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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 자연인이다-31화 (31/175)

31화 3일 준다. 간장 안 갖고 오면 뒤진다

* * *

강철남이 막 대한산에 입산했을 때다.

대한산에서 지내던 초가집은 어느 노인이 내놓은 집을 사들인 것이다.

자식이 사는 집에 들어갈 거라며 좋아하던 노인.

노인은 인심이 후해 그간 담가 두었던 장들을 강철남에게 남기고 갔다.

“산의 기운을 받은 것들은 뭐가 달라도 달러.”

노인이 손수 담근 된장, 간장, 고추장.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명품 장이었다.

입맛 없는 여름에는 풋고추에 된장을 푹 찍어 먹으면 반찬이 필요 없었고,

제철 나물을 뜯어다가 고추장에 비벼 먹으면 속이 편안하면서도 든든했다.

얼큰한 국물이 당길 땐 간장을 한 숟갈만 넣어 주면 육수 저리 가라 할 만큼 깊은 맛이 우러나왔다.

“참 맛이 좋구나.”

삶에 지친 강철남이 산에 올라와 심심한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

노인이 남기고 간 장독은 강철남의 삶에 위로와 기쁨을 주었다.

사람들은 그런 걸 보물이라 부른다.

“너냐?”

마당에 들어선 강철남.

코를 찌르는 익숙한 간장 냄새.

나지 말아야 할 냄새가 마당에 흥건히 퍼지고 있다.

“흥. 드디어 나타났구나. 강철남.”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호세.

으르렁대며 투지를 불태운다.

그사이 한지영은 홍태진에게 해독제를 먹인다.

그러자 그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진다.

약이 효능을 발휘하는 모양이다.

“방금까지 네 개새끼랑 놀아 주고 있었다. 응? 이놈이 어디 갔지?”

호세가 두리번거리며 멍구를 찾는다.

하나 이미 마루 밑으로 기어들어 가 몸을 숨긴 멍구.

무얼 하나 자세히 보니 팝콘을 먹고 있다.

“흥흥. 겁쟁이 같으니라고. 꼬랑지를 내리고 도망치다니.”

“도망쳐야 하는 건 바로 너야, 이 미친놈아.”

팝콘을 와작와작 씹으며 상황을 지켜보는 멍구.

조마조마하다.

여차하면 애써 지은 집이 무너질지도 모르겠다.

“재차 확인하겠다. 장독을 깨뜨린 게 너냐?”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싸우자, 강철남!”

“그딴 거? 저 간장이 어떤 간장인지 알고 지껄이는 거냐?”

“흥. 시커먼 것이 지저분해 보이는군. 하찮은 구정물 따위 내가 알 바냐.”

호세는 분명 두 눈을 똑똑히 뜬 채 당당히 서 있었다.

분명히 방금까지 똑바로 서서 인간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어째서 지금은 거꾸로 뒤집혀 땅을 보고 있는 거지?

“크아악!”

호세의 안면은 바닥에 처박혔다.

정확히는 간장에 코를 박고 있다.

언제 자기 몸이 꺾여 바닥에 처박혔는지 영문을 알 수 없다.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다리도 마비된 듯 꼼짝을 안 한다.

바닥에 짓눌리는 코가 으스러질 것 같다.

“직접 맛 한 번 봐. 이게 마트에서 파는 간장이랑 같다고 생각하냐?”

“크악!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호세.

마계의 4마왕 중 네 번째 마왕의 친위대 소속 정예병.

그의 실력은 마계에서도 배우러 오는 문하생이 있을 정도로 뛰어났다.

인간계로 넘어올 때 다짐했다.

산 하나를 거점으로 잡아 인간 세상을 정복하겠노라고.

그리하여 마왕군의 간부로 승진하리라고.

그런데,

어째서 그 꿈이 한낱 인간 따위에게 가로막히는 거지?

“나는 호세다! 여기서 지지 않아!”

