소곳이 받쳐 술을 받는다.
“그럼, 잘 마시겠습니다.”
술을 꼴깍꼴깍 마시는 강철남.
멍구도 잔을 입에 물고 원샷을 때린다.
곧장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곡주.
눈을 감고 그 맛을 음미해 본다.
곡식이 펼쳐진 들판이 떠오를 것만 같은데.
같은데…….
같은…데……?
“으음.”
“철남이.”
둘의 표정이 어째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것 같은데.
“저, 선생님. 혹시 저희가 이 술의 깊은 맛을 이해하기에 조금 무지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X나 맛없다는 말을 최대한 빙빙 돌려 말하는 강철남.
도깨비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진다.
“우와, X바 살면서 먹어 본 술 중에 제일 맛없다!”
반면 노빠꾸로 풀 악셀을 밟아 버리는 멍구.
평소라면 한 대 쥐어박아 줬겠지만 오히려 속 시원히 말해 줘서 땡큐다.
“역시 그랬군요.”
도깨비는 한숨을 쉬며 술맛이 이상하다는 걸 순순히 인정한다.
“무슨 사정이 있으신 겁니까?”
이쯤 되면 무슨 사연이 있겠거니 짐작이 간다.
“그게 사실은…….”
“퇴물이라는 거지. 은퇴 각?”
깡—
그 말에 강철남이 술잔을 들어 멍구의 정수리를 내려친다.
좀 듣자.
“저는 전설의 술 장인으로 불리는 소하 선생님의 제자입니다.”
“그렇다면 이 술은 당신이 담근 술이오?”
“그렇습니다. 스승님에 비하면 보잘것없죠.”
기가 팍 죽어 버린 제자.
“소하 선생님에게 무슨 일이 생겼소?”
“그게 실은.”
“괜찮으니 말씀해 보시오.”
어째선지 뜸을 들이는 것이 별로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
곡주를 마시며 차분히 기다려 주자.
홀짝—
하, 두 번 맛봐도 적응이 안 되는 노맛이다.
차마 더 마시지 못하고 잔을 내려놓는다.
“소하 선생님께서는 마왕성으로 불려 가셨습니다.”
“마왕 크레톤에게 불려 간 것이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끌려간 것입니다.”
“죄를 지었소?”
“아닙니다. 소하 선생님은 법 없이도 살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이유는 한 가지겠군.”
“뭔데, 철남이?”
마계 최고의 술 장인이 아무 잘못도 없이 마왕성으로 끌려갔다면 이유는 단 하나.
“마왕 새끼가 맛있는 술을 지 혼자 처마시려고 독차지하려는 거지.”
“개 나쁜 새끼네, 고거.”
멍구가 털을 곤두세운다.
“말조심하셔야 합니다.”
제자 도깨비는 둘의 불손한 발언에 몸을 부르르 떤다.
“소하 선생님이 만드신 술은 좀 남아 있소?”
“성에서 모조리 몰수해 갔습니다.”
“그렇다면 성으로 가는 수밖에 없겠군.”
“네? 못 만나실 겁니다. 크레톤은 독점욕이 아주 강한 자라 찾아가 봤자 도리어 매질을 당하실 겁니다.”
“오호, 그래? 그런데 그거 아시오?”
강철남은 도깨비를 향해 웃어 보였다.
“나도 먹고 싶은 건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놈이거든.”
둘은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저 멀리 높이 솟은 마왕성이 보였다.
드디어 이 기나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을 순간이다.
“철남이, 크레톤을 만날 거야?”
“그래야지. 어차피 크레톤 턱주가리를 날려 주긴 해야 해.”
“왜?”
“이대로 두면 가이아로 가서 깽판 칠 거 아냐. 우리가 가이아 마왕성을 어떻게 지었는데.”
크레톤의 군대가 가이아 땅을 짓밟게 둘 순 없다.
새로 지은 마왕성이 있고,
가이아가 있다.
‘…….’
무엇보다 그곳의 빵과 과일 맛이 끝내주니까.
“정문으로 들어갈까?”
“그렇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거야. 요란한 건 질색이니까 조신하게 들어가자.”
“또 개타우로스로 변장하게?”
“그 짓거리 두 번 다시 안 해. 일단 가까이 가서 성의 구조물을 분석해 보자구.”
성에 들어갈 방법을 찾기 위해 마왕성으로 향하는 강철남과 멍구.
그들은 도착하고서야 깨달았다.
마왕성이 개미 새끼 한 마리 들어갈 틈조차 없는 강철로 만들어졌다는 걸.
“이야, 크레톤 이 새끼도 취향 한번 특이해. 이것 봐. 전부 쇳덩어리야. 여름에 그냥 불지옥이겠는걸. 바보인가?”
“뇌까지 철로 된 뇌철남인가 보군. 가끔은 무식한 놈이 제일 귀찮은 법이지. 멍구, 잠입할 곳을 찾아보자.”
성 주변을 빙빙 돌며 침입할 틈새를 엿보지만,
도저히 보이질 않는다.
“완전 요새가 따로 없네. 철남이, 그냥 우리가 구멍 하나 뚫자.”
“아니면 경비원을 쓰러뜨리고 들어가던가.”
“어떡할래?”
“좋아, 골드를 튕겨서 앞뒤로 정하자. 앞이 나오면 구멍을 뚫기, 뒤가 나오면 경비원을 덮치고 문으로 들어간다.”
“콜.”
팅—
골드는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빙글빙글 도는 골드는 태양 빛에 반짝이며 최고점을 찍고 다시 내려온다.
탁—
손등 위에 떨어진 골드를 손바닥으로 덮는다.
결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