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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 자연인이다-48화 (48/175)

48화 어쩌다 마왕성이 와르르

강철남이 살면서 가장 이해 안 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맛집 탐방.

“요즘 사람들은 밥 한 끼 먹자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다섯 시간은 걸려서 가더라. 가서 또 웨이팅인가 뭔가로 또 세 시간은 기다려. 밥 한 끼 먹자고 말이야.”

적어도 예전의 강철남은 그렇게 비아냥댔다.

지금의 강철남이라면,

“드래곤 고기와 전설의 술이 있다고? 개꿀! 프라이팬 챙겨. 당장 마계로 간다.”

한반도 북쪽에서 남쪽으로도 아니고,

아예 다른 차원의 이세계인데도 선뜻 넘어가는 그였다.

대한산과 북한산에서 다양한 몬스터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 강철남.

본디 고기를 즐기지만 고기도 매일 먹으면 질리는 법.

가끔은 부드러운 빵과 과즙이 넘치는 과일이 먹고 싶다.

산에서 자라는 것들이 맛있었던 이유는 몬스터의 기운, 즉 마력이 깃들었기 때문이다.

인간계에서 자라는 작물들도 그토록 맛있는데 마력의 본고장인 마계 정통 작물은 대체 얼마나 맛있을까.

강철남과 멍구는 침을 아니 흘릴 수 없었다.

그렇게 꿈을 가득 품고 왔건만,

“X바, 아무것도 없다고?”

“철남이, 이거 또 앞발이 근질근질하구만.”

곡물을 틔우고 열매를 틔우는 축복의 힘을 가진 가이아를 지금 더러운 용족들이 끌고 가려 한다.

마왕끼리 치고받고 싸우든 말든 상관없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정의의 사도 따위가 아니니까.

다만 강철남은 자기 밥그릇을 빼앗는 자들을 용서 못 한다.

내일의 존맛을 빼앗아 가는 새끼는 오늘 당장 처맞을 것이다.

“여어, 도마뱀 대가리 새끼들. 농사의 고단함과 수확의 기쁨을 아는가?”

뜬금없이 노래를 부르며 등장하는 미친 인간과 정신 나간 개.

이들을 보며 사천왕들은 황당해한다.

그들을 알아보고 겁을 잔뜩 먹은 키켈은 군대 뒤에 숨어서 얌전히 상황을 지켜본다.

“우리가 누군지 알고 지껄이는 거냐? 지금 죽으러 온 거야?”

테오가 비늘을 날카롭게 세운다.

뒤에 진열한 군대도 무기를 쥐고 둘을 노려본다.

“우와, 내가 누군지 아느냐래. 어떻게 인간이나 몬스터나 허세충들 단골 멘트는 똑같냐.”

멍구가 킬킬대며 테오를 비웃는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르는 테오.

당장 저 건방진 개를 찢어 버리려 하나 고르가 막아선다.

“우선 당신들의 정체를 밝히시죠. 인간인 것 같은데, 혹시 나르딘에서 오셨나요?”

“응. 얼굴에 피멍 든 도마뱀 녀석이 얘기 안 해 주던? 우리가 간다고.”

“하하. 어지간히 늦으셔야 말이죠. 아 참, 날개가 없는 하등 종족이라 그런가.”

고르는 날개를 펄럭이며 둘을 깔보았다.

“저 새끼 약 올리려고 친 드립인가?”

“별로 대미지 없는데. 찐따 같아.”

“야, 너 친구 없지?”

멍구의 일침에 고르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진짜로 친구가 없는 모양이다.

옆에 있던 미로가 풉 하고 웃는다.

고르가 미로를 노려보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반응이다.

미로는 키켈을 부른다.

“키켈, 저 녀석이지? 널 흠씬 두들겨 팬 녀석들이.”

자존심 탓에 차마 그렇다고 할 수 없는 키켈.

침묵으로 답을 대신한다.

“그래, 알았어. 그럼 지금부터 복수해 줄게.”

미로는 웃으며 돌아섰다.

손에 화염 덩어리를 만들며 강철남과 멍구에게 다가간다.

“네가 강하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보다시피 우리 네 명이 모이면 천하무적이야. 목숨을 걸 만큼 싸울 가치가 있어?”

“물론.”

차분한 미로의 말투에 강철남이 단호하게 대답한다.

“훗, 공주를 구하기 위해 나타난 백마 탄 왕자님인가.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 싫진 않아. 하지만…….”

소환한 화염 덩어리를 더욱 크게 키우는 미로.

“내가 악역이 된 것 같아서 몹시 불쾌하거든!”

[화염 폭탄]

정면으로 날아오는 화염 폭탄을 강철남은 맨손으로 잡아낸다.

“오우 쉣! X나 뜨거워!”

“아 뜨뜨뜨! 철남이, 이거 저기다 던져!”

“어디로?”

“저기, 저어기!”

“저기라고 하면 어떻게 알아?”

