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온돌 소재는 스톤 골렘이 딱이지
* * *
강철남은 집터를 닦았다.
평탄화 작업, 일명 나라시.
그는 군시절 이발병이었던 경력을 살려 땅을 고르게 깎는다.
“야, 멍구야. 됐어? 나란하냐?”
“있어 봐.”
멍구는 땅에 배를 깔고 바짝 엎드려 지면이 고른지 점검한다.
“잘 됐냐?”
“아 좀 있어 봐! X나 재촉하네.”
어느덧 9월이지만 해가 중천에 걸린 북한산은 찜통더위였다.
미친 모기 새끼들은 간만에 포유류를 보자 침을 흘리며 쪼아 댄다.
“아오, 이 X간나 새끼들.”
멍구는 앞발을 붕붕 휘둘러 모기들을 쫓아낸다.
“멍구야, 다 됐냐고!”
“아 좀! 기다리라고!”
멍구가 목청껏 샤우팅을 날린다.
호랑이도 꼬랑지를 숨길 우렁찬 으르렁 소리.
그 기세에 모기들이 모두 바닥으로 쓰러진다.
다시 엎드려 땅을 점검하는 멍구.
됐다. 이 정도면 됐어.
“됐어! 완벽해.”
“좋아.”
강철남은 쓰러진 나무들을 끌고 와 골조 공사를 시작한다.
집을 지어 본 적은 없지만 바닥과 벽, 그리고 지붕이 있으면 집이 아니겠는가.
“잠깐, 철남이. 100% 나무로 지을 거야?”
“그러면?”
“구들장은? 온돌은? 겨울에 입 돌아가.”
“개 주제에 까다롭게 무슨.”
“아니, 진짜 선 넘네. 너 그러는 거 아니야 인마. 요즘 같은 시대에 차가운 바닥에 개 재우고 그러면 동물 단체에서 신고 들어와.”
멍구 말을 들어 보니 겨울을 대비하긴 해야 했다.
대한산에서 살 때 지내던 초가집은 어떤 어르신이 자식들 집에 들어가게 되어서 내놓은 물건이었다.
그냥 무지성으로 아궁이에 불을 때고 지내느라 원리가 어떻고 구조가 어떻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이러다 원시인들처럼 동굴에서 불 때며 지내겠네.”
“어떻게 산에서 살겠다는 자연인이 의식주 중에 ‘식’밖에 생각을 안 하냐.”
“오늘따라 딜이 세다, 멍구야.”
고민해 봤자 답은 안 나온다.
좋아, 구들 따위. 만들어 보자.
“좋아, 철남이. 그 정신이야. 늙어서도 배워야 사람이 치매에 안 걸려. 자, 그럼 먼저 돌을 마련해 보자.”
멍구와 강철남은 바위가 많은 지형으로 향한다.
구들로 쓰기에 좋은 돌이 있어야 할 텐데.
“으음. 이거 한 번 깨 볼까?”
강철남은 손날 치기로 바위를 깨부순다.
제법 괜찮은 돌이 나왔다.
“깎으면 쓸 만하겠는데.”
“아니야, 이게 아니야.”
“왜? 좋구만.”
뭔가 마음이 충족이 안 되는 강철남.
하지만 멍구는 얼른 돌아가 고기나 구워 먹고 싶었다.
“다른 돌.”
“철남이, 이 정도면 좋은 돌이야.”
“다른 돌.”
“북한산 전부를 뒤져 봐도 이보다 좋은 돌 찾기는 어려워.”
“다른 돌.”
“이봐, 철남이!”
“다른 돌.”
“미치겠군.”
강철남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하나의 돌만 떠올랐다.
50 인생, 여태 보았던 돌 가운데 가장 완벽한 돌.
바로 대한산에 있을 때 된장독 누름돌로 썼던 스톤 골렘의 머리다.
“멍구야, 정상으로 가자.”
“뭐래. 더위 먹었냐?”
“출발!”
