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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 자연인이다-38화 (38/175)

38화 엘프 처자 마법 쓰신다

* * *

살롱 소나의 뒷골목.

한 명의 인간과 한 마리의 개가 서 있고,

그 앞에 웬 커다란 리저드맨이 대가리를 박고 있다.

“그래서. 이야기를 정리해서 다시 지껄여 봐.”

“네. 그러니까 저는 탐색 스킬을 통해 형님네 집에서 구들이란 물건을 발견했죠. 그리고 마법을 부릴 줄 아는 엘프랑 구들 판 값을 반띵하기로 하고 눈보라를 일으켜 구들을 훔친 겁니다.”

“흐음.”

리저드맨의 실토를 들은 강철남.

이 말이 사실이라면 잡아야 할 녀석이 리저드맨 하나뿐이 아니다.

“귀찮게 됐군. 철남이, 이 새끼 도마뱀 구이로 구워 먹자.”

“히익!”

입맛을 다시는 멍구의 말에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 부들부들 떠는 리저드맨 엘링.

“너 이 새끼. 너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뺑이를 쳤는지 알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형님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철남이. 이런 말 믿으면 안 돼.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손버릇 나쁜 놈들은 갱생이 불가해.”

“흑흑. 다시는 안 할게요. 착하게 살게요.”

“너 뭐, 도둑질 관두면 먹고 살 다른 재주는 있냐?”

“어, 없는데요.”

“대책도 없으면서 뚫린 입으로 아무 말이나 하고.”

멍구가 엘링의 대가리를 퍽 친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용서받고 싶나?”

“일생일대의 소원입니다!”

“그럼 그 마법을 쓴다는 엘프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강철남은 엘링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공범이 있는 곳을 안내하게 해 일망타진할 생각이었다.

“그게, 구들을 넘긴 이후에 헤어져서 저도 행방을 모릅니다.”

“모르면 다야?”

멍구가 다시 앞발로 엘링의 머리통을 후려갈긴다.

“아이고. 정말 모릅니다.”

강철남은 엘링을 일으켜 세운다.

무슨 일인가 싶어 긴장하는 엘링.

그의 눈을 빤히 노려본다.

“저, 저 형님?”

“거짓말하고 있구나.”

엘링의 흔들리는 동공을 읽어 낸 강철남.

녀석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간단히 간파해 낸다.

“어쩔 수 없군. 선택은 네가 했다. 여기까지가 네 삶의 종지부인 모양이군.”

엘링의 모가지를 덥석 잡는 강철남.

이대로 힘을 주면 엘링은 즉사.

“켁! 자, 잠시만요, 형님!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손에 힘을 풀자 녀석이 스르르 땅에 쓰러진다.

“진작 이렇게 나왔으면 좀 좋아? 꼭 분위기 험악하게 만든다니까.”

멍구가 이번엔 어깨를 토닥여 준다.

“엘프 녀석은 북한산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뭐? 북한산에는 왜?”

녀석의 입에서 나온 장소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왠지 불안감이 엄습한다.

“애초에 형님네 집에서 구들을 훔쳤던 것도 두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첫 번째는 몬스터를 향한 적개심, 두 번째는 원정에 필요한 자금 확보.”

“가만 보자. 그럼 엘프 녀석은 우리 집을 몬스터의 집으로 착각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엘프 녀석은 인간계에 있는 몬스터를 쓸어 버리고 싶어 했습니다. 몬스터 정벌을 위한 원정을 꾸리려는 거죠.”

“그렇다면 지금쯤 북한산에서 우리 집을 비롯한 산 주변의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있다는 건가?”

“그보다 더한 짓을 할 겁니다. 아마…….”

“아마?”

“구멍을 막으려 할 겁니다.”

구멍을 막는다고?

“…….”

“철남이!”

멍구가 머리를 스쳐 가는 아찔한 생각에 소리를 지른다.

“썅! 뛰어!”

바로 ‘초신속’과 ‘한계 돌파’를 발동하는 강철남.

“헉 X벌, X나 빠르네. 에라 모르겠다!”

[한계 돌파]

냅다 한계 돌파를 써 보는 멍구.

해 보니 또 된다.

둘은 미친 스피드로 카르텔을 벗어나 황무지를 달려 나간다.

머릿속에 울려 대는 비상벨.

지금 구멍이 닫힌다면 꼼짝없이 여기에 갇히는 신세다.

자연인 강철남.

산과 계곡이 없는 마계에서 살라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 * *

엘프 원정대는 북한산으로 향했다.

마계의 서쪽 땅끝에서 살아가는 엘프족들은 마왕의 눈을 피해 조용히 살아가는 종족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천성이 선한 엘프들은 마계의 몬스터들과 어울리지 못했기에 그들은 소수민족으로서 조용히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 마계에 구멍이 뚫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구멍은 인간 세상과 연결된 구멍.

