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장독은 또 왜 깨고 지랄이야!
다시 청수 폭포로 돌아온 두 사람은 곧장 몬스터 시장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강철남이 약재상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앗, 철남 씨. 약재상은 이쪽이에요. 그새 잊으셨어요?”
“먼저 들를 곳이 있어.”
북적이는 몬스터에게 휩쓸리지 않게 다시 한지영의 손을 덥석 잡는다.
“아앗!”
한지영은 어쩐지 이곳이 덥게 느껴졌다.
그가 걸음을 옮긴 곳은 또 다른 약재상이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안경 쓴 비둘기 약사가 꾸벅 인사를 한다.
“여긴요?”
“돌아올 때 봐 뒀어. 다른 약재상이야.”
강철남은 주머니에서 천수 산삼을 꺼냈다.
처음엔 무엇인고 갸웃하던 비둘기가 안경을 고쳐 쓰며 자세히 보더니,
“아닛! 이건 천수 산삼이 아닙니까?”
화들짝 깜짝 놀라 날갯죽지를 퍼덕인다.
“이 귀한 걸 어디서 채취하신 겁니까?”
“이 녀석의 가치가 얼마나 하지?”
“으음. 이 정도 물건이라면 적어도 150년산에 마계의 기운이 듬뿍 들어간 녀석이라 한…….”
“한?”
“100,000칩 정도 될 겁니다.”
“에엑?”
한지영이 깜짝 놀란다.
분명 두루미 약사는 10,000칩이라고 했는데.
“들었지? 그 두루미 녀석. 거짓말쟁이야.”
“어떻게 안 거예요?”
“산전수전 다 겪어 보면 알게 되지. 인간이나 몬스터나 똑같아. 장사꾼이 하는 말에 100% 진실은 없는 법이지.”
누가 봐도 20대의 잘생긴 청년으로 보이는 강철남.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왔길래 한 50년은 살아온 사람 같은 깊이가 있는 걸까.
“비둘기 양반. 이거 드리지.”
“아니, 이 귀한 걸 정말 저에게 팔아 주시게요?”
“그래. 정직한 상인에게 넘기고 싶군.”
“감사합니다! 그럼 100,000칩 여기 있습니다.”
“10,000칩은 퇴근할 때 알밤주라도 사 마시게.”
“우왓! 세상에 이럴 수가. 귀인을 여기서 만나 뵙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강철남은 90,000칩을 받아들고 돌아섰다.
“통이 크시네요. 10,000칩이나 팁으로 주다니.”
“돈은 또 벌 수 있어. 하지만 인맥은 돈으로 얻을 수 없지.”
“인맥이요? 저 약재상에게 목적이라도?”
자연인 강철남.
사실 약재들을 보고 미치는 줄 알았다.
갈근, 계피, 부처손, 당귀, 강황, 백리향.
마계의 기운이 서린 약재들은 어떤 맛일까.
믿을 만한 거래처를 하나 확보했고 돈도 마련했다.
얼른 홍태진에게 해독제를 가져다주고 다시 와야겠다.
“내일은 약밥을 해 먹을까.”
“네? 잘 안 들렸어요.”
“아무것도 아니다. 서두르지.”
“앗, 네!”
강철남의 걸음이 빨라지자 한지영은 거의 매달리듯 그에게 딱 붙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손님! 오셨습니까. 혹시 천수 산삼은 되찾으셨는지?”
“못 구했다. 대신 돈을 가져왔지.”
강철남은 7,000칩을 건넸다.
“쩝. 어쩔 수 없군요. 워낙 신출귀몰한 녀석이라 못 잡는 것도 당연하죠. 여기 있습니다. 꼭 정량을 전부 마셔야 효험이 있습니다.”
두루미는 검은 액체가 담긴 병을 하나 건넨다.
그때, 뭔가를 눈치챈 걸까.
“저기 혹시 손님.”
“왜?”
“혹시 물건을 다른 집에 넘기신 건 아니죠?”
“그랬다면 어쩔 건데.”
“하하하. 농담입니다. 그럴 리가 없죠. 손님 같은 인간이 어찌 되찾아 오시겠습니까.”
“은근히 디스하네. 찾아왔어. 그리고 다른 집에 넘겼어.”
“네? 진담입니까?”
“그래.”
그러자 얼굴에 노기를 띠는 두루미.
“아니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습니까? 그건 원래 제 물건이었는데!”
“100,000칩짜리를 10,000칩짜리로 뻥이나 치는 주제에 말이 많아.”
“앗!”
팩트로 뼈를 때려 주자 아무 말도 못 하는 두루미.
