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숟가락 살인마
* * *
“저는 지금 명동에 나와 있습니다. 현재 서울 헌터 연합회가 병력을 동원해 출입을 엄금하고 있는 이곳은 한 의문의 몬스터가 출몰했다는 장소로부터 5km 떨어진 지점입니다. 시민들은 몬스터의 정보 공개를 촉구하고 있으나 헌터 연합 측에서는 아직 확인된 바 없어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놓고 있습니다.”
명동은 취재진들로 북적였다.
드론을 날려 취재를 감행하다 격추되는 사건도 있었고,
몬스터를 촬영하기 위해 돈을 주고 로비를 하는 기자도 있었다.
인터넷에서는 몬스터의 정보에 관한 허황된 소문이 떠돌았다.
상태창이 측정 불가 수준의 불고렙 몬스터라는 둥,
정부에서 실험체로 만들다 폭주한 실패작이라는 둥.
형태야 어찌 됐든 하나같이 국민들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낭설들이었다.
“현재 명동에 나타난 몬스터에 관한 정보는 밝혀진 바 없으며 연합의 헌터들이 토벌에 나섰습니다.”
서필도는 급히 열린 기자 회견에 참석하여 이야기를 둘러댔다.
그가 몬스터에 관한 정보를 숨긴 것은 두 가지 혼란을 막기 위해서다.
첫째는 레벨 100 이상 SSS랭크의 몬스터가 실존하며 그것이 서울 한복판에 나타났다는 혼란.
두 번째는 그런 수준의 몬스터를 헌터들이 당해 낼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혼란.
괴로웠다.
진실을 감추고 국민들을 속여야 한다는 사실이.
하지만 서필도의 자리는 그런 자리다.
비난의 화살을 맞더라도 거짓말을 해야 하는 입장.
기필코 숨겨야 한다.
밝혀지면 국가에 큰 혼란이 초래될 그 몬스터에 관한 진실을 말이다.
“크그긋. 구독과 좋아요. 키히힛.”
박준범은 헌터들을 짓밟았다.
날아드는 화살을 쳐 내고 칼끝을 잡고 가뿐히 부러뜨렸다.
헌터들의 팔을 꺾고 멀리 던져 버린다.
마치 종이를 찢듯 가뿐히 헌터를 찢어 버린다.
[신속]
[강화]
“뒈져라!!”
김성남은 폐가 터지도록 쉴 새 없이 칼을 휘둘렀다.
“켁!”
황기민은 늑골이 부러진 채 달려들다가 날아오는 돌덩이 파편에 맞아 기절했다.
홍태진은 이마가 찢어져 피가 흘렀다.
앞이 잘 보이지 않음에도 노련한 감각만으로 창을 휘둘러 공격했다.
“뭔가 이상해요.”
한지영이 한참 공격을 가하다 물러서서 생각한다.
실력에 비해서 너무 봐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몬스터는 힘을 조절하지 않는다.
가진 힘을 전부 끄집어내어 적을 물어뜯는 것.
그것이 몬스터의 전투 방식.
하나, 박준범이라는 몬스터는 힘을 절제하고 있다.
죽지 않을 만큼 일격을 날리고 빈틈이 생겨도 반격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러 맞아 준다는 느낌마저 든다.
“홍 팀장님!”
“왜 그러나?”
“녀석한테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아요.”
“너도 그렇게 생각하나?”
위화감을 느낀 건 한지영뿐만이 아니다.
홍태진도 박준범의 봐주는 태도에 수상함을 느꼈다.
“녀석에게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하다.”
“어떡하죠? 공격을 중단할까요?”
“아니, 그걸 사용할 때가 온 것 같군.”
홍태진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발신, 서필도.]
“부협회장님, ‘그 무기’ 사용 허가를 내려 주십시오.”
마침 기자 회견을 마친 서필도.
그렇지 않아도 각오하고 있었다.
‘가진 카드를 모조리 꺼내야 하는 궁지까지 몰린 건가.’