“아이고, 오늘 복날이냐. 개 잡겄네.”
땅을 접어 달리는 강철남과 건성건성 뒤따르는 멍구.
순식간에 정상에 다다른다.
산꼭대기에는 아니나 다를까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구멍은 블랙홀처럼 까맸다.
하지만 마치 숨을 쉬듯 일렁거렸다.
한 마디로 아주 기분 나쁜 구멍이었다.
“인간들은 이걸 막으려고 난리던데.”
“신선한 고기가 무한 리필로 나오는 마법의 개꿀 구멍인데 막을 순 없지.”
강철남과 멍구는 구멍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봐, 철남이.”
“왜?”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응.”
“설마 그 돌덩이 몬스터 기다리는 거야?”
“당연하지.”
“이 미친!”
멍구는 속이 터져 버렸다.
“그게 기다리면 나오겠냐.”
“그럼 어떡해?”
“주문을 해야지.”
멍구는 구멍에다 대고 소리쳤다.
“야, 이 돌대가리 새끼야! 있으면 나와 봐라!”
…….
잠잠하다.
“이 새끼들. 쫄아 가지고 못 들은 척하는 거 아니야?”
“픽업 서비스인가 보지.”
그러더니 대뜸 구멍에 발을 들이미는 강철남.
“철남이, 미쳤어? 앞이 하나도 안 보이는구먼 들어가서 어쩌게?”
“네가 기다려도 안 나온다며? 그럼 가져와야지.”
“환장하겄네.”
구멍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강철남.
반려 인간이 들어갔는데 개 혼자 밖에서 기다리기 좀 그렇다.
“어휴, 누가 개팔자가 상팔자래.”
쏘옥—
그렇게 말하며 멍구도 냅다 구멍 안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
* * *
강철남이 30살 때였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2년 전.
그날은 무척 피곤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아내랑 다투고 나와서 직장에서도 개같이 깨진 날.
집에 일찍 돌아가기 싫은 그런 날이었다.
추억의 주황색 포장마차에서 오뎅탕에 소주 한잔을 걸치고서야 발걸음이 떨어졌다.
비틀비틀 춤을 추며,
‘나는 퍽치기나 아리랑치기 따위는 안 당해!’
라며 혼자 쉐도우 복싱을 하다가 그만,
쏘옥—
맨홀에 빠지고 만 것이다.
마침 행인에 의해 운 좋게 구조되었지만,
하마터면 골로 갈 뻔했다.
그래, 맨홀 뚜껑에 빠진 날.
딱 그날이 떠올랐다.
작은 구멍에 들어오자마자 느낀 기분이 말이다.
“킁킁. 철남이 여기 뭔가 찝찝한데.”
“나도 기분이 안 좋아. 흑역사가 생각나는 곳이야.”
“얼른 돌덩이나 찾고 싸게 싸게 돌아가자고.”
들어온 구멍을 통해 흘러나오는 빛을 벗 삼아 앞으로 나아가 본다.
주변에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얼마쯤 걸었을까.
반대편에 어두운 불빛이 보였다.
“왜 저쪽에도 빛이 있는 거지?”
“가능성은 하나야.”
“뭔데?”
“저쪽에도 구멍이 있는 거지.”
멍구가 똑똑한 답을 내놓았다.
정답이었다.
그들이 다가간 곳에는 들어올 때와 똑같은 크기의 구멍이 나 있었다.
그리고 건너편에는,
“음산하군.”
어두운 세계가 있었다.
“가 보자고.”
“진심?”
멍구는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거 알아?”
“뭐가 또?”
“개도 치매에 걸린다는 거.”
“헉!”
“꾸준히 새로움에 도전해 봐야 치매 예방에도 좋은 법이야.”
“끼잉.”
먼저 강철남이 반대편 구멍으로 폴짝 넘어가자 어쩔 수 없이 멍구도 폴짝 뛰어 넘어간다.
넘어간 세계는 어두웠다.
마치 태양과 아침이 없는 세상 같았다.
