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최강 자연인이다-9화 (9/175)

9화 아이고, 강철남씨. 저 좀 살려주세요!

뭐라고 해야 할까.

백진섭은 퉁퉁 불어 터진 라면을 앞에 두고 멍해졌다.

“이봐요, 강철남 씨. 농담 따 먹기 할 사안이 아니에요.”

“가만히 집중하고 느껴 보슈. 기운이 달라지진 않았는지.”

멍구가 답답하다는 듯 한마디 쏘아 준다.

그제야 백진섭은 느꼈다.

대한산의 공기가 달라졌다는 걸.

“뭐지? 공기의 질감이 가벼워졌어. 무겁게 짓누르던 위압감이 사라진 것 같아.”

대한산의 기운이 달라졌다.

몸소 느끼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확실하다.

믿기 어렵지만,

구멍을 막은 것이다.

“아니, 대체 어떻게, 어떻게 구멍을 막은 겁니까?”

“말 했잖수. 솥뚜껑으로 막았다고.”

“기가 막혀서. 몬스터들이 밀고 나오는 구멍을 솥뚜껑으로 막았단 말입니까?”

“억지로 밀어 넣으니 무슨 빛이 번쩍하더니 막히던데?”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보란 듯 결과가 눈앞에 드러나니 더 의심할 수도 없는 노릇.

그렇다면 이 강철남이라는 사내는 김성남보다도, 아니 저 괴물 뺨치는 멍구보다도 강하다는 말인가?

황당함에 정신을 못 차리는 백진섭이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그때,

웅성웅성—

“무슨 소리지?”

백진섭은 올라오는 길을 돌아봤다.

산 아래쪽이 소란스러웠다.

누군가 무리를 이끌고 올라오고 있다.

모습을 드러낸 건 바로,

“대장, 여기 계셨군요!”

경북 헌터 연합의 헌터들이었다.

20명 남짓한 잔여 인원들이 전부 몰려온 모양이다.

산의 기운이 약해진 틈을 타 가뿐하게 올라온 듯 보였다.

“여긴 어떻게들 왔어?”

“어떻게 오긴요. 우리 산을 되찾으러 왔죠.”

강철남과 멍구는 헌터의 입에서 ‘우리 산’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닭 뼈를 으적 씹어 버린다.

“누구 마음대로 당신네 산이요.”

“당신 여기서 취사하고 막 그래도 돼? 국가 소유 산인데?”

“내가 여기 짱 먹었으니 내 나와바리요.”

헌터의 뻔뻔스러운 태도에 강철남이 물러서지 않고 맞선다.

“하하하. 당신이 짱을 먹어? 그깟 개 한 마리한테 의지하면서 똥폼은 혼자 다 잡는구만.”

“그깟 개한테 싸다구 맞아 볼래?”

멍구는 참지 않는다.

뜨거운 손맛, 아니 발맛을 보여 줄 준비가 되어 있다.

“크흠. 아무튼 이 서류를 봐. 서울 헌터 연합에서 내려온 공문이고 서울 헌터 연합은 대통령의 지시를 받지. 내용에 따르면 대한산을 점령하고 그 거점을 경북 헌터 연합에서 맡는다고 적혀 있잖아.”

종이를 펄럭이며 열변을 토하는 헌터.

그 모습이 백진섭은 부끄러웠다.

“이봐, 이 산을 점령한 건 강철남 씨와 멍구야. 애초에 우리들이었다면 점령은 불가능했을 거야. 소유권은 그들에게 있어.”

백진섭은 헌터들을 말리려 애를 썼다.

작전을 잘못 세운 것 같다.

우선 대한산을 점령하고 소유권은 그다음에 주장하자는 작전.

그 작전은 이들의 후안무치한 태도에 밀리게 생겼다.

“대장, 뭐요. 당신은 우리 편을 들어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 산을 거점으로 삼고 남아 있는 잡몹들을 잡아서 레벨을 올리면 우리는 더 강해질 수 있어요.”

“맞아요. 우리도 서울 놈들에게 밀리면 안 되죠.”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에서 헌터란 존재는 철저히 실력 지상주의로 평가받으니까.

대한산은 헌터들이 탐내는 보고와도 같은 곳이다.

“그래도 이건 정당하지 않아. 우리는 손도 안 대고 코를 풀었어. 그런데 이익까지 탐내는 건 옳지 않아.”

“옳고 그른 건 국민들이 더 잘 알걸요?”

“무슨 소리야?”

“한낱 민간인과 개 따위에게 산의 소유권을 넘기느냐, 아니면 헌터 연합에게 산의 소유권을 넘기느냐. 어느 쪽이 국민들이 좋아할까요? 어느 쪽이 몬스터 사냥에 도움 된다 볼까요? 어느 쪽이 자기들 삶에 유리하냐 이겁니다.”

“궤변이야. 국민들을 들먹이지 마.”

언성이 점점 높아지면서 소란이 커졌다.

