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최강 자연인이다-32화 (32/175)

32화 마왕성 공무원인데요, 초대 받으셨습니다

이게 뭔 소린가 싶어 악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강철남.

“카르텔 님은 강철남 님을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어 합니다.”

마왕의 초대라.

고민할 것도 없지.

“거절하겠소.”

별 고민도 없이 단칼에 잘라 거절하는 강철남의 대답.

악어는 당황한 듯 땀을 삐질 흘린다.

“이, 이유를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귀찮잖아. 마계까지 가는 것도 일이고, 마왕이 있는 곳까지 가야 하고.”

“그래도 한 번쯤은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마계 구경도 하고 마왕성의 진미도 맛볼 수 있지요.”

마왕성의 진미는 솔직히 조금 끌렸다.

하지만 마계라면 풀 한 포기 없는 삭막한 암석 지대가 아니던가.

풀잎 향기를 맡으며 흙바닥을 밟으며 살아가는 자연인 강철남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보고 싶으면 마왕 보고 오라고 해.”

“마, 마왕님을 제가 어찌 감히.”

악어는 비 오듯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는다.

쩔쩔매는 모습에서 말단 직장인의 측은함이 느껴진다.

“여기까지 왔는데 뭐라도 마시고 가.”

“아닙니다.”

“어허, 거참 딱딱하게 굴지 말고.”

멍구는 앞발로 악어의 다리를 톡톡 치며 자리로 떠민다.

안 되는데 하면서도 슬금슬금 자리로 향하는 악어.

강철남이 꺼낸 것은 커다란 호리병.

살쾡이에게서 산 알밤주가 가득 들어 있다.

“자, 자. 쭉 들이켜라구. 오골계 구이 먹지?”

“못 먹죠.”

“정말?”

“없어서 못 먹죠.”

“좋아, 좋아. 아주 마음에 드는구만.”

꼬치에 끼운 바싹 구운 오골계 구이에 달달한 알밤주.

거부하지 못할 조합이다.

“업무 중이니 정말 조금만 마시겠습니다.”

“그래, 그래. 맛만 봐.”

큰 입을 쩍 벌려 오골계 구이를 찹찹 먹는데,

“오오오!”

눈이 휘둥그레지는 맛이다.

악어는 지금껏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몬스터 고기는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홍시와 산나무 열매를 설탕에 재워 만든 특제 소스를 찍어 먹으니 느끼함이 감칠맛으로 배가 되어 입 안을 휘감는다.

마계에서도 이 정도 풍미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니, 마왕성의 요리사 솜씨보다 더 나은 점도 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음식을.

“입안의 기름기는 알밤주로 헹구는 거지.”

강철남과 멍구가 잔을 채워 건배를 준비한다.

악어도 분위기에 휩쓸려 잔을 든다.

“건배.”

“건배!”

“거, 건배.”

한 인간, 한 마리의 개, 하나의 몬스터.

셋은 잔을 부딪치며 알밤주를 입 안에 탁 털어 넣는다.

달달 하면서도 은은한 밤 향기가 마치 꽃향기처럼 느린 걸음으로 온몸에 스며든다.

“세상에나.”

“어때, 죽이지?”

“하, 하나만 더…….”

이미 악어는 이 연회에 푹 젖어 들고 말았다.

오골계 구이를 냠냠 먹고 알밤주를 꿀꺽꿀꺽 마신다.

요즘 안 그래도 업무가 많아 힘들었는데 영업처에서 이토록 맛 좋은 식사를 대접받을 줄이야.

“굶고 다니냐? 천천히 좀 먹어.”

“이런 저도 모르게 그만.”

멍구가 자기도 우걱우걱 먹으면서 한소리한다.

그제야 체면이 생각난 듯 입을 오므리는 악어.

“직장 생활이라는 게 다 그런 거야. 가끔 이렇게 맘 편히 먹고 마시는 날도 있어야 또 내일 힘내지 않겠어.”

강철남이 악어의 빈 잔에 술을 채워 준다.

그러자 악어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어, 철남이. 이 새끼 운다, 울어.”

“아이 진짜. 술 마시고 우는 주사 제일 싫어하는데.”

“흑흑. 죄송합니다. 요즘 일에 치여 살다 보니 문득 서러워져서.”

악어는 땀을 닦던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친다.

“마왕이라는 놈이 그렇게 빡시게 굴리니?”

“카르텔 님이요? 사실 카르텔 님은 아무 잘못 없죠. 저희 같은 말단 전령에게 직접 관여하실 분은 아니니.”

“그럼 직속 상사가 누군데?”

“있어요.”

