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전멸
뭔가가 오고 있음을 눈치챈 홍태진이 전방을 향해 창을 겨눴다.
파견 1팀이 잔뜩 경계 태세를 갖춘다.
후방으로 물러선 백진섭과 장혜리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철남이, 뭘까. 멧돼지?”
“여기까지 왔는데 또 돼지는 선 넘지.”
그들은 슬슬 몬스터가 고팠다.
뭐가 오든지 간에 그저 점심 메뉴가 무엇이 될지 궁금할 뿐이었다.
“우우우!”
이상한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것은,
거대한 엘크였다.
“엘크? 북한산에?”
“오예, 개꿀!”
강철남과 멍구는 쾌재를 불렀다.
엘크는 뿔이 달려 사슴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사슴과는 다르다.
대한민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으며 스웨덴이나 북미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이다.
이런 기회는 참으로 귀한 것이다.
“달려온다. 방어 대형!”
직선으로 돌격해 오는 엘크의 기세가 너무 빨라 피하기엔 늦었다.
홍태진은 커다란 방패를 앞세워 자세를 낮췄다.
그 뒤로 팀원들이 그를 받치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온다!”
쿠우웅!!
엄청난 충돌음을 내며 방어 대형을 들이박는 엘크.
그 어마 무시한 충격에 방어진 뒤쪽의 헌터들이 나가떨어진다.
홍태진은 용케 버텼으나 몸에 부하가 걸려 일어서지를 못한다.
“철남이, 어떻게 먹을 거야? 역시 스테이크인가?”
“아니야. 외국 놈이니까 조금 이국적으로 특별하게 요리해 보자. 수육으로 삶아서 잼을 발라 먹으면 좋을 것 같은데.”
“오호, 댕슐랭 별 세 개 예약.”
강철남과 멍구가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는 동안 파견 1팀은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엘크
레벨: 23
힘: C
맷집: DD
속도: DD]
멍구는 왜 저리들 쩔쩔매는가 싶었다.
홍태진은 입에서 피를 토하고 한지영은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장혜리는 유효타를 먹이지 못했고 백진섭은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멍구야, 저것 좀 어떻게 해 봐라. 나는 열매 좀 주워 올게.”
“귀찮은데.”
“그럼 가위바위보 하자.”
“좋아. 가위바위…….”
순간 아차 싶은 멍구.
하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보!”
멍구는 힘차게 앞발을 뻗어 보지만 보자기밖에 낼 수가 없다.
“젠장!”
“그럼 뺑이 쳐라.”
산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강철남.
어쩔 수 없지, 싶어 털래털래 걸어가는 멍구.
“하앗!”
홍태진은 로프를 엮어 엘크의 뿔에 던지고 로프가 뿔에 걸리자 힘껏 당긴다.
“우오오!”
하지만 힘으로 당해 낼 수가 없다.
다른 헌터들이 들러붙어 함께 뿔을 제압한다.
그사이 한지영이 칼을 들고 엘크에게 달려들었다.
[신속]
[강화]
순간 칼에서 붉은빛이 감돌면서 칼이 단단해진다.
이대로 녀석의 목을 치면 된다.
하지만,
“우오오!”
녀석이 몸을 거세게 흔들어 헌터들을 뿌리쳐 버린다.
아깝게 목을 칠 기회를 놓쳐 버린 한지영.
“아깝다. 거의 다 왔었는데.”
그때 갑자기 산 위에서 쿠르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설마…….”
땅을 울리는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더니 이내 모습을 드러낸다.
엘크 다섯 마리가 나타났다.
동료의 울음에 반응하여 달려온 것이다.
“이런 씨바! 한 마리도 벅찬데.”
“팀장님, 어떻게 하죠?”
“일단 후퇴다. 촘촘한 나무 사이로 달려. 뿔 때문에 쉽게 못 들어올 거다.”
파견 1팀이 서둘러 나무 사이로 요리조리 몸을 피해 도망쳤다.
장혜리와 백진섭도 그들과 함께 물러났다.