[포효]

호세의 목청에서 엄청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산을 뒤흔드는 맹수의 소리.

저 멀리까지 울려 퍼지는 위협적인 메아리에 몬스터들이 겁을 먹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장권]

호세는 손바닥을 펼쳐 강철남의 얼굴을 향해 날렸다.

이제껏 이 공격을 받고 멀쩡했던 머리통은 없었다.

이걸로 이 싸움의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탓—

“응?”

손바닥이…….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다.

갑자기 강철남이 깍지를 끼더니,

으드득—

“으아아악!”

호세의 손가락을 모조리 으스러뜨렸다.

무릎을 꿇는 호세.

“이 죽일 놈!”

호세는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위를 흘겼다.

정말로 죽여 버릴 거라는 기세를 담아서.

그런데,

못 한다.

내려다보는 강철남의 눈을 보자 몸이 굳어 버린다.

본능이 외친다.

이건,

절대 못 이긴다.

“마지막 할 말 있나?”

호세의 머리를 꽉 붙잡고 강철남이 묻는다.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초가을인데도 몸이 덜덜 떨렸다.

대체 뭐냐, 이 인간.

어떻게 인간이 몬스터에게 이런 공포를 안길 수가 있는 거지?

“…살려 줘.”

“그게 마지막 말이냐?”

“아니야, 제발 살려 줘. 나는 여기서 죽을 수 없단 말이야!”

“왜 네가 살아야 하지?”

“너를 해치우고 이 산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지.”

“너 바보냐.”

그제야 황급히 입을 틀어막는 호세.

겁을 먹어서 아무 말이나 막 나온다.

“다시는 네 눈앞에 띄지 않을 테니 살려 줘.”

“간장독은 어떡할래?”

호세는 깨진 장독과 바닥에 말라붙은 간장을 바라본다.

저걸 어떻게 보상하나 생각하니 막막하기만 하다.

“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더 좋은 걸로 마련해 줄 테니까!”

“더 좋은 걸로? 네가 무슨 수로.”

“이래 봬도 난 네 번째 마왕군 소속 정예병이야. 정보통은 자신 있어!”

“마왕군?”

누워있던 홍태진이 마왕군이라는 소리에 몸을 일으키며 반응한다.

이제껏 들어 본 적도 없는 정보다.

백진섭도 귀가 번뜩인다.

마왕군이라니.

몬스터들의 군대라도 있다는 건가?

인간처럼 몬스터들을 군사적 목적으로 다루는 통솔자가 있다는 말인가?

“마왕군이라니 자세히 설명해 봐.”

쓰러진 몸을 일으키며 홍태진이 힘겨운 목소리로 묻는다.

“홍 팀장님.”

“난 괜찮아.”

팀원들의 만류에도 우뚝 서서 호세에게 다가간다.

“흥. 약한 녀석에게는 아무것도 알려 줄 수 없다.”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홍태진을 위협하는 호세.

“말해 봐.”

“옙.”

하지만 강철남이 묻자 바로 입을 턴다.

“마계에는 네 명의 마왕이 있는데요, 저는 그 가운데 네 번째 마왕님의 군대에 속해 있습니다. 마왕의 군대에는 여러 직책이 있고 집단이 있죠. 그 집단 중 하나인 친위 부대에 제가 속해 있는 거고요.”

“직책? 상당히 조직적이군.”

“맞습니다. 네 분의 마왕님들은 서로 세력을 키워 힘을 다투시거든요.”

“왜?”

“그야 물론 마계의 황제, 즉 마황제가 되기 위해서죠.”

“그 마왕들의 이름은?”

“그건 저도 모릅니다. 저희 같은 졸개들은 알 수가 없죠.”

“방금까지 엄청 대단한 몬스터인 양 으스대더니.”

팩트로 두들겨 맞자 할 말이 없어진 호세.

황급히 말을 돌린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 어떻게든 마음에 드는 간장을 구해다 드리겠습니다.”

