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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 자연인이다-11화 (11/175)

11화 서울에서 웬 여자가 왔다

“저기요. 철남 씨?”

백진섭은 자고 있는 강철남을 불러 깨운다.

이렇게 무방비하게 자고 있다니.

최강의 인간이란 이토록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드르렁, 댕댕.”

강철남은 꿈쩍도 하지 않고 멍구가 코 고는 소리로 대신 답한다.

냥고는 이쪽을 슬쩍 보고는 다시 눈을 감는다.

아니, 봤으면 일어나라고.

“정말 못 봐주겠군요. 이봐요. 손님 온 거 안 보여요?”

참다못한 장혜리가 다가와 소리친다.

강철남은 귀를 때리는 낯선 여자의 목소리에 눈을 뜬다.

“뭐요?”

“서울 헌터 연합회에서 나왔습니다. 저희를 부른 게 당신 맞죠, 강철남 씨?”

가만히 눈을 감고 3초만 더 편안함을 즐기던 강철남.

큰맘 먹고 눈을 뜬 뒤 기지개를 켜며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벌떡 일어난다.

조금 놀라는 장혜리였다.

후줄근한 초가집을 배경 삼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남자의 모습.

큰 키에 잘생긴 젊은 청년.

탄탄한 체격과 풍성한 머리숱.

따분한 듯 보이지만 힘이 서려 있는 눈빛.

확실히 평범한 인물은 아닌 듯하다.

“장혜리예요. 서울 헌터 연합회의 비서죠.”

장혜리는 손을 내밀며 자기소개를 건넨다.

“멍구입니다. 시고르자브종이죠.”

멍구가 앞발로 장혜리의 손을 덥석 잡는다.

“어머! 개가 말을!”

깜짝 놀라는 장혜리.

멍구는 즐거운 듯 켈켈 웃는다.

“강철남이오. 오는데 고생하셨소.”

“흠흠. 가뿐했어요. 험한 산도 아니고.”

모습을 추스르고 금방 도도한 표정을 짓는 장혜리.

서울에서도 말하는 동물은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앞발을 잡았을 때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몬스터와 접촉했을 때의 느낌과 닮았지만,

비교를 하자면 일개 몬스터와는 그릇의 크기가 다른 느낌이다.

“먼 길 오셨는데 식사나 하고 가쇼.”

“아, 아닙니다.”

“왜요? 나 배고파요.”

백진섭이 땀을 삐질 흘리며 손사래를 친다.

장혜리는 시장한지 뭔가를 먹었으면 싶다.

“워낙 식성이 특이해서.”

“얼마나 특이한데요?”

“몬스터를 구워 먹습니다.”

“…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의 장혜리.

알기로는 인간은 몬스터의 기운이 서린 채소만 먹어도 사망에 이른다.

그런데 아예 몬스터 자체를 먹는다니.

“산에서 나는 것 치곤 몸에 나쁜 게 없소.”

“한 번 맛보면 이만한 게 없다구.”

“됐어요!”

권해 보는 강철남과 멍구지만 벌레 씹은 표정으로 거절하는 장혜리였다.

“그럼 된장찌개랑 밥이랑 해서 먹고 가슈.”

“네? 된장도 몬스터의 기운이 서리지 않았습니까?”

“된장은 멀쩡하오. 구멍을 막은 후로 산의 기운이 죽어서 그냥 평범한 된장이 됐소.”

그렇게 말하는 강철남의 표정엔 아쉬움이 가득하다.

“맘 같아선 아예 구멍을 다시 뚫어 버리고 싶은데.”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십시오.”

대체 무슨 자신감이길래 구멍을 창문처럼 닫았다 열었다 하겠다는 걸까.

게다가 스톤 골렘의 머리통을 들어내고 된장을 뜬다.

장혜리는 보면 볼수록 강철남이란 수수께끼에 혼란스러웠다.

“아가씨, 맵게 먹는 편이오?”

“아니요. 그리고 아가씨가 아니라 장혜리예요.”