강철남은 슬슬 인내심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새끼들. 그렇게 원한다면 가져가라.”

“정말?”

“아니, 강철남 씨.”

강철남의 폭탄 발언에 술렁임이 멎는다.

하지만 그는 여유로운 웃음을 띠는데.

“다만.”

“……?”

“가져갈 수 있다면.”

의미심장한 말을 뒤로한 채 강철남은 마당 한가운데에 섰다.

그리고,

“우와아아아아아!!”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컹! 컹컹컹! 커엉! 컹!”

돌발적인 그의 행동을 보던 멍구는 뭔가를 눈치챈 듯 고개를 위로 뻗고 미친 듯이 짖기 시작한다.

“냐아아아옹!!”

영문은 모르겠지만 일단 따라 하는 냥고.

작은 목청으로 힘을 보태 본다.

“강철남 씨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백진섭은 귀를 틀어막고 미친놈 보듯 바라본다.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다 뚝 끊는 강철남.

그러다 갑자기 솥에 기름을 두른다.

땅에 나뒹구는 옥수수를 주워 알갱이를 뜯어 넣으며 하는 말이,

“팝콘이나 먹으면서 구경이나 하슈.”

우수수 떨어지는 옥수수 알갱이들.

부글부글 끓는 기름에 자작자작 튀겨지기 시작한다.

동시에 주변에서 땅이 구르르, 울리는 진동음이 들려온다.

“이게 뭐지?”

“무슨 소리야?”

“뭔가 불길한데.”

불온한 움직임을 감지하고 서로 등을 맞댄 채 뭉치는 헌터들.

몇몇 헌터는 이미 그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눈치챈 것 같다.

스릉—

“카, 칼을 뽑아!”

“젠장, 몰려온다!”

전투태세를 갖춘 그들의 얼굴에서 공포가 보인다.

구멍은 막혔으니 새로운 몬스터가 나오지는 않는다.

산에 남아 있는 몬스터들은 그야말로 잡몹.

하지만 그 대한산의 몬스터들이기 때문에 잡몹이라도 일반 헌터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오, 온다!”

눈이 좋은 헌터가 몬스터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풀숲을 헤치고 나타난 것은,

“캬하하하. 인간들이 득실대는구나.”

사람의 말을 하는 오우거였다.

굵은 저음의 목소리로 탐욕에 젖은 웃음을 터뜨리니 끔찍한 악몽과도 같았다.

녀석의 주변에는 창과 칼을 든 고블린들이 우글거리며 서 있었다.

“마, 말을 하잖아?”

“설마 군대를 꾸린 건가?”

“젠장, 겁먹지 마! 우리도 명색이 헌터야!”

헌터들은 용기를 쥐어짜 내 보지만 팔과 다리가 후들거렸다.

탁— 탁— 탁—

“오우, 예쓰! 튀겨진다.”

와중에 솥에서 튀겨지는 팝콘을 보며 기뻐하는 강철남.

고소한 냄새에 멍구도 팝콘을 멍하니 바라본다.

“쟤네들 세냐?”

“개X밥인데?”

“상태창 좀 봐봐.”

강철남의 말에 멍구는 눈을 뜨고 오우거를 측정했다.

[오우거

레벨: 34

힘: CC

맷집: C

속도: D]

[고블린

레벨: 16

힘: E

맷집: FF

속도: D]

하급 몬스터인 고블린조차 대한산의 기운을 받아 말도 안 되게 높은 레벨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일반인 기준에서다.

“철남이 기침 한 방이면 그냥 뒤지겠는데?”

“팝콘이나 먹으면서 구경이나 하자.”

강철남과 멍구는 다 으스러진 마루에 걸터앉아 자리를 잡는다.

오우거의 군대와 경북 헌터 연합의 대치 상황.

“어디부터 씹어 먹어 줄까? 머리? 다리?”

오우거는 기분 나쁘게 웃으며 위협했다.

그 말이 허풍이 아니라 진짜이기에 헌터들은 두려움을 느꼈다.

연합의 사기가 크게 꺾이기 시작했다.

“젠장, 왠지 X나게 불안한데.”

“거저먹겠다고 왔는데 어째서.”

“운도 더럽게 없군.”

그때였다.

[신속]

서걱—

김성남이다.

산 밑에서 빠른 속도로 올라와 고블린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고블린은 목에 상처를 입고 쓰러진다.

“오오, 김성남 씨!”

“와 주셨군요!”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입어 오지 않으려 했던 그.

하지만 헌터의 촉이 그를 불렀다.

“내가 왔으니 안심들 해.”

칼을 빙빙 돌리며 폼을 잡는 김성남.

그러면서 팝콘을 처묵처묵 하고 있는 강철남과 멍구를 째려본다.

“저 새끼들이 지금 팔자 좋게…….”

김성남이 오건 말건 강철남과 멍구는 관심 없다.

