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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 자연인이다-21화 (21/175)

21화 또라이를 화나게 해선 안 되는 이유

“이 씻빨!”

김성남이 악에 받쳐 수인 염소를 향해 무쇠 칼을 휘두른다.

그러나 제아무리 훌륭한 무기라도 다루는 자의 실력이 중요한 법.

한참 낮은 레벨이기에 대미지를 전혀 주지 못한다.

황기민이 풀스윙으로 편곤을 내리쳐도 상처 하나 나지 않는다.

“퇴각해!”

홍태진의 명령에 헌터들이 물러난다.

뒤를 쫓는 수인 염소.

한지영과 백진섭이 녀석의 공격을 받아 내며 헌터들의 안전한 퇴각을 돕는다.

압도적인 레벨과 랭크 차이.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무기발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지랄 마! 이길 수 있어! 이길 수 있다고!”

파견 2팀의 팀원들이 팀장 김성남을 붙들고 연행하듯 끌고 간다.

산 아래로 내려오자 수인 염소는 더 이상 쫓아오지 못했다.

호기롭게 출전했건만 중턱도 못 갔다.

냉혹한 현실은 예상과도 너무나도 달랐다.

“젠장! 젠장!”

분한 듯 주먹을 꽉 쥐는 김성남.

분하기는 모두 매한가지.

하지만 다음 상황에 집중해야만 한다.

“홍 팀장님, 레벨 100 이상, SSS랭크 몬스터라니요.”

“나도 믿기지 않는다. 잘못 측정되었길 바랄 뿐이지.”

“명동이라면서요. 도심지 한복판에 그 정도 클래스의 몬스터가 출몰한다는 게 말이 안 돼요.”

한지영은 홍태진이 잘못 들은 것이길 바랐다.

홍태진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똑똑히 전해 들은 바 틀림없었다.

“작은 구멍이라면 몰라도 큰 구멍에서 그런 몬스터가 나올 리 없습니다. 가능성은 두 가지가 되겠군요. 먼저 큰 구멍을 통해서도 강한 몬스터가 출몰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산을 벗어날 수 있는 몬스터가 있다.”

백진섭이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했다.

“어느 쪽이든 절망적이군. 몬스터 녀석들에게 유리한 시스템만 생기고 있어. 우리 인류를 위한 행운은 어째서 일어나지 않는 건가.”

만일 신이 있다면 욕이라도 해 주고 싶었다.

거듭되는 악재 속에서도 꿋꿋이 일어난 인간들을 너무도 쉽게 찍어 누르는 짓궂은 운명.

홍태진은 절망에 빠질 시민들이 가여워 분한 마음이 일었다.

그때,

“있습니다, 인류를 위한 행운.”

백진섭이 말했다.

순간 머릿속을 번뜩 스치는 단 한 사람.

서필도에게 전화를 건다.

“부협회장님, 파견 5팀장입니다. 혹시 강철남 씨의 행방을 아십니까?”

그래. 강철남이 있었지.

“강철남 씨. 그래. 사실 이번 임무의 부차적인 목적 중 하나는 자네들이 강철남 씨와 접촉하는 것이었네.”

“네? 그렇다는 건 강철남 씨가 북한산에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린 이상 강철남 씨와의 접촉을 주요 임무로 변경해야겠네.”

서필도와 백진섭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명동에 나타났다는 레벨 100 이상, SSS랭크의 몬스터.

녀석을 잡을 수 있는 것은 강철남뿐.

“홍 팀장님, 전 북한산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혼자? 그건 안 돼.”

“강철남 씨를 데려와야 합니다.”

“우리 모든 병력으로 부딪쳤음에도 중턱조차 가지 못했어.”

“인원이 많으니까 그랬던 겁니다. 산이란 최소한의 인원으로 조용히 움직일 때 높이 올라갈 수 있는 법이니까요.”

백진섭은 진지한 눈으로 홍태진을 설득했다.

이건 정말 목숨을 내건 작전이다.

그러나 홍태진도 말릴 수가 없었다.

정말 북한산에 강철남이 있다면 반드시 그를 데려와야 한다.

인류의 존망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좋아. 우리 중 가장 뛰어난 상황 판단력을 가진 백 팀장이니까. 꼭 부탁하겠네.”

“맡겨 주십시오.”

가벼운 묵례 후 백진섭은 전투 차량에서 뛰어내려 다시 북한산으로 달려갔다.

“어이! 저 녀석 뭔데? 왜 다시 돌아가는 건데?”

김성남이 꽥 소리를 지른다.

“임무다.”

“무슨 놈의 임무? 나도 갈래!”

“너에겐 더 중요한 임무가 있다. 바로 레벨 100 이상의 괴물을 상대하는 일이지.”

“쳇. 뭘 좀 아는구만.”

점점 김성남을 다루는 법을 알아가는 홍태진이었다.

백 명이 넘는 정예 헌터들을 실은 전투 차량은 명동으로 향한다.

* * *

“철남이, 조진 것 같은데.”

받아 놓은 우유가 썩은 내를 풍겼다.

파리들이 왱왱 꼬인다.