장혜리가 빠직, 하는 눈으로 쳐다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뚝배기에 국 끓일 준비를 하는 강철남.

채소도 대접할 것이 못 된다.

산의 기운이 약해졌다 한들 강철남과 멍구가 매일 아침 생산해 주는 비료를 뿌려 키운 것들이다.

이런 걸 대접할 순 없겠지.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

다 빼고 나니 국에 넣을 게 없었다.

“가서 더덕이나 쑥 좀 캐 옵시다.”

“네에? 우리는 손님인…….”

장혜리의 말이 마치기도 전에 어느새 손에는 호미가 쥐어져 있다.

어느 틈에…….

“자, 서두릅시다. 배가 더 고파지기 전에.”

냥고는 무너진 마루 밑에 숨어 없는 척한다.

백진섭은 이미 강철남의 즉흥성에 적응한 듯 군말 없이 길을 나선다.

장혜리는 살짝 심사가 뒤틀렸다.

“전 안 해요. 강철남 씨를 데리러 온 거지 자연 다큐를 찍으러 온 게 아니라구요.”

“그거 알아요?”

“뭐가요?”

“자연산 더덕은 피부 미용에 좋다는 거.”

물론 개소리다.

피부가 좋아지고 싶으면 피부과를 가야지.

그런데도 남자에겐 활기를, 여자에겐 젊음을 되찾아 준다는 이 마법의 말은 거부할 수가 없다.

“크흠. 일도 안 하고 얻어먹기에는 자존심이 허락 안 하는 것뿐이에요.”

터벅터벅 뒤따라오는 장혜리.

호미를 빙글빙글 돌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멍멍아. 더덕 냄새 좀 맡아 봐.”

“멍구다.”

“이름 누가 지었니? 너무 구리다.”

“그러는 네 이름은 혜리가 뭐냐. 마법사냐?”

“아니, 댕댕이 주제에!”

두 사람, 아니 한 인간과 한 개가 토닥토닥하는 사이 어느새 더덕밭에 도착했다.

“여기서 적당히 몇 뿌리 캐쇼. 나는 쑥 좀 캐 올 테니.”

강철남과 멍구가 저 멀리 걸어가자 장혜리는 백진섭에게 불만을 쏟는다.

“아니, 이게 뭐예요. 왜 갑자기 호미질이나 하고 있죠?”

“그래도 인류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세상을 구하는 대가치고는 괜찮지 않나요?”

“애초에 저 사람이 최강이라는 확증도… 어라?”

“왜 그래요?”

무슨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장혜리.

산 위다.

“진섭 씨, 조심해요!”

핑—

화살이다.

날카로운 화살촉이 백진섭의 귀 옆을 스치고 날아가 나무에 박혔다.

그들을 공격한 것은 활을 쥐고 있는 홉고블린이다.

“맛있는 인간의 냄새가 나는구나.”

“사람의 말을?”

장혜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선 볼 수 없었던 말하는 몬스터가 또 있다니.

그만큼 대한산의 수준이 높다는 의미다.

게다가 이번에는 살의를 품고 있다.

“혜리 씨, 조심합시다. 아마 구멍을 막기 전에 내려와서 숨어 지내던 녀석 같습니다. 상당히 레벨이 높을 겁니다.”

“숨어 지내? 내가 왜?”

“그야 물론 엄청 강한 인간이 있으니까 그렇겠지.”

“키케케케. 그 강하다는 인간은 지금 어디 있지?”

홉고블린은 비열하게 웃었다.

마치 강철남과 멍구가 사라진 틈을 일부러 노린 것 같았다.

다시 살을 먹여 활을 쏜다.

이번엔 장혜리를 노린다.

핑—

“읏!”

궤적을 읽어 피했음에도 속도가 엄청났다.

아슬아슬하게 화살을 피한 장혜리는 녀석이 다음 살을 장전하기 전에 달려들었다.

[신속]

“하압!”

단도를 뽑아 찌르기를 날린다.

하지만 홉고블린은 가뿐히 피한다.

