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최강 자연인이다-37화 (37/175)

37화 도둑놈은 머리통을 부셔야지

강철남의 손날이 푸른빛을 내면서 허공을 가른다.

부드럽게 공기를 가르는 손날은 그대로 마왕의 꼬리에 닿는다.

과연?

싹둑—

“잘렸다.”

“오옷.”

하마터면 환호를 지를 뻔했다.

강철남과 멍구의 소리 없는 아우성.

완전히 술에 곯아떨어진 카르텔은 미동도 없다.

강철남의 진심이 담긴 수도치기가 통증 없이 깔끔하게 뱀의 꼬리를 도려내었다.

“근데 뱀술을 제대로 담그려면 대가리를 썰어야 하는 거 아냐?”

“그랬다간 우리가 술독에 담길걸. 이걸로도 충분해. 명색이 마왕 꼬리인데 제법 효능은 있겠지.”

뭐, 사실 근거는 없다.

다만 잡몹의 머리보다 왕의 꼬리가 더 좋겠지.

“이제 어떡하지?”

“저 중에 제일 좋은 술에다 담그자.”

멍구가 가리킨 건 카르텔이 가져온 고급술 컬렉션.

강철남은 술병을 들고 고민해 본다.

럼, 리큐르, 위스키, 브랜디는 담금주로 부적합.

보드카도 왠지 아니고, 진도 뭔가 아쉽다.

사케나 고량주도 있었으나 이 또한 확 끌리는 느낌이 없었다.

“철남이, 이것 봐.”

고민하고 있을 때 멍구가 앞발로 콕콕 찌르며 부른다.

돌아본 그곳에는 하늘에서 점지해 둔 듯한 안성맞춤인 술이 있었다.

“용화주?”

용화주.

라벨을 읽어 보니 용이 뿜어낸 불로 증류한 술이란다.

멋진 이름에 화려한 병.

마왕 담금주로써 딱 들어맞았다.

“도수는 가만 보자… 100도?”

“식도 녹아내리는 거 아냐?”

“이걸로 가자. 인생 뭐 있겠어.”

100도의 용화주를 품에 챙기고 방으로 돌아온다.

용화주의 뚜껑을 열자 억눌려 왔던 100도의 알코올 향이 퍼지더니 방안을 무섭게 뒤덮는다.

“크윽! 코가 아파!”

후각이 예민한 멍구는 검은 코를 부여잡고 엎드린다.

냄새만으로도 인사불성 취해 버릴 것 같다.

“엄청난 파괴력이군. 마왕의 꼬리를 담그기에 부족함이 없는 술이야.”

뿜어져 나오는 술기운에 눈이 아릴 정도다.

강철남은 강한 술기운을 꾸역꾸역 버티며 마왕의 꼬리를 병 주둥이에 가져다 댄다.

“담근다.”

퐁당—

마왕 카르텔의 뱀 꼬리가 용화주에 빠졌다.

술에서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오더니 갑자기 뱀 꼬리의 절단면에서 녹색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철남이, X바 갑자기 뱀술이 매생잇국이 되는데?”

“젠장, 비주얼 한번 심각하네.”

대체 무슨 일이람?

뱀술은 마치 걸쭉한 녹색 채소즙처럼 변해 버렸다.

냄새도 달라졌는데 순도 100% 알코올이 아닌 마치 톡 쏘는 독성 물질이 첨가된 듯한 강렬한 비린 향.

“어쨌든, 뱀술 완성인 것 같은데.”

“이게 뱀술이라고? 그래, 그럼 마셔 보자.”

“인간 먼저. 짐승은 항상 뒤 순서지.”

“평소에도 사람대접을 그렇게 좀 해 줘 봐.”

심호흡을 크게 한다.

마왕의 꼬리로 담근 뱀술.

충격적인 비주얼과 독한 냄새.

설렘일까 두려움일까.

원인 모를 기분에 심장이 두근두근대는 무서운 술이다.

“멍구. 내가 좋아하는 말이 뭔지 아나?”

“‘산에서 나는 것 치곤 나쁜 건 없다’잖아.”

“또 있어. 바로 ‘음식을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자’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선 넘는데 싶은 멍구.

그러나 말릴 틈도 없이 병나발을 부는 강철남.

“어? 어어! 철남이!”

벌컥— 벌컥—

꿀꺽—

“…….”

“키야아!!!”

거친 아재 탄성을 내뱉는 강철남.

그 후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어때?”

“생각보다 마실만 해.”

“진짜?”

“보양주 특유의 맛이 느껴져. 벌써 몸이 가벼워. 10대로 돌아간 기분이야.”

“나도 줘 봐.”

강철남의 손에서 병을 낚아채 병을 물고 병나발을 부는 멍구.

벌컥— 벌…….

“우웁!”

뭔가 이상하다.

“푸하!”

“껄껄껄.”

“이 새끼, 날 속였어! 이거 완전 걸레 빤 물이잖아?”

“몸에 좋은 건 입에 쓴 법이지.”

“이건 개도 못 먹는다. 최악이야.”