“한여름에 우유를 그냥 밖에다 두는 머절탱이가 어딨냐?”

“아니 썅 산에 냉장고가 있기를 하나 이거를 어디에다 둬 그럼?”

“그건 네 지혜를 짜내서 해결해야지. 호모 사피엔스 아니냐? 만물의 영장이라는 새끼가 뇌를 안 써요.”

뜨거운 여름의 오후.

우유를 못 먹게 되자 눈이 뒤집힌 광견과 허기에 예민해진 자연인이 싸우고 있다.

“구구구. 오라버니들이 싸우면 이 산이 찢어질 거예요.”

비둘기가 그 둘을 말려 본다.

물론 한 100m 떨어진 곳에서.

“계곡물에 몸 좀 담그고 머리 좀 식히는 게 어때요?”

“그래, 싸워 봤자 진만 빠지지.”

“흥, 쫄았네.”

“이 개새.”

결국 둘은 서로 부대끼며 뒹군다.

그러다 결국,

쿠궁!

집의 대들보가 무너지고 만다.

“아차, 시X럴”

“에효.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러지를 말던가.”

다시 한 따까리 하려다 그만둔다.

매번 반찬거리만 찾아다니다 차일피일 미루던 집짓기.

대체 언제 완공되려나.

“딱 좋은 나무가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게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질 리가.”

두둥—

“음허허허. 나는 나무 골렘이다! 인간과 하찮은 짐승이 겁도 없이 이 산에…….”

“딱 좋네. 야, 옮기기 귀찮으니까 무너진 집 보이지? 저 옆으로 가서 누워.”

“뭐?”

“두 번 말하게 할래?”

나무 골렘은 어이가 없었다.

감히,

인간이… 명령을?

“피떡을 만들어 주지!”

무게를 실어 주먹을 내지르는 나무 골렘.

그 팔을 끌어당겨 바로 목을 움켜잡고 들어 뽑아 버리는 강철남.

비둘기가 꺄아악, 하고 비명을 지른다.

강철남은 순식간에 나무 조각이 되어 버린 나무 골렘을 질질 끌고 가 집 옆에 던져 놓는다.

“오케이, 목재 확보 완료.”

“철남이, 더운데 물놀이 하러 가자.”

하얀 털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멍구가 오늘내일하는 목소리로 떼를 쓴다.

그래, 반찬거리도 잡을 겸 계곡이나 다녀올까.

강철남은 양동이를 챙긴다.

맛있는 몬스터라도 나왔으면 좋겠는데.

“이건 뭐냐.”

계곡에 도착해 보니 몬스터는 없고 웬 멀쩡한 카메라 한 대가 버려져 있다.

“깨끗한데. 누가 왔다 갔나?”

멍구가 앞발로 카메라를 톡톡 건드려 본다.

그러자 절전모드가 해제되면서 전원이 켜진다.

“오! 철남이. 안에 뭐가 찍혔는지 한번 보자.”

“뭐가 있겠어. 기껏 해 봐야 자연 다큐멘터리겠지.”

“철남이. 사람이 언제 늙는다고 생각하나?”

“갑자기 왜 또 지랄이야? 그야 오십견이 왔을 때?”

“경험담 말고 좀 진지한 답을 생각해 봐.”

“음…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받을 때?”

“쯧쯧쯧. 아니네. 바로 새로운 것에 흥미를 잃는 순간이네.”

멍구가 해탈한 표정을 지으며 훈계를 늘어놓는다.

“개폼은. 그냥 보고 싶다고 개지랄을 해라.”

“하여간 분위기를 못 맞춰요, 새끼는.”

강철남은 바닥에 앉아 버튼을 조작한다.

작동법은 모르겠지만 일단 이것저것 눌러 본다.

삑— 삑— 삑—

“오, 나온다.”

멍구가 앞발을 강철남의 어깨에 척 걸치고 카메라를 들여다본다.

화면에는 웬 남자가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안녕하세요, 쭌범입니다! 여러분, 여기가 어딘지 아시나요? 맞습니다. 바로 북한산입니다! 국내 최초, 아니 세계 최초! 출입이 금지된 북한산 브이로그, 지금 시작합니다! 구독과 좋아요 눌러 주세요.”

혼자서 떠들고 혼자서 긴박한 척 연기도 하고 원맨쇼가 따로 없다.

이리 휘청 저리 휘청 또 갑자기 저쪽으로 다다다 달려가더니 춤을 추고 지랄 발광을 한다.

“정신없네.”

“요즘 젊은 애들은 이러고 노나.”

그리고 마침내,

“어, 이 새끼?”

카메라를 든 강철남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퉤! 퉤! 아우, X나 맛없습니다. 여러분. 이건 쓰레기입니다! 개쓰레기! 우웩!”

준범인가 뭔가 하는 새끼는 숟가락을 집어 던지고 솥을 발로 뻥 차 버린다.

그 광경을 보자 멍구도 앞발이 빠직댄다.

“철남이, 밥상머리 교육이 절실해 보이는데.”

강철남은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왜 이 카메라를 두고 간 걸까?

의문은 머지않아 풀렸다.

