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1등급 송이버섯이 있다던데 ㄹㅇ?
이 상황에서 서필도는 무어라 대답할까.
말없이 생각에 잠긴 채 커피잔을 들고 있다.
“시대가 변했죠.”
“많이도 말이지.”
“대통령이 말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학벌, 경력, 지연 모두 덮어 두고 실력 위주로 인재를 뽑아야 하는 시대라고요.”
“원래부터 그랬어야 했소.”
서필도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깍지를 낀 채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이야기를 제대로 꺼낼 모양이다.
“그 말의 의미는 누구라도 성과를 내기만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합당한’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번 구출 작전은 북한산을 가질 만큼의 일은 아니라는 말인가?”
“하하하. 사실 수지타산이 안 맞죠.”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단순히 비용적인 측면에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 입장에서는 강철남 씨가 산을 소유해서 무얼 하시려는지 알 수가 없죠. 혹시나 불법 무기 거래나 화학 제조에 손을 대신다면 저희 입장에서는 대단히 곤란해지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뭐 하는 놈인지,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 충분히 증명을 해 달라는 말이로군.”
“여과 없이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둘 사이에 오가는 말에 백진섭은 무거운 긴장을 느꼈다.
강철남의 아슬아슬한 발언 수위에 장혜리도 속이 탔다.
그 와중에 멍구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지루하게만 느껴져 하품을 했다.
“북한산을 점령하겠다. 그렇다면 이견 없겠지?”
그 말에 처음으로 서필도가 흠칫한다.
“쉽게 말씀하시는군요.”
“쉬운 일이니까.”
강철남의 눈을 보면 허풍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하지만 서필도의 입장에서는 그의 눈빛만으로 납득 할 수만은 없는 일.
“조건이 있습니다.”
“뭔가.”
“저희 쪽에서 인력을 파견할 겁니다. 그들과 함께 동행하시죠.”
“감시자들인 모양이군.”
“하하하. 강철남 씨의 주도면밀한 점이 아주 좋습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마쳤다.
장혜리는 한숨을 쉬며 이따가 강철남에게 따끔하게 주의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장비서, 이분들을 파견 1팀으로 안내해 드리게.”
“네, 알겠습니다.”
문을 열고 앞장서는 장혜리.
그녀를 따라 복도로 나가는 순간 강철남의 얼굴 앞에 장혜리가 성큼 다가온다.
“말을 꼭 그렇게 모나게 해야겠어요?”
“빙빙 둘러 말할 거 뭐 있소. 다 알 만한 사람들끼리.”
“그래도 격식이라는 게 있잖아요.”
“격식 따지는 새에 몬스터들이 활개를 칠 거요. 시간은 아껴야지.”
“말이나 못 하면. 으휴, 정말이지. 어려서 그런가.”
장혜리는 강철남이 50년을 넘게 산 인간이라는 걸 꿈에도 모를 것이다.
“자, 여기가 파견 1팀 정비실이에요.”
“사무실이 아니라 정비실인 겁니까?”
“파견팀은 직접 현장으로 나가서 싸우는 팀이에요. 일반 사무실이 필요 없죠. 대신 갑옷 손질하거나 무기의 마감을 처리하는 공간이 필요할 뿐이죠.”
백진섭은 작업 공간의 구분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던 경북 헌터 연합이 떠올랐다.
서울의 연합 건물을 보며 배우는 점이 많았다.
장혜리가 문을 열자 후끈한 공기가 뿜어져 나왔다.
강자들의 기운이었다.
“여어, 비서님께서 여기는 웬일이신가?”
파견 1팀의 팀장 홍태진이다.
합금으로 된 갑옷을 입고 긴 창끝을 숫돌로 갈고 있다.
키가 2m는 되어 보이는 장신에 떡 벌어진 어깨.
피지컬로만 따지자면 오우거랑 씨름을 해도 밀리지 않을 것처럼 듬직해 보인다.
“북한산으로 가시는 거죠? 지원 병력이 있습니다.”
장혜리는 손으로 강철남을 가리켰다.
그 손을 따라 파견 1팀의 팀원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린다.
인원은 모두 열다섯 명.
흘러나오는 기운이 경북 헌터들과는 남달랐다.
“저 곱상하게 생긴 도련님이 지원군이라고?”
“하하하. 헌터 지망생이 체험 활동이라도 나왔나?”
“잘생겼다. 몇 살이야?”
재밌는 농담거리라도 생긴 듯 파견 1팀은 강철남을 보며 희희덕거렸다.
뭐, 예상했던 반응이라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얼른 할 일이나 하러 가죠.”
덤덤하게 말하는 강철남.
홍태진은 조금 무게를 잡고 말을 꺼낸다.
