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최강 자연인이다-27화 (27/175)

27화 돈 좀 꿔줘

홍시를 쩍 가르자 결을 따라 주홍빛 속살이 드러난다.

마치 오후의 석양같이 찬란한 빛이다.

약간의 떨떠름한 맛은 단맛을 배가시켜 주기에 그마저도 혀를 즐겁게 한다.

“철남이, 군고구마는 언제 완성돼?”

“아직 한참 기다려야 해.”

입가에 홍시를 잔뜩 묻힌 멍구가 꼬르륵 소리를 내며 재촉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홍시를 맛보기 위해 가을이라는 계절까지 겨울, 봄, 여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처럼.

겨울이라…….

응?

겨울?

강철남은 다 지은 집을 돌아보았다.

얼마 전 지붕까지 얹으니 제법 그럴듯한 나무집이 완성되었다.

그런데,

“멍구야 우리 창문은 어떡하냐?”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 나는 개잖아.”

창문이 없다.

어쩐지 밤에 우풍이 겁나 심하더라니.

“유리창을 달아야겠어.”

“사람 불러, 사람.”

“요즘 같은 요지경 세상에 몬스터가 득실대는 산까지 오려는 사람이 있겠어?”

“그럼 어떡해?”

“멍구야, 군밤이랑 군고구마는 다음에 먹자.”

“뭔 개소리야?!”

바닥에 드러누워 절규하는 멍구.

그러거나 말거나 뒹굴거리는 멍구를 내버려 두고 잘 익은 가을의 양식을 챙긴다.

향한 곳은 백운산 능선의 동굴.

소문에 밝은 정보통 곰을 찾아간다.

“약소하지만 이거 받게나.”

“쿠어어어. (뭘 이런 걸 다)”

“물어볼 게 있다.”

“우어엉. 쿠어와앙. (말만 해. 그나저나 이 군고구마 존맛)”

“혹시 몬스터들 사이에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이 있나?”

“쿠어어엉. 쿠아웅. 쿠아웅. (너 청수 폭포 게임장 갔잖아. 거기 주인장이 이 바닥 큰손이야.)”

“뭐래는 거야, 이 곰탱이?”

멍구가 도저히 못 알아듣겠다는 듯 투덜댔다.

그러자 곰이 날개를 퍼덕이는 시늉을 해 본다.

“아하, 수리부엉이?”

“쿠앙!! (그렇다!!)”

“아니, 결국 남한테 떠넘기는 거냐? 우쒸, 내 고구마 내놔!”

꾹 참고 있던 멍구는 곰에게 달려들어 고구마를 뺏어 먹는다.

“쿠어와앙! (내 고구마!)”

강철남이 그런 멍구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동굴을 나선다.

기어이 황금빛 군고구마를 한 입 뺏어 먹은 멍구의 입가에 만족한 미소가 걸린다.

결국 다시 청수 폭포 게임장으로 향하는 강철남.

시원한 물줄기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폭포수를 넘어 뒤편으로 들어서니 수리부엉이가 반겨 준다.

“강철남 님. 어서 오시죠. 게임 하러 오셨습니까?”

“오늘은 다른 용무야.”

“오호, 이곳에 다른 용무라.”

“유리창이 필요해. 그것 말고도 이것저것 물건을 구하고 싶은데 장터 같은 곳이 있나?”

강철남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수리부엉이.

고개를 끄덕이며 잘 찾아왔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제가 운영하는 사업장이 있죠. 그곳에서 원하시는 물건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대체 굴리는 사업장이 몇 개야?”

“때로는 상상으로 남겨 두는 편이 더 재밌는 법이죠.”

수리부엉이는 부드럽게 웃을 뿐이었다.

녀석은 강철남과 멍구를 다른 복도로 안내했다.

복도 끝에 다다르자 돌문이 하나 보였다.

문이라 표현하기도 뭣한 바윗덩어리 그 자체였다.

톡— 토도독— 톡톡—

수리부엉이가 특이한 리듬으로 바위를 부리로 콕콕 찌른다.

그러자,

쿠르르릉—

바위 문이 일어선다.

응? 일어선다고?

쿵쿵 걸어가는 바위 문의 정체는 스톤 골렘.

녀석이 주저앉아 문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가시죠.”

수리부엉이의 안내를 받아 이어지는 통로를 따라 걷는다.

