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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 자연인이다-10화 (10/175)

10화 세계 최강의 사나이와 최강의 개

* * *

눈을 뜨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있다.

그건 바로 하늘에 구멍이 뻥 뚫린 날.

푸른 하늘에서는 시커먼 몬스터들이 내려오고,

지상은 피와 살점으로 범벅이 되었다.

많은 사람은 현실을 자각하기도 전에 녀석들에게 당했다.

눈만 끔뻑이면서 죽어 간 이유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몬스터라니.

“그럴 리가 없지.”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스트레스로 머리가 어떻게 되었거니 생각했다.

꿈을 꾸고 있는 것뿐이겠지 싶었다.

“끄아아악!”

그러나 통증은 현실이었다.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만이 현실이라는 걸 자각하게 해 주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두 눈을 뜨고 똑바로 보아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

그것이 지금의 세상이라는 걸.

그런데,

“끼에에엑!!”

“꾸웨에엑!!”

“아악! 아아아악!”

이건 정말 아니다.

믿을 수 없다.

비현실적이다.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다.

어떻게 저 젊은 청년이 김성남조차 당해 내지 못한 고블린들을 장난감 다루듯 가지고 놀 수 있냔 말이다.

“욜로 와 이 새끼들아.”

강철남은 고블린들에게 꿀밤을 한 대씩 먹여 준다.

그대로 두개골이 함몰되어 바닥에 눌러 앉는 고블린들.

어느새 마당에는 놈들의 피로 흥건했다.

“철남이, 장마도 끝났는데 그거 다 어떻게 치우려고? 좀 젠틀하게 처리해 봐.”

멍구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찬다.

“그걸 생각 못 했네.”

강철남은 고블린들을 쥐어짜다 말고 창고에서 찌그러진 양동이 몇 개를 가져온다.

우당탕—

마당에 쏟아진 양동이들.

헌터들은 드러누워 낑낑대고 있다.

“거, 놀지만 말고 냇가 가서 물 좀 길어 오슈.”

“이게 노는 걸로 보여요?”

“선택해. 고블린 VS 물.”

“가득 퍼 오겠습니다.”

강철남이 준 선택지에 헌터들이 양동이를 들고 허겁지겁 도망간다.

고블린들이 달려들자 강철남은 목을 비틀어 조신하게 처리한다.

“키에엑.”

“키키…….”

뒤로 빠져 있는 고블린들이 기괴한 소리를 낸다.

아무래도 겁을 먹은 것 같다.

그러자,

콰직—

오우거가 고블린 한 마리를 찌부러뜨리며 인상을 썼다.

“내 뒤로 물러나는 놈들은 나한테 죽는다.”

고블린들은 선택을 해야 했다.

찌그러져 죽느냐, 목이 비틀어져 죽느냐.

하지만 곧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선택지 하나가 사라졌으니까.

“마당 더럽히지 말라고, 이 눈치 없는 새꺄.”

강철남이 어느새 날아와 오우거의 목을 잡고 꺾어 버린다.

표정 하나 바꿀 새 없이 목이 돌아간 오우거.

그대로 산을 울리며 바닥에 쿵, 떨어진다.

넋이 나가 달아나는 고블린들.

“어림없지.”

멍구가 앞발로 도망가는 녀석들을 때려잡는다.

쓰러진 고블린을 콕콕 찌르며 강철남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철남이.”

“왜.”

“이건 안 먹어?”

“뭘 먹어 미친 개야.”

“산에 나는 것치곤 몸에 나쁜 거 없다며.”

“지랄 마.”

이미 나무고 뭐고 모조리 초토화된 산길은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다.

강철남은 산불 걱정 없이 그곳에 고블린들을 쌓아 두고 불을 지폈다.

칙— 칙—

“아오, 불 겁나 안 붙네. 멍구야, 너 진짜 입에서 불 같은 거 못 쏘냐?”

“개한테 뭘 바라.”

우여곡절 끝에 불을 붙였다.

원래 집이었던 곳으로 돌아와 무너진 마루를 바라본다.

“철남이, 이거 어떡하냐.”

“국가가 배상해 주려나.”

“퍽이나.”

“그렇지?”

강철남과 멍구가 허탈하게 집을 보고 있을 때 헌터들이 물을 길어 왔다.

눈치를 살살 보는 꼴이 아직도 고블린들이 남아 있는 줄 아나 보다.

“길어 왔으면 마당이나 닦으슈.”

“저희가요?”

“보고서에 대한산에서 전멸한 걸로 처리되고 싶소?”

“아하하. 저희 청소 잘합니다!”

헌터들은 칼을 내던지고 길어 온 물을 마당에 뿌려 피를 씻어 내기 시작한다.

얼룩이 남지 않게 옷을 찢어 걸레 삼아 닦아 내는 정성이 갸륵하기까지 하다.

“강철남 씨.”

백진섭이 그를 불렀다.

“이번 일은 어찌 감사를 드려야 할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는 백진섭.

