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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 자연인이다-49화 (49/175)

49화 가이아의 알콩달콩 빵 만들기

크레톤의 사천왕은 괴멸했다.

한 인간과 개 한 마리에 의해.

마왕 가이아는 이 모든 광경을 생생히 목격했음에도 믿을 수가 없었다.

잠시 인간과 얘기를 하고 싶었다.

마왕성 재건축을 핑계 삼아 그를 붙잡은 것도 사실 구실에 불과했다.

“인간이여, 그대는 어찌 그리 강한가?”

“인간이라 부르지 마.”

“그렇다면 그대의 이름으로 부르도록 하지. 이름이 뭔가?”

“강철남이다.”

“그래, 철남. 좋은 이름이군.”

그에게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젊어 보이나 속은 오랜 풍파를 겪은 듯한 단단함이 느껴졌다.

마치 세상사에 무심한 듯한 표정을 짓지만 그러면서도 먹을 때만큼은 활기를 띠는 모습이 귀여운 면이 있었다.

다른 이들과 달리 내가 마왕이라고 해서 나를 특별히 더 어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시민들을 홀대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에게 더 낮고 겸손한 태도로 마주했다.

그는 그 어느 일꾼들보다 열심히 일했다.

남들이 보지 않을 때도 정직하게 땀을 흘렸고 손이 부족한 곳은 직접 나서서 도와주기까지 했다.

한없이 진지하다가도 새참이나 식사 시간이 되면 세상 다 가진 미소로 그것을 반겼다.

마치 여기서 일을 하는 이유가 그 먹거리들 때문이라는 듯 무한한 행복감을 뿜어냈다.

그가 먹을 때의 표정을 보면 덩달아 기뻐졌다.

그가 웃으면 좋았다.

이건 무슨 감정일까.

“철남이, 이 X빠!”

“또 왜 개지랄인데!”

강철남과 멍구는 어김없이 투닥투닥 댔다.

“자재를 옮기더라도 계산을 하고 옮겨야 할 거 아니야? 미친 듯이 왕창 갖다 놓으면 도로 가져다 놔야 하니까 일이 늘어나잖아!”

“그거 딱 맞게 가져온 거야!”

“맞긴 뭘 맞아. 너는 X바 전쟁 나면 건빵 대신 씹어 먹으려고 벽돌을 이만큼 가져다 놨냐?”

“아, 수량 맞다니까!”

결국 작업반장에게 가서 물어보는 둘.

결론은 멍구가 옳았다.

“딱 대!”

“까고 있네.”

투닥투닥.

공사를 시작한 지 한 달째.

그들의 말도 안 되는 신체 능력 덕에 공사는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마무리 작업만 남아서 그런지 어째 분위기가 가벼워졌다.

오늘은 저 둘도 일이 손에 잘 안 잡히는 모양이다.

“그럼, 모처럼 선물을 준비해 볼까.”

가이아는 그들을 지켜보다 상점가로 내려갔다.

시민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용히 어느 한 빵집에 들어가는데,

“헉! 세상에, 가이아 님!”

“쉬잇!”

빵집의 참새 주인은 마왕이 직접 자기 가게에 들어오니 깜짝 놀랐다.

그에 가이아는 소란이 커지지 않도록 입단속을 부탁했다.

“이 누추한 곳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그대가 가이아 최고의 제빵 장인이라던데 맞는가?”

“최고라니요. 그렇게 불릴 정도의 실력은 아닙니다.”

“내 그대에게 부탁이 있어서 왔네.”

“편하게 말씀을 내려 주시면 따르겠습니다.”

“빵을 만들고 싶은데 도와주겠나?”

“네? 마왕님께서 직접이요?”

눈이 휘둥그레진 참새.

가이아의 표정 속에 수줍게 떠오른 분홍빛을 알아본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알려 드리겠습니다.”

참새는 고개를 숙이며 가이아의 요청을 승낙했다.

가이아는 참새의 가르침에 정확히 소금, 설탕, 이스트를 계량하였고 열심히 반죽을 치댔다.

숙성시켜 부풀린 빵을 수시로 확인하고 차오른 가스도 빼 주며 오븐의 예열도 잊지 않았다.

빵 하나를 만드는데 시간과 정성이 이토록 걸릴 줄이야.

그녀는 매일매일 쉬지 않고 빵을 만드는 제빵사들에게 새삼 경의를 표한다.

“이번에는 잘 되었네요!”

“정말?”

몇 번의 실패 끝에 마침내 어엿한 빵이 완성되었다.

완성작은 크루아상.

갓 구운 빵에서 따뜻한 훈내가 난다.