할 말이 없어진 두루미는 히잉, 하고 입맛만 쩝쩝 다실 뿐이었다.
남은 건 다시 돌아가는 일뿐.
“괜찮나?”
“무, 문제없어요!”
한지영의 상태를 지켜보던 강철남이 묻는다.
누가 봐도 안 괜찮아 보이는 안색.
강철남을 따라다니느라 녹초가 되었다.
도중에 쓰러지나 싶었지만 이렇게까지 따라다닌 한지영도 대단하다.
강철남은 한지영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이끌었다.
그들이 향한 곳은 살쾡이의 천막 식당.
“오, 철남 씨. 일 끝났나? 한잔하려고?”
“아직. 금방 끝날 거야. 혹시 물 있나?”
살쾡이는 물을 두 컵에 따라준다.
먼저 쭉 들이켜 보는 강철남.
몬스터의 기운이 듬뿍 담겨 있다.
한지영은 마실 수 없을 것이다.
“인간들이 마실 만한 건 없나?”
“인간 손님은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인간한테 맞춘 음식은 마련하지 않아.”
강철남은 생각했다.
원래 북한산에 흐르는 약수에 마계의 기운이 서려 마계의 물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 반대도 가능하지 않을까?
마계의 물을 인간의 물로.
인간의 기운을 불어넣어 정화한다면.
순간 물에서 번쩍하는 빛이 솟기 시작한다.
[정화]
빛이 사라지자 물에 고요한 파동이 흘렀다.
한 모금 맛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이건 인간의 물이다.
“마셔.”
“네? 하지만.”
“괜찮아.”
물의 외양은 달라진 게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라면.
한지영은 강철남의 말을 믿고 물을 받아 마신다.
꿀꺽꿀꺽—
달다.
‘물이 이렇게 달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야.’
“푸하!”
목을 틔우는 개운함에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시원하고 깨끗한 물이다.
“어떻게 하신 거예요?”
강철남은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저 생각한 대로 일이 일어났을 뿐이다.
“철남 씨 대단한데?”
“별거 아니야.”
“여자 꼬시는 솜씨가 대단해.”
“그런 이야기였냐?”
얼굴을 붉히며 아니에요, 라고 소리치는 한지영.
충분히 쉬었고 목적도 달성했다.
서두르자.
* * *
홍태진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강한 신체 덕분에 제법 오래 버티고 있을 뿐,
평소의 단련이 없었다면 진즉에 몸이 터져 죽었을 것이다.
“이것 좀 안 먹을래?”
와중에 멍구가 구운 코뿔소 갈빗살을 으적으적 씹으며 묻는다.
먹는 모습이 먹방 저리 가라 할 정도다.
“넌 속 편해서 좋겠다.”
백진섭이 환도에 묻은 몬스터의 지방질을 닦아 낸다.
캥거루의 팔을 베었을 때의 느낌.
그건 마치 환도가 자의식을 갖고 오히려 백진섭을 이용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기에 끌려다닌 헌터.
그런 느낌이었다.
“무기보다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되겠군.”
무기 손질을 끝낸 백진섭이 날 끝을 수평으로 세워 점검한다.
멍구는 심심풀이 삼아 백진섭의 상태창을 본다.
[백진섭
레벨: 29
힘: D
맷집: D
속도: D]
“잘하고 있어, 백진섭.”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냥.”
갈빗살을 맛나게 뜯으며 흘리듯 말한다.
어리둥절한 백진섭.
그때, 뒤숭숭한 바람이 불어온다.
멍구는 심상찮은 기운을 느꼈다.
주변의 나무와 벌레들이 긴장하는 것이 피부에 와 닿는다.
“밥 먹고 있는데 불청객이군.”
멍구가 이를 쑤시며 일어난다.
마당에 누군가 큰 발소리를 내며 들어선다.
“강철남은 없나 보군.”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듯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
2m가 넘는 키에 오로지 근육으로만 꽉 채운 체격.
눈빛만으로도 미물들은 죽어 버릴 압도적인 위압감.
호랑이 수인, 호세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리는 법인데.”
“워낙 오래 처먹어야지.”
“여긴 무슨 볼일인데?”
“말했을 텐데. 이 북한산의 주인이 될 거라고.”
멍구와 호세가 대화를 나누는 것뿐인데도 주변에 무시무시한 공포를 주었다.
둘의 기운이 부딪치면서 일으키는 살기를 평범한 헌터들은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체 저건 뭐지?”
“X발. 박준범보다 더 한 녀석 아냐?”
“감별사님. 저 녀석은 누구죠?”
최형권은 이미 녀석의 상태창을 보았다.
그렇기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숨이 막혀서 성대가 굳어 버린 것이다.