사실 그는 강철남이라는 사내에게 놀라움을 넘어 경외심까지 느꼈다.

“대체 얼마나 강한 겁니까, 철남 씨는.”

조용히 숨어 있던 냥고가 으스대며 엣헴, 소리를 낸다.

강철남은 본인이 얼마나 강하건 말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젊어져서 소화 기능이 좋아진 걸로 만족한다.

산에서 자라는 진미들을 양껏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한바탕했으니 밥을 먹어야지.”

“또요? 아까 닭 먹었잖아요?”

“기운을 뺐으니까 또 뭘 먹어야 할 거 아니요.”

강철남은 산길을 따라 들어가더니 뭔가를 하나 들고 왔다.

“아니, 몇 분 지났다고 또 그런 걸 잡아 옵니까?”

그가 어깨에 짊어진 건 커다란 멧돼지였다.

“구멍을 막지 말 걸 그랬나?”

“왜요?”

“신선한 고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마법의 냉장고인데.”

“세상에.”

백진섭은 혀를 내둘렀다.

다소 괴짜 같긴 해도 그의 실력은 진짜다.

이 남자라면 이 혼란에 빠진 세상을 구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싫소.”

“아니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얼굴에 다 쓰여 있소. 뭔가 귀찮은 부탁을 하려고 그런 거 아니요?”

“부탁이 아니라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놈의 제안을 들으러 갔다가 내 집이 박살이 난 거 안 보이오?”

할 말이 없었다.

경북 헌터 연합과 얽히지 않았더라면 산을 비울 일도 없었고,

강철남이 하루아침에 노숙자 신세가 되는 일도 없었을 테다.

“끄응. 그건 확실히 제 잘못이네요. 죄송합니다.”

“지나간 일 가지고 쪼잔하게 따져 봤자 인생 손해지. 거기 돌판이나 가져와 보슈.”

강철남이 턱짓으로 가리킨 건 넙데데한 돌판이었다.

그것이 레벨 50짜리의 S랭크, 스톤 골렘의 손가락이라는 것을 백진섭이 알 리가 없다.

“솥뚜껑이 없으니 삶의 질이 확 떨어지는군. 아쉽지만 오늘은 돌판 삼겹살이다.”

불을 피우고 돌판을 뜨겁게 달군다.

그사이 멧돼지를 해체하는 강철남.

무너진 부엌을 헤집고 들어가 소금과 후추를 챙겨 와 고기에 밑간을 친다.

멍구와 냥고가 먹을 고기는 간을 하지 않는다.

“나는 안심살이 좋아요.”

“입맛이 고급이구나.”

강철남은 그런 냥고에게 뒷다리살을 내어 줬다.

냥고가 시무룩해하자 안심살을 떼어 준다.

“저기, 청소 다 했습니다요.”

헌터 일행들이 청소를 마친 모양이다.

“욕봤소. 이제 그만들 내려가 보슈.”

“강철남 씨. 이제부터 어쩌실 겁니까?”

“어쩌긴 뭘 어째. 이제 이 산도 내 거니 두 다리 뻗고 잘 먹고 잘살아야지.”

돌판에 노릇노릇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느긋한 소리를 하는 강철남.

보면 볼수록 이 강철남이라는 사내는 너무 아깝다.

그가 힘을 발휘하면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가 다시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

“강철남씨,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의 힘이라면 지구를 구할 수 있습니다.”

“노관심.”

“아니, 세 음절로 받아치는 건 너무 하잖습니까.”

씨알도 안 먹힌다.

하지만 물러설 순 없다.

“지금도 전국 각지 산에는 작은 구멍들이 뚫려 몬스터들이 내려옵니다. 보고에 따르면 산마다 다른 형태의 구멍들이 뚫려 다른 형태의 몬스터들이 내려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정부도 대책을 세울 수 없는 겁니다. 공략법이 달라지니까요. 이미 정부가 손댈 수 있는 상황은 넘어섰습니다.”

결국 절망밖에 남지 않은 현실을 토로한다.

“이보게 진섭이, 세상 살면 얼마나 산다고. 내 견생 살기도 바쁘고 철남이도 자기 인생 살기 바빠. 그런데 다른 데 힘쓸 시간이 어딨어.”

족발을 뜯으며 멍구가 일침을 가한다.

맞는 말이다.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할 순 없다.

힘이 있다고 그것을 공익을 위해 쓰라는 것은 엄연히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행위다.

이건 어디까지나 강철남 본인의 선택이다.

이에 백진섭은 고개를 숙였다.

헌터들을 대표해서.

이제부터는 믿을 놈 하나 없는 세상에 홀로 부딪쳐야 한다.

그렇게 각오를 굳히고 돌아서는데,

“잠깐.”

그를 부르는 강철남의 목소리.

“산마다 다른 몬스터들이 나온다는 게 참말이요?”

“네? 아, 네. 정말입니다. 사진으로 보고 받은 내용으로도 여기 대한산에서 본 몬스터들과 차이가 있었습니다.”