가이아의 질 좋은 밀과 물을 베이스로 만든 빵은 여느 다른 나라의 빵과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만든 이의 손맛.

제빵 초보 가이아가 만든 빵은 참새의 빵에 비하면 다소 퀄리티가 떨어지지만 정성만큼은 듬뿍 담겨 있다.

“그럼 마침내 그분에게 이 빵을 대접할 건가요?”

“뭐, 뭐라? 아니 그걸 어떻게?”

“후훗. 표정에서 다 드러났습니다.”

얼굴이 붉어지는 가이아.

그런 게 아니라고 둘러대지만 이미 표정은 감출 수가 없다.

“맛있게 먹어 주려나?”

“분명 맛있게 드실 겁니다.”

참새의 격려에 용기를 얻은 가이아.

빵을 소중히 포장하여 마왕성으로 돌아간다.

그녀가 돌아와 보니 어느덧 성은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투닥투닥 다투면서도 강철남과 멍구가 할 일은 화끈하게 해낸 모양이다.

“멍구야!”

“왜 그러냐?”

가이아는 멍구를 부른다.

“그대는 혹시 전설의 흑우라고 들어 봤느냐?”

“전설의 흑우?”

“그렇다. 마계에 천년에 한 번 나타날까 말까 한 검은 소지.”

“그 소가 왜?”

“전설에 따르면 그 소의 안심살은 천상의 맛이며, 등심살은 둘이 먹다가 다섯이 죽어도 모를 맛이며, 갈빗살은 마왕조차 그 권위를 놓아 버리고 바닥에 엎드려 엉엉 눈물을 흘릴 맛이라 하더구나.”

“꿀꺽—”

멍구의 턱주가리에선 침이 폭포처럼 흐르고 있었다.

완전히 넘어왔다.

“마침 그 소가 나르딘과 가이아 사이 지점에 나타났다고 하더구나.”

“뭐, 진짜?! 그럼 얼른 철남이를 데리고.”

“그런데!”

“그런데?”

“문제는 그 소가 너무 조그마해서 개 한 마리가 겨우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라 하더구나.”

“세상에. 완전히 내 안성맞춤 식사잖아.”

“그렇지? 이 이야기는 아무도 모르게 그대한테만 해 준 거란다. 그대만 알고 있지. 그러니 누군가 잡아가기 전에 서둘러야겠지?”

“고맙다, 가이아! 넌 참 좋은 마왕이야!”

[광속]

멍구는 빛의 속도로 흑우를 찾아 달려간다.

정작 자기가 호구가 된 줄도 모른 채.

방해꾼이 사라졌다.

이제는 이 빵을 건네주는 일만 남았다.

열심히 작업을 이어 가고 있는 강철남에게 쭈뼛쭈뼛 다가가는 가이아.

“철남. 잠시 쉬고 하거라.”

“이것만 하고. 금방 끝나.”

“머, 먹을 걸 좀 가져왔느니라.”

“거기 두고 가.”

순간 강철남은 자재 사이로 나무뿌리가 스멀스멀 움씰대는 걸 느꼈다.

가이아가 빡치기 일보 직전이라는 뜻이다.

“아,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진정해.”

“후훗.”

그러자 그녀는 다시 수줍게 웃고는 자리에 앉았다.

가이아가 포장을 열자 향긋한 빵 내음이 올라온다.

반듯한 모양의 크루아상이 다소곳하게 놓여 있다.

“어, 크루아상이네. 나 이 빵 좋아하는데.”

“정말인가?”

“그럼.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러자 크루아상을 집어 한입에 냉큼 집어 먹는 강철남.

마음의 준비도 할 새 없이 맛을 선보이게 된 가이아.

당황스러웠지만 한입에 삼켜 주니 기분이 좋았다.

빵을 먹는 그의 표정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어떤가?”

“음…….”

“어떠냐고?”

“음…….”

“어떠냐고 묻는다.”

“좀 삼키자!”

쿨럭쿨럭, 체할 뻔한 강철남.

물을 마셔 간신히 목에 걸린 빵을 밀어낸다.

“죽을 뻔했네.”

“사실상 최강인 그대가 고작 빵 때문에 죽을 뻔하다니.”

“그래도 먹고 죽는다면 후회는 없어.”

병신 같은 말을 멋있게 하는 것만큼 우스운 것도 없다.

그러나 가이아에겐 그마저도 그의 매력으로 보였다.

“그나저나 빵은 맛있었나?”

“응, 평범히 맛있었어.”

“평범히 맛있는 건 뭔가?”

“평범하게 이곳의 빵 맛이었어.”

“정말인가?”

가이아는 기쁨에 싱글벙글 웃는다.

“사실 그 빵, 내가 만든 거다.”

