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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 자연인이다-24화 (24/175)

24화 도박은 패가망신의 지름길

잠시 산 아래 다녀온 사이 웬 몬스터랑 고스톱을 쳤다는 멍구.

집을 담보로 걸고 날려 버렸댄다.

세상에 이런 개막장 댕댕이와 함께 사는 인간은 강철남밖에 없을 것이다.

강철남은 할아버지의 밥상머리 교육이 떠올랐다.

‘철남이 네 이놈!’

강철남의 할아버지는 예의에 있어서 엄한 성품이었다.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중시하고 인의에 벗어나는 길을 멀리하였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고 강직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웠다.

그런 노인이었기에 손자 교육에도 열의가 넘쳤다.

특히 밥상머리 교육에 있어서는,

‘어허, 이놈! 어른이 먼저 한술 뜨면 그다음에 수저를 드는 것이야!’

호통 한 마디가 끝날 때마다 강철남은 숟가락으로 이마빡을 한 대 맞는다.

‘밥상에 팔은 얹는 것이 아니야!’

또 숟가락으로 이마빡 한 대.

‘밥풀 한 톨도 낭비하지 않는 것이야!’

또 이마빡.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셀 수 없이 숟가락으로 이마빡을 처맞은 강철남.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안다고 숟가락으로 맞아 본 강철남은 할아버지 못지않게 숟가락을 찰지게 휘두를 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단순 숟가락질만 배운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강철남의 좌우명을 만들었다.

바로 ‘밥 먹을 때는 개도 건드리지 말자’라는 것.

그 신념 탓일까.

무슨 일이 있어도 밥 먹는 멍구를 혼내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어휴, 이 씨빠!”

속 편히 밥을 처먹고 있는 멍구를 보니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워, 워. 철남이. 진정해. 밥 먹는데 먼지 날린다구!”

멍구가 앞발을 흔들며 말린다.

“철남이, 걔 상태창 보니까 별로 세지도 않더라. 그냥 몰래 담가 버리면 안 돼?”

“개 양아치 새끼네 이거.”

몬스터와 개의 계약.

법적 효력이 없다 우길 수 있겠지만 무슨 계약서에 발도장까지 찍었단다.

‘어휴, 이 웬수.’

다 무시하고 그 녀석을 때려 팰 수도 있겠지만 그건 깡패나 다름없다.

힘으로 찍어 눌러서 될 일이 아니다.

도박일지언정 약속은 약속.

“걔 어디 사냐?”

“왜?”

“찾아가야지.”

“가서 뭐 하게?”

“뭐 하긴. 다시 집을 따 와야지.”

사업을 말아먹고 전국 장을 누볐던 강철남이었다.

그때 화투장으로 돈깨나 만졌던 과거가 있다.

‘몬스터 새끼들, 대한산 타짜의 손기술을 보여 주지.’

“아, 그런데 문제가 있는데.”

머쓱해하며 입을 떼는 멍구.

“너 걔 사는 곳 모르지.”

“우히힛.”

뭐가 좋다고 낄낄대는지.

강철남은 멍구를 들어 올리고 마구 흔들어 댄다.

“으이그. 으이그!”

“켕! 켕!”

실컷 혼이 난 멍구.

미우나 고우나 가족이다.

멍구를 그만 내려놓고 길을 나선다.

“그 녀석 특징은 어떻게 돼?”

“도마뱀 인간이었어.”

“간단하겠군. 물가로 가 보자.”

먼저 계곡으로 향한 강철남과 멍구.

물도 많고 습한 땅이라 도마뱀이 좋아할 것이다.

그런데 도마뱀 꼬리는커녕 지렁이 한 마리 안 보인다.

대신 웬 붉은귀거북 한 마리가 물속에서 눈알을 끔뻑끔뻑대며 노려본다.

“왜? 뭘 봐 인마.”

“맛있겠군.”

“지랄 떨지 말고 헤엄이나 계속 쳐. 기분 안 좋으니까.”

“그 개, 한 입만 먹어 보자.”

“아? 개? 한 입 정도야 줄 수 있지.”

강철남은 멍구를 번쩍 들어 물속에 첨벙, 던져 준다.

