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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 자연인이다-29화 (29/175)

29화 쫓고 쫓기는 데이트

“똥개 따위에게 뒤졌단 소리 듣고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지.”

김성남은 오히려 더 날뛰기 시작했다.

달려오는 고블린의 목을 치고 오우거의 손가락을 잘랐다.

“으하하! 봤느냐! 내가 바로 최강의 사나이, 김성남… 푸헉!”

분노한 오우거는 김성남의 가슴팍에 펀치를 꽂아 버린다.

종이짝처럼 구겨져 날아가는 김성남.

“크악!”

하필 날아가는 곳이 또 장독이다.

“야, 이!”

[초신속]

멍구가 빛의 속도로 김성남을 입으로 낚아챈다.

“큭, 똥개 따위가 어떻게 초신속을…….”

“몰라, 그냥 너네들 따라 하니까 되던데?”

김성남을 대충 집어 던져 놓고 멍구가 직접 참교육에 나선다.

오우거의 목덜미가 뜯기고 고블린들은 앞발에 머리통이 으깨졌다.

까마귀는 멍구를 따돌리지 못하고 깃털이 몽땅 뽑혔다.

홉 고블린들이 화살을 쏘아댔지만 멍구는 빗발치는 화살 사이를 번개처럼 피해 다니며 모조리 물어 죽였다.

마치 한 마리의 짐승이 개미들을 짓밟는 듯한 장면이었다.

헌터들은 넋을 놓고 바라봤다.

수준이 다른 전투였다.

그때 갑자기 웅장한 소음이 번져 왔다.

쿠궁— 쿠궁—

지면이 울리면서 거대한 코뿔소 한 마리가 나타났다.

두꺼운 가죽, 날카로운 뿔, 살의에 가득 찬 눈빛.

짐승, 몬스터라기보다는 살인 병기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코뿔소.

그런 녀석이 뿔을 세우고 달려들었다.

[코뿔소

레벨: 88

힘: SS

맷집: S+

속도: S]

“조심해! 녀석은 SS랭크 몬스터야!”

마루 밑에 숨어 있던 최형권이 소리를 지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멍구는 녀석을 마주 보며 달려갔다.

그리고 돌진해 오는 코뿔소를 향해 있는 힘껏,

“박치기!!”

콰앙!

산이 쪼개지는 소리가 북한산에 울려 퍼졌다.

두 짐승의 머리가 부딪친 허공에서는 충격파가 일어 땅이 파였다.

잠시 찾아온 고요 뒤에는,

“끄어어.”

코뿔소가 눈이 뒤집힌 채 쓰러지는 묵직한 소리가 찾아왔다.

멍구도 통증이 상당한지 앞발로 이마를 부여잡는다.

“X나 단단하네.”

전멸이었다.

덤벼든 모든 몬스터들이 멍구 한 마리를 당해 내지 못했다.

상황이 종료되자 멍구는 유유히 화덕에 불을 때고 무쇠 팬을 달군다.

“거기 누구 이거 좀 구워 줄 사람?”

누군가 칼을 들고 코뿔소를 푹 찌르는데 손목이 아작 난다.

“아앗! 뭐야!”

도와주려 해도 도와줄 수가 없다.

SS랭크 코뿔소의 가죽을 누가 찢으리.

“에라이, 쓸모없는 인간들.”

결국 이빨로 가죽을 벗겨 내 직접 고기를 손질하는 멍구.

엉망진창으로 해체된 갈비살을 뜯어 팬에 올린다.

치이이—

고기가 마이야르 현상을 일으키며 갈색빛으로 익어 간다.

“크으. 못 참겠구만.”

코뿔소 고기를 구워 먹으며 행복을 만끽하는 멍구.

“완전 또라이야. 강철남도, 저 개도.”

김성남은 긴장이 풀어지면서 쏟아지는 잠에 몸을 맡겼다.

* * *

강철남이 펄쩍 뛰어 청수 폭포 뒤편으로 들어가자 그 모습을 본 한지영은 깜짝 놀랐다.

“이런 곳이 있었단 말이야?”

그를 따라 똑같이 점프해 들어가 본다.

“세상에.”

생각보다 넓고 아늑한 공간이 펼쳐졌다.

복도에는 강철남의 키만 한 거대한 수리부엉이가 한 마리 있다.

“몬스터!”

한지영이 쌍칼을 빼 드는 순간,

“진정해.”