“키히히.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려요… 크그긋. 크흐흐. 인간, 인간을 먹었다.”

박준범의 가죽으로 모습을 바꾼 몬스터가 삐그덕대며 사라졌다.

영상은 그 장면을 끝으로 자동 절전모드로 들어갔다.

“철남이 이건.”

“그래, 한 마디로.”

“몬스터가 됐다는 거지?”

둘은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합법적으로 조질 수 있겠군.”

* * *

북한산 정상.

몬스터들이 대가리를 박고 있다.

개기다가 꿀밤을 한 대 처맞고 정수리에 혹이 난 오우거.

박고 있는 대가리가 너무 아프다.

결국 통증을 못 이겨 그대로 옆으로 쓰러지는데.

“어이구!”

“으엑!”

옆에 나란히 대가리를 박고 있는 고블린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진다.

“덩치는 산만 한 새끼가 엄살을 부려?”

“아, 아닙니다.”

다시 경건한 마음으로 대가리를 박는 오우거.

고블린도 줄줄이 자세를 고쳐 잡는다.

“이제 좀 생각이 나냐? 기괴한 소리를 내는 인두겁을 쓴 몬스터다.”

“저희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구멍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신입들이라.”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군.”

“그, 그럼 수소문을 해서라도 정보를 얻어 오겠습니다.”

“에휴, 됐다. 니들한테 뭘 맡기겠냐. 내가 일일이 조져서 알아보는 게 빠르겠다.”

강철남과 멍구는 흩어져 북한산을 누비기 시작한다.

땅을 접어 달리니 산골짜기가 한 걸음이요, 벌어진 절벽 낭떠러지 사이가 마치 한 뼘 간격처럼 가뿐하다.

“으악! 여우 살려! 미친 인간이다!”

콱—

도망치는 여우의 꼬랑지를 콱 움켜잡는 강철남.

그래도 명색이 레벨 58, AA 랭크의 몬스터.

자존심을 구길 순 없다.

“감히 내 꼬리를!”

“올겨울을 대비해 여우 목도리를 하나 장만할까 하는데.”

“하하하. 제가 농담이 좀 지나쳤죠? 원하시는 게 뭔가요, 나으리?”

강철남은 몬스터에 관해 물었다.

“애석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들은 소문이 있는지라 피해 다녔거든요.”

“행방은? 거처는?”

“그게 잘…….”

꽉—

“케켕! 백운대 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동굴이 하나 있습죠! 그 안에 소문에 밝은 곰이 살고 있습니다요!”

“오케이. 3초 준다. 사라져.”

“헥헥.”

여우가 혀를 헐떡이며 달아난다.

와중에 멍구는,

“그 뭐시냐…….”

그럴 때가 있다.

생각이 날랑 말랑 하는 그런 기분.

“내가 왜 왔더라?”

“이 미친 똥개 새끼. 그럼 나는 왜 뚜들겨 팬 건데?”

멍구의 앞발에 깔린 홉고블린이 억울함을 호소한다.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긴 멍구.

지금이다.

레벨 60의 S랭크 홉고블린의 명예가 있지.

이런 개 한 마리한테 당할 순 없다.

“흐압!”

칼집에서 칼을 뽑아 찌르려는데,

퍽—

코가 깨진다.

멍구가 앞발로 깐 데를 또 깐다.

“아악! 그, 그만!”

“조금만 더 참아 봐. 몇 대만 더 때리면 생각날 것 같으니까.”

“서, 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뭔진 모르겠지만 그냥 제가 다 잘못했어요.”

강철남은 백운대 능선을 따라가다 동굴을 하나 발견했다.

“곰 있냐?”

“쿠어어? (누구세요?)”

“X발, 대화가 안 통하잖아.”

홉고블린을 조지던 멍구는 다 죽어 가는 녀석의 입에서 정보 하나를 얻는다.

기괴한 소리를 내는 몬스터를 피해 구멍을 통해 마계로 돌아간 녀석들이 제법 있다고.

“철남이. 뭐 하나?”

강철남의 냄새를 쫓아 그를 찾은 멍구.

웬 곰탱이와 보디랭귀지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더운데 지랄 말고 마계로 가세.”

힌트는 마계에 있다.

산 정상에 오르자 오우거와 고블린들이 작당 모의를 하고 있다.

둘을 발견하자 즉시 대가리를 박는데.

“야, 꼴 보기 싫으니까 당장 마계로 돌아가.”

“네? 저흰 인간계에 깽판 치러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요.”

“새끼들, 깽판을 치건 말건 내 알 바 아니고. 먹을 수 있는 놈들도 아니야, 그렇다고 도움이 되는 놈들도 아니야, 너흴 어따 써먹을래?”

강철남에게 호되게 혼이 난 몬스터들은 시무룩해져서 구멍으로 돌아간다.

뒤따라 마계로 들어선 강철남과 멍구.

“킁킁. 여전히 퀴퀴한 냄새가 나는군.”

“일단 어그로 좀 끌어 보자.”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강철남.

“야!!호!!”

크게 소리를 지른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쿠구구구구궁—

그 소리에 이끌려 무언가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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