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하여간 고블린들은 인생에 도움이 안 돼요
* * *
서울 헌터 연합은 다시 한번 큰 풍랑에 휘청였다.
3차 북한산 수복 작전에서 큰 피해를 입고 재정비에 들어갔다.
베테랑 헌터들은 사망, 혹은 부상으로 전선에 나설 수 없게 되었고,
신예 헌터들은 실력과 경험이 부족해 파견팀에 소속되어도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장비서, 자네 생각은 어떤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헌터 양성 프로그램. 취지는 좋아. 헌터 지망생들을 훈련 시켜 지금 남아도는 몬스터의 소재로 만든 무기까지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류를 위해 싸우는 병사들이 늘어나는 셈이지.”
“그만큼 전장에 나서는 젊은이들이 많아지죠.”
“가슴이 아픈 현실이구만.”
“하지만 싸우지 않으면 인류는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비겁한 침묵이 아니라 용감한 대항을 해야 합니다.”
장혜리는 인류의 생존을 생각했다.
더 강하고 의지력이 강한 사람들이 뭉쳐서 힘을 키워야 한다.
그래서 이번 헌터 육성 프로그램의 지도자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장혜리.
서울 헌터 연합의 비서.
부협회장 서필도의 측근에서 그를 보필을 맡는 이유가 있다.
그녀 역시 상당한 실력자이기 때문이다.
3차 북한산 수복 작전에 실패한 파견팀들이 돌아왔을 때 웬 캥거루 사체 한 마리를 짊어지고 왔다.
녀석의 소재는 놀라운 탄성과 힘을 지니고 있었다.
캥거루의 힘줄로 활시위를 만들어 쏘니 단단한 몬스터들의 가죽을 꿰뚫는 좋은 무기가 되었다.
장혜리는 그 활로 현장을 누비며 몬스터가 득실대는 던전으로 교육생들을 이끌었다.
“가장 훌륭한 스승이 뭐라고 생각해?”
장혜리는 교육생에게 질문을 던졌다.
“실력 있는 선생님입니다.”
“좋은 장비입니다.”
“정보력입니다.”
다양한 답이 나왔다.
마음에 드는 대답이 없었다.
그녀가 원한 정답은,
“경험이다.”
그러고선 장혜리는 던전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그러자 하급 고블린들이 우르르 달려 나오기 시작한다.
“우와악!”
“모, 몬스터다!”
훈련도 받고 무기도 들었지만 실제로 몬스터와 맞서 본 경험이 없는 교육생들은 패닉에 빠졌다.
“두려움을 없애고 몬스터의 머리를 베었다는 경험. 그것이 최고의 스승이다.”
장혜리는 고지를 점령해 화살로 교육생들을 지원했다.
정말 위급한 상황에 처한 교육생은 화살로 구해 주었고 스스로 이겨 낼 힘이 있는 교육생들은 직접 헤쳐 나가길 지켜보았다.
교육자로서 그들이 스스로 살아남기를 바랐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타인을 지킬 수 있는 법. 그것이 헌터다!”
장혜리의 화살이 오우거의 목을 관통한다.
커다란 오우거가 쓰러지면서 고블린들이 깔려 죽는다.
그녀의 솜씨에 감탄하던 교육생들은 분위기가 고무되어 훈련으로 쌓아 온 솜씨를 발휘한다.
한 사람의 시민이 어엿한 헌터가 되어 가는 순간이다.
던전.
몬스터들이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는 집단 공간.
서울 건물 지하 곳곳에 터를 잡고 형성한 몬스터들의 던전을 이렇게 하나하나 무너뜨려 나가는 것이 헌터의 일이다.
그것을 아마추어 교육생들이 무너뜨렸다는 것은 큰 화제가 되었다.
교육생들이 던전을 점령했다는 소식은 뉴스에 크게 보도되었다.
서울 헌터 연합의 위상은 물론 장혜리 역시 유명해졌다.
“모두 준비!”
장혜리는 계속해서 교육생들을 이끌며 던전을 무너뜨려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강남에 나타난 한 던전에 도전했을 때였다.
쿠구궁—
거대한 발구름 소리와 함께 진흙 골렘이 나타났다.