마계의 몬스터들은 구멍을 통해 인간 세상으로 넘어가 인간을 잡아먹고 그 세계를 정복하고자 하는 흉계를 꾸몄다.

“인간들이 무너지는 걸 지켜볼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와 무관한 일이다. 괜히 나설 일이 아니야.”

정의로운 성격의 엘프 세레나는 구멍을 막고자 했다.

대다수의 엘프들이 반대했지만 그의 뜻에 따르는 엘프들 또한 적지 않았다.

“저는 이미 더럽혀졌습니다. 몬스터와 거래를 했습니다.”

세레나는 북한산 탐색 중 한 리저드맨과 거래를 하였다.

나무 집에 산다는 몬스터의 물건을 훔치는 일에 가담한 것이다.

이 사실을 고백하자 많은 엘프들이 그를 비난했다.

“넌 더 이상 내 딸이 아니다.”

세레나의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딸을 매몰차게 대했다.

“아버지.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서 괴물이 된 저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다만 엘프 종족을 위해서였다는 걸 꼭 기억해 주십시오.”

세레나는 그를 따르는 엘프들과 함께 원정을 나섰다.

목표는 북한산의 구멍을 막는 일이다.

리저드맨과 거래를 한 덕에 자금은 충분했다.

그 덕에 원정은 수월했다.

마을을 지날 때 받아야 했던 몬스터들의 눈총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세레나는 마계의 사악함이 인간 세상을 더럽히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그 목표 하나만을 생각했다.

그 올곧은 심지 하나로 흔들리는 각오를 다잡을 수 있었다.

“여기가 구멍이에요.”

마침내 북한산으로 통하는 구멍을 발견했다.

세레나와 그의 추종자들은 구멍을 넘었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 북한산으로 빠져나왔다.

“마물들의 냄새가 코를 찌르는구나.”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사악한 기운이 더 강해져 있었다.

이미 인간계라고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뭔가가 다가옵니다.”

한 엘프가 세레나에게 속삭인다.

산 아래에서 엘프의 냄새를 맡은 고블린 무리가 올라오고 있었다.

“킥킥. 야들야들한 엘프 냄새다.”

“오늘은 포식 좀 하겠는데?”

더러운 고블린의 냄새에 세레나는 코를 찡그렸다.

“하찮구나.”

[불길]

세레나는 손에서 불길을 일으켜 고블린들을 태워 버린다.

순식간에 잿더미가 된 고블린들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바람에 날려 흩어졌다.

“그럼 이제 구멍을 막도록 해요.”

세레나와 엘프들은 구멍을 둘러싼 채 자리를 잡고 섰다.

그리고 손끝에 마력을 집중시켜 구멍을 향해 봉인 마법을 걸기 시작한다.

[봉인]

엘프들의 마력이 모여서 점점 거대해진다.

북한산 정상에 피어오르는 푸른빛.

성스러운 엘프의 염원과 힘이 마계와 인간계를 이어 주는 통로를 끊어 내려 한다.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어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내려는 순간,

파앙!!

“세, 세이프!!”

웬 인간 한 명과 개 한 마리가 구멍에서 미사일처럼 쏟아져 나왔다.

“뭐, 뭐야?!”

세레나는 놀라서 뒤로 나자빠졌다.

다른 엘프들이 서둘러 그녀를 일으키러 달려가지만 시선은 구멍에서 튀어나온 둘에게 집중해 있다.

“우와, 하마터면 늦을 뻔.”

“평생 도마뱀 구이만 먹고 살 뻔했구만.”

구멍이 닫히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통과한 강철남과 멍구.

몸에 묻은 흙을 탈탈 털어 내며 일어선다.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웬 이상한 녀석들이 자기들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무슨 구경 났소?”

자세히 보니 인간도 몬스터도 아니다.

얼핏 보기에는 인간을 닮았고 아름다운 여자로 보였지만 달랐다.

큰 키에 백옥같이 하얀 피부.

뾰족한 귀에 오뚝한 코, 푸른 눈동자.

입술은 분홍빛 촉촉한 기운이 감돌고 가느다랗고 긴 목이 우아함을 한층 더했다.

“당신은 누구죠? 어째서 구멍에서 나온 거죠?”

세레나가 침착하게 물었다.

인간이 어째서 구멍에서 나온 건지 이해가 안 됐다.

“잠깐 마계에 들릴 일이 있어서.”

“인간이 마계에? 당신 정말 인간 맞나요?”

“그럼 오크로 보이오? 하긴 요즘 먹기만 해서 살이 좀 쪘나.”

“능청 부리지 마요. 당신은 몰라도 저 개는 평범해 보이지 않아요. 아까 말을 하는 걸 들었거든요.”

“요즘같이 미쳐 버린 세상에 개가 말하는 것쯤은 애교 아니여?”

멍구가 일리 있는 말로 대꾸한다.

“당신들에게서는 마력이 느껴지는군요.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인간과 개로 보이지만 속은 알 수가 없는 자들이에요. 정체가 뭐죠?”