“고기를 눈앞에 두고 뭣들 하는 거야.”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멍구.
엘크들의 시선이 멍구에게 쏠린다.
“안녕, 고기들?”
“우오오!”
엘크 여섯 마리가 동시에 달려든다.
하지만 바닥에 널브러지는 건 어리석은 엘크들.
순식간에 목덜미가 아작이 나 버린다.
콕콕—
앞발로 살을 만져 보니 육질이 제법 부드럽다.
어떤 요리로 재탄생할지 몹시 기대되는 식재료다.
“쩝. 배고픈데.”
멍하니 푸른 하늘만 바라보는 멍구.
얌전히 앉아 기다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강철남이 손에 나무 열매와 약초를 한가득 들고 나타났다.
“배고파 뒤지는 줄 알았네.”
“불이라도 지피지 그랬어.”
“보자기밖에 못 내는 발이라서.”
“삐졌냐.”
강철남이 땔감을 주워 와 불을 피웠다.
코펠 하나에 열매를 가득 담고 설탕을 부어 끓이니 좋은 냄새가 벌써부터 올라온다.
이대로 뭉근하게 끓이면 잼이 완성될 것이다.
그동안 엘크의 가죽을 벗겨 살을 발라내 본다.
육질이 제법 훌륭했다.
부챗살을 도려내 달군 프라이팬에 굽는다.
치이익—
훌륭한 소리와 훌륭한 냄새.
하지만 오늘의 메인 요리는 스테이크가 아니다.
두툼한 목살을 떼어 내 온갖 약재를 넣고 푹 삶은 한방식 스웨덴풍(?) 수육이다.
“음~ 음~”
맛있는 요리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그사이 숲에 들어갔던 멍구가 정체불명의 채소를 물어 왔다.
가지처럼 보랏빛인데 호박처럼 둥근 것이 신기하게도 생겼다.
쩍 갈라 보니 안에는 과실이 가득하다.
몬스터의 기운이 듬뿍 서려 있는 수상한 채소다.
“좋아. 이런 게 바로 산의 진미지.”
수상할수록 오히려 좋았다.
대한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열매와 채소들이 가득했는데, 쌈을 싸 먹으면 제맛일 것 같았다.
각종 약초와 약나무들이 목살과 함께 푹 고아지며 건강한 한약재 냄새가 솔솔 피어오르니 아재의 피가 불끈 반응한다.
그 자극적인 냄새에 고기가 삶아지는 시간을 기다릴 수 없었다.
“입가심으로 스테이크를 먹자.”
강철남은 특별히 챙겨 온 홀그레인 머스터드를 꺼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에 찍어 먹는 그 소스다.
“철남이, 그거 맛있어?”
“맛볼래?”
홀그레인 머스터드를 할짝 핥아 본 멍구가 켈록켈록 기침을 한다.
강철남은 웃으며 미디엄 레어로 익은 스테이크를 접시에 옮겨 담는다.
마침내 고대하던 식사 시간이다.
부챗살 스테이크를 한 조각 썰어 씹자 육즙이 진하게 터져 나온다.
헌터들을 신나게 뚜까 패던 엘크의 튼튼한 근육이 부드러운 식감을 선사한다.
“아아, 지렸다.”
“이게 견생이지.”
둘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에 겨워 한다.
아직 승천하기에는 이르다.
수육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 익은 수육을 조심스레 건져 내 뭉근하게 끓여 둔 북한산 나무 열매 잼을 발라 본다.
뽀얀 고기 위에 붉은 잼이 발라져 고소함과 상큼함의 조화를 빛깔로 뽐내고 있다.
“비주얼 보소.”
멍구가 폭포처럼 줄줄 흐르는 침을 참지 못한다.
정체불명의 보랏빛 채소를 쌈처럼 곁들여 잼 바른 수육을 한 입 먹어 본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종교는 없지만 신을 찬양하게 하는 맛이다.
강철남은 지금까지 살아 있음을 다행이라 느꼈다.