그만큼 박준범이라는 몬스터는 인류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좋네. 허락하겠네.”
서울 헌터 연합에서 거대한 수송 트럭이 출발했다.
커다란 짐을 실은 트럭은 전속력으로 명동으로 진격했다.
“부디 신에게 인류를 향한 자비가 남아 있기를.”
서필도는 멀리서나마 기도를 올렸다.
격렬한 전투가 이어지는 사이 트럭이 도착했다.
홍태진은 곧장 트럭으로 달려갔다.
트럭의 짐칸이 열리더니 커다란 쇠뇌가 모습을 드러냈다.
“홍 팀장님 이건?”
한지영은 처음 보는 무기였다.
극비리에 제작된 서울 헌터 연합의 비밀 무기.
무쇠 골렘의 남은 신체로 만든 대형 쇠뇌다.
몬스터에게 인간의 무기는 통하지 않아, 몬스터의 신체로 만든 무기만이 유일한 대항 수단이다.
심지어 화살과 총알을 몬스터의 신체로 만든다 하더라도 격발하는 활과 총이 인간의 물건이라면 그 무기는 효력을 잃는다.
그렇기에 이런 거대한 쇠뇌를 만들 때도 하나부터 열까지 몬스터의 신체를 활용해 만들어야 했다.
강한 몬스터를 재료로 쓸수록 무기는 강해진다.
그 사실을 바탕으로 현재 인류가 가진 최강의 소재, 무쇠 골렘의 몸으로 만든 쇠뇌와 화살이다.
이것이 녀석에게 통하길 바랄 뿐이다.
“한 팀장님! 거들어 줘요!”
장혜리는 이 무기의 정체를 아는 듯 능숙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그녀의 부름에 한지영도 달려가 장전을 거든다.
사수는 홍태진.
허락된 화살은 단 한 발.
“하압.”
호흡을 가다듬는다.
흔들리지 않고 올곧게 날아가라.
“조준 완료.”
홍태진은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주변의 소란이 잠잠해졌다.
시야가 좁아지고 박준범 하나만 보였다.
서풍으로 잔잔히 부는 바람이 느껴진다.
약한 바람이다.
극복할 수 있다.
이대로 쏘기만 하면 된다.
“후.”
숨을 천천히 내뱉으며 가볍게 방아쇠를 당긴다.
피이잉!
강한 장력에서 벗어난 무쇠 화살이 날카롭게 날아간다.
“제발!”
장혜리는 화살이 맞길 바랐다.
“부탁해!”
한지영은 화살이 녀석에게 상처를 입히길 바랐다.
“과연.”
홍태진은 이 화살이 이 싸움의 종지부를 찍길 바랐다.
그러나,
쿠웅!
화살이 녀석의 이마에 꽂혔다.
단,
살갗을 조금도 뚫지는 못한 채 말이다.
“키히히…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크그긋. 우라얍!”
홍태진은 손바닥으로 이마를 감쌌다.
희망이 이토록 쉽게 무너져 내리다니.
그리고 경악했다.
박준범이 다음에 취한 행동은 무쇠 화살을 입에 넣고 와드득 씹기 시작한 것이다.
콰작— 콰작—
무쇠 화살을 먹어 치운 박준범.
갑자기 혈색이 어두워지더니 피부가 짙어진다.
혈관이 팽팽해지면서 몸이 부풀기 시작한다.
“이 새끼, 더 단단해졌어.”
녀석의 목을 힘껏 내리친 김성남의 손목이 후들거린다.
무쇠 칼은 날이 닳아 있다.
흥분이 가라앉은 김성남은 녀석을 똑바로 살피자 그제야 제대로 보였다.
지금 자기가 상대하고 있는 몬스터는 정말 말 그대로 ‘괴물’이라고.
“끄그긋. 키히히. 크하하하하. 구독, 구독, 좋아요,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박준범이 팔을 크게 휘두르자 풍압만으로 콘크리트 도로가 쩌적하고 갈라진다.