“응, 어쩐지 그런 거 같더라.”

네 개의 지구로 나누어진 가이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중간 지점에 마왕성은 터를 잡았다.

가끔 이렇게 숨을 죽이고 앉아 있으면 사계절의 바람이 섞인 굉장히 독특한 바람이 불어온다.

봄날의 은은한 꽃향기가 불어오다가 여름의 더위에 살짝 녹기도 하며, 그러다 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겨울의 한기를 만나 얼어붙기도 한다.

그런 바람이 피부에 닿을 땐 조금 특별한 촉감을 느끼고, 그럴 땐 평소라면 낼 수 없었던 용기가 불쑥 솟기도 한다.

“철남.”

“응.”

“여기에 머무를 수는 없는가?”

“그럴 순 없어.”

“그대에게 나는 아직 발목을 잡을 존재가 못 되는가?”

“너 역시 내게 무거운 존재야.”

가이아는 자기의 존재가 강철남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일까 봐 두려웠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았는지 강철남은 가이아를 향한 배려를 담아 말했다.

“나는 자연인의 길을 택했어. 그저 산속의 흙과 나무, 바위처럼 평온히 살다 가고 싶은 바람이야. 너의 삶과 어울릴 수 없어.”

“내가 이 땅, 가이아를 버리고 너를 따라간다 해도?”

“한 달이지만 함께 지내면서 알았다. 너는 누구보다 이 땅과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왕이야. 백성들에겐 네가, 너에겐 백성들이 필요해. 서로를 저버릴 순 없을 거야.”

가이아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마음은 있어도 서로의 삶의 방향이 다르기에 걸어가는 인생이 다른 법이다.

“이 마왕 가이아를 찼으니 굴러 들어온 복을 걷어찬 것이나 다름없다. 그 대가로 몇만 배는 더 행복하게 살아야 하느니라.”

씩씩하게 웃으며 말하는 가이아였다.

강철남은 마지막으로 그녀를 안아 주었다.

그의 어깨가 축축이 젖어 갔다.

* * *

마왕성이 완공되던 날.

강철남은 연회장을 뒤로한 채 멍구를 데리고 가이아를 나섰다.

작별 인사는 충분히 나누었다.

이제 서로 앞날을 충실히 살아가면 된다.

“철남이,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

“뭐가?”

“전설의 흑우가.”

“…이 호구가…….”

얼마나 걸었을까.

크레톤에 다다르기 전 작은 샘물 마을에 도착했다.

적은 수의 마을 주민들은 나무 열매를 따고 강 낚시를 하며 먹고살았다.

물을 얻어 마시며 그들에게 마계 곳곳을 여행한 이야기를 들려주니 흥미롭게들 들었다.

물론 쌈박질 얘기는 싹 빼고 말이다.

누가 믿어 주겠나.

크레톤의 사천왕을 모조리 골로 보내 버렸단 걸.

“가이아에서 오셨다고 하셨쥬?”

마을의 촌장인 늙은 낙타가 물어본다.

“그렇소. 크레톤의 군대가 물러갔으니 다시 풍요로워질 것이오. 다들 한 번씩 들러 보시구려.”

강철남이 가이아로 방문을 권했지만 어쩐지 마을 주민들은 표정들이 안 좋다.

“왜들 그러쇼?”

멍구가 떨떠름한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들어 묻는다.

“그야 크레톤의 군세가 심상치가 않아서쥬.”

“걔네들이 왜?”

“최근 가이아로 쳐들어갈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쥬.”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한 달 동안 혹여나 기습을 가해 오지 않을까 늘 경계했지만 침공은 없었다.

언제가 되었든 녀석들은 반드시 공격해 올 것이다.

한 달이나 깜깜무소식이라는 것은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는 소리다.

작정하고 가이아를 멸망시킬 궁리를 하고 있는 거겠지.

“당신들도 참 운이 안 좋구만유. 크레톤으로 가려는데 마침 시기가 적절치 못해서.”

“아니요. 오히려 좋은 시기요.”

강철남은 물을 한 바가지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벌떡 일어났다.

“가자, 멍구야.”

“잠깐. 중요한 걸 물어보고 가야지.”

멍구의 표정이 진지하다.

‘설마 치밀하게 크레톤의 군세에 관한 정보 수집을 하려는 건가?’

“너희들 중에 혹시 전설의 흑우의 행방을 아는 놈 있나?”

“…진짜 호구네…….”

하루를 꼬박 달려 크레톤에 도착했다.

도시로 들어서는 입구에 용족 경비병들이 검문을 서고 있었다.

“철남이, 저길 어떻게 뚫고 들어가지?”

“우습지.”

강철남은 도시 침입 작전을 멍구에게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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