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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 자연인이다-4화 (4/175)

4화 으악, 이번에는 고양이도 말을 한다!

* * *

초가집만 한 거대 멧돼지가 불에 바싹 구워지고 있다.

커다란 꼬치에 꿰뚫린 녀석은 강철남의 뛰어난 굽기 솜씨로 맛있게 골고루 익어 갔다.

멍구는 냇가에서 피를 씻어 내고 물기를 파르르 털어 낸 뒤 돌아왔다.

“냄새 직이네.”

“그렇지? 제일 맛있는 부위를 멍구한테 줄게.”

“당연하지. 대가리가 깨질 뻔했는데.”

멍구는 앞발로 머리를 문지르며 진짜 머리가 깨지진 않았는지 확인해 봤다.

요 며칠간 먹은 것들은 알고 보니 전부 몬스터였다.

그 힘 덕분인지 몸이 비상식적으로 튼튼해졌다.

“소금은 치지 말고.”

“알아.”

동물에게 소금간은 좋지 못하니 멍구가 따로 주문을 넣었다.

강철남과 멍구는 고기가 익어 가는 동안 불멍을 때렸다.

살짝 아련해지는 기분 속에서 멍구는 지난날을 떠올렸다.

* * *

“이놈, 눈빛이 왜 그리 간절하냐. 나랑 같이 가자.”

나는 개 시장에서 철창에 갇힌 채 팔려 갈 날만 기다리다가 어느 날 한 인간의 손에 번쩍 들려 철창을 나가게 되었다.

귀동냥으로 안 사실이지만 개 시장에서 개들의 운명은 열에 아홉은 멍멍탕 신세라고 한다.

그런데 어째서 이 인간은 나를 먹지 않는 걸까 생각했다.

“일 다녀올 테니 집 잘 보고 있어라.”

인간은 새벽같이 안전모를 들고 집을 나섰다.

밥그릇에 사료를 수북이 쌓아 두고 먼지 쌓인 작업화를 덜그덕 거리며 집을 나섰다.

“집 잘 보고 있었니?”

오후쯤에 돌아와서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먼저 내 밥그릇에 사료를 쌓아 주고 자기는 물에 밥을 말아 먹는다.

잠을 좀 자다가 저녁이 되면 정장을 갖춰 입고 어딘가로 또 나간다.

강철 대리운전이라 적힌 명함을 가득 챙겨서는 말이다.

“멍멍아, 잘 있었니.”

“멍!”

“옳지, 이제는 대답도 잘하는구나. 멍멍하고 대답을 잘하니 이름을 멍구라 하자.”

솔직히 작명 센스가 꽝이었다.

한낱 짐승인 내가 지어도 그것보단 낫겠다 싶었다.

하지만 부르기 쉬운 이름이 대성한다는 말도 있지 않나.

멍구.

그날로 내 이름은 멍구가 되었다.

“멍구야, 멍구야.”

내가 그 인간과 함께 살게 된 지 10년째 되던 날, 인간이 술에 몹시 취해 집에 들어왔다.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나를 끌어안고 부비부비 대는데 드디어 이 인간이 미쳤나 싶었다.

“흑흑흑…….”

갑자기 서럽게 울기 시작하는 인간.

무슨 일이 있었나 알 길은 없다.

개인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눈물을 혀로 핥아 주는 것뿐이다.

“멍구야. 이제 끝났다. 빚 다 갚았어. 이제 쉴 수 있어. 흑흑흑…….”

빚.

10년이 넘도록 인간을 쫓아다닌 어두운 그림자.

드디어 그 사슬에서 벗어난 것이다.

인간은 밤새 나를 끌어안고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멍구야, 우리 산으로 가자. 사람 없는 조용한 곳으로.”

내 귀에다 대고 잠꼬대를 하는 통에 편히 잘 수 없었지만 그날 하루만 참기로 했다.

다음 날, 인간은 집을 정리하고 산으로 나와 함께 훌쩍 떠났다.

5년간 산에 살며 인간은 점점 맑은 혈색을 되찾아 갔다.

“멍구야, 오늘은 너도 뱀술 한잔할래?”

“멍.”

“오냐, 한 잔 받아라.”

거절의 멍이었다.

이 인간 알면서 일부러 그런다.

그래도 술친구 삼아 잔을 받기만 한다.

“자, 다 익었다. 후후 잘 불어서 먹어라.”

“잘 먹으마.”

불멍을 때리다 보니 어느새 멧돼지가 다 익었다.

때로는 말동무, 때로는 술친구를 자처하며 그렇게 이 인간과 15년을 함께 살았다.

멍구는 견생이 인간에 비해 짧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슬슬 삶을 정리하려던 때에 회춘이라는 기적을 맞이한 것이다.

“아직은 헤어질 때가 아니라는 운명의 뜻인가 보군.”