강철남이 조용히 제지한다.

“강철남 님. 어서 오십시오. 동행자분이 계시는군요.”

“응. 시장에 좀 가려고.”

“좋은 물건 건지시길.”

점잖게 고개를 숙이는 수리부엉이에게 인사를 받자 한지영도 얼떨결에 꾸벅 허리를 숙인다.

“뭐, 뭐에요? 저 부엉이.”

“대사업가님이시지.”

“저기요, 지금 이 상황이 하나도 이해가 안 가요. 여긴 어디예요? 앞이 바위로 막혔는데요?”

“백 마디 설명보다는 직접 보는 게 낫지.”

톡— 토도독— 톡톡—

막힌 바윗덩어리를 독특한 리듬으로 두드리는 강철남.

그러자 드르륵거리며 바위가,

일어난다?

“꺄앗! 저, 저건 스톤 골렘이잖아요?”

“빨리와. 시간 없는 거 아니었어?”

국가 하나를 괴멸시켰다던 전설의 몬스터.

저게 왜 문지기 역할 따위나 하고 있는 거지?

태연한 강철남의 태도에 한지영은 꼭 자기가 도리어 이상한 사람이 된 기분이다.

혼란을 느끼며 그에게 꼭 붙어 따라간다.

마침내 다다른 복도의 끝.

한지영을 기다리는 풍경은 놀랍도록 찬란한 세계였다.

쫙 깔린 좌판.

시끌벅적한 시장통 분위기.

활기가 넘치는 몬스터들.

별빛을 담아 둔 듯 반짝이는 보석 조명.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휩쓸리지 않게 꼭 붙잡고 따라와.”

강철남은 한지영의 손을 꽉 잡았다.

심장이 쿵쿵 뛰는 한지영.

“이곳의 몬스터들은 모두 약골이지만 적어도 너보다는 강할 거다. 나한테서 떨어지지 마라.”

“그건 자존심이 좀 상하는 말이네요.”

헌터의 피가 끓는 한지영은 조금 분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기운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여기 있는 몬스터들은 모두 강자다.

작은 구멍을 통해 북한산으로 내려온 몬스터들.

큰 구멍을 통해 서울 도심 한복판에 출몰하는 몬스터들과는 급이 다르다.

“여어, 철남 씨. 매화주 한잔하고 가야지.”

강철남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게임장에서 술과 음식을 팔던 살쾡이다.

“네가 어째서 여기 있는 거지? 게임장 장사는 쫄딱 망했나?”

“하하하. 내 솜씨에 그럴 리가. 거기는 분점이고 여기가 본점이야. 그땐 주방장이 휴가라서 사장인 내가 대타 뛴 거지.”

몬스터랑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나누는 강철남을 보니 기가 막혔다.

“몬스터가 사장? 고용인도 있고, 심지어 휴가까지. 정말 몬스터 맞아?”

“인간 아가씨. 몬스터들에 대해 대단한 편견을 가지고 있나 보군.”

“당연하지. 인간을 죽이니까.”

“그건 인간도 마찬가지 아닌가? 인간끼리도 서로 죽이지 않나?”

“궤변 늘어놓지 마.”

“어이쿠. 논쟁할 생각은 없어. 그저 몬스터도 인간들처럼 이렇게 사는 몬스터, 저렇게 사는 몬스터, 다양하다는 걸 말해 주고 싶었을 뿐이라구.”

살쾡이는 손사래를 친다.

그리고 작은 잔 두 개를 꺼내더니 호리병에 든 술을 따랐다.

“자, 자. 잡숴 봐. 이번에 새로 담근 알밤주야. 가을 향을 물씬 담은 계절주지. 특별히 시식하게 해 줄게.”

“모처럼인데 미안하군. 할 일이 있어서.”

강철남은 아쉽지만 거절했다.

일이 우선이다.

술에 취할 순 없다.

“그런가? 아쉽군. 다음에 멍구랑 같이 들러 줘. 서비스 많이 줄게.”

“꼭 그러지. 그나저나 혹시 약재상이 어딨는지 아나?”

“건너편 라인에서 왼쪽으로 쭉 나아가 봐. 곧장 보일 거야.”

“그래, 고맙군.”

강철남은 맞잡은 한지영의 손을 잡고 서두른다.

한지영도 발을 바삐 놀린다.

“저기, 강철남 씨는 인간이에요, 몬스터예요?”

