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최강 자연인이다-47화 (47/175)

47화 가이아 VS 사천왕

* * *

마왕 크레톤이 거느리는 사천왕.

그중 가장 머리가 잘 굴러가는 고르가 가이아를 알현했다.

그의 목적은 나머지 사천왕들이 도착하기 전에 가이아를 구슬려 크레톤 앞으로 모셔 가는 것.

그렇게만 된다면 공적을 쌓는 것은 물론이고 마왕의 총애도 한 몸에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힘으로만 굴리는 것이 아니다.

바로 머리를 써야 한다.

“가이아 님,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르가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

가이아가 의자에서 일어난다.

본디 엘프였던 가이아.

그 미모는 마왕이 되어서 더욱 아름다워졌다.

엘프답게 아름답게 삐죽 도드라진 귀.

에메랄드빛 눈동자에 산뜻하게 솟은 콧날.

작지만 모양새가 잘 다듬어진 입술.

쌍꺼풀이 짙어 뚜렷한 큰 눈.

엘프 중에서도 미모로서는 비견할 자가 없을 정도다.

“만약 내가 그대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면 그대가 어떻게 나올지 뻔히 안다. 그런데도 내가 순순히 시간을 내어 준 것으로 보이느냐.”

가이아는 날카로운 말로 응수했다.

고르의 비열함은 진작 알고 있었다.

그가 하는 말에는 모두 답이 정해져 있다.

만약 가이아가 응하지 않았다면 과수원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저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계시는군요.”

“그대의 언행이 쌓은 업보라고 해 두지.”

“저에 대한 인식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앞으로는 크레톤 님만 생각하시면 되실 분이니까요.”

“무례하구나.”

[나무 화살]

가이아는 손을 뻗어 나무 결정이 뾰족하게 날 선 화살을 소환해 냈다.

크레톤의 군세에 밀려 약소국 취급을 받지만 그녀 역시 명색이 마왕.

고르는 그녀를 혼자서 당해 낼 수 없었다.

아직은 전투를 벌일 타이밍이 아니다.

“제 결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관대하신 가이아 님.”

“그대는 항상 그런 식이지. 사람의 치부를 건드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쉽게 되돌리려 한다. 그런 행동은 언젠가 인과응보로 돌아올 거야.”

고르는 속으로 웃었다.

이 와중에도 훈계라니.

이제 곧 마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평범한 부인이 될 자가 말이다.

“명심하죠, 가이아 님. 자, 이제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와 함께 크레톤으로 가시죠.”

“가지 않겠다. 돌아가서 크레톤에게 전하거라.”

“그렇다면 저와 함께 가시죠. 직접 말씀하시는 것이 이로울 겁니다.”

“이롭다라? 만일 동행하지 않는다면 해롭다고 말하려는 것이냐?”

“항상 넘겨짚으시는군요, 가이아 님.”

“그대 말에는 가시가 있다는 걸 잘 아니까.”

“역시 선입견이 너무 강하십니다.”

고르는 꿇은 무릎을 일으켰다.

“일어나라 한 적이 없는데.”

“지금부터는 강제 집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대 뒤치다꺼리를 해 줄 친구들이 올 때까지 벌벌 떨며 기다릴 줄 알았건만.”

“원래 그럴 예정이었지만 완성이 되어 버려서요.”

“완성돼? 무엇이?”

“디버프 마법이요.”

고르는 손을 높이 쳐들었다.

그 순간 성안 곳곳에서 여러 개의 마법진이 동시다발적으로 발동하더니 붉은빛을 내기 시작한다.

[디버프]

“원망 마시길. 저는 제 할 일을 수행하는 것뿐입니다.”

마법진에서 나온 붉은빛이 가이아를 감싼다.

디버프 마법은 힘을 죽이는 마법.

가이아의 랭크가 내려간다.

“어리석구나. 네 힘으로 나를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느냐?”

이에 고르는 입안에 뭔가를 집어넣더니 씹어 삼킨다.

그가 먹은 것은 심안초.

“제가 먹은 것은 심안초. 지금부터 5분간 ‘눈’을 가질 수 있게 되었죠. 지금 가이아 님의 랭크가 제 눈에는 보입니다만.”

[가이아—디버프

레벨: 287

힘: R → SSS++

마력: RA → SSS+++

맷집: R → SSS++

속도: RB → SSS+++]

“애석하게도 가이아 님은 지금의 저보다 훨씬 뒤처지십니다.”

고르는 펼친 손바닥에서 검은 구슬을 소환한다.

