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마왕놈 거 참 되게 비싸게 구네
하마는 악어의 뒤통수를 연신 후려갈겼다.
그건 훈계도 조언도 뭣도 아니었다.
일방적인 구타에 불과했다.
악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마 듀크를 생각하고 있겠지.
그렇게 괴로움을 씹어 삼키겠지.
그게 가장이니까.
“으휴, 이 등신 새끼. 월급 다 토해 내.”
“죄송합니다…….”
무기력하게 굽신대는 악어.
철저히 을의 입장으로 사과밖에 할 말이 없다.
매일 반복되는 그런 일상,
그러나 지금 낯선 인물이 끼어든다.
“죄송은 니X 개뿔.”
강철남이 그들 앞에 우뚝 섰다.
“뭐야, 당신?”
“앗, 가, 강철남 씨. 여긴 어떻게?”
“뭐? 저게 강철남이라고?!”
놀란 악어와 더 놀란 하마.
“이봐 당신! 오랄 때는 안 오고 이제야 설렁설렁 나타나는 거야? 당신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깨졌는지 알아?”
하마가 뚱뚱한 팔뚝을 휘적이며 따지고 든다.
“깨졌다고? 이제부터 깨질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뭐? 뭐가 깨져?”
“네 놈 뚝배기.”
“무슨 헛소……·”
순간 하마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 마왕성이 거꾸로 뒤집혀 있는 거지?
그런 생각이 일순 스치고 난 뒤,
필름이 끊겼다.
쿠앙!!
강철남은 하마의 등 뒤로 돌아가 허리를 끌어안은 다음 뒤로 메다꽂는 저먼 스플래시를 시전했다.
하마는 그대로 흰자위를 드러내며 게거품을 물고 쓰러진다.
“가, 강철남 씨!!”
“악어 양반. 지금부터 소란스러워질 테니 썩 사라지쇼.”
“그게 무슨…….”
“뚝배기 깨지고 싶소?”
“히익! 수, 수고하세요!”
꼬리가 빠져라 헐레벌떡 달아나는 악어.
“아빠!”
“아니, 듀크 아니니? 어째서 여기에 있니?”
“철남 씨 가이드를 해 줬어요.”
악어와 듀크는 벽 뒤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마왕성 정문과 당당히 마주 서 있는 강철남을 바라본다.
“여어, 철남이. 노크 소리가 요란하군.”
“성이 보통 커야 말이지. 아직 마왕이란 놈이 기어 나오질 않는 거 보니 좀 더 크게 두들겨 줘야겠는데.”
강철남과 멍구가 마왕성 정문 가까이 다가가자 소란을 들은 오크 경비병들이 몰려왔다.
“웬 놈이냐!”
“손님이다.”
“개소리를.”
“개가 하는 소리니 틀린 말은 아니지.”
껄껄 웃는 멍구.
“말장난하지 마라, 이 개새끼야!”
“아무리 개라도 개새끼 소리를 들으면 기분 나쁘다구.”
멍구는 뒷다리로 땅을 팡, 차고 튀어 나갔다.
총알처럼 날아가는 멍구는 박치기로 오크 경비병들의 갑옷과 투구를 모조리 깨부순다.
“크윽, 무슨 개가 이런 힘을.”
쿠앙!
멍구의 뒷발 차기 한 방에 이빨이 서너 개는 날아다닌다.
순식간에 정문 앞이 조용해졌다.
정문 앞에는 한여름에 살충제를 맞은 모기떼처럼 오크들이 널브러져 있다.
엎어져 있는 오크 경비병들을 넘어 정문을 두드리려는 그때,
“손대지 마라!”
하늘에서 으르렁대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뭐야.”
목소리의 주인은 성벽 위에서 창을 꼬나쥐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용건 있으면 내려와. 목 아파.”
그것이 멍구의 비아냥에 발끈해 창을 날카롭게 세운 채 뛰어내렸다.