“우리가 가는 곳은 북한산이야. 작은 구멍이 뚫린 곳이지. 검증도 안 된 애송이를 데려갈 순 없어.”
하필 상태창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헌터가 북한산에 고립되어 있다.
강철남의 힘을 파악할 수 없는 데다 덩치 좋은 홍태진과 대조되어 연약해 보였으니 괄시받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부협회장님이 승인하신 일입니다.”
“뭐? 부협회장님이?”
술렁이는 파견 1팀.
위에서 결정을 내린 이상 그들로서도 더 이상 토를 달 순 없다.
“사유는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지. 대신 발목 잡지는 마.”
홍태진이 근엄한 표정으로 주의를 주었다.
“저희도 같이 갈 겁니다.”
“댁은 누굽니까?”
“경북 헌터 연합회장 백진섭입니다.”
백진섭은 깍듯하게 인사했다.
굳은살이 박인 손, 쇄골의 상처, 거친 피부.
예쁘장한 강철남에 비해 백진섭 쪽이 훨씬 헌터답고 믿음직스러웠다.
“경북 헌터 협회장님께서 함께 해 주신다니. 영광입니다.”
홍태진은 악수를 청하며 그를 반겼다.
“그런데… 이 개도 함께 갑니까?”
“멍멍.”
멍구는 꾹 참고 개 연기를 훌륭히 해냈다.
“얘는 멍구요.”
“이름을 물은 게 아니야.”
“자기 밥값은 할 거요.”
“흥. 어디 두고 보자고.”
멍구의 ‘눈’에 두 사람이 눈에 띄었다.
[홍태진
레벨: 18
힘: EE
맷집: EE
속도: E]
[한지영
레벨: 14
힘: FF
맷집: FF
속도: E]
그리고 강철남의 상태창을 확인해 봤다.
[강철남
레벨: 81
힘: SSS
맷집: SSS
속도: SSS]
비교하니 녀석들이 초라해 보였다.
별 볼 일 없는 상태창에 흥미를 잃은 멍구는 시원한 바닥에 엎드려 게으름이나 피운다.
파견 1팀은 장비를 챙기며 분주히 출전 준비에 나섰다.
큰 칼, 도끼, 쇠뇌 등 마치 사극에서나 볼 법한 장비들이다.
몬스터 앞에서 현대 무기는 무용지물이었다.
원자력과 우라늄을 다루던 과학은 빠르게 태세를 바꿨다.
몬스터의 신체를 무기로 개량하는 기술을 갈고 닦은 것이다.
헌터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모두 몬스터의 신체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신기하지? 이건 레벨 20 스켈레톤의 뼈로 만든 칼이야.”
파견 1팀의 홍일점 한지영이 강철남에게 말을 붙인다.
“참, 나는 한지영. 나이는 23살. 어때, 대단하지? 이 어린 나이에 서울 헌터 연합에 들어오다니.”
한지영은 자기애가 대단한 듯 이력을 뽐냈다.
“스켈레톤이 뭐요?”
그러나 관심은 오로지 몬스터에 있는 강철남.
“걸어 다니는 해골 몬스터야. 본 적 없지?”
“그럼 뼈다귀뿐이란 말이오.”
“그렇소. 하하하. 너 말투 되게 웃기다.”
강철남은 흥미가 팍 죽었다.
사골거리도 안 되겠거니 싶었다.
반면에 멍구는 눈이 반짝반짝하며 뼈다귀를 입에 무는 상상을 했다.
“레벨 20이라니. 그렇게 강한 몬스터를 잡았다는 말입니까?”
백진섭이 깜짝 놀라 묻는다.
레벨 20이라면 대한산의 고블린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물론 쉽지는 않았지. 파견 1, 2, 3팀 모두 덤벼들어서 겨우 잡은 놈이거든. 내가 마지막 일격을 날린 덕분에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었던 거지.”
한지영은 다시 한번 으스댔다.
몬스터를 잡으면 그 신체는 사냥에 참여한 헌터들의 몫이다.
공헌도가 클수록 좋은 부위를 차지할 수 있다.
스켈레톤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한 한지영은 스켈레톤의 단단한 허벅지 뼈를 골랐다.
그것으로 만든 칼은 단단하여 바위도 깨부술 위력을 갖고 있다.
“서울엔 도심 한복판에도 그렇게 강한 몬스터가 나오는군요.”
“정말 가끔, 가아끔.”
“김성남보다 강하다니, 좀 충격입니다.”
“김성남? 아, 그 멍충이.”
한지영은 마치 김성남을 잘 안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김성남 씨는 지금 어디 있죠?”
“아하하. 걔도 지금 북한산에 있어.”
“네? 대체 왜.”
“몰라. 대한산에 다녀오더니 정신이 나가 버려서 지 맘대로 행동하더라고. 그러더니 멋대로 북한산에 쳐들어가서는 고립되어 버린 거라니까.”