마치 산 같기도 하지만 잡초 하나 없는 암석 지대였다.
톡톡—
땅을 만져 보니 지구의 돌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이곳은 어디지?”
“이곳은 마계다.”
강철남의 혼잣말에 대꾸를 하는 의문의 목소리.
“넌 누구야?”
“너는 누군데?”
“내가 먼저 물었어.”
“나는 이 땅에 사는 존재다. 이방인이여. 너는 이곳에 왜 왔느냐.”
목소리는 근엄하게 추궁했다.
“구들용 돌을 찾으러.”
“구, 구들? 그게 뭔데?”
“겨울에 지져 놓으면 궁디가 뜨끈해지는 거.”
“…알 수가 없군.”
“한국말 하면서 구들은 모른다는 건가.”
“언어는 습득한 것일 뿐, 지식까지 습득하진 않았다.”
목소리의 주인은 그렇게 말했다.
언어를 습득했다고?
“언어를 어떻게 습득했는데?”
“인간을 먹었다.”
“아하, 구멍을 통해 나와서 인간을 잡아먹고 다시 이쪽으로 돌아온 건가.”
“그렇다.”
“그럼 네 입장에서는 땡큐겠네. 먹이가 직접 집까지 찾아와 주니.”
“으흐흐. 이제야 눈치챘느냐.”
쿠르르릉—
갑자기 땅이 울리기 시작한다.
강철남과 멍구가 딛고 선 바닥이 쩍 갈라지며 뭔가가 솟아오른다.
“우워어어!!”
나타났다.
목소리의 주인은 거대한 덩치를 드러내며 울부짖었다.
녀석은,
“어라?”
“감사는 우리가 해야겠는데.”
스톤 골렘이었다.
[스톤골렘
레벨: 60
힘: SS
맷집: SSS
속도: S]
“저번보다 더 큰데?”
“월척인가 보다. 철남이, 최대한 안 깨지게 들고 가자고.”
강철남과 멍구를 향해 커다란 주먹을 내려치는 스톤 골렘.
“으음, 이렇게 했던가?”
[신속]
하지만 강철남은 순식간에 녀석의 눈앞에 있다.
스킬을 완벽하게 카피한 강철남.
“다음은 이걸로.”
[강화]
쿠와앙—
손바닥을 펼쳐 스톤 골렘의 이마빡을 쳐 버린다.
최대한 상처 없이 내부를 공략해 잡을 생각이다.
“멍구! 막타!”
“컹컹!”
멍구가 날아올라 빙글빙글 회전한다.
위치 에너지와 회전 에너지를 실어 엉덩이로 내려찍는 기술.
쩍—
다소 민망하고 기괴한 기술에 스톤 골렘의 대가리가 깨지고 만다.
“헉! 지랄 났다!”
“에라이, 염병!”
다가와서 살펴보니 못 쓸 정도로 뭉개진 스톤 골렘의 대가리.
“상품성 제로군.”
“버려, 버려.”
결국 가장 탐냈던 머리통은 놔둔 채 몸뚱이만 끌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 * *
한편, 서울 헌터 연합회에서는.
“당장 점령하러 가야지요!”
파견 3팀장 황기민이 단호하게 말한다.
서필도는 망설여진다.
‘혹시 또 그 악몽이 되풀이될지도 몰라.’
파견 1, 2팀 모두 처참하게 돌아왔다.
주요 전력인 홍태진, 황지영, 김성남, 최형권이 살아 돌아오긴 했다만,
헌터계에 있어 큰 손실임은 틀림없다.
“부협회장님. 지시만 내려 주신다면 싹 다 갈아엎겠습니다.”
상남자 황기민이 화끈하게 단언한다.
“황기민이, 네가 그래서 3팀인 거다.”
김성남이 잠자코 듣고 있다가 비꼰다.
“뭐라? 패잔병이… 말대꾸?”
일촉즉발이었다.
둘은 칼자루를 쥐고 금방이라도 부딪칠 기세다.