거대한 진흙 골렘은 교육생들이 상대하기에 벅찬 상대다.
장혜리는 기지를 발휘해 불화살을 쏘아 보지만 애초에 충격을 흡수하는 진흙에 타격점이 좁은 화살은 상성이 좋지 않았다.
후퇴해야 하나 고민하는 장혜리.
그 순간,
“뒤져라!”
쿠앙!
거대한 진흙 골렘이 한순간에 바스라지면서 쓰러졌다.
엄청난 검압을 날리며 날아온 자는 바로 김성남.
나머지 고블린을 검압으로 모조리 날려 버린다.
“기, 김성남?!”
“세상에, 정말 김성남 헌터님이야.”
“꺅, 나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야.”
“사인, 받아도 될까?”
인류 최강의 헌터로 알려진 김성남.
헌터 교육생들에겐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
하지만 그는 그런 세간의 관심 따윈 안중에도 없다.
진짜 인류 최강은 강철남이라는 괴물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말이다.
“김 팀장님. 출장 지도 감사드립니다.”
“흥. 애송이들 데리고 너무 나서지 마.”
“어머. 저흴 걱정해 주시는 거예요? 너무 스윗하시다.”
“실없는 소리도 어지간히 하고.”
김성남이 틱틱 대며 장혜리의 장난을 튕겨 낸다.
장혜리는 키키, 웃으며 그에게 다가간다.
“혹시 얻은 정보라도 있나요?”
“뭘?”
“알잖아요. ‘마왕’에 관해.”
“흥. 큰 구멍으로 나온 졸개들이 알고 있을 리 없지.”
“후후. 이러다가 강철남 씨에게 선수를 빼앗기는 거 아니에요?”
“마왕의 목을 치는 건 나다. 이 김성남이 마왕의 목을 들고 돌아와 인류가 이겼다고 선언해 주겠어.”
김성남은 구멍을 올려다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왕을 반드시 자기 손으로 쳐 죽이겠다고 다짐하면서.
* * *
한편, 진짜 마왕에게 살의를 품고 있는 인간과 개가 있다.
구들을 빼앗기고 눈보라까지 처맞은 처량한 신세.
코에는 고드름을 주렁주렁 달고 눈썹은 허옇게 얼어붙었다.
전신에는 싸라기눈이 덕지덕지 붙어 저체온증에 시달려 벌벌 떨며 산을 오른다.
“이, 이, 이, 개, 개, 개 새끼, 주, 죽인, 다…….”
“개, 개, 개 욕, 하지, 마…….”
입이 얼어서 말도 잘 안 나온다.
삐걱대는 관절이 다시 50대 나이로 돌아간 것만 같다.
멍구도 슬개골이 다시 고장 난 듯 부들부들 거린다.
그럼에도 오로지 구들을 훔쳐 간 녀석 잡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북한산을 오르고 또 오른다.
그렇게 어느덧 다다른 북한산 정상.
웬 몬스터들이 모여서 회의를 열고 있다.
종류도 다양하다.
늑대, 홉고블린, 스켈레톤, 구울.
“우리 호세 산적단은 끝인가?”
“호세 님이 말도 없이 사라졌으니 말이야.”
“크르르. 일단. 시장에 가서 인간의 피를 사는 거야. 그래서 산을 내려가 인간들을 닥치는 대로 물어 죽이자구.”
강경파로 보이는 늑대 한 마리가 사납게 으르렁댄다.
“인간 피 한 병에 20,000칩은 한다구. 그만한 돈이 어딨어.”
“상인을 물어 죽이자.”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시장에서 깽판 치면 카르텔 상회가 가만히 안 둘걸.”
늑대의 말에 홉고블린이 경솔하게 마왕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그 순간,
“방금 카르텔이라고 했나?”
아래쪽에서 무시무시한 냉기와 함께 웬 인간이 올라온다.
옆에는 냉동 개가 들러붙어 함께였다.
“크르릉! 인간! 이게 웬 떡이냐! 바로 잡아먹자구!”
늑대가 침을 흘리며 흥분한다.
네 다리로 굳건히 선 채 눈을 치켜뜬다.