그러자 걸음을 멈추고 한지영을 돌아보는 강철남.

“내가 내린 정의보다 당신 눈에 무엇으로 보이느냐가 중요하지. 당신 눈에는 내가 무엇으로 보이나. 인간인가 몬스터인가.”

“인간…이요.”

“그렇다면 나는 인간이다. 누군가 나를 인간으로 봐준다면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는 거지.”

다시 걸음을 재촉하는 강철남.

사람처럼 살아가는 몬스터들을 보고, 또 괴물처럼 살아가는 인간들을 떠올리며 한지영은 인간과 몬스터에 관해 생각하느라 머리가 복잡해졌다.

“여기로군.”

약재상은 제법 규모가 큰 천막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익숙한 약초도 있었고 본 적도 없는 약재들도 가득했다.

하얀 가운을 입은 두루미 약사는 노란 부리를 벌리며 인사를 한다.

“어서 옵쇼. 뭘 드릴깝쇼?”

“인간이 몬스터의 음식을 먹었다. 치료제가 있나?”

“인간용 해독제라. 있긴 있는데 공급이 많지가 않아서 값이 좀 나갑니다. 마침 이 시장에서 딱 저희 약방에 단 하나 남은 물건이거든요.”

“얼마인가?”

“5,000칩 되겠습니다.”

“깎아 줘.”

“에헤이, 손님. 이것도 많이 깎아 드린 겁니다. 원래는 7,000칩은 하는 물건인데 수요가 없어서 처분 목적으로 싸게 드리는 거라구요. 이 밑으로 팔면 저희도 남는 게 없습니다.”

장사꾼들이 하는 남는 게 없다는 말은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부르는 게 값.

그 값을 치르는 수밖에 없다.

“칩이 모자라는데 혹시 외상은 안 되나?”

“절대 안 되지요!”

“포동포동 맛있게 살찐 개가 한 마리 있는데.”

“구미가 당기기는 하지만 턱도 없지요.”

어떤 식으로 협상을 할까 고민하는 사이 한지영이 끼어든다.

“혹시, 골칫거리 없어요? 우리가 해결해 줄게요.”

“인간이 해결할 만한 일은 없는뎁쇼?”

“그러지 말고 얘기해 봐요. 말한다고 손해 볼 건 없잖아요.”

“흠. 그래요. 수다나 떨 겸 얘기나 늘어놓죠.”

헌터 사회에서도 임무를 도와주고 물건을 받는 일은 종종 있다.

그 경험을 살리니 도움이 된 것이다.

“생각만 해도 열받아서 생각 안 하려고 했는데. 후.”

“바쁘니까 요점만.”

“아, 네네. 그게 며칠 전 일이었습니다. 저희 약재상 물건 중 가장 값나가는 물건 중 하나인 천수 산삼이라는 삼이 있었습니다. 인간 땅의 100년 먹은 산삼과 작은 구멍에서 나오는 마계의 기운이 황금 비율로 어우러져 탄생하는 극상의 약재지요. 그런 하늘이 내려 주신 산삼을 녀석이 홀라당 훔쳐 가 버린 겁니다! 무려 10,000칩의 가치가 있는 약재를!”

“녀석?”

“족제비입니다. 지금은 행방조차 알 수 없어요.”

“특징은?”

“회색에 검은 점박이 무늬가 있습죠. 그 밖에는 워낙 빠른 놈이라 잘…….”

“알겠네. 기다리고 있게.”

강철남은 한지영의 손을 꽉 잡고 조금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앗, 철남 씨! 어딘지 짚이는 데가 있어요?”

“도움을 받을 만한 곳이 있어.”

“그럼 서둘러요! 저도 있는 힘껏 따라갈 테니까!”

그녀의 말에 강철남이 총알처럼 튀어 나가 사라진다.

눈앞에서 사라졌지만 흔적은 느껴진다.

“후…….”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다리에 힘을 넣는 한지영.

[초신속]

[질주]

[인내]

속력을 최대로 끌어올리고 지구력으로 버티는 삼신기다.

강철남을 따라다니는 사이 몸이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다.

그를 따라잡으려 애를 쓰는 것이 다른 어떤 훈련보다 도움이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가 도착한 곳이 또 이상한 곳이다.

“쿠워어어? (요즘 자주 오네?)”

“철남 씨, 이건…….”

“보다시피 곰이야.”

“알아요. 그게… 귀, 귀엽네요.”