“무슨 소리야?”

“아무것도 아니다, 소금 좀 주겠나?”

“멍구, 소금 찍어 먹게?”

멍구는 멧돼지 목살에 소금을 찍어 먹어 본다.

“어우, 짜!”

“껄껄껄. 당연히 짜지, 소금이니까.”

한 번 더 살아 보자.

고생깨나 할지언정 이 인간과 함께 사는 건 나름 즐거운 편이니까.

* * *

상쾌한 아침이 밝아 오고 강철남은 문을 박차고 나왔다.

온갖 들짐승들이 구운 멧돼지 뼈다귀 근처에서 혀를 낼름거리다 후다닥 도망친다.

그중에 한 다람쥐같이 생긴 몬스터가 강철남을 향해 돌진한다.

“아, 오줌부터 싸고.”

바지를 내리고 밭을 향해 하이드로 펌프를 발사하는 강철남.

그 레이저 미사일에 다람쥐 몬스터는 가슴팍을 정통으로 맞고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밭에는 몬스터의 피와 강철남의 소변이 흩뿌려졌다.

“X나 더럽군.”

“이게 바로 천연 비료야.”

멍구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멧돼지 뼈다귀를 입에 물고 기지개를 켠다.

오늘은 좀 평화로우려나 싶었지만,

“살려 주세요!!”

그럴 리가 없지.

대체 이 외진 곳에 어떻게들 찾아오는지 모르겠다.

“아침부터 시끄럽군.”

“멍구야, 무슨 냄새가 나니?”

“킁킁. 짐승 냄새가 둘이다.”

“뭐? 사람이 아니고?”

그때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울리고 초가집이 덜덜 흔들리며 매달아 둔 곶감이 우수수 떨어졌다.

“아 싯팔! 곶감 다 떨어지네. 어떤 새끼야?.”

“혼내 주자.”

독이 잔뜩 오른 강철남은 삽을 들었다.

멍구도 냄새가 다가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살려 주세요!”

아까부터 외치던 소리가 가까워졌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고양이?”

웬 검은 얼룩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정신없이 산을 내려오는 중이었다.

그 뒤를 바짝 쫓는 건 커다란 곰…….

“곰이라고?”

“경상북도 산에 무슨 곰이.”

멍구는 어이가 없었다.

다만 강철남은 아직 곰 고기를 먹어 본 적이 없어 잔뜩 흥분해 있는 상태다.

“냐, 냐앙!”

고양이가 쏜살같이 달려 강철남의 다리 사이로 쏙 빠져나왔다.

매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곰이 거의 다다랐을 때 강철남은 삽날을 세워 수직으로 내려찍었다.

까앙!

“꾸에에엑!”

곰의 정수리가 박살 나는 소리가 산 전체에 울려 퍼졌다.

멍구는 자기가 나설 것도 없겠거니 싶어 앞발만 츄릅 핥을 뿐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반찬거리가 달려오는구나.”

“웅담은 내 거.”

쓰러진 곰을 번쩍 들어 부엌으로 가는 강철남.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는 고양이.

“고, 고맙습니다!”

고양이는 넙죽 엎드려 강철남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래, 앞으로는 조심히 살아라.”

고양이는 살짝 당황하면서도 뭔가 서운했다.

사람의 말을 하는 자기가 별로 놀랍지도 않은가?

“저기 제가 신기하지 않으세요?”

“멍멍. 개도 말하는 세상에 놀랄 일도 아니지.”

“으악! 개가 말을 한다!”

혀를 내밀고 껄껄 웃는 멍구를 보고 화들짝 놀라는 고양이.

“너는 어쩌다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냐?”

“저는 길고양이로 온갖 벌레나 들쥐들을 잡아먹고 살아왔죠. 그러던 어느 날 이것저것 잡아먹고 배가 아파서 앓아누웠는데 그 이후로 인간의 말을 할 수 있게 된 거예요.”

멍구는 뒷발로 얼굴을 박박 긁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몬스터를 많이 먹은 모양이군.”

“웩! 그럼 제가 몬스터를 먹고 몬스터가 된 건가요?”

“기뻐해라. 네가 그릇이 크다는 거야. 보통 고양이였다면 죽었을 거야.”

“냐앙…….”

고양이는 자기가 몬스터가 되었다는 사실이 찝찝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형님의 이름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멍구다. 너는 누구냐.”

“떠돌이 길고양이한테 이름이 어딨겠어요.”

“좋다, 앞으로 네 이름은 냥고다.”

“이런 ㅆ…….”

“왜? 마음에 안 드냐?”

똥 씹은 표정의 냥고.

그러나 이어진 강철남의 말에 얼굴을 활짝 폈다.

“밥이나 먹고 가라.”

“주신다면 감사히 먹죠.”

어느새 부엌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솔솔 피어오르고 있었다.