“마음 편히 얘기해. 누가 듣는다고. 털어놓기만 해도 마음이 많이 편해질 거야.”

“흑흑. 그 돼지 같은 하마 새끼.”

“하마?”

“카르텔 님에게 잘 보이려고 아래 몬스터들을 마구 부려 먹는 못된 놈이죠. 걔가 제일 나빠요. 위에는 여우짓, 아래로는 여포 짓.”

사람 사는 사회나 몬스터 사회나 다를 바가 없구나.

신물이 났다.

“그럼 우리를 못 데려가면 대차게 깨지겠군.”

“그렇다마다요. 흑흑.”

옷 소매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리는 악어.

그러다 강철남과 멍구를 흘긋 보더니 다시 고개를 처박고 운다.

“그래, 좋다!”

“설마, 가 주시는 겁니까?”

“인간 속담에 죽을 때 죽더라도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 곱다는 말이 있어. 오늘 마음껏 먹고 마시고 가서 장렬하게 죽거라!”

“엉엉엉엉.”

자포자기한 악어는 알밤주를 병나발로 분다.

마지막 술잔을 비우고 악어는 터덜터덜 돌아갔다.

제법 많이 마신 것 같지만 하마를 생각하니 술이 번쩍 깬다.

“철남이, 우리 술 다 떨어졌어.”

“그래? 마침 장도 볼 겸 시장이나 다녀올까.”

“너 대체 칩이 어디서 난 거야? 야바위라도 했어?”

“장사를 좀 했지.”

청수 산삼을 팔아서 얻은 90,000칩.

자금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오늘은 간장을 찾아봐야겠다.

* * *

“여어, 철남 씨, 멍구.”

살쾡이가 마침 시장을 거니는 둘을 부른다.

“왜 철남이는 철남 씨고 나는 그냥 멍구인데.”

“개한테 ‘씨’자 붙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몬스터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는 않은데.”

“하하하. 그나저나 오늘은 뭘 찾아? 지난번에 사 간 알밤주 다 마셨어?”

살쾡이가 달그락거리며 알밤주가 든 호리병을 가져온다.

“철남 씨 올 거 같아서 인삼주, 홍삼주도 준비해 뒀지.”

“꼴깍.”

멍구가 침을 삼키며 꼬리를 살랑살랑 댄다.

“철남이! 이거 다 사 주라!”

“뭔 놈의 개가 술독에 빠져서.”

“술! 술!”

“일단 먼저 살 것들 좀 사고. 살쾡이 양반. 혹시 간장 구할 수 있는 데가 있나?”

그러자 살쾡이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글쎄, 이 시장에서는 어렵지 않을까. 그런 특상품 조미료는 마왕성에나 납품되는 물건이니까. 우리 같은 평범한 상인들은 냄새도 못 맡아 보지.”

“마왕성에? 그럼 카르텔 녀석이 가지고 있으려나.”

순간,

시간이 멈춰 버린 줄 알았다.

멍구의 입에서 마왕 ‘카르텔’의 이름이 나오자 북적이던 시장이 순식간에 침묵과 정적으로 멈춰 버린 것이다.

행인, 상인 모두 혼이 나간 눈으로 멍구를 바라본다.

충격의 여파와 긴장감이 감돈다.

공포에 절은 땀이 그들의 이마에 흐른다.

“어? 왜들 이래?”

“야, 이!!”

살쾡이가 차마 말을 못 잇고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둘 다! 일단 천막 안으로 들어와!”

살쾡이는 강철남과 멍구를 홱 낚아채 천막 안으로 던지듯 집어넣는다.

“잘 들어. 여기서는 절대로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돼.”

“왜?”

“설명해 줄게. 어떻게 그 마왕의 이름을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자는 상업의 마왕, 즉 마계의 상권을 휘어잡고 있는 자야.”

“이름값 하는군.”

“이 청수 폭포 시장도 녀석의 손아귀 안에서, 아니 손가락 끝 손톱만 한 관심이지만 마왕의 영향력 안에서 돌아가고 있는 곳이야.”

“그런데 왜 말하면 안 돼?”

멍구가 몹시 억울하다는 듯 우쒸, 하며 따진다.

“여기뿐만이 아니야. 어딜 가서든 마왕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는 게 좋아. 마왕들은 지금 패권 다툼 중이니까 입을 잘못 놀렸다가는 스파이, 혹은 반란 분자로 찍히기 십상이거든.”

“그럼 내가 그 녀석의 이름을 꺼낸 것이 혹 마왕에게 대드는 의미라도 된다는 거야?”