먹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
진심으로 만족스러웠다.
* * *
한편, 파견 1팀은.
“헉, 헉. 팀장님. 더 이상 안 쫓아오는데요?”
“전부 멈춰. 상황을 지켜보지.”
한참 산속으로 도망치던 파견 1팀.
뒤가 조용하여 걸음을 멈춘다.
그때,
“으아아악!!”
그들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팀장님, 방금 그 비명은?”
“틀림없어. 파견 2팀 헌터의 목소리다.”
홍태진은 바로 전열을 가다듬고 달려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잠깐만요! 강철남 씨와 멍구가.”
한지영이 없어진 둘을 알아챘다.
헌터들의 입장에서 민간인을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구하러 가야 해요.”
장혜리 역시 당장 가야 한다는 의견이다.
“둘이라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그러나 백진섭이 그들의 말을 끊었다.
“무슨 소리예요? 방금 봤잖아요. 그런 강한 놈들이 여섯이나 있었어요. 아니면 이미 늦었으니 단념하라는 얘기인가요?”
한지영은 발끈해서 달려든다.
하지만 백진섭의 말은 그게 아니었다.
이 중에서 유일하게 그들의 실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사람.
그렇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믿으십시오. 그들이라면 절대 죽지 않습니다. 그보다 빨리 동료들을 구하러 가는 게 급선무입니다.”
홍진태를 똑바로 바라보며 굳게 말하는 백진섭.
파견 1팀의 팀장으로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왔다.
민간인을 구할 것인가, 동료들을 구할 것인가.
“여기에 발을 들인 이상 그들도 각오는 했을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파견 2팀을 구조하는 것. 앞으로 나아간다.”
“팀장님!”
장혜리가 반발했지만 어디까지나 팀을 이끄는 건 홍진태다.
“서두르자!”
잡념을 떨쳐 버리려는 듯 홍진태가 진격 명령을 외쳤다.
그 외침에 팀장을 따라 헌터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그럴 수가.”
“혜리 씨. 믿기 어렵겠지만 그 둘은 절대 죽지 않습니다.”
백진섭이 단호하게 말하는 데에는 근거가 있겠지만 방금 맞선 엘크의 압도적인 힘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희망이 꺾인다.
“갑시다. 우리로선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아픈 말이지만 사실이었다.
설령 지나온 길을 뒤돌아 달려간다 하더라도 엘크들을 무찌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장혜리는 이를 꽉 물며 파견 1팀의 뒤를 따랐다.
“사, 살려 줘어!!”
비명이 가까워졌다.
선두에 선 홍진태는 서두르되 신중하게 나아갔다.
대체 어떤 적을 만났기에 파견 2팀이 저리도 끔찍한 비명을 질러 대는 걸까.
무성한 나뭇잎을 헤치고 이윽고 너른 장소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보았다.
한 헌터가 거대한 몬스터에게 무참히 짓밟히는 장면을.
“크허억!”
몬스터의 발에 밟힌 헌터는 몸을 축 늘어뜨리고 눈을 뜬 채 사망했다.
홍진태를 그를 안다.
그는 파견 2팀의 김성남 다음가는 실력자로 수많은 몬스터를 사냥한 실력 있는 헌터였다.
“젠장, 한발 늦었군.”
홍진태는 몬스터가 이쪽을 보기 전에 창을 거꾸로 쥐고 던졌다.
투창은 힘차게 날아갔다.
그러나,
퉁—
창이 부러졌다.
몬스터의 단단한 몸을 뚫지 못한 것이다.
“이럴 수가.”
녀석이 홍진태를 돌아봤다.
하나뿐이지만 거대한 눈.
전신은 돌로 이루진 피부.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
4m 남짓한 키.
말 그대로 몬스터, 괴물이었다.
한 손에는 나무뿌리를 몽둥이처럼 쥐고 있다.
신화 속에 나오는 사이클롭스처럼 생겼다고 할까, 설화 속의 도깨비처럼 생겼다고 할까.