먹잇감을 사냥하는 포식자의 자세다.
“카르텔은 어딨지?”
“크르릉! 인간 주제에 마왕에 관해 묻는 거냐? 웃기지도 않는군.”
결국 허기를 참지 못한 늑대가 먼저 달려든다.
그러나,
“켁!”
총알처럼 날아든 멍구가 늑대의 목뼈를 물어 그대로 부러뜨린다.
“뭐야!”
“이, 이 새끼들이!!”
홉고블린이 칼을 쥐었다.
하지만 채 뽑기도 전에 거대한 힘에 억눌려 굳어 버린다.
“카르텔이 있는 곳을 아나?”
위세에 눌린 홉고블린.
실금을 하며 칼을 쥔 손을 스르르 놓는다.
“모, 모릅니다. 저, 정말이에요!”
“하여간 고블린들은 인생에 도움이 안 돼요.”
멍구는 그렇게 말하며 홉고블린에게 꿀밤을 먹여 쓰러뜨렸다.
나머지 남아 있던 스켈레톤과 구울들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
“저, 저희도 모릅니다! 정말입니다! 저희는 잡몹이라 아는 게 없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인간과 개에게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하게 되리라곤 예상 못 했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
일단 살고 보자.
“살고 싶나?”
“네! 살고 싶습니다!”
“중턱으로 내려가다 보면 나무집이 한 채 보일 거다.”
“네, 넵!”
“깨끗이 청소해 놔.”
“네?”
“먼지 한 톨이라도 나올 시 너희 뚝배기가 네 등분이 될 줄 알아.”
“히익! 마, 맡겨만 주십시오!!”
스켈레톤과 구울들은 헐레벌떡 산을 내려갔다.
“추워라. 몸풀기도 안 되는군.”
“철남이, 우리 이 늑대라도 구워 먹고 가자.”
배가 고픈 멍구가 살짝 떠본다.
그러나,
“아니, 우리 다음 끼니는 마왕의 대가리다.”
성큼 작은 구멍으로 발을 들이미는 강철남.
멍구는 끼힝, 하며 폴짝 구멍으로 뛰어 들어가며 다시 한번 마계로 향한다.
역시 무계획으로 달려온 마계.
주위는 온통 암석 지대뿐이니 막막하기만 하다.
“어쩌지?”
“역시 그거지.”
역시 이럴 땐 어그로밖에 답이 없다.
“야아!! 호오!!”
냅다 큰 소리를 지르고 보는 강철남.
“이제 기다리면 올 거야.”
그러자,
두두두두두두—
“양반은 못 되는군.”
땅 밑에서 굉음이 들리더니 뭔가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땅이 으깨어지며 소리의 주인이 대가리를 빼꼼 내미는데,
“두더지 양반. 오랜만이오.”
처음 마계에 왔을 때 박준범의 행방을 알려 준 철갑 두더지다.
“웬 소란인가 했더니 이번에도 너희들이구나. 이상한 녀석들.”
“‘들’이라니. 나는 빼 줘. 소리는 얘가 질렀다구.”
슬쩍 발을 빼는 멍구.
“이번에는 무슨 일로 왔느냐?”
“혹시 마왕 카르텔이 사는 곳을 아나?”
“호오. 꽤나 거물의 이름이 나오는군.”
철갑 두더지는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저기, 두더지야?”
혹시나 죽은 건 아닌가 싶어 멍구가 앞발로 콕콕 찔러 본다.
“살아 있네.”
“으이크!”
“기억을 더듬느라 집중하고 있었을 뿐이네.”
“제법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나 보군.”
“나름 마계의 터줏대감이네.”
새삼 철갑 두더지의 나이가 궁금해지는 멍구였다.
“마왕 카르텔의 성이라면 여기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되네. 가다 보면 도시가 하나 있을 거야. 성은 그 도시에 있지.”
생각보다 간단했다.
방향만 알면 금방 갈 수 있는 곳이다.
다만 거리가 아득하여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
“고맙네, 두더지 양반. 다음에 술 한잔하지.”
“술은 안 마신다네.”
“그럼 차는 어떤가?”
“그건 내키는군.”