그저 팝콘의 고소함에 취해 있을 따름이다.

“쟤 왜 우리 째려보냐?”

“그르게.”

“쟤는 레벨이 몇인데?”

[김성남

레벨: 15

힘: EE

맷집: E

속도: EE]

“오 지난번에 비해 좀 올랐는데? 철남이, 네가 준 약초 때문인가 봐.”

“그러면 뭐라도 좀 싸 들고 오지, 싸가지 없이 빈손으로 오냐.”

[신속]

[찌르기]

“단숨에 끝낸다!”

김성남은 기세 좋게 오우거에게 달려들었다.

몬스터를 죽인다.

그래서 인정받는다.

세계 최강의 헌터는 바로 김성남이라고!

“죽어라!”

“크흐흐.”

퍼억—

쿵—

오우거의 가뿐한 앞차기에 김성남이 날아간다.

그는 지난번처럼 초가지붕 위에 꽂혀 버렸다.

“아, 씨. 먹는데 먼지 날리게.”

“쟤는 지붕이 그리 좋으면 그냥 지붕 위에서 살라 그래.”

강철남과 멍구는 폴폴 날리는 먼지에 인상을 찡그렸다.

일격에 나가떨어진 김성남을 보자 헌터들이 주저앉는다.

“얘들아! 오늘은 맛 좋은 인간을 잔뜩 먹어 보자꾸나!”

오우거가 돌격 명령을 내린다.

침을 질질 흘리던 고블린들은 고삐가 풀린 말처럼 달려들기 시작한다.

“히익!”

“오지 마!”

무기를 버리고 달아나는 헌터.

끝까지 맞서 싸우는 헌터.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압도적인 레벨 차이로 백진섭조차 고블린 하나를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전멸이다.

그때,

“도, 도와줘요!”

강철남에게 대한산 소유권에 대해 잘도 나불대던 헌터가 강철남과 멍구 앞으로 달려와 엎드려 빈다.

“에잉. 산 청소는 이 산의 주인인 당신들이 하셔야죵.”

“그렇쥬. 개 맞는 말이쥬.”

강철남과 멍구는 팝콘을 더 튀길까나 고민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러다 다 죽습니다!”

“갈 때 노잣돈은 못 챙겨 줘도 그 서류는 꼭 챙겨 드릴게. 저승에 가서 대한산 내 거라고 염라대왕한테 자랑이나 하슈.”

“아이고!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산, 대한산 당신들 드릴게요!”

강철남과 멍구는 서로 마주 보며 씨익 웃었다.

“아니, 사람이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 다르다고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소.”

“맞아, 맞아. 개인 내가 봐도 못 믿어. 태도가 싹싹 바뀌는 게 아주 그냥 정치하면 딱이겠어.”

그때 엎드려 비는 헌터를 발견한 고블린 한 마리가 쫓아온다.

간절함에 이성을 잃은 헌터는 아슬아슬하게 칼을 입안에 집어넣고 애걸복걸한다.

“아악! 한 입으로 두말 안 합니다! 제가 말을 바꾸거든 이 칼로 제 입을 찢어 버리겠습니다. 아아! 온다! 온다! 와! 와! 다 왔어! 코앞까지 왔어!”

강철남은 이만하면 됐겠다 싶어 일어난다.

무엇보다 징징대는 꼬라지가 시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내가 할까?”

“팝콘이나 더 튀기고 있어.”

“개가 어떻게 팝콘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능숙하게 옥수수 알갱이를 떼어 내는 멍구였다.

“야 이, X만 한 시금치 새끼들아!”

강철남의 외침에 녹색 고블린들이 큰 귀를 쫑긋 세우고 돌아본다.

“좀 처리하기 쉽게 한곳에 모여 봐라.”

쓰러진 헌터들은 저 인간이 미쳤나 하는 눈으로 바라본다.

이제 다 죽을 판국이라 최후의 발악을 하려나 싶었다.

“강철남 씨 당신.”

“백진섭 씨. 약속은 받아 냈소. 당신이 증인이오. 이 대한산은 지금 이 순간부터 내 거요.”

“알겠소. 여기 있는 모두가 동의할 거요. 그렇지?”

백진섭은 주변을 둘러보며 동의를 구했다.

헌터들에게 확신은 없었다.

다만 대장의 태도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믿고 따라가 본다.

“얼마든지 줄게.”

“애초에 관심도 없었어.”

“이제 산 같은 건 관심 없어!”

“이런 산, 줘도 안 가져.”

그 말에 멍구가 달려와 싸대기를 날린다.

“뭐, 줘도 안 가져? 1절만 하지, 2절 3절 뇌절까지 처하고 있어.”

멍구에게 한 방 얻어맞은 헌터는 꾀꼬닥 실신해 버린다.

강철남은 마지막 팝콘 한 알을 와작와작 씹으며 여유를 부렸다.

“좋아, 그럼 청소 좀 해 볼까. 산의 주인으로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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