정확히 멍구의 머리를 노리며 떨어지던 녀석의 창은 땅에 꽂히고 만다.
“흥, 피하다니.”
먼지를 가르며 나타난 자는 사자 수인.
목덜미에 돋아난 갈기에서 용맹함이 묻어났다.
“제법 멋진 갑옷을 입었구만.”
멍구는 남달라 보이는 녀석의 상태창을 확인해 봤다.
[경비대장
레벨: 142
힘: SSS++
맷집: SSS++
속도: SSS++]
“오호, 철남이. 얘도 한 따까리 좀 하겠는데.”
경비대장은 창을 다시 겨눈 채 묻는다.
“너는 인간이로구나.”
“인간을 아나?”
“나는 카르텔 마왕성의 경비대장. 평범한 몬스터와 같다고 생각하지 마라.”
“짬밥 좀 먹은 모양이군. 잘 됐다. 마왕 카르텔이 있는 곳으로 안내 좀 해 주라.”
“마왕님의 존함을 함부로 거론하다니. 건방지군.”
[초신속]
폭발적인 스피드로 창을 찌르는 경비대장.
하지만 창끝은 아슬아슬하게 강철남의 귀 옆을 스친다.
[집중]
집중 스킬을 발동한 경비대장.
무서울 정도로 집중력을 끌어올려 강철남의 빈틈을 향해 찌르기 공격을 퍼붓지만 전혀 맞지 않는다.
[충격]
이번엔 창을 높이 들어 아래로 세차게 내려친다.
바닥에 커다란 충격파가 일어나며 강철남을 밀어낸다.
“끝이다.”
[일격]
전신의 힘을 끌어모아 창끝에 담아 찌르기를 날린다.
혼신의 일격이 강철남의 안면을 노리는 순간,
챙그랑!
강철남은 창을 이로 물어뜯어 버렸다.
“뭐라고?!”
중심을 잃고 기우뚱하는 경비대장의 얼굴을 노려 잽 한 방을 날리는 강철남.
퉁—
“크억!”
경비대장은 휘청이며 코에서 피를 뿜는다.
가벼운 잽 한 방이지만 버텨 낸 경비대장.
제법 근성이 있는 녀석이다.
“마왕님께 절대로 갈 수 없다!”
부러진 창을 내던지고 맨손으로 강철남에게 달려드는 경비대장.
그 순간이었다.
“들라 하라.”
마왕성 전체를 울리는 웅장한 목소리.
마치 성이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 음성이 나오자 경비대장은 무릎을 꿇고 마왕성을 향해 머리를 조아린다.
“명 받들겠습니다.”
근엄하게 말하는 경비대장.
“이쪽으로 오지.”
“이 새끼, 다중 인격이야? 태도가 갑자기 싹 변하는데?”
180도 달라진 경비대장의 태도에 멍구가 깐족댄다.
“마왕님이 들라 하신 이상 너희는 마왕님의 손님이다. 사적인 감정은 없어.”
“얘 진짜 프로네.”
감탄하는 멍구였다.
한편, 강철남과 멍구가 마왕성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악어와 듀크.
왠지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 * *
마왕성에 들어선 강철남과 멍구.
영화에서나 볼 법한 화려한 궁전 내부다.
천장에는 태양을 가져다 놓은 샹들리에가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고 바닥에 깔린 카펫은 한 올 한 올 섬세한 무늬를 수놓고 있었다.
몇몇 창문은 포인트로 스테인드글라스를 그려 놓아 심플한 창문에 포인트를 주었다.
“미적 감각이 훌륭하군.”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넌 먹을 거 생각뿐이지?”
“개가 그렇지 뭐.”
경비대장의 안내를 받으며 긴 복도를 걷는다.
걷는 게 지루할 만큼 넓은 성안.
그래도 곳곳에 걸려 있는 미술 작품들을 보느라 따분한 줄 몰랐다.