“이 인간이 미쳤나. 이러려고 피둥피둥 살을 찌운 게냐?!”

“같은 동물 친구들끼리. 다리 한 짝 정도는 줄 수 있잖아.”

“쩝쩝. 잘 먹겠습니다.”

입을 쩍 벌리는 붉은귀거북.

하나 멍구가 레프트 훅으로 턱주가리를 돌려 버린다.

콰앙—

“쿠왁!”

“건방지다.”

개헤엄으로 물에서 나오는 멍구.

몸을 부르르 흔들어 물기를 털어 낸다.

독기 강한 계곡물이 바닥에 튀면서 잔디가 녹아내린다.

“철남이, 이걸로 혼쭐은 다 난거지?”

“너 하는 거 봐서.”

“내 견권을 보장해 줘!”

시위하는 멍구의 눈치를 살살 보던 붉은귀거북.

앞발로 턱주가리를 부여잡으며 달아나는데.

멍구가 녀석을 불러 세운다.

“야, 너! 혹시 도마뱀 인간 못 봤냐?”

“모, 못 봤는데요.”

“못 봤으면 끝이냐?”

“아, 알아보겠습니다.”

“됐다, 됐어. 이 산에서 소식통 좀 빠른 몬스터 없냐?”

“백운산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동굴이 하나 있어요. 거기에 사는 곰이 소문에 빠삭하다고 들었습니다만.”

붉은귀거북이 훌쩍이며 대답한다.

“그 녀석이로군.”

강철남이 뭔가 생각난 듯하다.

박준범을 찾아 헤매던 당시 만났던 곰.

“그런데 그 곰 말을 못 해.”

“그럼 말짱 도루묵이잖아.”

손가락을 까딱까딱 흔들어 보이는 강철남.

“멍구야. 네가 말 못 하던 시절에 어떻게 나랑 대화가 통했는지 기억나냐?”

“술 처먹고 개가 되었나?”

“맞는다.”

“쏘리.”

“동물에겐 행동 언어가 있다. 몸짓이야말로 동물들의 근본적인 의사소통 수단이지.”

“호오, 똑똑해 보이는데?”

강철남은 집에서 종이를 챙긴다.

“그걸로 뭘 하게?”

“다 생각이 있지.”

단숨에 달려 산 정상에 올랐다.

위에서 북한산을 훤히 내려다보며 종이 위에 간략한 지도를 그리는데,

슥삭— 슥삭—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연필을 삭삭 그어 본다.

심혈을 기울여 그린 끝에 지형의 특징들을 섬세하게 표시한 지도가 완성되었다.

“이 정도면 역작이군.”

나름 뿌듯하다.

그런데 뒤에서,

“낄낄낄. 겁나 못 그리네.”

웬 원숭이 무리가 강철남의 그림을 보고 비웃고 있다.

안 그래도 집 날려서 기분 안 좋은데 처음 보는 놈들이 시비를 걸고 있다.

“철남이, 이 원숭이 새끼들 김성남이랑 동급인데.”

멍구가 ‘눈’으로 상태창을 확인하고 일러 준다.

“김성남은 0.1초 컷이니까 이 새끼들은 1초면 충분하겠군.”

“우끼끼.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콰악—

강철남은 연필을 쥐고 그대로 원숭이들의 정수리를 찍어 버렸다.

“끼이이이!!”

산 정상에서 원숭이들의 비명이 메아리친다.

“꿇어앉아.”

강철남의 명령에 군말 없이 무릎을 꿇는 원숭이들.

피가 줄줄 새어 나오는 정수리를 부여잡고 오들오들 떤다.

“혹시 도마뱀 인간 못 봤나?”

“잘 모르겠는데요.”

“요즘 몬스터들 아가리 자판기에는 모른다는 메뉴밖에 없냐? 입만 열면 모른다는 말이 자동으로 나와. 철남이, 그냥 죽기 직전까지 패자. 저승사자 얼굴을 보면 좀 기억이 나겠지.”

“히이익!”

원숭이들이 엎드려서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를 낸다.

“니들 진짜 몰라?”

“모릅니다요, 정말 모릅니다. 만약 거짓말이면 저희가 원숭이가 아니라 개입니다.”

