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최강 자연인이다-42화 (42/175)

42화 강철남 VS 드래곤

드래곤이 입에 담은 이름은 충격적이었다.

마왕이라니.

생각이 많아지는 홍태진.

게다가 세 번째 마왕이라면 첫 번째, 두 번째도 있다는 말인가.

“마왕이건 몬스터건 너희의 목적은 인간계를 점령하는 것이냐?”

“이딴 조그만 세계 따윈 어찌 되든 상관없다. 마왕은 마계를 먹을 테지.”

“그렇다면 몬스터들은 왜 인간계에 와서 난동을 부리는 거지?”

홍태진이 질문은 시간 끌기용이 아니었다.

인간 모두가 궁금했던 의문.

대체 몬스터들이 인간계로 넘어오는 이유가 무엇인지.

“너희 인간들도 그러지 않나. 산을 밀어 버리고 강을 덮어서 집을 짓고 살지.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살기 좋아 보이는 곳에 발을 비집고 들어가 드러눕는 것이지.”

드래곤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인간들의 인과응보인가.

“그래도 우리는 여기서 멸망할 순 없다. 인간에겐 싸워서라도 이곳을 지켜 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니까.”

“다른 생물들의 삶의 터전을 몰아낸 너희가 그런 말을? 하하하. 이기적이로군.”

드래곤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이기적이라.

홍태진은 강철남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인간은 저마다 각자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위해 싸운다.

그것이 인간이다.

“무슨 소리를 들어도 좋다. 나는 인간계를 지키겠어. 그게 내 선택이다.”

“그 창을 내게 겨누는 순간 너는 죽을 것이다.”

“각오는 됐다.”

[초신속]

[강화]

[찌르기]

홍태진이 날아들었다.

드래곤의 눈을 향해 창을 세우고 달려든다.

그러나,

콰앙—

드래곤이 휘두르는 앞발에 날아가 빌딩에 처박히고 만다.

“홍 팀장님!”

헌터들이 그가 날아간 곳을 향해 달려갔다.

“너희를 위한 배려는 이제 끝났다. 이곳을 불태우고 내 둥지로 삼을 것이다. 도망칠 시간을 주지. 저 빌딩에 붙은 불이 다 꺼지는 순간 주변의 모든 인간을 소멸시켜 버리겠다.”

입에서 불꽃을 일으키며 드래곤은 으르렁댔다.

녀석이 턱으로 가리킨 곳에는 빌딩에 꺼질 듯한 불길이 일렁이고 있었다.

몬스터에게 동정을 받는다는 건 헌터들의 자존심이 짓밟히는 것이다.

그러나 분하지만 물러나야 할 때임을 모두가 알고 있다.

“후퇴한다.”

홍태진은 꽉 쥔 주먹을 떨며 명령을 내렸다.

헌터들은 무기와 부상자들을 챙기고 뒤로 물러날 준비를 했다.

하지만,

“젠장!”

김성남은 물러설 수 없었다.

몬스터가 꺼지란다고 순순히 물러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김 팀장!”

홍태진의 부름에도 김성남은 쏜살같이 드래곤을 향해 달려들었다.

“좌절 대신 죽음을 택한다라. 그것도 나쁘지 않지.”

드래곤이 입에서 화염 구슬을 모은다.

그러자 김성남은 눈앞에서 태양을 마주친 것만 같은 뜨겁고 눈부신 열기에 힘을 빼앗겨 버렸다.

“여기까진가. 전장에서 죽는군.”

쿠앙!

화염 구슬이 날아온다.

김성남은 칼날을 세우고 화염 구슬을 향해 최후의 일격을 날린다.

“…….”

그 순간,

파앙!!

화염 구슬이 축구공처럼 날아가 드래곤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끄어억!!”

고통이 상당한지 귀청이 떨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드래곤은 도로 위로 쓰러졌다.

“철남이, 나이스 슛.”

어느새 헌터들의 곁에 멍구가 와서 촐랑대고 있다.

멍구가 있다는 것은 설마?

“홍 팀장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한지영이 달려온다.

그녀의 얼굴에는 다급함과 동시에 안도감이 내비쳤다.

“데리고 와 주었구나.”

일제히 올려다본 하늘에는 빌딩 옥상에 두 발을 딛고 당당히 서 있는 그가 있었다.

“너는 또 혼자 나대다 인생 조질 뻔했구나.”

“남의 싸움에 끼어들지 마.”