멍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내려놓은 병을 다시 집어 원샷 때리는 강철남.

“미쳤어? 그걸 왜 다 마셔?”

“증거 인멸은 해야지.”

그러고선 병 안에 빠뜨린 뱀 꼬리까지 건져 내 질겅질겅 씹어먹는다.

“누렁이 입맛보다 더한 새끼라니까.”

“으아. 쥬타.”

“우웩! 입 열지 마. 하수구 냄새나.”

맛에 취해 못 느꼈는데 이 술의 도수는 자그마치 100도.

뒤늦게 엄청난 취기가 밀려온다.

“X바,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아.”

“여기저기 오바이트하지 말고 그만 퍼질러 자자.”

배를 부여잡고 어기적어기적 침대로 기어가는 강철남.

그대로 쓰러져 침대에 등을 대자마자 잠이 든다.

한밤중,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고는 강철남의 몸에서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 * *

똑— 똑— 똑—

이른 아침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숙취에 머리가 깨질 줄 알았건만,

“머리가 이상하게 개운한데. 몸도 가볍고.”

강철남은 놀랄 만큼 몸이 가벼웠다.

저절로 눈이 번쩍 뜨였다.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 보니 카르텔의 시종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멍구, 일어나.”

“음냐…….”

“밥 먹자!”

“밥?!”

밥 소리에 눈이 번쩍 뜨이는 멍구.

헐레벌떡 열린 문틈으로 뽈뽈 기어간다.

여전히 기나긴 복도였다.

어젯밤에는 헐레벌떡 달려오느라 긴 줄도 몰랐지만.

식당에 도착하니 카르텔이 신문을 읽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분 모두 간밤에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응, 덕분에.”

카르텔은 어젯밤 술을 그렇게 부어라 마셔 놓고도 숙취 하나 없이 멀쩡해 보였다.

역시 마왕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어제는 정말 진탕 마셨습니다.”

“그러게. 나도 그렇게 마신 건 생전 처음이었어.”

“하하하.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얼마나 마셨으면 실수로 꼬리까지 잘려 나갔다니까요.”

뜨끔—

강철남과 멍구는 뜨끔해서 카르텔의 눈치를 본다.

떠보는 건 아닌 것 같다.

설마 인간과 개 손님이 마왕의 꼬리를 잘라 뱀술을 담가 먹었으리라 상상이나 하겠나.

“꼬리가 잘렸다고?”

“네. 취해서 기억은 안 나지만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기저기 넘어지고 찧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어디선가 꼬리가 잘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의사를 불러야 하는 거 아닌가?”

“걱정 마십시오. 꼬리는 다시 자라거든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카르텔.

역시 그 정도는 해내야 마왕이지.

“그나저나 꼬리라는 게 그렇게 쉽게 잘리나?”

“하하하. 지금은 전혀 아니지만 젊었을 적엔 술버릇이 고약했거든요. 도시를 하나 날려 버린 적도 있었으니.”

“망나니였구만.”

“그렇죠. 항상 빚이 있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 마계를 잘 사는 세계로 부흥시키려는 거구요.”

“그렇다면 먼저 이 카르텔을 시민들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도시로 만들어. 세계를 다스리는 건 그다음이야.”

“그렇군요. 어제 강철남 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먼저 천하를 다스리기에 앞서 제 도시를 온전히 가꿔야겠지요. 앗, 그 전에 제 몸 간수부터 잘해야겠군요. 마왕씩이나 되어 가지고 꼬리나 잘리다니. 하하하.”

강철남과 멍구는 접시에 코를 박고 아침을 먹었다.

카르텔과 눈을 마주치기가 머쓱했다.

“이거 맛있는데.”

괜히 요리를 칭찬한다.

해장 음식으로 살짝 매운 채소 스프가 나왔는데 아주 훌륭했다.

얼른 집에 가서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집이라.

집…….

“아.”

“왜 그러십니까, 강철남 님?”

“집 하니까 생각났어. 우리가 여기 온 진짜 목적.”

“진짜 목적이요?”

그래, 진짜 목적.

마왕이랑 술친구나 하려고 온 게 아니다.

강철남과 멍구가 이 마계의 머나먼 도시 카르텔까지 온 이유는…….

* * *

살롱 문이 벌컥 열린다.

대낮부터 손님들이 북적인다.

“여어, 소나! 나 왔어. 빵이랑 스튜 부탁해.”

“어서 와.”

상업 도시 카르텔의 3지구,

그곳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살롱 소나.

소나의 주인장인 젖소 수인 소나는 오늘도 바쁘게 손님들을 맞이한다.

도시 입구와 가까운 3지구답게 이방인들이 허다하게 드나드는 살롱이 바로 이곳 소나다.

그렇기에 트러블도 자주 생기는 편이다.

하지만 소나는 트러블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그건 소나가 축복받은 능력인 ‘눈’을 가진 몬스터이기 때문.

“야, 이 새꺄!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니, 대하이 형님 아나?”

이렇게 어김없이 시비가 붙을 때면.