“3일.”

“네?”

“3일 준다.”

“가, 감사합니다!”

아무리 호세라도 3일은 너무 짧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어디인가.

3일이면 도망가기에 충분하다.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마라.”

“제가 어떻게 감히.”

“이 산을 날려 버려서라도 널 찾을 테니.”

꿀꺽—

이 인간, 진심이다.

도망치기는 글렀다.

기필코 3일 안에 최고의 간장을 찾아 바쳐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 * *

서울 헌터 연합 파견팀들은 태세를 정비한다.

하산할 준비다.

북한산 점령 원정은 이번에도 실패했다.

하지만 수확은 있었다.

마왕군의 존재.

마계에 관한 정보.

몬스터 세계의 사정을 몬스터의 입으로 직접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강한 호랑이 녀석이 병사에 불과하다니. 마왕군이 작정하고 쳐들어오면 인류는 끝장이겠군요.”

“대책은 있는 거야?”

“강철남 씨가 있잖아요.”

홍태진이 능글맞게 찔러 본다.

“인류는 끝장이로군.”

“하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철벽을 치는 강철남이었다.

“그나저나 마계는 어떤 곳일까요.”

“별거 없어. 풀 한 포기 없는 황무지야.”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강철남의 발언에 일동 행동을 멈춘다.

“설마, 마계에 가 보신 적 있어요?”

“구멍을 넘어가면 바로 마계야.”

“네에?!”

한지영이 손으로 입을 가린다.

이 남자, 도대체 얼마나 사람을 더 놀라게 할 작정일까.

“그렇다면 우리도 마계에 간다. 뒤처질 순 없지.”

김성남이 집어넣었던 검을 다시 꺼내 든다.

“오옷! 이대로 정상까지 밀어 버리자구!”

황기민이 이에 질세라 편곤을 붕붕 휘두른다.

주변의 헌터들이 편곤 추를 피하기 위해 허리를 숙인다.

“황 팀장. 민폐잖아. 그리고 김 팀장. 우리는 중턱에서도 멍구와 강철남 씨가 아니었다면 죽을 뻔했어. 냉정하게 우리가 정상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아?”

“쳇. 뼈 찌르는 말 하지 말자구.”

김성남은 머리를 긁적이며 몸을 돌려 버린다.

“어디가?”

“먼저 내려가게.”

심보가 뒤틀린 김성남은 먼저 내려가 버린다.

황기민이 그 뒤를 쫄래쫄래 따라간다.

“못 볼 꼴을 보였군요.”

“아니야. 일어설 수 있어?”

“네, 이 정도야 끄떡 없, 아야야!”

회복이 덜 되었는지 홍태진이 비틀거린다.

“이걸 먹어 봐.”

강철남은 한약을 그릇에 담아 가져온다.

산에서 자란 약초들을 우려 만든 전통 탕약이다.

인삼과 황기가 들어갔으며 엘크의 녹용으로 우려냈다.

“이건 몬스터의 기운이…….”

[정화]

강철남의 손에서 푸른빛이 나오더니 탕약을 부드럽게 감쌌다.

겉모습은 변한 게 없어 보이건만 강철남은 홍태진에게 마셔 보길 권했다.

곁에 선 한지영도 믿고 마셔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강철남을 믿고 약을 쭉 들이켜는 홍태진.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법.

찌릿찌릿한 맛이 강렬하다.

“우와! 이거 정말 쓰네요.”

“약재들의 정수만 추출한 거니까.”

“어라? 몸이.”

허리를 돌려보는데 몸이 너무나 가볍다.

제자리에 콩콩 뛰어 보는데 통증이나 불편함이 전혀 없다.

완전 회복이 된 것이다.

“이거 대단한데요?”

홍태진은 자기 몸 상태를 느껴보고 감탄한다.

한지영은 두 번째로 보는데도 정화 능력이 신기하기만 하다.