투덜대는 김성남.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려 일어날 수가 없다.

“야, 강철남.”

“왜.”

“이길 수 있겠냐?”

“개소리 지껄이고 있어.”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강철남이 빌딩에서 뛰어내린다.

쿵—

쓰러진 몸을 힘겹게 일으키는 드래곤.

무엇에 당한 건지 얼떨떨하기만 하다.

“실제로 보니 웅장한데?”

“너는 뭐냐? 인간?”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드래곤.

방금 자기를 날려 버린 것이 이 조그만 젊은 인간이라고는 도저히 상상이 안 간다.

“철남이, 저 꼬리 맛있겠는데.”

옆으로 쫄래쫄래 다가온 멍구가 입맛을 다신다.

드래곤은 영문을 알 수 없는 힘에 당해 쓰러진 데다, 웬 개가 자기 꼬리가 맛있어 보인다며 입맛을 다시니 기분이 언짢아졌다.

“흥. 이제 빌딩의 불길이 꺼졌다. 모조리 죽여 주마.”

“가라, 멍구! 몸통 박치기!”

“엇, 내가 해?”

“동물계 최강자를 가려보자고.”

“어휴, 이 인간, 무슨 게임인 줄 아나.”

드래곤이 입을 쩍 벌리고 멍구를 덮친다.

재빨리 점프로 튀어 오른 뒤 이빨을 앞발로 후려갈기니,

카득!

드래곤의 송곳니가 부러진다.

“이… 이… 개 주제에!”

“개라고 무시하면 안 돼.”

드래곤이 화염 구슬을 모아 멍구를 향해 쏜다.

멍구는 움푹 파인 콘크리트 밑으로 웅크려 피한 뒤 폴짝 달려든다.

콰악—

멍구가 드래곤의 목덜미를 깨물자 피가 분수처럼 솟구친다.

“이 개같은 놈이!”

“개같은 게 아니라 개 맞는데?”

드래곤과 멍구는 서로 뱀처럼 뒤엉켜 몰고 뜯으며 싸웠다.

용호상박이란 아니라 용견상박.

한 마리의 용이 한 마리의 개에게 먹히는 특이한 그림이 그려졌다.

크르릉!

드래곤이 연속으로 화염 구슬을 쏜다.

멍구는 재빠른 스텝으로 피하고 박치기로 녀석의 명치를 들이박는다.

“크허헉…….”

기력이 떨어진 드래곤은 날개를 크게 펄럭이더니 달아나기 시작했다.

“어엇! 철남이, 안줏거리가 도망간다!”

“잡아야지!”

강철남과 멍구는 빌딩 위를 뛰어다니며 드래곤을 쫓았다.

“거기서!”

“대체 너희는 정체가 뭐냐? 어째서 인간과 일개 짐승이 마왕에 필적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거지?”

“흥, 잘 먹고 잘 자면 돼.”

“너희 같은 놈들이 인간계에 있다는 건 들어 본 적 없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정체를 숨기며 사는 거냐?”

“목적 없이 사는 것, 그것이 내 삶의 목적이다.”

“말장난하지 마라!”

입에 모은 화염 구슬을 깨물어 분수처럼 화염을 흩뿌리는 드래곤.

하지만 강철남과 멍구의 마력이 훨씬 높아 눈썹 하나 그을리지 못한다.

“허무하군. 최강의 생물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한낱 미물인 인간에게 쫓겨 달아나는 꼴이라니.”

드래곤은 실의에 빠져 하늘을 향해 높이 날았다.

강철남과 멍구는 빌딩 숲을 가로지르며 놈의 궤적을 따라 달렸다.

“철남이, 저 새끼 어디로 튀는지 알아?”

“응, 대충.”

“어딘데?”

“북한산 구멍.”

“최대 출력으로 앞지르자.”

“오케이.”

그 순간 땅을 박차는 둘의 발바닥에서 신비로운 푸른빛이 솟구친다.

압도적인 마력에 휩싸여 새로운 스킬이 발동되었다.

[광속]

[광속]

파앗—

주변의 풍경이 일그러졌다.

산소가 연소되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둘은 내달렸다.

“X벌, 내 다리 왜 이래?”

“너, 너무 빠른데…….”

감당이 안 될 만큼 빠른 속도.

제어가 안 되는 속도다.

간신히 북한산에 다다른 그들.