“이봐, 부엉 씨. 이 녀석을 어떻게 길들인 거야? 겁나 말 안 듣는 애들이던데.”

멍구가 별일이라는 듯 묻는다.

“같은 개체의 몬스터들이라도 성격은 다 제각각이죠. 마치 인간들처럼요.”

“맞아. 백진섭처럼 생각이 깊은 인간도 있는 반면 김성남처럼 뇌를 집에 놓고 외출하는 인간도 있잖아.”

“하하하. 몬스터 세상도 다르지 않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동력을 제공한다. 여기서 일하는 몬스터들도 그렇게 살아가는 법이죠.”

“게임장에서 빚을 졌다면 우리가 하루 종일 문이나 지키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는걸.”

“운명이란 한 끗 차이죠. 자, 다 왔습니다.”

통로의 끝에 다다르자 환한 빛이 쏟아진다.

빛을 헤치며 나온 광경에 강철남과 멍구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휘황찬란하게 반짝이는 조명들이 천장에 붙어 어둠을 씻어내고 있었다.

이 드넓은 공간에 팝업 스토어처럼 천막과 좌판이 쫙 깔려 있다.

몬스터들이 소란스레 호객을 하고 손님들은 시끄럽게 흥정을 한다.

“저기 빛나는 조명 보이십니까? 바로 마석입니다. 빛을 가둬 두어 밤조차 아침으로 밝히는 힘이 담겼죠.”

“어떻게 그게 가능해?”

여기저기를 정신없이 구경하던 멍구가 묻는다.

“후훗. 몬스터는 인간 못지않게 수수께끼가 많은 존재죠. 저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마법을 쓸 줄 아는 몬스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마법!”

흥분해서 빙글빙글 도는 멍구.

“철남이. 그 마법이란 거 한 번 보고 싶구만.”

“왠지 우리 팔자를 생각하면 언젠가 공격용 마법을 보게 될 것 같은데.”

시장을 요리조리 둘러보니 규모가 크다.

생전 처음 보는 물건들투성이.

없는 게 없는 수준이다.

“부엉이 양반. 저,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편하게 말씀하시죠.”

“돈 좀 꿔 주겠나? 지금 가진 게 없어서.”

“하하하. 이미 많이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응?”

“게임장에서 딴 칩. 그걸로 물건을 구매하실 수 있을 겁니다.”

리저드맨에게서 딴 칩이 곧 이 시장의 화폐인 것이다.

생각도 못 한 개꿀 수익이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어서요. 나가실 땐 스톤 골렘이 문을 열어 줄 겁니다. 다시 들어오시려거든 아까처럼 박자에 맞춰 노크해 주시면 됩니다.”

“그래, 고마워. 부엉이 양반.”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수리부엉이는 저공비행하며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덩그러니 시장 한복판에 남은 강철남과 멍구.

몬스터들이 흘긋흘긋 쳐다본다.

“철남이, 방금 째려본 새끼 얼굴이 마음에 안 드는데 한 대 쥐어 박아도 될까?”

“참자. 남의 사업장에서 깽판을 놓을 순 없지.”

음식을 파는 곳, 옷을 파는 곳, 무기와 갑옷을 파는 곳.

섹터별로 다양한 물건을 팔고 있었다.

불과 땀 냄새로 가득한 대장장이들의 섹터로 걸음을 옮긴다.

이 구역이라면 유리 세공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때,

“쿠헤헤! 웬 인간이랑 똥개 새끼가 이런 곳을 어슬렁거리고 있을까?”

돼지 수인 몬스터가 시비를 걸어왔다.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입술로 입맛을 첩첩 다시는 게 추잡스럽게 보였다.

“문제 일으키지 말고 꺼져.”

“쿠헤헤헤!! 이거 무서워서 어쩌나?”

돼지 수인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오버를 한다.

개 패고 싶다.

그런 생각이 멍구의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하등한 인간이면 인간답게…….”

쿠왕!

“쿠에엑!!”

뭔가가 돼지 수인의 뚝배기를 주먹으로 내리친다.

강철남은 아니다.

멍구도 아니다.

대체 누구?

“동네 양아치처럼 시비 걸고 다니지 마라.”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녀석의 모습은 기백이 넘쳤다.

녀석은 호랑이 수인.

인간 형태의 모습을 갖춘 호랑이다.

그 눈빛에는 맹수의 왕 다운 포스가 넘쳐흘렀다.