이어서 주먹으로 반격하는 홉고블린.

장혜리는 민첩하게 피한다.

장혜리의 실력은 인간 중에서도 상당히 수준급.

그리 간단히 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는 일개 홉고블린이어도 대한산의 몬스터다.

장기전으로 이어지면 불리하다.

“여기도 있다!”

백진섭이 기습을 감행했다.

칼을 뽑아 홉고블린의 다리를 향해 날린다.

칼을 피하려다 스텝이 꼬인 홉고블린.

그 틈을 타 가슴팍에 칼을 찔러 넣는 장혜리.

푸욱—

“케에엑!”

하지만 칼은 깊게 박히지 못했다.

압도적인 레벨과 랭크 차이 탓이다.

비틀대는 홉고블린은 가슴에 박힌 칼을 뽑아냈다.

“둘 다 죽여 주마.”

화가 난 홉고블린이 뽑아 든 칼날을 혀로 핥으며 두 사람을 위협한다.

백진섭은 소리를 질러 강철남을 불러야겠다 생각했다.

그러고 숨을 크게 마시는데.

그 순간,

“냥!”

퍼억—

뭔가 시커먼 게 날아와 홉고블린의 강냉이를 털어 버린다.

날아온 뭔가는 냥냥 펀치?

목이 뒤틀려 죽어 버린 홉고블린 위에 냥고가 떡 하니 서 있다.

침을 발라 고양이 세수를 하며 고롱고롱하며 여유를 부린다.

“세상에.”

장혜리가 털썩 주저앉는다.

“혜리 씨, 괜찮습니까?”

“괘, 괜찮아요. 조금 놀랐을 뿐이니까.”

“너희 진짜 약하구나.”

냥고가 킥킥 웃으며 장난을 친다.

“네가 말도 안 되게 강한 거야.”

백진섭이 칼집에 칼을 넣으며 말했다.

장혜리는 홉고블린과 대결하며 느꼈다.

말도 안 되게 강한 몬스터라고.

그런데 그런 녀석을 한 방에 잡았다고?

“혹시 최강이라는 건 저 야옹이 아니에요?”

“냥고다!”

“냥고? 이름 누가 지었니?”

“왜? 멋지냐?”

“너무 구려.”

“캬아아! 구린 건 사실이지만 철남이 형님이 지어 주신 거니 말조심해라!”

주저앉은 장혜리를 백진섭이 일으켜 준다.

“여자 인간, 그거 아냐? 내가 있는 힘껏 덤벼도 멍구 형님의 앞발 하나도 못 이긴다.”

“그럼 멍구가 제일 강한 거 아냐?”

“그런데 말이야.”

냥고가 털을 핥으며 말을 잇는다.

“철남이 형님한테는 덤빈다는 상상 자체가 불가능해. 그는 그런 존재야.”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장혜리였다.

헌터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 서울.

가장 강한 헌터들만이 우글거린다는 서울 헌터 연합.

그곳에서 날고 기는 수많은 헌터들을 보아 왔다.

하지만 모조리 떼로 덤벼도 이 고양이 한 마리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냥고의 힘은 강했다.

그런데,

그 고양이가 설명하는 강철남과 멍구의 강함이란.

무엇보다 더 혼란스러운 건,

냥고의 말에서 한치의 과장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체 뭐예요, 강철남 씨와 멍구는.”

“말했잖습니까. 인류 최강의 인간과 개라고.”

백진섭은 웃어 보이고 더덕을 캐기 시작한다.

찝찝한 기분으로 호미질을 흉내 내는 장혜리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서 쑥 냄새가 물씬 풍겨 온다.

“다들 그만 캐고 가입시다.”

망태에 한가득 쑥을 담은 강철남이 걸어온다.

낡은 등산 바지에 후줄근한 티셔츠.

영락없는 50대 자연인의 패션.

세상 풍파 모두 겪은 아재 같은 말투.

그런데 얼굴만큼은 탱탱하고 잘생겨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대체 어떻게 저 인간이 최강인 걸까.