“그럼 헌터들이 고립된 원인이 김성남 씨 때문이라는 겁니까?”
“맞아, 맞아. 리더 잘못 만난 파견 2팀이 불쌍하게 된 거지.”
대한산에서 오우거에게 한 대 맞고 날아간 김성남.
그가 눈을 떠 보니 헌터들이 마당의 피를 닦고 있었고,
오우거와 고블린의 시체는 불에 타고 있었다.
헌터들에게 어찌 된 영문인지 물으니 강철남이 대한산을 정복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였다.
“나는 김성남. 내가 바로 인류 최강이야.”
납득할 수 없었던 김성남은 바로 서울로 올라와 무리하게 임무를 진행했다.
강해지는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 ‘눈’을 가진 헌터를 데려갔고,
레벨을 올리기 위해 무리하게 산 깊숙이 들어가고 만다.
그 결과 북한산에 고립되어 버린 것이다.
“한지영. 외부인에게 말이 너무 많다.”
“네넵!”
홍태진은 말 많은 한지영을 꾸짖었다.
김성남의 급발진으로 고립된 헌터들을 구하러 가는 길.
여기서 실력을 인정받으면 강철남은 북한산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에 힘을 실을 수 있다.
“자, 지금부터 출발하겠다. 질문 있나?”
홍태진이 팀원들을 돌아보며 눈을 하나하나 맞춘다.
모두 단단히 각오를 다진 눈빛이다.
그때,
번쩍—
손을 든 건 다름 아닌 강철남.
“뭐야?”
그가 입을 떼자 모두 숨죽이고 지켜본다.
“북한산에 1등급 송이버섯이 있다는데 진짜요?”
침묵이 흘렀다.
* * *
“나 참, 기가 막혀서.”
“왜 또 삐지고 그러슈.”
“그 자리에서 송이버섯 이야길 꺼내는데 화 안 나게 생겼어요? 철남 씨 데려온 제 입장도 생각해 달라고요.”
참다 참다 장혜리가 결국 한소리를 하고 만다.
“북한산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는데 당연히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요?”
“어이가 없어서. 이봐요, 강철남 씨. 우리는 지금 고립된 사람을 구조하러 가는 길이라구요.”
“그건 겸사겸사지.”
“그게 원래 목적이에요. 그리고 그 가방에는 뭘 챙겨 온 거예요? 물론 싸울 도구겠죠?”
“어디 보자, 프라이팬, 코펠, 라이터, 소금, 후추, 설탕, 그리고…….”
“진짜 정말!”
아옹다옹하는 두 사람.
그사이 수송용 버스가 북한산에 다다랐다.
“지금부터 긴장들 해.”
홍태진은 하차 명령을 내렸다.
헌터들이 차에서 내려 산 앞에 섰다.
그들은 느꼈다.
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을.
“꿀꺽.”
“여기가 북한산 맞아?”
“기운이 달라. 마치 지옥에 온 것 같은 느낌이야.”
파견 1팀은 순간 몸이 얼어붙는 섬뜩함을 느꼈다.
반면에,
“읏챠! 역시 산 공기가 좋다니까. 서울은 공기가 너무 텁텁해.”
산을 보자 마음이 안정되는 강철남과 멍구였다.
무엇보다 멍구는 말을 못 하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혼자 머릿속이 꽃밭이군.”
“헤에. 그런 순수한 점이 귀엽지 않아?”
한지영이 강철남을 감싼다.
우락부락한 헌터들 사이에서 상큼한 꽃미남이 끼어 있으니 들뜬 모양이다.
“조심해서 올라가자.”
홍태진이 선두에 서고 팀원들이 대형을 벌려 뒤따랐다.
강철남과 멍구는 바닥을 훑으며 캐 먹을 것을 탐색했고 백진섭과 장혜리는 긴장한 채 나무 사이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까아악!”
“습격이다.”
까마귀 한 마리가 머리 위에서 날아왔다.
다가올수록 점점 커지는 녀석.
보통 사이즈가 아니다.
“사격!”
헌터 한 명이 활을 쏘지만 가볍게 피해 버렸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한지영이 뛰어올라 칼로 날개를 자른다.
쓰러진 까마귀를 창끝으로 꿰뚫어 마무리하는 홍태진.
파견 1팀은 손발이 상당히 잘 맞았다.
“역시 파견 1팀. 손발이 잘 맞는다니까요.”
장혜리가 파견 1팀의 멋진 연계를 보고 감탄한다.
“들뜨지 마. 지금부터야.”
홍태진이 다시 창을 꼬나쥔다.
스산한 바람이 불고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마치 산이 살아 움직이는 듯 일렁인다.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