“오호 이 녀석.”

멍구는 호랑이 수인에게서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곤

‘눈’을 통해 녀석의 상태창을 확인해 봤다.

[호세

레벨: 132

힘: SSS++

맷집: SSS++

속도: SSS++]

“오옷, 철남이. 이 친구 엄청 센데?”

“그래 보여.”

호세가 주변을 흘겨보니 구경하던 몬스터들이 호다닥 자리를 떠난다.

그리고 다가와서 하는 말이,

“나는 호세다.”

“나는 강철남, 얘는 멍구.”

“왜 그런 녀석을 내버려 둔 거지?”

“힘 조절 못 해서 여기를 부수면 안 되잖아?”

“흥, 같잖은 말장난은.”

호세는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나는 ‘눈’은 없지만 알 수 있다. 이 시장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이 덤벼도 너 하나 당해 내지 못할 거란 걸.”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나는 이 북한산의 주인이 될 몬스터. 기필코 너를 뛰어넘을 것이다.”

갑자기 자기 포부를 고백하는 호세.

“저기, 안 물어봤는데.”

“다들 왜 그렇게 주인 자리를 탐내는 건데?”

멍구가 대화에 끼어든다.

“흥, 당연하지. 그야 물론 마계에서 한자리하기 위해서지.”

“마계? 한자리?”

“인간과 개 따위는 몰라도 된다.”

제 할 말만 하고 돌아서는 호세.

뭔가 폭풍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것 같다.

* * *

북한산에 전투 차량이 들어선다.

작전은 지난번과 같다.

흩어지지 않고 병력을 집중시켜 단숨에 올라간다.

“출발.”

홍태진의 명령에 헌터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박준범 사건 이후 많은 헌터들이 그만뒀다.

남아 있는 헌터들의 수는 줄었지만 그들은 강해졌다.

설욕을 위해 단련하고 또 단련했다.

이제는 갚아 줄 때다.

빠르게 산을 치고 올라간다.

최형권이 뒤처지긴 했지만 헌터들의 호위를 받으며 천천히 꾸준히 따라오고 있다.

한 5분쯤 달렸을까.

“케에엑!”

멀리서부터 인간의 냄새를 맡고 숨어 있는 고블린이 나무 위에서 활을 쏜다.

하지만 한발 앞서 고블린의 목에 단도를 들이미는 한지영.

써걱—

고블린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목이 떨어졌다.

칼을 든 고블린 복병들이 풀숲에서 튀어나온다.

홍태진은 긴 창으로 한 번에 두 녀석을 꼬챙이 꿴다.

김성남은 고블린들의 머리를 두 동강 내며 먼저 올라가 버린다.

“먼저 가게 내버려 둘 순 없지!”

황기민이 편곤으로 고블린들을 홈런 치듯 날려 버린다.

그러곤 바짝 김성남의 뒤를 쫓으며 경쟁심을 불태운다.

백진섭은 가벼운 칼놀림으로 고블린 잔당들의 숨통을 확실히 끊는다.

팀원들 역시 연계 공격으로 고블린들을 물리쳐 나간다.

강해졌다.

그 강함을 토대로 전원 북한산 진입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콰앙!

제일 먼저 달려 올라가 산 중턱쯤 다다른 김성남이 의문의 공격에 맞고 산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썅, 뭐야!”

공격을 가한 것은 웬 캥거루.

“…….”

캥거루? 북한산에?

황기민은 굴러떨어지는 김성남을 피해 캥거루의 머리통을 향해 편곤을 휘두른다.

“뒤져라!”

그러나 공격이 너무 둔했다.

가뿐히 피하는 캥거루.

오히려 꼬리로 땅을 지탱한 채 서서 발 차기로 황기민을 날려 버린다.

“크악!”

날아가던 황기민은 바닥에 엎어진 김성남과 얽혀 산을 데굴데굴 구른다.

어깨로 그들을 받친 홍태진에 의해 간신히 멈추는 두 사람.

“무슨 일이야?”

“X바, 캥거루 새끼.”

“캥거루?”

폴짝폴짝 뛰며 헌터들이 있는 곳까지 내려오는 캥거루.

“왜 안 죽지? 제대로 맞았는데.”

캥거루는 섀도복싱을 하며 헌터들을 위협한다.

“감별사. 녀석의 상태창은?”

“네, 지금 감별하겠습니다.”