브레이크 걸기가 어려워 바닥에 처박힐 뻔하다 간신히 버티고 선다.

하늘을 보니 드래곤은 아직 이쪽으로 향하는 모양이었다.

“철남이, 솥에 불 올려 두자구.”

“서두르자.”

강철남과 멍구.

정상을 향해 단숨에 치고 올라가는데,

잠시 산을 비운 사이 잡몹들이 활개를 치고 다닌다.

“우헤헤! 인간이다. 잘 먹겠…….”

파악—

“인간! 인간 고기다!”

쿠웅—

“개, 개고기다!!”

콰악!

주제도 모르고 덤벼 오는 잡몹들의 목을 썰며 중턱에 올랐다.

강철남은 바삐 움직여 솥에는 물을 붓고 무쇠 팬에는 기름을 두른다.

멍구는 패 놓은 장작을 물어다가 화덕에 집어 놓고 불을 땐다.

“철남이! 상추는?”

“시간 없어! 이따 캐!”

녀석이 구멍으로 도망치기 전에 정상에서 기다려야 한다.

그때 하늘에서 수상한 굉음이 들려왔다.

“키에에에엑!!”

드래곤이 묘한 소리로 울부짖었다.

대체 뭐지?

위를 올려다보자 보인 것은 전신이 불길에 휩싸인 드래곤의 모습.

녀석은 몸 전체에 뜨거운 불길을 두른 채 엄청난 속도로 구멍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저 새끼, 필살기 쓴 모양이야!”

“먼저 간다!”

강철남은 필사적으로 달렸다.

여기서 [광속]을 썼다간 나무들이 날아가 산이 훼손될 것이다.

스킬 없이 정상까지 먼저 도착해야 한다.

자연인 강철남.

자연 보호와 안주 사수를 동시에 해내는 거다!

“비켜라 인간!!”

정상의 구멍에 다다르자 드래곤이 화력을 높여 돌진한다.

그 앞을 먼저 도착한 강철남이 막고 있다.

“넌 결코! 여길! 지나갈 수! 없다!”

마치 영화의 명대사를 읊듯 소리치며 불길에 휩싸인 몬스터를 단신으로 맞서는 강철남.

“끼에에에엑!!”

드래곤은 혼을 불살라 돌진했다.

산에서 올라오는 멍구는 ‘눈’을 통해 드래곤의 능력이 각성한 것을 보았다.

체내 에너지를 모두 발산한 녀석의 랭크는 R랭크.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철남이!”

강철남은 오른손 주먹을 꽉 쥐었다.

왼발을 앞으로 내딛고 허리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리며 있는 힘껏 스트레이트 펀치를 내다 꽂는다.

쿠쾅아아앙!!

드래곤과 강철남의 주먹이 정면충돌하는 순간,

북한산 정상에서 무시무시한 화염 기둥이 하늘로 치솟았다.

북한산을 배회하던 몬스터들이 두려움에 떨며 땅 밑으로 숨어들었고,

흔들리는 청수 폭포 뒤편의 게임장과 시장판에는 웅성웅성 소란이 일어났다.

푸른 하늘을 띄우던 대낮의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화염에 잡아먹힌 구름은 석양보다 벌겋게 타올랐고 대기는 더운 열기로 후끈해졌다.

“저게 대체…….”

북한산을 향해 달려가는 헌터들은 산꼭대기에 일어난 하늘의 변화를 보고 기겁을 한다.

“드래곤이 엄청난 기세로 돌진하는 광경까지는 봤는데.”

“그다음에는 어떻게 된 거지?”

“드래곤은? 구멍으로 돌아갔나?”

속도를 낼 수 있는 파견팀장들이 [초신속]으로 먼저 북한산에 도착했다.

방금의 대폭음은 아무래도 불길했다.

“철남 씨!”

한지영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단숨에 산을 올라간다.

다른 헌터들도 뒤쫓아 서둘렀다.

드래곤.

지금까지 봐 왔던 어떤 몬스터보다 강했다.

녀석의 존재 자체가 재앙으로 느껴졌다.

아무리 강철남이라도 녀석을 당해 내지는 못할 것 같았다.

상대가 너무 강해, 그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헌터들이 무기를 꽉 쥐고 산 중턱에 올라와서 본 광경은,

“다들 한 점씩들 하시구랴.”

강철남이 드래곤을 굽고 있는 모습이었다.

기름칠한 무쇠 팬에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는 드래곤의 꼬리를 보자 허탈함에 헛웃음마저 나온다.