이젠 나도 모르겠다 싶은 한지영이었다.

강철남은 익숙한 듯 곰과 보디랭귀지로 대화를 이어 나간다.

곰과 함께 족제비를 표현하며 네발로 기어 다닐 땐 웃음을 참지 못하고 빵 터지고 만다.

“푸하하하!”

“웃지 마! 지금 누구 살리겠다고 이러고 있는데.”

“미, 미안해요.”

“카오오! 카오오! (족제비! 족제비!)”

“알고 있나?”

강철남은 북한산의 지도를 꺼내 들어 펼친다.

곰이 발바닥으로 가리킨 곳은 기린봉.

그곳에 있다는 것 같았다.

“고마워. 이건 선물이야.”

언제 사 뒀는지 시장에서 산 벌꿀을 한 병 놓아주는 강철남.

곰은 싱글벙글하며 뚜껑을 열고 원샷 한다.

몬스터 시장에서 쇼핑하고, 곰과 대화하고, 그 곰이 꿀을 원샷 때리는 것을 보는 한지영.

마치 하루 동안 지구를 떠나 있는 기분이 든다.

강철남은 산을 넘고 넘어 기린봉이 보이는 반대편 절벽에 섰다.

햇빛을 손등으로 가리며 기린봉을 내다본다.

“기린봉은 반대편인데 왜 이만큼이나 떨어진 곳에 와서 이러는 거예요?”

“족제비란 놈들은 예민하거든. 특히 도망자 신세라면 24시간 레이더에 불을 켜 놓고 지낼 거야. 여기서 놈의 거처를 찾아낸다.”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시각에 정신력을 쏟아 감각을 집중시킨다.

스삭— 스삭—

뭔가 보인다.

녀석이다.

회색에 검은 점박이.

마침내 족제비가 굴에 들어가는 모습을 포착한다.

“지영씨, 칼 줘 봐.”

순간 처음으로 자기 이름이 불리자 심장이 두근 하는 한지영.

“앗, 네! 여기요.”

한지영이 건넨 단도를 받아 든 강철남.

그대로 힘껏 반대편 기린봉 족제비 굴에 날린다.

파아앙!!

단도가 족제비 굴에 닿으며 산 전체에 폭발음 같은 메아리가 퍼진다.

“잡았어.”

“우, 우와… 하하하…….”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온다.

홍태진에게 강철남이 지닌 강함의 비결을 캐내어 오라는 지시를 받은 한지영.

함께 할수록 도통 알 수가 없어진다.

“여깄군.”

기린봉 족제비 굴에서 천수 산삼을 꺼내 드는 강철남.

산삼이 부서지지 않은 게 신기할 따름이다.

“자, 얼른 돌아가요. 홍 팀장님에겐 시간이 없어요.”

강철남의 속도를 따라잡느라 지친 한지영.

하지만 정신력으로 버틴다.

그릇이 작다면 키우면 된다.

세상에 여자 헌터는 생각보다 많다.

레벨과 랭크라는 시스템은 성별에 따른 신체적 한계도 초월할 수 있게 하니까.

본래 경찰 출신이었던 한지영.

사람들을 돕고 무고한 시민들을 지키고 싶다는 순수한 정의감이 넘쳤다.

그러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제압해야 할 상대가 남자라면 근접전에서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여자니까 어쩔 수 없어.”

주변인들은 그렇게 위로했다.

분했다.

나약한 자신이 원망스럽고 분했다.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신체적 한계에 분노했다.

그런 시기에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

상태창은 노력에 걸맞은 보상을 가져다주었다.

오늘 이를 악물고 일어서면 더 강해진 내일이 찾아온다.

그러니 일어서야 한다.

다리에 힘을 주고 저 남자를 따라잡아야 한다.

한계를 넘어야 한다.

더 강해질 수 있어.

[한계 돌파]

그녀의 몸에서 푸른빛이 돌기 시작한다.

새로운 스킬이 발동된 것이다.

일시적으로 자기 레벨과 랭크를 초월한 힘을 낼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스킬.

인간 중 누구도 발동한 적 없는 최초의 스킬이다.

[초신속]

[질주]

지친 다리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가뿐히 산을 뛰어넘는 강철남의 뒤를 쫓았다.

“따라잡을 수 있어!”

강철남의 뒤를 바짝 쫓는 한지영.

적당히 속도를 조절하는 강철남이었지만 그녀의 성장에 옅은 미소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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