멍구가 열심히 가리켜 보지만 화염의 열기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에라이, 몰라 썅!”

빡쳐서 냅다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는 강철남.

화염 폭탄은 어딘가로 날아가는데 하필 날아간 곳이…….

“안 돼!”

콰아앙!

화염 폭탄은 굉음과 함께 버섯구름 모양으로 솟아오르며 폭발했다.

폭발이 일으킨 눈 부신 빛은 아가리를 벌려 대상을 집어삼켰다.

어마어마한 마력이 분출되며 일대를 소멸시켜 버린다.

폭발 뒤에 남은 건 그을음과 삐, 울리는 소음뿐.

강철남이 눈을 떠 보니 이상하게 휑뎅그렁한 빈터만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 허전한데?”

기분 탓이 아니다.

그렇다.

마왕성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마왕성이…….”

맥이 탁 풀리는 가이아.

멍구가 강철남을 콕콕 찌르며 어쩔 거냐는 듯 보챈다.

강철남은 내 잘못 아니라는 듯 모르쇠로 대응한다.

역시 불리할 땐 남 탓이지.

“이 무자비한 녀석들. 마왕을 홀대하고 무고한 가이아 시민들을 유린한 것도 모자라 감히 마왕성을 날려 버려?”

사나이 강철남.

악당들 앞에서 당당히 그들의 잘못을 꾸짖는다.

“이 미친놈아. 화염 폭탄을 마왕성 쪽으로 던진 건 너잖아.”

“아니, 애초에 폭탄을 던진 게 누구지?”

미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온다.

살짝 긴장이 되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날린 화염 폭탄을 가뿐히 받아 낸 인간이다.

보고 받은 대로 키켈을 박살 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다.

“너 이 허여멀건한 도마뱀 대가리 새끼. 너 때문에 이 사단이 난 거 아니야.”

“나는 너한테 던졌는데?”

“발뺌해도 소용없다!”

[광속]

번개 같은 속도로 미로 앞에 우뚝 선 강철남.

사천왕들이 깜짝 놀랄 틈도 없이 미로의 뺨을 손바닥으로 후려쳐 날려 버린다.

“미로!”

[강화]

[강철 주먹]

테오의 비늘이 두꺼운 강철로 변하더니 이내 주먹을 건틀릿처럼 뒤덮는다.

그 단단한 강철 주먹으로 강철남을 향해 펀치를 날리는데,

“이얍.”

강철남은 가볍게 팔꿈치로 테오의 주먹을 맞부딪친다.

콰앙!

으드득—

그러자 강철로 뒤덮인 테오의 주먹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난다.

“끄아아악!!”

그대로 무릎을 꿇어 버리는 테오.

“한심하군요.”

[검은 안개]

[결계]

고르가 검은 안개를 뿜어 강철남의 시야를 막고 결계를 펼쳐 가둔다.

[디버프]

그러고는 상시 준비하고 있던 디버프를 걸어 강철남의 힘을 떨어뜨린다.

“지금이에요, 키켈! 화염창을.”

고르가 키켈에게 지원을 요청하지만 키켈은 PTSD 증상을 호소하며 아무것도 못 하고 서 있다.

“정신 차려요!”

“으으… 가, 간다!”

[화염창]

눈 딱 감고 화염창을 투창하는 키켈.

검은 안개 속으로 날아 들어간 화염창은 감감무소식, 타오르지 않는다.

“어떻게 된 거지?”

당황한 고르는 검은 안개 속으로 마탄을 마구 발사했다.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붓는데도 어째서인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느낌이다.

타격감이 전혀 없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럼에도 공격을 멈출 수가 없다.

원인 모를 이 불안감을 억누르기 위해서도 말이다.

[톱날]

테오가 날카로운 참격을 검은 안개 속으로 날린다.

뺨이 퉁퉁 부은 미로는 잔뜩 화가 나 걸어와서 양손에 불을 붙이고 자세를 잡고 집중력을 끌어모으는데,

“미로! 멈춰요! 가이아를 전부 불태워 버릴 셈이에요?”

“상관없어! 전력이 아니라면 화가 안 풀리니까!”

[불지옥]

미로가 양손을 휘젓자 검은 안개 속에서 엄청난 화염이 치솟았다.

마치 대기조차 녹아내려 마계에 빈 구멍이 생겨 버릴 듯한 파괴력이다.

고르는 혼신을 다해 화염을 결계 속에 욱여넣었다.

응축된 화염은 무시무시한 농도로 끓어올랐다.

마치 한 방울만으로도 바다를 증발시켜 버릴 만한 용암의 정수 같았다.

“세상에. 이 정도라니.”

가이아는 넋을 놓고 몰아치는 화염을 바라봤다.

만약 이 힘이 자기를 향했다면 뼛가루도 남지 않았으리라.

사천왕의 힘이 이 정도인데 그들을 거느리는 크레톤은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그나저나 인간은?

한바탕 화려한 불꽃 쇼가 지나간 뒤 꺼진 불꽃이 일렁이며 시야를 밝혔다.