“이 탄환을 맞게 된다면 의식을 잃게 되십니다. 제게 실려 나가시는 것보다 마왕으로서 당당히 걸어 나가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좋은 말로 구슬리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위협에 가까운 말이었다.

가이아는 눈 하나 깜짝 않았다.

“그대는 참으로 어리석다. 그나마 사천왕 중에서는 머리가 굴러가는 녀석이라고 생각한 내가 한심하구나.”

“가이아 님. 허세는 그만두시죠.”

“정말 허세라 생각하느냐?”

그 순간 가이아가 손을 높이 들고선 스킬을 시전한다.

[미러]

[디버프]

스킬 ‘미러’

상대의 스킬을 그대로 시전하는 스킬.

[고르—디버프

레벨: 301

마력: R → SSS++

힘: R → SSS++

맷집: R → SSS++

속도: R → SSS++]

“아니, 이럴 수가?”

“내가 괜히 마왕이겠느냐. 전투란 힘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고 했지? 그대가 한 말 아니더냐?”

고르는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이렇게 치욕을 당할 줄이야.

“그럼 나머지 사천왕이 올 때까지 버티실 수 있는지 시험해 보겠습니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태도로군. 결국엔 친구들한테 기대다니, 꼴불견이구나.”

[마탄]

검은 탄환이 가이아를 향해 날아든다.

[나무 화살]

수십 발의 나무 화살이 마탄을 상쇄하고 고르를 향해 날아간다.

어느새 날개를 펼쳐 천장에 붙은 고르.

쉴 새 없이 마탄을 발사한다.

마왕성 안에서 마법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린다.

한편 성 바깥에서는 가이아의 군대가 고르의 군대와 전투를 벌이고 있다.

제아무리 가이아의 정예병들일지언정 상대는 용족.

당해 낼 재간이 없다.

“젠장! 밀리면 안 돼! 우리가 밀리면 가이아 님이 끝장이야!”

무참히 짓밟히는 와중에도 가이아의 군대는 처절히 싸웠다.

[가시 비]

마왕성 천장에서 날카로운 장미 가시 비가 빗발친다.

공중을 날던 고르의 날개가 송곳 같은 가시에 찔려 찢기고 만다.

“크악!”

쿠웅!

크게 낙하한 고르.

[속박]

가이아는 고르의 발목을 땅과 함께 튼튼한 뿌리를 소환해 묶어 버린다.

“마왕에게 결례를 범할 때는 목숨까지 저버릴 각오도 했겠지?”

“가, 가이아 님! 제 실수를 용서해 주십시오!”

묶여 버린 발목에 버둥거리면서도 고르는 고개를 바닥에 처박고 목숨을 구걸한다.

“꼴사납구나. 명색이 크레톤의 사천왕이라는 자가.”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면 제가 크레톤 님에게 가이아 님의 말씀을 잘 전달 드리겠습니다.”

“정말이냐?”

“정말입니다.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는 나머지 사천왕도 잘 타일러 돌려보내겠습니다.”

가이아는 곰곰이 생각했다.

결론 끝에 속박을 해제한다.

“자, 그만 군대를 물리고 돌아가거라. 크레톤에게 똑똑히 전하거라. 나는 크레톤과는 같은 공간에서 숨조차 쉬고 싶지 않다고.”

홱 뒤를 돌아서는 가이아.

고르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마왕성을 나간다.

그리고 얼마 뒤.

“으아악!”

“안 돼!”

“도망쳐!”

“으, 으아아앗!”

마왕성 바깥에서 무참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섬뜩한 예감에 가이아가 바깥으로 달려 나간다.

그녀가 마주친 현장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고르의 마탄에 맞아 쓰러진 가이아의 정예군은 피를 토하며 죽어 갔다.

“고르! 감히 나를 속이다니.”

“누가 누구하고 무슨 약속을 했죠? 증인이라도 있나요?”

그러자 도시 가이아에 지진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마왕 가이아의 분노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진 것이다.

위기를 느낀 고르.

어떻게 목숨을 부지할까 고민하던 그때,

[금속 칼날]

챙!

멀리서 사천왕 테오와 미로가 군을 이끌고 날아오고 있었다.

테오의 금속 능력으로 가이아의 집중력을 끊어 낸 것이다.

“이런, 가이아 님. 아무래도 시간이 다 되었나 봅니다.”

입술을 꽉 깨문 가이아는 땅 밑에서 나무뿌리를 소환해 낸다.

[뿌리]

기다란 나무뿌리는 문어발처럼 뻗어 나가 테오와 미로의 발목을 휘감는다.