“아니, 이 새끼들이. 개가 뭐 어때서?”

멍구가 앞발로 원숭이들의 대가리를 퍽퍽 때린다.

“아악!”

견원지간이라는 말이 새삼 주종 관계를 뜻하는 말인가 싶다.

실컷 두들겨 맞은 원숭이들은 얼른 여기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다른 질문에 답해 주면 집에 보내 줄 테니까 잘 생각해.”

“네! 알겠습니다!”

강철남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벌집이 있는 곳을 아나?”

* * *

땅을 접어 인수봉을 따라 내려가니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원숭이들이 알려 준 나무 앞에 서자 탐스럽고 큼직한 벌집이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벌꿀, 참 좋지. 달달하고 프로폴리스도 풍부하고.

영양 만점, 노화 방지라고 하면 아재들은 환장하지 않는가.

꿀꺽.

멍구는 침이 꼴딱 넘어간다.

저 먹기에도 아까운 자연산 벌꿀을 곰에게 선물로 준다니 참 아쉬웠다.

“철남이, 저 꿀 그냥 우리가 먹자.”

“정보값은 치러야지.”

“그냥 줘 패면 안 돼?”

“그러니까 네가 개양아치 소리를 듣는 거야.”

그때, 강철남과 멍구의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왱— 왱—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소리.

그것은 바로 귀에서 왱왱대는 벌레 소리다.

[일벌

레벨: 31

힘: D

맷집: DD

속도: CC]

일벌 한 마리가 인간계 최강 김성남 정도의 힘을 가졌다.

하지만 멍구에겐 그저 간식거리일 뿐.

“와그작—”

멍구는 출출했는지 벌들을 씹어 먹으며 허기를 달랜다.

조금 쓴 맛도 나고 꿀이 묻은 녀석은 달달한 맛도 났다.

그 미약한 단맛은 멍구의 뇌를 사로잡았다.

“철남이, 저 꿀 존맛인 거 같은데.”

“밑밥 깔지 마.”

멍구가 벌들을 상대하는 사이 강철남이 나무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준비해 온 병에 꿀을 조금만 채취한다.

완벽한 비율의 아름다운 육각형.

조각을 떼어냈을 때 엿가락처럼 먹음직스럽게 쭉쭉 늘어나는 자연산 천연 벌꿀.

강철남의 자연인 DNA가 요동친다.

‘참아야 해!’

“철남이, 싸그리 다 챙기지 왜 조금만 챙기나?”

“벌들도 겨울을 나야지. 먹을 만큼만 가져가면 돼.”

강철남은 챙겨 온 꿀통에 꿀을 담고 내려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멍구가 은근히 유혹하기 시작한다.

“철남이. 우리 그거 맛만 보자.”

“어허, 안 돼. 선물이라고 말했지. 지금 이 지랄하는 게 다 누구 때문인데.”

뜨끔하지만 이미 눈이 뒤집혀 뵈는 게 없는 멍구.

“우와! 이 황금빛 봐! 여태 봐 오던 벌꿀과는 차원이 다른 빛깔. 어때, 철남이? 이건 그냥 벌꿀이 아니라 몬스터가 모은 자연산 벌꿀이라구! 과연 세상에 맛본 인간이 있을까? 없겠지! 이 귀한 걸! 어떤 맛일까? 분명 혀가 녹아내릴 거야. 철남이, 궁금하지 않나?”

멍구를 한 번 째려보는 강철남.

솔직히 엄청 궁금하긴 하다.

아니 궁금해 미쳐 버릴 것 같다.

그래, 이렇게 많은데 딱 한 방울만이라면…….

“안 되는데.”

“안 되는 건 없네, 철남이.”

“선물인데.”

“선물하는 사람이 먼저 맛을 알아야 할 거 아냐. 좋은 선물인지 아닌지.”

기적의 개논리를 펼치는 멍구.

자연산 벌꿀을 손에 쥔 자연인 강철남.

일이 벌어지는 것은 시간의 문제였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니까.

결국 강철남도 이성의 끈을 스리슬쩍 놓아 버리고 만다.