“언제까지 가야 해?”
반면에 걷는데 질려 버린 멍구가 투정을 부린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켕. 그 소리만 세 번째야.”
“다 왔다. 저기다.”
경비대장이 가리킨 곳은 평범하게 생긴 문이었다.
마왕이 머무는 방치고는 평범한 문처럼 보였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원형 계단이 하나 덩그러니 있는데.
“이 계단을 올라가면 마왕님이 계실 거다.”
“너는 같이 안 가?”
“사업 얘기를 하는데 경비대장이 있을 필요는 없다.”
“사업 얘기?”
“마왕님의 손님이 사업 파트너 말고 달리 있겠나.”
경비대장은 계단 앞에 서서 경호를 시작했다.
사업 얘기라.
아무래도 마왕이 뭔가를 요구해 올지도 모르겠다.
둘은 계단을 올라간다.
도무지 끝이 안 보이는 계단을.
“철남이, 아까부터 X나 뺑이만 치는 것 같은데.”
“만나면 마왕이고 뭐고 싸다구 한 대 후리고 시작하자.”
마침내 계단을 끝까지 다 오른 둘.
멍구는 헥헥대며 숨을 몰아쉰다.
그들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넓은 방과 서재. 그리고 큰 테이블과 늘어선 의자.
마계의 땅을 그린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지도.
무수히 쌓인 종이와 펜.
주전자와 차 통, 그리고 다과.
마치 사무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목적이 분명해 보이는 방이었다.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모습을 감춘 채 서재 뒤에서 누군가 인사를 건넸다.
성을 울려 대던 그 목소리였다.
다만 평범한 볼륨으로 나긋하게 읊조렸다.
“X나 먼 길이었어. 무슨 성을 이렇게 크게 만들어 놓은 거야?”
“하하하. 뭐든 크면 좋은 법이지요. 과시도 할 수 있고 미술품도 많이 보관할 수 있고요.”
멍구의 투덜거림을 호탕하게 받아치는 목소리의 주인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데.
“네가 마왕이냐?”
“그렇습니다.”
마왕 카르텔은 뱀의 머리를 한 수인이었다.
손에는 찻주전자와 잔 세 개를 얹은 쟁반을 들고 있었다.
“마왕이 직접 차를 내와?”
“사업 얘기를 하는 방에 제3자를 들일 순 없으니까요.”
“아까 경비대장도 사업 얘기라는 말을 하던데 우린 사업 얘기를 하러 온 게 아니야.”
까칠하게 대꾸하는 멍구의 태도에도 카르텔은 여유롭게 찻잔에서 차를 따른다.
“찾으시는 물건이 있죠?”
그렇게 말하는 카르텔은 손을 슬쩍 들어 올린다.
그의 손바닥에 둥그런 구슬이 들려 있었는데 그 구슬 안에 뭔가가 있다.
“그게 뭐야?”
“자세히 들여다보시죠.”
강철남과 멍구가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우리 구들이잖아!”
“방바닥 전체를 뜨겁게 데우는 커다란 구들이 어떻게 저 조그만 구슬에 들어있는 거지?”
“신기하시죠? 이건 보관 마법입니다.”
“마법? 정말로 있었구나!”
멍구가 신기한 듯 깡충댄다.
“우리 물건과 마법 능력을 보여 줬다는 건, 우리에게 눈보라 마법을 걸어 구들을 훔친 게 너라는 걸 인정하는 거냐?”
강철남이 날카롭게 물었다.
카르텔은 차분히 차를 마시고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설명해 봐.”
“저는 왕궁으로 들어오는 무역상에게 이 물건을 샀을 뿐입니다. 아마 그들 중 하나가 여러분에게 마법을 걸고 물건을 빼앗은 게 아닐까요?”
“철남이, 이 새끼. 개구라 까는 거 아냐?”