“아… 아…….”
“감별사, 정신 차려요!”
백진섭이 흔들어 최형권을 깨웠다.
최형권은 부들부들 떨며 녀석의 상태창을 말해 준다.
[호세
레벨: 132
힘: SSS++
맷집: SSS++
속도: SSS++]
“SSS++랭크라고? 말도 안 돼. 어디서 저런 녀석이…….”
백진섭은 주변을 살폈다.
잠들어 있는 김성남, 쓰러진 황기민.
호흡이 가쁜 홍태진, 부상 입은 헌터들.
이 모두를 지키면서 도망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우리가 으르렁대고 있으니 인간들이 겁을 먹은 모양이군.”
“너만 꺼지면 문제없을 텐데 말이야.”
멍구가 귀찮은 듯 대꾸한다.
“기껏 찾아온 손님한테 그러면 안 되지.”
“그럼 술이라도 선물로 가져와야지. 싸가지 없게 빈손으로 와?”
멍구는 앞다리에 힘을 넣어 언제든 달려들 준비를 갖췄다.
“흐응. 뭐냐 똥개? 이 ‘약해빠진 인간’들을 지키려고?”
“뭔 개소리야. 내 갈빗살을 지키려는 건데.”
그때 본능이 움씰거렸을까.
‘약해빠진 인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김성남의 심장이 요동쳤다.
의식보다 먼저 일어난 몸이 날아가 호세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카앙—
“호오. 뭐지, 이 근성 있는 인간은?”
“X나 센 인간님이시다.”
[초신속]
[검압]
무시무시한 검압을 뿜어내며 칼을 크게 휘두르는 김성남.
공기가 전율하며 땅바닥이 일렁인다.
그가 호세의 승모근에 칼날을 내리치지만 박히지 않는다.
집중력을 끌어올려 압력을 높인다.
그러나,
“귀찮군.”
호세가 김성남의 머리채를 낚아채고 그대로 사과 쪼개듯 움켜쥐려 했다.
파앙!
순간 멍구의 뒷발 차기가 호세의 명치를 날려 버린다.
그것에 호세는 김성남을 놓친 채 뒤로 밀려났다.
“간만에 조금 진심으로 싸워 볼 수 있겠군.”
“똥개 새끼한테 졌다간 북한산의 주인은커녕 쪽팔려서 이사 가야 할 거다.”
호세가 주먹을 쥐고 정권을 앞으로 내지르니 그 풍압에 나무들이 찢겨 나간다.
멍구가 스텝을 밟으며 요리조리 풍압을 피해 이빨을 세워 달려든다.
“근접전에서 호랑이를 이길 수 있는 개는 없지.”
호세가 멍구의 목덜미를 콱 문다.
목덜미를 물리자 제대로 힘을 쓰기 어려운 멍구.
앞발로 호세의 눈을 찌른다.
“으악! 이 비겁한 새끼!”
“맞짱에 비겁이고 뭐고가 어딨어.”
턱주가리를 걷어차고 이빨에서 벗어난 멍구.
그대로 정강이를 콱 물어 날려 버린다.
바닥에 나뒹구는 호세.
비틀대며 일어나는데 어지간히 분한 모양이다.
“이 개새!”
발길에 차이는 뭔가가 거슬렸던 호세.
있는 힘껏 그걸 걷어차 버린다.
챙그랑!
세상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그건 바로 입 밖으로 나온 말,
그리고 무심코 한 행동,
마지막으로 깨져 버린 장독.
처참하게 깨진 파편은 다시 이어 붙일 수 없고,
바닥에 줄줄 흐르는 간장은 결코 다시 담을 수 없다.
“헐, X됐다.”
멍구는 X됨을 느꼈다.
챙그랑 소리를 내면서 산산이 부서진 것은 장독.
물론 내용물이 가득 든 장독이었다.
“킁킁. 이게 무슨 냄새야.”
진한 짠 내에 호세가 코를 찡그린다.
“인마 너 그게 뭔 줄 알아?”
깨진 장독에서는 검은 간장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다.
“X바, 뭐긴 뭐야. 간장 아냐? 재수 없게 장독을 걷어차서는.”
찡그린 호세와 달관한 듯한 멍구의 표정이 대비된다.
“그건 네 죽음의 냄새다.”
“앙?”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호세.
갑자기 왠지 모를 공포의 감정이 가슴에 파고든다.
이건 뭐지?
죽음의 기운.
세상 무엇보다 장을 사랑하고 아끼는 한 자연인의 한 서린 분노가 산을 타고 내려온다.
호세는 몰랐다.
자연인에게 장이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리고 그 무지에 대한 대가로 죽음이 따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