“여자 인간, 그만 의심하고 가자.”

“내가 무슨 의심을 했다고 그래? 그리고 내 이름은 혜리야, 장혜리!”

멍구와 장혜리가 티격태격하는 새에 마당으로 돌아온다.

냥고는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듯 마루 밑에서 스윽 기어 나온다.

“그럼 된장찌개를 끓여 볼까.”

나서기 전 솥에 올려놓은 밥이 고슬고슬 잘도 익었다.

불 위에 뚝배기를 얹어 팔팔 끓인다.

더덕에 묻은 흙을 씻어 내고 쑥도 씻는다.

손으로 투박하게 똑똑 분질러 뚝배기에 집어넣고 숟가락으로 저어 준다.

맛 좋게 잘 익은 된장을 푸니 구수한 냄새가 마당을 가득 메운다.

“누룽지도 안 남겠군.”

된장찌개를 한 입 맛본 강철남은 밥풀 한 알까지 모조리 긁어먹을 수 있을 정도의 황홀한 맛을 느꼈다.

“자, 다들 먹읍시다.”

마당에 밥상을 펼쳐서 식기를 놓는다.

그래도 손님이 왔으니 앉을 의자가 필요했다.

그러고 가져오는 게 스톤 골렘의 몸뚱이 조각이다.

레벨 50, S랭크의 천재지변급 몬스터를 엉덩이에 깔고 앉아 식사를 하는 기분이란.

장혜리는 보고서에서 본 스톤 골렘을 상상하니 오싹해졌다.

“그럴 리가 없지.”

아무리 최강, 최강해도 스톤 골렘을 이렇게 마구 굴리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된장찌개 맛이 제법 훌륭하다.

게다가 피부에 좋다는 산더덕도 먹으니 건강해지는 느낌이고.

“노동 후에 먹는 밥이 꿀맛이죠? 시장이 반찬이라고 마땅히 대접할 반찬이 없어서 일을 좀 시켰수다.”

“에이, 철남 씨. 마치 큰 그림을 그렸다는 식으로 둘러대지 말아요.”

“티 났소?”

백진섭과 강철남은 이제 제법 농담도 주고받는다.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나는 대한산의 초가집 마당.

구멍은 닫히고 산의 기운은 점차 예전 모습을 되찾아 갔다.

* * *

“자, 그럼 출발합니다.”

드디어 서울로 향하는 세 사람과 동물 한 마리.

냥고는 어디로 갔나?

그건 바로,

“냥고야. 네가 당분간 대한산의 주인이다.”

“야옹? 철남이 형님. 내가 대빵이에요?”

“그래, 내가 서울에 가서 뺑이 칠 동안 여기 몬스터들 기강 좀 잡고 있어 주라.”

“걱정 마요. 말 안 듣는 놈들 있으면 냥냥 펀치로 다 뚜드려 팰 테니까.”

“그리고 힘 좀 쓰는 애들 있으면 데려다가 집 좀 수리해 봐라.”

“…그런 건 사람 불러요.”

[냥고

레벨: 41

힘: A

맷집: BB

속도: S]

멍구는 마지막으로 냥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상태창을 확인해 봤다.

매일 강철남이 요리해 주는 몬스터 음식을 먹으며 어느새 무럭무럭 성장한 모양이다.

강철남과 멍구는 걱정 없이 서울로 향할 수 있었다.

그런데 너무 걱정이 없었던 걸까.

“드르렁.”

“푸푸푸.”

뒷좌석에서 늘어지게 자는 강철남과 멍구였다.

“정말 계속 확신에 의심을 주네요. 저 둘.”

“아하하. 그래 보이죠?”

장혜리는 최강이라는 이름의 둘이 여전히 산골 총각과 시골 개로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이들에게 인류의 미래를 걸어 봐야 한다.

곧 서울에 도착한다.

긴장하자.

서울은,

전쟁터니까.

“서울이에요.”

장혜리의 말에 눈을 뜨는 멍구.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잠이 달아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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