압도적인 마력으로 사천왕의 움직임을 꽉 묶었다 생각한 그때,

[발화]

미로의 전신에 불이 붙기 시작한다.

온몸을 휘감은 불길은 이내 가이아가 소환한 뿌리를 모조리 태워 버렸다.

“가이아 님. 포기하시지요. 저와는 상성이 안 좋습니다.”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미로가 그녀를 회유한다.

다 타 버린 재처럼 하얀 비늘을 두른 미로.

그리고 대장장이가 한껏 두들긴 강철 같은 비늘을 두른 테오.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며 나타난 두 사천왕은 존재만으로도 마왕 가이아에게 위압감을 주었다.

더불어 그들이 끌고 온 드래곤과 용족 수인 군대만 하더라도 100마리가 넘는다.

드래곤 한 마리만 하더라도 마계의 도시 하나를 멸망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그 전력은 무서울 정도다.

“나는 가이아, 이 땅의 주인이자 대지의 힘과 함께 하는 마왕.”

[흡수]

가이아는 땅에 손을 짚더니 지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급격히 그녀의 힘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쳇, 귀찮은 짓을 하는군!”

마왕의 힘이 더 커지면 아무리 사천왕이 모여 있어도 장담할 수 없다.

[톱날]

테오가 손톱을 할퀴자 날카로운 톱날이 참격이 되어 날아가 가이아를 위협한다.

그녀가 참격을 피하자 그것이 마왕성 문으로 날아가 문을 두 동강 내 버린다.

[성장]

지맥의 힘을 흡수한 그녀가 땅에서 커다란 나무를 틔워 낸다.

나무에서 뻗은 나뭇가지가 매서운 기세로 사천왕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미로! 다 태워 버려!”

[불기둥]

미로는 나무에 달라붙어 맹화와 같은 불기둥을 뿜어냈다.

혼신의 힘을 쥐어짜 낸 불기둥은 구름조차 녹여 버릴 정도로 높고 맹렬히 타올랐다.

“됐나?”

“이런! 본체가 나무에게 계속 마력을 주입하고 있어.”

“제가 맡죠.”

[검은 안개]

고르는 검은 안개를 뿜어내 가이아의 시야를 차단했다.

[마탄]

집중할 틈이 없게 연속으로 마탄을 발사하는 고르.

공격을 피하면서도 가이아는 지맥의 힘을 빨아들여 나무를 더욱 거대하게 키워 내고 있다.

“나무가 더 커지고 있어! 빨리 태워 버리지 않으면 밀릴 거야.”

테오가 강철 칼날을 날려 가지를 잘라 보지만 재생 속도가 너무 빨라 앞서지를 못한다.

미로의 화염도 재생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화염창]

멀리서 날아온 화염창이 나무에 꽂히더니 뜨거운 불길을 일으키며 나무의 중심부를 태우기 시작했다.

“젠장, 키켈 녀석. 늦었잖아!”

“미로, 태워 버려!”

뒤늦게 날아온 키켈은 모든 마력을 화염창에 담아 날렸다.

그 파워에 미로의 불길이 더해 불기둥은 엄청난 열기로 타올랐다.

“안 돼! 이대로는 나무가…….”

화아아아악—

결국 나무는 하얗게 연소 되고 말았다.

테오가 강철 비늘을 두른 주먹으로 힘껏 때려 부수자 재가 되어 흩어지는 나무.

더는 끌어올릴 지맥의 기운이 없는 가이아는 싸울 힘이 남아 있지 않다.

“아무래도 여기까지인가 보구나.”

“순순히 따라오시죠.”

고르가 손을 내밀자 그 손을 잡으려는 듯한 가이아.

그 순간 가이아는 손을 거둬 자기 목에 손을 가져다 댄다.

“가이아 님!”

“움직이지 마라.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내 목을 터뜨릴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감정을 누그러뜨리십시오!”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사천왕과 결단의 기로에 선 가이아.

“그대들은 모른다. 사랑이 아닌 욕망의 대상으로 팔려 가는 내 마음을.”

가이아는 그대로 손끝에 마력을 집중시킨다.

그대로 생을 끊으려는 순간,

“에에에~”

이게 무슨 소리인가?

느닷없이 어디선가 구성진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봄이면 씨앗 뿌려

여름이면 꽃이 피네

가을이면 풍년 되어

겨울이면 행복하네

사천왕은 물론 가이아도 이 황당한 노랫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본다.

오로지 키켈만이 목소리의 정체를 깨닫고 PTSD 증세를 호소하며 덜덜 떨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바라본 방향에서 웬 인간과 개 한 마리가 흥얼거리면서 껄렁껄렁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