[캥거루

레벨: 56

힘: A

맷집: A

속도: A]

강하다.

하지만 강해진 백 명의 헌터가 힘을 합친다면 맞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켜라. 지금의 우리는 너를 죽일 수도 있다.”

홍태진이 겁을 줘 본다.

하지만 몬스터가 인간을 겁낼 리가 없다.

“히히히. 고블린 몇 마리 썰었다고 자만하지 마라. 나는 호세 산적단의 부대장이란 말씀.”

“호세 산적단?”

“그래, 호세 님은 곧 이 북한산의 주인이 되실 분이지.”

헌터들이 있는 곳으로 폴짝폴짝 뛰어오는 캥거루.

잠자코 듣고 있던 김성남이 못 들어 주겠다는 듯 마주 달려간다.

“흥, 북한산의 주인? 그럼 그 새끼 나오라 그래, 조무래기는 꺼지고!!”

카앙!

캥거루의 펀치와 김성남의 검이 맞닿는다.

빠르게 검을 휘두르는 김성남.

캥거루는 짧은 훅으로 칼을 쳐 낸다.

한지영이 빠르게 파고들어 다리를 노려 보지만 꼬리에 맞아 멀리 날아간다.

녀석의 꼬리가 한지영을 공격하는 동안 백진섭이 나무를 딛고 위에서 덮친다.

[초신속]

[강화]

[발도]

세 개의 스킬을 겹쳐 사용하는 삼신기.

순간 폭발적인 위력을 낼 수 있는 만큼 몸에 부하가 크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놓치면 놈의 목을 칠 기회가 없다.

“하앗!”

백진섭은 환도를 뽑아 휘둘렀다.

그러자,

싹둑—

백진섭의 환도가 태양 빛에 반짝이며 공기를 갈랐다.

칼끝이 지나는 곳엔 피가 흩날렸다.

몸의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백진섭.

그는 보았다.

허공에 떠 있는 캥거루의 팔 한 짝을.

“케에에엥!!”

오른팔이 잘린 캥거루가 고통에 울부짖으며 쓰러진다.

“지금이다!”

홍태진이 창을 투창 자세로 잡아 집어 던졌다.

빈틈을 보였으나 동물적인 본능으로 벌떡 일어나 꼬리로 창을 쳐 내는 캥거루.

“인간 놈들 주제에!”

노기가 띤 표정으로 종아리에 힘을 잔뜩 모으는 녀석.

[탄성]

파앙!

캥거루가 스프링처럼 종아리 근육을 튕긴다.

엄청난 폭발력과 스피드로 날아오는 캥거루.

홍태진은 그것을 보고 반사적으로 방어 자세를 갖췄지만, 힘으로 당해 낼 수가 없었다.

그를 덮친 캥거루는 그와 함께 산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홍 팀장님!”

발 빠른 한지영이 뒤쫓아 와 캥거루의 꼬리에 칼질을 한다.

꼬리가 찢기면서도 허겁지겁 산 아래로 굴러가는 캥거루.

뭔가 다른 목적이 있어 보인다.

홍태진은 뒤엉켜 있는 캥거루를 발로 힘껏 뻥, 걷어차 뿌리친다.

“켁, 켁!”

풀숲으로 날아간 캥거루.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다.

“녀석의 움직임이 수상해. 틈을 주지 마!”

홍태진의 명령에 뒤따라온 헌터들이 캥거루에게 곧장 달려든다.

포기를 모르는 인간들이 성가신 듯 눈에 핏발이 선 캥거루.

덤벼 오는 헌터들을 남은 왼쪽 팔과 꼬리로 처절하게 쳐부순다.

“먹어야 해, 먹어야 해!”

미친놈처럼 무언가를 기분 나쁘게 중얼거리던 녀석이마침내 뭔가를 발견한 듯 바닥에 얼굴을 처박는데.

“와구 와구. 으적으적. 첩첩.”

녀석의 입가에 피가 흥건하게 묻는다.

고블린이다.

캥거루가 고블린을 씹어 먹고 있다.

몬스터가 몬스터를 먹고 있다.

그 결과가 불러오는 무서움을 헌터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설마… 전원 돌격! 녀석을 막아!”

홍태진이 다급하게 명령을 내린다.

몬스터가 몬스터를 먹으면 강해진다.

그리고,

파앗—

잘린 부위가 재생된다.

절단면에서 오른팔이 튀어나온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