백진섭의 말을 듣자 강철남이 희미한 미소를 보인다.

“그렇단 말이지? 흠흠.”

“철남 형님, 혹시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철남이 사서 고생은 젊을 때나 하는 거지 나이 오십 먹고 왜 그래.”

동물적인 감각으로 안 좋은 촉을 느낀 냥고와 멍구가 말리려 해 본다.

하지만 이미 강철남은 꽂혀 버렸다.

바로 몬스터의 맛에.

“산은 참 신비로운 지대지. 땅과 기후에 따라, 그리고 바람과 물줄기에 따라 모습이 변화무쌍하지. 들풀, 버섯, 열매, 나무뿌리, 약초, 야생동물 모든 것들은 산이라는 어머니 아래에서 다른 모습으로 자란다.”

“어이구, 또 개소리한다.”

“멍구, 냥고. 우린 원정을 떠난다. 자연인 원정을 말이야.”

“허걱! 형님, 이건 맛집 탐방이 아니라구요!”

그렇다.

강철남은 다른 산에 출몰하는 몬스터와 식물을 맛보기 위해 주먹을 불끈 쥔 것이다.

귀찮아지는 게 싫은 멍구와 무서운 몬스터는 질색인 냥고는 안중에도 없다.

“진섭 씨.”

“네.”

“조만간 데리러 오슈.”

“네?”

“서울 헌터 협회인가 뭔가 가서 할 말이 있으니께.”

“아, 예! 알겠습니다.”

강철남이 서울 헌터 협회에 가서 할 말이라는 게 뭘까.

백진섭은 그가 그리고자 하는 그림이 뭔지 짐작조차 안 갔다.

하지만 다른 산으로 가 주겠다는 그의 결심이 감사했다.

그에겐 자연인 순례에 불과한 일이지만,

인류에겐 거대한 반격의 서막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 *

일주일쯤 지났을까.

백진섭은 서울 헌터 협회에서 온 비서와 접촉했다.

“반갑습니다. 경북 헌터 협회장 백진섭입니다.”

“서울 헌터 협회 비서 장혜리예요.”

그들은 인사를 나누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정말이에요? 솥뚜껑으로 작은 구멍을 막았다는 말이.”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입니다. 저도 정상으로 가 직접 확인해 보고서야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강철남이라는 분은 어디 계시죠?”

“대한산에 있습니다. 같이 가시죠.”

백진섭은 장혜리와 동행했다.

아무래도 여자라 산행이 힘들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러나 괜한 염려였다.

오히려 남자인 자기보다 더 민첩하게 산을 오르는 그녀였다.

“헉. 헉. 혹시 혜리 씨는 레벨이 몇인가요?”

“여자의 레벨을 묻는 건 실례예요.”

언제부터 그런 불문율이 생긴 거지.

명색이 길잡이로 나서는데 뒤처질 순 없다.

앞서가는 그녀를 따라잡아야 했다.

“헥, 헥. 다 왔습…니다… 여깁니다.”

진이 다 빠진 백진섭과 달리 호흡 한 번 흐트러짐이 없는 장혜리.

그녀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았다.

그리고,

황당해했다.

“이게… 뭐죠……?”

다 무너진 초가집이 있다.

주저앉은 마루는 대충 조립해 두었고 그 위에 웬 시고르자브종이 엎어져 자고 있다.

그리고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바닥에 널브러져 자는 건지 죽은 건지 눈을 감고 있다.

배 위에는 웬 검은색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그리고 이건…….”

장혜리는 황당함을 넘어 무섭기까지 했다.

“스톤 골렘의… 머리?”

장독대 위에 얹어 놓은 누름돌은 스톤 골렘의 머리였다.

보고서에서 본 것과 똑같은 이미지다.

어떤 국가에 작은 구멍이 뚫렸고 스톤 골렘이 출현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단 일주일 만에 그 국가는 멸망했다고 들었다.

정말일까? 스톤 골렘의 랭크는 S급이라던데.

어디까지나 허황된 가십이지만 말이다.

“말이 안 되지.”

장혜리 그녀조차 국가 재난급이라는 C급 이상의 몬스터는 본 적이 없으니.

만약 그런 몬스터가 존재한다면 진작에 지구가 종말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스톤 골렘의 머리를 된장독 누름돌로 쓴다고?

아닐 것이다.

우연히 똑 닮은 바위일 게 분명하다.

“아니겠지… 어머나!!”

장혜리는 아예 주저앉고 만다.

“왜 그러세요?”

백진섭이 놀라 그녀에게 달려간다.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고기가 눌어붙은 돌판이 있다.

그 돌판은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명백한 스톤 골렘의 손가락이었다.

“대체 여긴 어디죠?”

혼란에 빠진 장혜리.

“세계 최강 사나이와 최강의 개의 집에 온 걸 환영합니다.”

물론 세계 최강의 사나이와 최강의 개는 세상 모르게 드르렁 낮잠을 즐기고 있다.

장혜리는 그들에게 다가간다.

그리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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