“고맙습니다. 강철남 씨.”

“두 번 다시 그런 무모한 짓 하지 마쇼. 다음은 안 구해 줄 거요.”

“…어떻게 재고해 주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방금 들으셨다시피 마계와 마왕군이 실존합니다. 우리 인간은 바람 앞의 촛불같이 연약합니다.”

“그게 결과라면 받아들여야겠지.”

“무서운 말씀이군요.”

“살리고 싶으면 용을 써 봐. 나는 이놈의 세상에게 베풀어 줄 동정심이 없거든.”

선을 그어 단호하게 말하는 강철남.

홍태진은 더는 그를 설득하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홍 팀장님, 오늘은 이만 돌아가요.”

“그러도록 하지.”

한지영의 권유에 홍태진이 아쉬움을 뒤로한 채 돌아선다.

“참, 나는 알아요. 철남 씨가 실은 좋은 사람이라는 거.”

“갑자기 무슨 소리요?”

“다음에 내가 위험에 처하면 도와주실래요?”

“상황 봐서요.”

“약속한 거예요!”

크게 손을 흔들며 산을 내려가는 한지영.

한바탕 소란이 지나갔다.

주변을 둘러보니 고블린 사체며, 오우거 사체, 엉망으로 찢긴 코뿔소까지 아주 개판이다.

“하아. 다음부터는 손님 사절이야.”

* * *

약속한 3일이 지났다.

마계를 온통 뒤져도 간장이라는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산을 내려갈 수도 없다.

북한산에 인간은 코빼기도 안 보이니까.

유일한 인간이라고는 강철남.

그 괴물 같은 인간.

어째서 인간 주제에 그렇게 강할 수가 있지?

그 정도면 마왕도…….

“야, 간장 가져왔냐?”

“앗. 네! 여기 있습니다!”

호세가 챙겨온 정체불명의 검은 물.

강철남이 그걸 빼앗아 든다.

사실 그 물은 간장이 아니다.

마계의 지하 던전 독기의 웅덩이에서 길어 온 독약.

닿기만 해도 SS랭크 몬스터조차 사망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독극물이다.

한 입만 먹어도 이 인간 녀석은 골로 가겠지?

꿀꺽—

먹었다!

“에라이, 싯팔! 이게 뭐야! X나 맛없네.”

어라?

“야, 너 이거 뭐야. 간장 맞아?”

“아, 아니, 그, 그게.”

“네가 한 번 먹어 봐.”

“아니 저는 그게, 많이 먹어서.”

“맛 한 번 보라니까. 이거 X나 최악이야!”

강철남이 강제로 병 주둥이를 호세의 입에 밀어 넣는다.

꾹 다문 입술을 비집고 식도를 타고 흘러내리는 독기의 정수.

“커, 커커커커억!!”

“어라? 이 새끼 왜 이래?”

눈앞에서,

호세가 꾀꼬닥 숨을 거둬 버린다.

“철남이, 무슨 일이야?”

자기가 가져온 간장을 마시고 죽은 호세.

황당한지 할 말을 잃은 멍구.

“멍구야.”

“응.”

“호랑이 고기 먹어 본 적 없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했던가.

그래도 호세는 고기도 남겼다.

오늘도 강철남과 멍구는 화덕에 불을 피운다.

“저녁 준비를 해 볼까.”

똑똑똑—

누군가 나무를 두들기며 노크 소리를 낸다.

이 산중에 누가 이런 예의를 차리는 거지?

“누구요?”

“혹시 강철남 씨 되십니까?”

“나 맞소만.”

웬 악어 수인이 예를 갖추며 말한다.

가죽에 윤기가 흐르는 것이 보통 산 속의 잡몹들하고 때깔이 달라 보인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4마왕 중 네 번째 마왕님이신 카르텔 님의 전령입니다. 강철남 님에게 마왕님의 초대장을 전해 드리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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