주변의 헌터들은 그 충격에 비틀대다 쓰러진다.
“홍 팀장님! 이젠 어떡하죠?”
장혜리가 그를 재촉한다.
하지만 눈앞이 깜깜해져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홍태진.
이젠 더는 방법이 없다.
시야가 흐릿해진다.
눈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장혜리의 실루엣이 보인다.
절망만이,
느껴진다.
“끼히히. 크그긋. 구독과 좋아요. 우라얍!”
갑자기 박준범이 근육을 움씰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기분 나쁘게 뭔가를 게워 내듯 헛구역질을 한다.
그 순간,
챙— 챙—
녀석의 몸에서 날붙이가 가시처럼 돋아났다.
그것들은 여태 헌터들이 녀석에게 휘둘렀던 무기와 똑같은 소재와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설마 우리 무기를 복제하려고 일부러 맞았던 거야?”
한지영은 단도를 떨어뜨렸다.
전의를 상실했다.
이런 몬스터는 이길 수 없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눈’으로 녀석의 상태창을 확인하던 최형권이 현기증을 이겨 내지 못하고 구석으로 달려가 구토를 한다.
눈앞이 어지러웠다.
이런 무시무시한 존재의 상태창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무너져 내렸다.
“오냐, 이 새끼. 네가 죽나 내가 죽나. 둘 중 하나는 죽자 그래!”
김성남은 남은 힘을 쥐어 짜냈다.
[초신속]
속도를 한계까지 높였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적어도 눈알 하나만이라도!
[강화]
째앵—
김성남이 박준범의 눈을 찌르는 순간 무쇠 칼이 부러졌다.
“끼히히.”
박준범은 손가락을 무쇠 칼로 변형시켰다.
지금까지 충분히 가지고 놀았다.
이제는 김성남을 죽일 셈이었다.
“그래, 새끼야. 상대가 이 김성남인데 봐주면 안 되겠지? 전력으로 찔러 봐!”
김성남은 마지막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끝이구나.
“…….”
그 순간이었다.
[초신속]
파악—
누군가 김성남을 덮쳐 빼내었다.
초신속을 쓸 수 있는 건 김성남이 유일했건만 어떻게.
“누, 누구야.”
그의 어깨에 명치를 맞아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김성남은 목소리를 짜내어 물었다.
“앗, 미안합니다. 급하다 보니.”
“배, 백진섭? 당신 뭐야. 어떻게 초신속을?”
“급하다 보니 저절로 나왔습니다. 김성남 씨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요.”
“징그러운 소리 집어치워.”
“하하하. 여전한 모습 보여 주니 마음이 놓입니다.”
“흥, 마음 놓기는 개뿔. 너도 유언이나 생각해 놔.”
김성남의 냉소적인 웃음에 백진섭은 차분하게 웃었다.
“유언이라, 그러지요. 다만 천천히 생각해도 되겠습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거든요.”
“무슨 소리야?”
“저쪽을 보시죠.”
김성남은 몸을 일으켜 백진섭이 가리킨 곳을 보았다.
뭔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잊을 수가 없는 모습.
김성남이 꼭 만나고 싶었던 모습.
칼을 겨뤄야 할 숙명의 모습이었다.
“크그긋. 구독? 좋아요?”
“싫어요다 이 X쌔꺄.”
고개를 삐딱하게 꺾은 박준범 앞에 강철남이 서 있다.
“넌 X바 밥상머리 교육부터 들어간다.”
박준범은 손끝을 김성남의 무쇠 칼로 변형한다.
그것을 강철남의 얼굴에 힘껏 휘두르는데,
카앙—
유리처럼 깨어지는 무쇠 칼.
“키히히.”
이번에는 창과 도끼를 몸속에서 끄집어내어 강철남에게 던진다.
날아오는 도끼를 하나 집어 들고 한 방 휘두르니 풍압에 허공의 무기들이 날아가 버린다.
“부탁드립니다. 구독과 좋아요. 우라얍!”