“딱 맛만 보는 거다.”

“물론! 멍멍!”

* * *

“쿠어어, 쿠워어엉? (그래서 이걸 선물이라고 가져온 거냐)?”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양보다 정성이라구.”

곰 앞에 놓인 건 화장품 샘플 통에 반도 안 채워진 꿀 한 모금.

“쿠웡. 쿼어. (이따위로 가져올 거면 그냥 빈손으로 와)”

“뭐, 그렇게 고마워할 건 없고.”

“쿠어어엉. (제멋대로 해석하고 앉아 있네)”

“아 참, 우리가 찾아온 이유가 있는데.”

“쿠엉? (뭔데?)”

강철남은 준비해 온 지도를 꺼내 보였다.

“도마뱀 인간을 찾고 있는데 어딨는지 알아?”

“우어엉. 우웡. 쿠우엉. 우워어엉. (리저드맨을 말하는 건가. 그들이라면 청수 폭포 뒤편의 숨겨진 동굴에 있다네)”

곰은 손바닥으로 청수 폭포를 가리켰다.

온몸으로 콸콸 쏟아지는 폭포를 표현하고 그 뒤편에 동굴이 있음을 열심히 몸으로 설명한다.

“아하, 청수 폭포 뒤편에 동굴이 있는데 거기에 있다는 뜻이지?”

“쿠아앙!! (정답이다!!)”

“이거 참 고맙군. 약소하지만 우리 선물 받고 기뻐해 줬으면 좋겠군.”

“웅어어어. (나갈 때 이 쓰레기나 가져가)”

“고맙네. 그럼 우린 이만.”

“쿠어아앙!! (쓰레기 가져가!!)”

* * *

청수 폭포에 다다른 강철남과 멍구.

대한민국에 이런 폭포가 있었나?

거의 나이아가라 폭포급으로 물벼락이 떨어지고 있다.

[청수폭포

생존 레벨: 35

수력 : BB]

“철남이. 아무래도 이 폭포도 기이하게 변형된 것 같아. 물줄기가 강력해서 BB급 밑으로는 들어가지도 못해.”

“급이 안 되는 녀석들은 자동 입구 컷인가. 편리한 시스템이군.”

강철남은 폭포 물에 세수를 하고 뒤편 동굴로 걸어 들어갔다.

동굴은 긴 통로로 이어졌고 생각보다 넓었다.

거의 동굴 끝에 다다랐을 무렵 누군가 둘을 불러세웠다.

“어서 오십시오. 두 분 모두 처음이신가요?”

차분한 음성으로 정중하게 말을 건 녀석은 강철남과 키가 비슷한 수리부엉이였다.

“여긴 어디지?”

“이곳은 게임장입니다. 정확히는 내기 게임장이죠.”

“그런 게 왜 이 산속에 있는 건데?”

“그럼, 설명 드리겠습니다. 작은 구멍을 통해 나온 몬스터들은 인간을 먹어야만 산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 최근 인간들이 이곳으로 오지를 않죠. 때문에 무료해진 시간을 달래려 모인 몬스터들이 만든 놀이터가 바로 이곳입니다.”

수리부엉이는 간결하게 핵심만 집어 설명했다.

묻는 말 이외에는 답하는 법이 없었다.

더 상세하게 물어봐야 이야기를 캐낼 수 있을 것 같다.

“내기라면 뭘 거는 거지?”

“다양합니다. 간식, 장식품, 거처 등 자기 소유로 인정되는 무엇이건요.”

거처란 말이 나오자 뜨끔 하는 멍구.

킁킁대며 평범한 개 행세를 한다.

“나 같은 인간도 어울릴 수 있나?”

“물론이죠. 가진 걸 내놓을 준비가 된 존재라면 누구나 환영입니다.”

그 말에 강철남이 웃으며 말한다.

“물론 니들이 가장 탐내는 건 인간의 목숨 아닌가?”

그러자 수리부엉이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연다.

“안에 있는 자들은 냉혹한 자들입니다. 부디 조심하시길.”

강철남은 미소를 띠었다.

오랜만이었으니까.

조심하라는 말을 들어 본 게 말이다.

강철남과 멍구가 게임장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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