“그래, 그럼 나중에 보자구.”
“나중에? 마왕성에 가는 인간이 나중을 기약할 수 있나?”
철갑 두더지는 약간 걱정하는 듯 묻는다.
“흥. 인간 세계 구경 올 준비나 해 두라구.”
강철남과 멍구는 성큼성큼 북쪽으로 향한다.
“가자.”
“오케이.”
[초신속]
[초신속]
순간 철갑 두더지의 시야에서 그들이 사라졌다.
눈을 비비며 전방을 다시 확인해 봐도 없다.
땅으로 꺼졌나 싶어 괜히 땅굴을 파 보는 철갑 두더지였다.
* * *
북쪽 도시 카르텔.
마왕의 이름을 딴 도시.
마계 최대의 상업 도시.
이곳은 소득 수준에 따라 세 개의 지구로 구분되어 있다.
강철남과 멍구가 먼저 마주한 지구는 가장 외곽의 3지구.
가장 뒤떨어지는 3지구임에도 마계 최대의 상업 도시답게 장사의 열기로 후끈했다.
“자, 쌉니다요! 원 플러스 원!”
“특별가로 모시겠습니다!”
“가이아에서 직접 공수해 온 사과입니다!”
귀신에 홀린 것 같다.
외국에 온 것 같은 신선함과 이질감이 동시에 밀려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말은 통한다.
몬스터를 하도 처먹어서 그런가.
“철남이, 나 저거 사 주라!”
이 와중에 멍구가 큼직한 도마뱀 꼬치구이를 보고 헥헥댄다.
마침 배도 고프니 하나 먹을까.
“꼬치 하나에 얼마요?”
“500골드입니다.”
머리는 까마귀인데 팔다리가 달린 까마귀 수인이 친절하게 응대한다.
그런데 골드라니?
“뭐요? 골드?”
“네, 골드요. 카르텔의 화폐입니다.”
“가진 건 칩밖에 없소만.”
“그거라면 환전을 하셔야 합니다. 저기 안내소 보이시죠? 거기서 환전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귀찮구만.
“그런데 손님은 어느 종이신가요?”
“종이라니?”
“본 적이 없는 종이라서요. 이족 보행을 하지만 털이 없으니 수인은 아닌 것 같고. 흐음… 혹시 어인종이십니까?”
“대충 비슷하오.”
귀찮아서 둘러대는 강철남이었다.
안 그래도 인간을 잡아먹으려고 혈안이 된 몬스터들이 바글대는데 종족을 알려 봤자 귀찮아질 게 뻔하니.
“그렇군요. 카르텔에 잘 오셨습니다. 환전 후 꼭 들러 주세요.”
“그러지.”
강철남은 환전소로 향했다.
가는 길에도 몬스터들이 흘긋흘긋 자기를 쳐다보는 시선이 거슬렸다.
그가 안내소를 들어서니 쥐 수인이 데스크를 지키고 있었다.
대체로 수인들이 상업을 이끄는 모양이군.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환전을 좀 하고 싶소만.”
강철남은 남은 약 80,000칩을 꺼내어 늘어놓았다.
“칩이로군요. 1,000칩당 100골드입니다. 총 8,000골드인데 환전해 드릴까요?”
쥐 수인은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수지가 안 맞았다.
“철남이 꼬치 하나가 500골드라며. 그럼 5,000칩이야!”
“뭐지 이곳의 미친 물가는.”
“이 날강도 새끼들.”
그래도 돈이 있는 게 어딘가.
환전을 요구하는 강철남.
그렇게 8,000골드가 든 돈주머니를 들고 안내소를 나서는데,
휙—
“어?”
무언가 날아와 돈주머니를 확 낚아채어 간다.
“푸하하하하!!”
웬 꼬마 악어 한 마리가 돈을 낚아채 골목 사이로 빠져나간다.
골목 틈 사이로 꼬맹이 쥐 수인이 빼꼼 이쪽을 보더니 까르르 웃으며 사라진다.
“멍구야.”
“응. 조질까?”
“당연하지.”
경쟁이라도 하듯 [초신속]을 발동하는 강철남과 멍구.
저 새끼는 이제 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