“철남이, 술 지금 딸까?”

“기다려. 아직 안 익었어.”

그 파괴와 재앙의 화신이었던 드래곤이 가죽이 벗겨진 채 발라당 뒤집혀 있다.

“강철남 씨, 당신이라는 사람은 대체.”

홍태진은 생각하기를 그만뒀다.

도저히 상식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사람이니까.

“꼴이 엉망진창이구만. 앉아서 먹고들 가슈.”

“하하하. 우리는 그런 거 못 먹는 거 아시잖습니까.”

백진섭은 손을 저으며 사양했다.

그러자 강철남의 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정화]

몬스터의 기운을 지운 드래곤의 고기가 완성되었다.

“거기 따로 빼 둔 건 먹어도 안 죽으니 뜨뜻할 때 드쇼.”

드래곤의 고기라니.

엄청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정말 먹어도 되나 싶은 생각에 선뜻 손을 대지 못하는데.

“에잇.”

“앗, 한 팀장!”

이미 강철남의 정화 능력을 본 적 있는 한지영이 고기 한 점을 냅다 삼킨다.

“어, 어때?”

“끝내줘요!”

최고다!

쫄깃한 살코기에 터져 나오는 육즙.

담백함에 어우러지는 소금과 후추 간.

두 번 다시 소나 돼지고기는 못 먹을 것 같다.

망설이던 헌터들이 하나둘 고기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마당은 어느새 소소한 잔치 분위기가 되었다.

“철남 씨, 이번에도 감사했어요.”

“됐소. 나 좋자고 한 일이니까.”

“다치신 데는 없어요?”

“걱정하는 거요, 나를?”

둘은 재밌다는 듯 웃는다.

한지영은 슬쩍 강철남의 옆자리에 앉아 본다.

“아까 드래곤이 홍 팀장님에게 그랬대요. 몬스터들이 인간계로 넘어오는 이유는 그저 살아가는 장소를 넓히는 행동에 불과하다고요.”

“인간들과 다를 바 없군.”

“그렇죠? 이 드래곤은 서울을 둥지로 삼으려고 했었나 봐요. 용신 크레톤이라는 세 번째 마왕을 이기고 싶어서요.”

“용신. 세 번째 마왕.”

“마왕이라니… 무섭지 않아요? 몬스터들의 왕이잖아요.”

한지영은 마왕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상상했다.

분명 엄청 끔찍한 존재겠지, 하고 몸을 떨었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 의외로 인간적인 면이 있어.”

“네? 그게 무슨… 혹시 마왕을 만나 보셨어요?”

“응. 네 번째 마왕, 카르텔. 내 술친구야.”

푸흡!

순간 헌터들의 입에서 씹다 만 고기가 뿜어져 나온다.

누구와 친구라고……?

강철남.

대체 당신 정체가 뭐야?

충격적인 소리를 들은 홍태진은 입에 넣은 고기를 뱉어내고 달려온다.

“강철남 씨! 마왕에 관해 이야기를 해 주십시오! 녀석들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걔네들? 마왕군끼리 마계를 두고 누가 먹을 건지 싸우던데.”

“그럼 우리 인간계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나도 몰라. 몬스터들이 심심하면 쳐들어오는 동네북인 거지.”

강철남의 말에 헌터들이 동요했다.

이 대화가 끊기고 홍태진과 강철남의 머릿속에는 각기 다른 생각이 떠올랐으니.

홍태진은 마왕군이 쳐들어올 경우를 대비해 더욱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반면에 강철남은 드래곤과 전설의 술 장인이 있다는 세 번째 마왕의 도시 크레톤으로 맛집 탐방을 떠나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강철남 씨. 저 드래곤의 이빨과 가죽을 저희에게 주실 수 없으십니까? 값은 무엇이 되었건 다 치르겠습니다.”

홍태진은 머리를 깊이 숙였다.

파견팀장이 머리를 숙이자 나머지 헌터들도 부랴부랴 달려와 함께 머리를 숙인다.

“머리들 들어. 그런 거 딱 질색이니까.”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먹지도 못하는 부위는 딱히 필요 없으니 가지쇼. 그 대신 조건이 있소.”

“뭡니까?”

홍태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돈, 권력, 명예. 모든 것을 생각했다.

그가 원한다면 국가의 막대한 재산을 떼어 줄 수도 있다.

강철남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남자니까.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