“그럴 의도가 아니더라도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거지.”

“이거 참 개같네.”

“너 개 맞잖아.”

“우쒸, 장난치지 말고.”

“아무튼 둘 다 입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살쾡이는 조심스레 천막 밖을 살폈다.

딱히 이곳을 주목하는 몬스터는 없는 모양이다.

“휴. 그나저나 그 이름은 어떻게 아는 거야?”

“우리 집에 녀석의 전령이 찾아왔어.”

“뭐? 어, 어째서?”

“자기네 성으로 한 번 오라던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멍구의 말투에 살쾡이는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왜, 왜 너희를?”

“그건 우리도 모르지?”

“혹시 최근에 잘못을 저지른 적 있니?”

“철남이, 우리 뭐 잘못했나?”

“없어. 싸가지 없는 놈들 밥상머리 참교육해 준 거 말고는.”

강철남은 떳떳하게 말했다.

호세의 일도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어쨌든 간다고 했지? 거절하진 않았을 거 아냐?”

살쾡이가 그렇지? 하는 눈빛으로 떠본다.

오히려 제발 그렇다고 말해, 라고 청원하는 지경이다.

“아니, 귀찮아서 니가 오라고 전했어.”

“야 이 미친!”

머리를 감싸 쥐는 살쾡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미친 인간과 개다.

어떻게 마왕의 명령을 거부할 수가 있는 거지?

“명령 아닌데? 권유였어.”

“말이 그렇지, 사실 명령이나 다름없는 거야!”

“거참 성격 귀찮네. 뭘 빙빙 돌려 말하고 그래. 안 오면 죽인다고 솔직하게 말하던가.”

“마왕이란 새끼가 속이 좁아터졌군.”

멍구와 강철남이 마왕을 씹고 있자 살쾡이는 심장이 철렁하여 천막 밖을 두리번거린다.

“아, 아무튼! 철남 씨, 멍구. 둘 다 무조건 입조심해. 까딱했다간 시장 전체가 날아갈지도 모르니까.”

“시장이 없어지면 우리도 불편하니 그러도록 하지.”

“그리고 오늘은 집에 일찍 돌아가 봐. 가는 길 조심하고. 집에 가서도 조심해.”

살쾡이는 둘의 안전에 신신당부를 전했다.

둘은 분위기가 영 어수선해서 일찍 귀갓길에 올랐다.

“철남이, 집이 다 부서져 있으면 어떡하지?”

“그럼 마왕성도 부수면 되지.”

“귀찮아지겠는데.”

“원래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힘든 일이거든.”

둘이 집에 도착했을 땐 다행히 멀쩡한 집이 반겨 주고 있었다.

뻥 뚫린 창틀이 허전하긴 했지만 유리창 제작 주문을 맡겨 놨으니 금방 다시 채워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밤이 찾아왔고 둘은 잠자리에 들었다.

지붕 아래서 가을바람을 솔솔 맞으며 눈을 감으니 금방 스르륵 잠이 찾아왔다.

서늘한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는 가을바람.

눈싸라기가 날리는 가을바람.

살을 에는 듯한 가을바람.

…….

응?

눈?

뭔가 이상하다.

“철남이! 일어나! 얼어 뒤지겠어!”

코에 고드름을 단 멍구가 강철남을 앞발로 흔들어 깨운다.

눈을 떴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X바, 관절이 뻣뻣해졌어.”

창틀 사이로 눈보라가 들이닥치고 있다.

지금은 10월.

눈 따위가 올 날씨가 아니다.

그런데도 시베리아처럼 눈 폭풍이 몰아친다.

날씨가 미쳐 버렸다.

“철남이, 불! 불을 때자!”

“오, 오케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강철남.

그런데 구들이 따듯해지질 않는다.

“미치겠네. 왜 구들이 안 데워지냐.”

“잠깐.”

바닥을 만져 보더니 뭔가 이상을 감지한 강철남.

작정한 듯 바닥을 뜯어 들춰 본다.

“우왁! 철남이, 드디어 미쳤어?”

“멍구. 이거 봐.”

드러난 밑바닥을 보자 멍구는 충격에 휩싸인다.

“구들이… 없어……?”

마법같이 사라진 구들과 마법같이 불어오는 눈보라.

그렇다.

마법이라는 것이 진짜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마왕군 X새끼들이겠지?”

“개새끼들. 나도 개지만 나보다 더 개 같은 놈들.”

강철남과 멍구는 얼어붙은 콧물을 뜯어내며 집을 나섰다.

그래, 응해 주마. 네놈의 초대에.

기다려라. 네 번째 마왕 카르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