박준범이 구역질을 하더니 입에서 커다란 무쇠 화살을 꺼낸다.
그걸 들고 힘껏 강철남을 향해 던진다.
“새끼가, 더럽게.”
화살을 한 손으로 잡아 버리는 강철남.
야구 방망이처럼 쥐고는 풀스윙으로 박준범의 장딴지를 후드려 깐다.
“끼히히힛!!”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는 박준범.
“예로부터 밥상머리 교육을 실시할 땐 숟가락으로 마빡을 후려갈겼지.”
“크그긋. 크그긋. 부탁, 부탁, 부탁드립니다.”
“딱 대.”
강철남은 무쇠 숟가락을 휘둘렀다.
땅—
숟가락과 두개골이 맞부딪치는 청명한 소리.
그러자 동시에 땅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맨틀부터 시작되는 깊은 고동.
그 흔들림에 서울 일대의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인다.
강철남과 박준범이 있는 곳엔 거대한 싱크홀이 뚫리며 지면이 내려앉아 버린다.
구멍을 통해 떨어진 강철남과 박준범.
명동은 침묵에 잠겼다.
* * *
“여기는 명동입니다. 저는 지금 의문의 몬스터의 출몰로 출입이 제한되었던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서울 헌터 연합과의 격렬한 전투 끝에 몬스터는 여기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몬스터의 사체는 전투로 발생한 거대한 싱크홀 아래에 깔려 있으며 현재 인양 작업 중에 있습니다. 헌터 연합은 몬스터에 관한 정보를 면밀한 조사 후 공개할 것이라 밝힙니다. 몬스터의 숨통을 끊은 것은 무쇠 골렘의 신체로 만든 대형 쇠뇌로 지금껏 극비로 제작한 특수 무기였습니다. 이 사실이 밝혀지면서 서울 헌터 연합은 정식으로 공개되지 않은 무기가 추가적으로 있을 것이라는 추궁을 받고 있으며 이에 관해 서필도 부협회장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기자들의 대응과 명동 수습은 차차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다.
파견 팀장들은 휴가를 얻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정작 휴가를 누리는 이는 없었다.
등 떠밀려 나간 휴가조차 어딘가에서 훈련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번 명동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여러 형태의 충격을 남겼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자기 내면의 공포.
열등감.
여러 부정적인 감정과 마주하게 되는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수많은 헌터들이 퇴직을 했다.
그러나 남은 이들은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느낀 것이다.
자기는 한없이 약하다고.
그렇기에 강해져야 한다고.
자기 객관화.
그것을 해낸 자들만이 더 강해질 수 있다.
홍태진, 김성남, 황기민, 한지영, 백진섭.
다섯 팀장은 다짐했다.
강철남에게 뒤지지 않는 헌터가 되리라고.
“강철남 씨. 이번 명동 사건은 정말 감사드립니다.”
“뭘 이런 걸 다.”
강철남은 백진섭이 건네는 산삼주를 받아 든다.
멍구는 헥헥 대며 먹을 건가 싶어 탐을 낸다.
“저, 강철남 씨는 어떻게 그렇게 강한 겁니까?”
“또 그 질문이요?”
“매번 묻게 되네요.”
“간단하오.”
숟가락을 흔들며 강철남이 말한다.
“산에 나는 음식을 골고루 잘 챙겨 드시오.”
예상했다는 듯 웃는 백진섭.
강철남과 악수를 나누고 산을 내려간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강철남.
이제 밥이나 먹어 볼까 싶은 찰나,
멍구가 쭈뼛쭈뼛 다가와 말을 건다.
“철남이, 나 고백할 거 있는데.”
“뭔데, 갑자기?”
“너 없는 동안 손님이 왔거든.”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처음엔 안 하려고 했는데 하도 닦달하길래. 딱 한 판만 했거든.”
“아니 옘병! 결론만 말해.”
“우리 집, 날렸다.”
“뭐?”
“몬스터랑 고스톱 치다가 집 날렸다고.”
“이 개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