게슴츠레 뜬 눈을 똑바로 뜨며 정면을 바라보는 사천왕들.

인간은 타 버렸나 싶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새끼들, 불장난하면 밤에 오줌 싸!”

개다.

개가 뭔가를 굽고 있다.

굽고 있는 것은 드래곤의 꼬리?

“군대는?”

돌아다봤을 때 이미 군대는 전멸해 있었다.

드래곤도 용족 수인도 모두 쓰러진 채 거품을 물고 있다.

크레톤의 군대인 드래곤의 꼬리로 요리를 하고 있다고?

그것도 미로가 전력으로 방출한 화염 마력으로?

“이봐, 고르. 지금 우리가 환상을 보고 있는 건가?”

주먹이 으스러진 테오는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믿을 수 없다.

“이건 마법이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고르 역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마법의 기운은 느낄 수 없었다.

이건 진짜였다.

“그래도 인간은 불타 죽었겠지? 남은 건 저 개의 탈을 쓴 정체불명의 괴생명체인가.”

“말하는 꼬락서니 보소. 철남이, 쟤네들 교육 좀 시켜야겠는데.”

“뭐라고?”

멍구는 태연하게 고기를 구우며 강철남을 부른다.

불길이 사그라들지 않은 검은 결계 안에서 뭔가가 일렁인다.

“고맙다. 안 그래도 여행이 길어져서 몸이 찌뿌둥했는데. 덕분에 사우나 잘했다.”

어깨 스트레칭을 하며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강철남.

사천왕들의 턱이 가슴까지 벌어질 기세였다.

“너, 이 새끼. 어떻게 살아 있는 거냐?”

미로가 분한 듯 묻는다.

남은 마력을 모조리 끌어올려 쏟아 낸 스킬이었다.

이 정도 불길 속에서도 살아남을 존재라곤 마왕 크레톤이 유일했을 텐데.

“어떻게라니. 그딴 성냥 불로 누굴 태워 죽이게?”

강철남은 강력한 불길이 자기를 휩쓸자 [정화]를 발동했다.

몬스터의 기운을 지우는 정화.

즉, 마력을 무력화시키는 스킬이었던 것이다.

애초에 인간에게 음식을 대접할 때 써먹던 기술이,

알고 보니 모든 마력을 무효화시키는 최강의 기술로 거듭난 셈이다.

“주, 죽여! 녀석도 한계일 거다!”

테오는 남은 한 손을 꽉 쥐고 달려든다.

[철 가시]

소환해 낸 철 가시가 강철남을 향해 날아든다.

가뿐히 한 손으로 쳐 내고는 뒤따라 날아오는 테오의 머리통을 꽉 움켜쥔다.

“끄악!”

“우선 한 놈.”

콰앙!

손으로 잡은 머리통을 그대로 무릎에 찍어 머리를 박살 내 버린다.

남은 세 마리가 주춤하는 사이 땅을 박차고 대시해 미로의 목덜미를 콱 움켜쥔다.

“나는 크레톤의 사천왕! 인간에게 지지 않는다!”

남은 마력을 쥐어짜 내 불꽃을 일으켜 보는 미로.

강철남에겐 그저 뜨끈한 온기로 느껴질 뿐이다.

아궁이에 불을 때듯 손끝에 불의 마력을 집중해 본다.

[업화]

목덜미를 움켜쥔 손에서 매서운 불길이 치솟더니 그대로 미로를 삼켜 버리고 만다.

미로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재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악몽이다, 이건 악몽이야.”

고르는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면서도 몸은 이미 뒤돌아 도망치고 있었다.

그때 가이아의 나무뿌리가 도망치는 고르의 심장을 관통한다.

“커헉!”

“거짓말과 속임수로 국민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못된 관직자여. 그대를 가이아의 이름으로 심판하리라.”

고르는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눈을 감으며 대지의 양분이 되어 사라지는 고르.

남은 건 키켈뿐이다.

애초에 싸울 의지조차 없었던 그는 도망칠 마음조차 단념했다.

남은 건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하는 일.

“사, 살려 주십시오.”

“살고 싶으냐.”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죄를 짓지 말아야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강철남은 키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럼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해. 또 오면 진짜 죽는다.”

“예! 그, 그럼요! 다시는 안 오겠습니다!”

키켈은 부리나케 날개를 퍼덕이며 달아났다.

싸움은 끝났다.

이제는 배 터지게 먹는 일만 남았나.

“끝났다고 생각하십니까?”

“응?”

가이아가 다가와 싱긋 웃는다.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아니 뭘 이 정도로.”

“그런데.”

“그런데?”

“마왕성은 어떡하실 거죠?”

“아, 그거 말이오?”

공터를 보니 어찌할 각이 안 나온다.

“뭐, 영차영차 어찌 안 되겠소?”

“후훗.”

“하하하.”

“도와주셔야겠어요.”

“하, 이런 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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