“다들 뭣들 하는 거야?!”
참고 있던 홍태진이 소리를 지른다.
서필도는 시원한 커피 네 잔을 부탁하며 장혜리를 내보냈다.
“많이 혼란스럽긴 한가 봅니다.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날 정도니.”
“흥분해서 그만.”
“이해합니다. 팀원들을 잃었지 않습니까.”
잠시 숙연해진다.
“제가 가겠습니다.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급하게 높이 올라가서 그렇지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공략해 나간다면…….”
“김 팀장, 진정하세요. 아직 상처가 낫지도 않았습니다.”
마음이 급한 김성남이었다.
“그렇다면 제가 가야겠군요. 홍 팀장도 마찬가지로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팀원들도 쌩쌩하니 결판을 짓고 오죠.”
서필도는 신중히 생각했다.
협회장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남긴 말.
내가 돌아올 때엔 반드시 북한산을 점령해 놓고 있으라는 그 말.
그 지시는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황 팀장.”
“네!”
“김 팀장과 함께 북한산에 다녀오세요. 단 중턱까지만 가고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부협회장님. 저도 가겠습니다.”
“홍 팀장은 부상이 너무 심해요. 여기서 대기하도록 해요.”
열정은 끓어 넘쳤지만 홍태진의 몸은 만신창이다.
아쉽지만 잠시 쉬어야 할 타이밍이다.
“팀장님, 어떻게 되셨어요?”
부협회장실을 나오는 홍태진을 부축하며 한지영이 묻는다.
“지영 씨. 팀원이 필요해.”
“네?”
“그리고 우리는 좀 더 강해져야 해.”
“…네.”
“꼭 강해져야 해.”
“꼭 그렇게 될 거예요.”
다음을 기약하는 파견 1팀.
두 사람은 각자 가슴 속에 작은 불씨를 하나씩 품었다.
이들을 지켜보던 백진섭 역시 불꽃을 품었다.
이 미쳐 버린 세상,
힘이 곧 정의라면 힘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그사이 북한산 입구에 도착한 황기민과 김성남.
“좋아, 김 팀장, 바로 달려가 보자.”
“나한테 명령하지 마.”
“저, 팀장님. 저희 임무는…….”
“출발!”
팀원들의 말을 무시하고 황기민과 김성남이 ‘신속’으로 달려 나간다.
이 둘은 서필도의 말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강철남에게 도움을 구할 것.
황기민은 머리가 나빠서 기억을 못 하는 것이고,
김성남은 강철남이 끔찍이도 미워서 기억에서 지워 버린 것이다.
결국 둘 다 바보라는 얘기다.
“우오오오!!”
단숨에 달려 올라가는 두 사람.
쿠릉쿠릉—
그런데 산 위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무슨 소리지?”
“몰라, 몰라. 일단 달려!”
앞뒤 안 가리고 달려 나가는 황기민.
그때 엄청난 소리를 내며 산을 굴러 내려오는 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저건…….”
“뭐지……?”
쿠릉쿠릉!!
“돌덩이?!”
거대한 스톤 골렘의 몸뚱이가 굴러 내려온다.
두 사람은 멈출 수 없는 관성에 그대로 돌덩이와 충돌하고 말았다.
“끄아악—”
나가떨어진 두 사람은 나뭇가지에 처박혔고 그 덕에 질주하던 돌덩이는 멈출 수 있었다.
“야, 너 제대로 안 잡을래?!”
“개한테 집채만 한 돌덩이 잘 잡고 있으라고 시키는 인간은 너밖에 없을 거다!”
강철남과 멍구가 투닥투닥 다투며 내려온다.
그리고 나뭇가지에 처박혀 피범벅이 된 황기민과 김성남을 발견하는데,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걸레짝이 된 사람 둘과 돌덩이에 묻은 핏자국을 번갈아 본다.
“…….”
꿀꺽—
두 사람은 눈으로 신호를 맞추고 조용히 돌덩이를 들고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