“믿기 어려우시겠죠. 여기 물건을 거래했다는 영수증이 있습니다. 여기 보시는 바와 같이 저는 이 물건을 구매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판매자는?”
“엘링이라는 무역상입니다. 지금쯤 벌어들인 돈으로 어디서 술이나 마시고 있을 겁니다.”
엘링이라는 무역상은 아무래도 강철남을 얕본 것 같다.
설마 한낱 인간이 도둑맞은 물건을 찾으러 마계로 찾아와 마왕에게까지 달려들 거라곤 상상도 못 했을 테니.
“그렇다면 사업 얘기라는 건?”
“네, 이 구들이라는 물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상당히 흥미롭더군요. 바닥을 뜨겁게 달구는 건축 공학이라.”
“뭘 그리 거창하게.”
“아니, 멍구. 구들은 혁신적인 선조들의 문화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서 벽난로나 쬐는 도련님들에겐 충격일 것이다. 엉덩이부터 뜨끈해지는 극락세계는 말이야.”
강철남은 구들에 있어서 엄격 근엄 진지해졌다.
“그래서 카르텔. 당신이 요구하는 게 뭐요?”
“제 요구는 이 공법을 저희에게 판매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오오, 철남이. 이거 돈방석에 앉겠는데.”
“하하하. 물론이지요. 1억 골드. 어떠십니까?”
“미쳤다. 철남이, 당장 콜 불러.”
심장이 벌렁대는 멍구.
하지만 강철남은,
“거절하겠소.”
“아니, 철남이. 지금 설마 밀당하는 거야?”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카르텔은 흔들리지 않고 물었다.
“조건은 내 쪽에서 제시하겠소.”
“하하하. 그렇죠. 제가 건방졌군요. 말씀해 보시죠.”
강철남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마계 최고의 간장을 내놓으시오.”
마왕은 얼탱이가 없었다.
1억 골드 대신에 간장을 택한다고?
“이, 이봐요. 강철남 씨. 이해가 잘 안 가서 그러는데 간장이요?”
“그렇소. 당신네 부하가 내 집에 와서 깽판을 치는 바람에 간장독이 박살이 났거든. 마계 최고의 상업 도시 카르텔의 마왕이 가진 모든 인맥을 총동원해서 1억 골드가 아깝지 않을 간장을 가져오시오. 그게 내 조건이요.”
강철남의 말에 카르텔은 웃어야 하나 진지한 표정을 지어야 하나 난감했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런 인간은 처음이다.
“좋습니다. 내 책임지고 최고의 간장을 구해다 드리도록 하지요. 물론 최고로 훌륭한 장인이 만든 장독에 담아서요.”
“그래, 좋소. 계약 성립이오.”
강철남과 카르텔은 악수를 나누고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계약 조건에 강철남은 간장의 품질 보증서와 원재료 공개를 약속받았고 간장 맛이 불만족스러울 시 계약을 철회할 수 있다는 조항을 추가하였다.
상당한 수퍼‘갑’ 조약이었지만 카르텔도 자신이 있었기에 승낙했다.
강철남은 구들을 돌려받았다.
다만 구들을 바닥 밑으로 돌려놓을 마법사가 필요했다.
그건 추후에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 강철남의 머릿속에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떠오르고 있었다.
“자, 철남이. 이제 엘링인가 뭔가 하는 새끼를 조지러 가 봐야지.”
“멍구. 그 전에 할 일이 있어.”
“할 일? 뭔데?”
“저 마왕 카르텔. 뱀이지?”
“그렇지.”
“…….”
“…….”
“철남이, 이 X발, 너 설마?”
“꿀꺽.”
“야, 이 미친놈아! 정신 차려!”
“어쩔 수 없어. 자연인의 피가 끓어오르는 건.”
“또라이 새끼!”
“꼬리만이야, 꼬리만.”
멍구는 어이가 털린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왕을 뱀술로 담가 먹겠다는 정신 나간 소리가 나오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