“자연인 강철남이랑 그냥 개요.”

“그냥 개라고 하지 말고 나도 별명 붙여 줘.”

섭섭한 듯 멍구가 깡충대며 강철남에게 매달린다.

진지하게 대화를 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둘.

세레나는 여기에 장난을 치러 온 게 아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이 구멍을 막을 거예요. 인간이라면 얌전히 돌아가고 그게 아니라면 마계로 돌아가세요.”

“구멍은 왜 막는데?”

“마계와의 연결을 끊을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 산의 몬스터들을 소탕할 예정이죠.”

“그럼 너희는 어떻게 돌아갈 건데?”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에요.”

꼬치꼬치 캐묻는 강철남.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구멍을 막는 일에 반대인데 말이야.”

“네? 당신은 인간 아닌가요? 그런데 몬스터가 나오는 구멍을 열어 두자는 건가요?”

“사실 내가 몬스터를 먹으면서 살아가거든. 구멍이 막히면 냉장고가 텅 빈 느낌이랄까.”

“뭐라고요?!”

강철남의 어이없는 충격 발언에 세레나는 물론 다른 엘프들까지 술렁인다.

“몬스터를 먹는다고요? 장난하지 마요. 몬스터를 먹었다간 당신 몸이 산산조각이 날걸요?”

“거참, 속고만 살았소? 꼬우면 믿지 말던지.”

“역시 허풍이었군요. 그만 가세요. 우리는 구멍을 막아야 하거든요.”

“그만두라고 했을 텐데. 나는 국가에서 이 산 소유를 허가받은 사람이야. 당신들이 무슨 권리로 내 산을 멋대로 한다는 거지?”

간만에 맞는 논리로 받아치는 강철남.

그러나,

“세계의 정의를 위해서입니다.”

세레나의 말은 뒷받침할 논거가 없다.

“이 새끼! 결국 지 맘대로 하겠다는 거 아냐?”

참다못한 멍구도 버럭 한다.

“당신들 인간을 위한 일이에요! 몬스터가 인간계에서 행패를 부려도 좋다는 건가요?”

“그럼 도시로 가서 큰 구멍이나 막아. 여기 작은 구멍은 내 음식 저장고라고.”

“큰 구멍?”

“철남이. 이 뾰족 귀 아가씨, 큰 구멍이 뭔지 모르는 거 같은데?”

정말 모르는 눈치다.

“큰 구멍은 잡몹 전용 통로다. 큰 구멍을 통해 내려온 잡몹들이 도심지에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히지. 작은 구멍은 그나마 좀 센 놈들 전용 통로. 산 아래로는 못 내려간다.”

“그럴 수가.”

“알아먹었으면 큰 구멍이나 막으러 가. 여기는 내 산이야.”

“아니요, 이걸로 확실해졌어요. 작은 구멍으로 나온 몬스터가 산 아래로 내려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저는 이걸 막겠어요.”

“어휴, 이 답답한 처자.”

세레나는 마력을 집중시켜 다시 봉인 마법을 끌어 올린다.

그 순간 강철남이 세레나의 팔을 콱 잡는다.

“왜 방해하는 거죠, 인간? 당신들 인류를 위한 일이에요.”

“인류가 어찌 되든 상관없어. 여긴 내 산이야.”

“이기적이로군요.”

“꼬우면 이겨 보던가.”

그러자 세레나는 한 걸음 물러나 강철남을 노려본다.

“인간과는 싸우지 않으려 했어요. 하지만 정의를 가로막는 자라면 눈물을 머금고 쓰러뜨리겠어요.”

“지가 생각하는 정의만 옳다고 믿는 놈이 제일 위험해.”

멍구가 간만에 옳은 소리를 한다.

[불길]

세레나의 손에서 불길이 퍼져 나간다.

뜨거운 화염은 강철남을 둘러싸고 활활 타올랐다.

“안 될 새끼네 이거. 담배꽁초 하나에도 일어나는 게 산불인데 화염방사기를 쏴?”

“어떻게 이럴 수가?!”

너무나도 멀쩡한 강철남을 보고 놀라는 세레나.

“당신, 마력을 지닌 건가요?”

“마력?”

“철남이. 우리 그 뱀술 마신 이후로 마력이 생겼나 봐.”

“호오, 마력이 있으면 마법이 안 통하는 건가?”

세레나는 다시 한번 힘을 끌어 올린다.

“만약 제 마력보다 높다면 말이죠.”

[눈보라]

세레나는 차갑고 혹독한 눈보라를 일으켰다.

엄청난 추위가 강철남과 멍구를 한꺼번에 덮쳤다.

그러나 마왕 카르텔의 꼬리로 뱀술을 담가 마신 그들의 마력은 세레나와 비교도 안 될 만큼 높다.

춥다는 생각 대신 떠오르는 생각은 단 하나,

“너구나? 우리 집에 눈보라 일으킨 X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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