“저기, 손님들. 이쪽 손님은 32레벨에 D랭크시고 저쪽 손님은 25레벨에 F랭크이십니다. 어떻게 싸워 보시겠어요?”

이렇게 친절히 서로의 상태창을 오픈해 주면,

“크흠. 뭐 다 큰 몬스터가 술 처먹고 싸움은 좀 아닌 거 같고.”

이런 식으로 언쟁은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그렇게 평화로운 하루를 시작한 오늘,

웬 이상한 손님 둘이 들이닥쳤다.

벌컥—

“여기 엘링이란 새끼가 누구냐?”

“X바, 있는 거 다 알고 왔어. 누구여?”

웬 처음 보는 이종족 한 명과 개 한 마리가 살롱 문을 열고 들이닥친다.

누군가를 찾는 것 같은데.

소란은 사양이다.

“미안하오, 주인장. 사람만 찾고 금방 가지.”

젊고 잘생긴 얼굴을 한 이종족은 정중하게 말했다.

살롱 안 손님들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된다.

겉모습으로만 봤을 때 그렇게 위협적인 존재로 보이진 않는다.

그래서일까 손님들이 코웃음을 친다.

“내가 엘링이다.”

그러자 구석 식탁에서 조용히 스튜를 먹고 있는 리저드맨이 일어서며 말한다.

“하여간 게임장에서도 그렇고 도마뱀 대가리 새끼들은 왜 다 양심이 터진 거냐.”

개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우리 종족을 모욕하다니. 너희는 뭐 하는 놈들이냐?”

엘링이 주먹을 꽉 쥐고 다가온다.

이종족에 비해 50cm는 더 큰 키에 우락부락한 근육.

설령 개까지 합세해 2:1로 덤벼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너지? 우리 구들 훔쳐 간 새끼가?”

“구들?”

“힌트를 주지. 눈보라, 스톤 골렘의 소재.”

“아하! 그거? 인간계에 탐사를 나갔다가 괜찮은 물건을 발견해서 챙겼지. 내가 가진 스킬이 비싼 소재는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스킬이라서 말이야.”

“마법을 부린 것도 너냐?”

“내가 그걸 왜 일일이 말해 줘야 하지? 그러고 보니 너 인간이구나?”

인간?

인간이라는 소리에 살롱 안이 소란스러워진다.

다들 인간은 처음 보는 눈치다.

물론 소나도 살면서 인간을 본 적이 없다.

인간이란 저렇게 생겼구나.

잠깐, 인간이라면 어떤 몬스터보다도 약한 존재.

그렇다면 살롱에 피바람이 불 수도 있다.

“잠깐! 말로 하라구!”

소나는 엘링을 말려 본다.

하지만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구경꾼들도 이미 재밌는 광경을 보는 듯 열광의 도가니였다.

“상대는 인간이야! 손만 대도 죽을 거라구.”

“주인장, 말리지 마쇼. 여기는 마계야. 약육강식의 세계지.”

엘링은 손바닥을 높게 쳐들었다.

소나는 ‘눈’을 뜨고 엘링을 보았다.

[엘링

레벨: 47

힘: BB

맷집: CC

속도: B]

B랭크 몬스터다.

결코 약하지 않다.

인간은 목이 뜯길 것이다.

“도, 도망쳐 인간!”

하지만 전혀 도망칠 생각이 없는 인간.

다급한 마음에 그의 팔을 잡아채 보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어째서?

순간,

소나는 보았다.

그러자 스치는 생각,

이제 내 ‘눈’은 고장이 났구나.

그도 그럴 게 인간의 상태창이 말도 안 되었으니까.

[강철남

레벨: 312

마력: RS

힘: RS

맷집: RS

속도: RS]

엘링은 높게 쳐든 손바닥을 인간의 얼굴을 향해 휘둘렀다.

그런데,

짝, 소리가 안 난다.

어째서?

“어?”

살롱 안에 있는 모든 몬스터의 시선이 한 곳에 쏠렸다.

바로 엘링의 팔.

왜 저게,

90도로 꺾여 있는 거지?

“아아악!!”

엘링은 바닥에 쓰러져 비명을 지른다.

인간은 그를 짊어지고는 밖으로 나간다.

“소란 피워서 미안하오. 이걸로 이 친구 밥값 계산하고 남는 건 손님들한테 술이나 돌리쇼.”

그러고는 돈주머니를 하나 던져 주고 가는 인간.

살롱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몬스터들의 입에서는 봤어? 봤어? 하는 물음과 전혀 못 봤어, 하는 대답이 오갔다.

마귀에 홀린 듯한 기분이다.

소나는 넋을 잃었다.

저것이 정녕 가장 약한 존재란 말인가.

마계의 최강자 중 하나인 마왕을 넘어서는 상태창을 가진 존재가 정녕 저 인간이란 말인가.

소나는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돈주머니에 든 돈은 손님들의 술값은커녕 엘링의 밥값보다도 모자란다는 것을.

“…….”

‘계산하고 가 개놈들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