그 모습이 괴이하고 끔찍해 외용만으로 내뿜는 위압감이 엄청났다.
“여기도 한 마리 있네.”
땅이 울리는 듯한 저음으로 도깨비가 말했다.
“말하는 몬스터?”
홍진태는 말하는 몬스터 얘기는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말을 한다는 것은 지성이 있다는 증거.
육체적인 강인함으로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몬스터가 머리까지 쓴다는 것은 인류의 크나큰 위협이었다.
“반드시 퇴치해야 해.”
그렇게 다짐하는 홍진태였지만 압도당한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근성, 근성을 발휘해야 해!’
“크윽!”
단도를 뽑아 자기 허벅지를 살짝 찌르자 그제야 얼어붙은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늦게 뒤따라온 헌터들이 홍진태가 대치하고 서 있는 도깨비를 보고 경악한다.
“세상에, 이게 뭐야.”
“뭐지. 몬스터? 뭔가 다르지 않아?”
“동요하지 마. 쫄지 말라고.”
마음을 굳게 먹는 헌터들.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본능에 압도당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마음.
그들은 알았다.
부딪쳐 보지 않아도 이 게임은 이미 결말이 정해져 있다는 걸.
“다들, 우회해서 파견 2팀을 찾아라!”
홍진태는 정면 승부를 피하기로 선택했다.
녀석을 묶어 두고 구조 임무에 충실한다.
그러나 작전을 펼치려는 찰나,
퍼억—
“쿨럭!”
도깨비의 펀치에 홍진태가 날아갔다.
발을 묶어 두는 것조차 불가능한 압도적인 실력 차.
“젠장, 눈, 눈을 노려!”
멘탈이 흔들리면 전멸이다.
헌터들은 활을 들어 눈을 노렸다.
그러나 가뿐히 손으로 잡아내는 도깨비.
나무를 휘둘러 헌터 한 명을 작살낸다.
“아윽!”
나무에 맞은 헌터는 허리가 반으로 접혀 그대로 눈을 감는다.
스윙이 클수록 빈틈이 많은 법.
한지영은 스켈레톤의 허벅지 뼈로 만든 단단한 칼을 녀석의 발목에 휘두른다.
[강화]
타앙!
하지만 상처 하나 나지 않는다.
오히려 날이 깨져 버린다.
“이럴 수가.”
칼이 튕겨 나온 반동으로 뒤로 넘어진 한지영.
그를 향해 도깨비가 발을 뻗는다.
[신속]
재빨리 날아와 그녀를 낚아채는 백진섭.
그 틈을 노려 장혜리가 눈을 향해 칼을 던졌다.
쨍그랑—
“뭐야, 미친! 눈알을 맞췄는데 칼이 깨졌어!”
약점이라 믿었던 눈알조차 뚫을 수 없었다.
연이어 달려드는 헌터들을 손으로 움켜쥐어 토마토처럼 으깨어 버리는 도깨비.
마치 코끼리와 개미들의 싸움 같다.
쓰러져 있던 홍진태가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남은 병력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팀원들이 쓰러지는 동안 자빠져 있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홍태진은 그만 이성을 잃고 무작정 달려들었다.
“이 개새끼!!”
“팀장님, 위험합니다!”
그를 감싸려 한 헌터가 몸을 던졌고 대신 묵사발이 난다.
도깨비가 헌터의 시체를 쥐고 던지니 그 몸뚱이와 부딪친 헌터의 머리통이 박살이 나 버린다.
눈앞에서 팀원들을 잃은 팀장은 분노와 무력함에 주저앉았다.
“모두… 모두 퇴각하라!!”
악문 입술에서 피가 흐른다.
결국 내려진 퇴각 명령.
하지만 따를 수 있는 인원은 홍태진, 한지영, 백진섭, 장혜리.
이 넷뿐이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한 그때.
“개판이구만.”
멍구가 비릿한 냄새에 코를 찡그린다.
“저건 X나 맛없게 생겼는데.”
강철남이 이를 쑤시며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