근력과 속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한 강철남은 곰을 해체하고 손질하는 데 몇 분이 채 걸리지도 않았다.

“그나저나 형님들은 계속 여기에 사셔도 괜찮으세요?”

“그게 무슨 소리냐?”

“길에서 들은 소문인데요, 아무래도 정부가 이 산을 점거해서 전략 거점으로 삼을 생각인 모양이에요.”

“뭐시라고?”

와장창!

“방금 뭐라 했어?”

“에그머니나!”

엄청난 기세로 부엌에서 뛰쳐나온 강철남.

냥고는 털을 곤두세우며 발라당 뒤집어진다.

“이 산을 뭔데 지들이 꿰차겠다는 거야.”

“저, 저도 들은 바를 말씀드리는 것뿐이라… 지금은 전시 상황이라 모든 토지는 국가 소유가 된다고 해요.”

“이 새끼들이.”

“정부도 몬스터에 대항하려고 그러는 것이니 양보를 하시는 게…….”

냥고는 정부의 입장에서 생각해 말을 꺼냈다.

그러나 강철남에게 이 산은 유일한 안식처,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사람에 속고 인생에 배신당한 50년 인생.

상처받은 한 인간을 아무런 조건 없이 품어 준 것이 바로 이 대한산이다.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그건 알 바 아니다.

“나는 여기에 눌러산다. 꼬우면 덤비던가.”

강철남은 솥에 곰 발바닥을 던져 넣으며 말했다.

멍구도 동의하는 듯 꼬리를 치켜들었다.

냥고는 이게 무슨 미친놈들인가 싶었지만 왠지 이 녀석들이라면 정부도 뒤엎어 버릴 것 같은 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곰 스테이크를 구워 볼까?”

강철남은 마당에 기름칠 된 큰 솥뚜껑을 놓고 불을 지폈다.

금세 달궈진 솥뚜껑은 이글이글 달아올랐다.

“간다.”

치이이익—

곰의 두툼하고 붉은 안심살이 기름 위에서 춤추는 소리를 내며 갈변한다.

고소하고 달달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연기는 고기 기름을 싣고 멍구와 냥고의 콧속을 파고들었다.

“하, 도저히 못 참겠네.”

“이건 고문이에요.”

이미 그들의 앞발에는 커다란 침 웅덩이가 고였다.

강철남은 집게로 말랑말랑한 고기를 집어 뒤집는다.

추아아악—

“소리 죽인다.”

지방을 도려낸 살코기 부분이 보기 좋게 익었다.

칼을 들어 잘라 보니 미디엄 레어로 잘 굽혔다.

“꿀꺽, 먹자.”

“핱핱핱핱!”

“냐아아앙!”

흥분한 두 마리의 짐승을 위해 그냥 구운 큼직한 고깃덩어리를 나눠 주고 강철남은 소금과 후추로 간 한 스테이크를 구워 먹는다.

“키야! 이게 인생이지!”

강철남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멍구도 냥고도 세상의 참 기쁨을 만끽하며 고기를 뜯는다.

“하아, 정말 잘 먹었어요.”

완전히 벌러덩 드러누운 냥고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다 먹고 나서 생각이 난 건데 정부에 맞서는 것 말인데요,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잘 먹고 잘 자는 거.”

참 단순한 대답이었다.

대체 어떻게 살아온 걸까 이 인간과 이 댕댕이는.

“혹시 두 분은 레벨이 어떻게 되시나요? 아 참, 확인해 본 적이 없겠구나.”

강철남은 푹 고아낸 곰 발바닥을 가져왔다.

멍구가 대신 입을 열었다.

“나는 볼 수 있다.”

“에엑?! 멍구 형님, 상태창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신 건가요?”

“그런 걸 상태창이라 하나? 아무튼 그걸 볼 수 있어.”

“꿀꺽, 그럼 철남 형님의 스테이터스는 어떻게 되나요?”

멍구는 강철남을 돌아보았다.

강철남이 곰 발바닥을 한 입 크게 뜯어먹자 푸른빛이 그를 감쌌다.

집중을 하자 그의 모습 옆에 떠오르는 상태창이 보였다.

[강철남

레벨: 55

힘: SS

맷집: SS

속도: SS]

“이렇게 나오는데.”

“에에엑!!”

“아이구, 귀야!”

냥고가 소리를 꽥 지르자 깜짝 놀란 멍구가 냥고의 머리를 앞발로 탁 쳤다.

* * *

철그덕— 철그덕—

이른 아침, 대한산을 오르는 무리가 있다.

헌터 연합 경북 지구.

이 대한산을 거점으로 삼기 위해 출전했다.

“이곳이 대한산. 스산한 기운이 가득하군. 강한 몬스터들이 득실댈 것이다. 이곳을 점거해 고레벨 수련장으로 만든다면 수준 높은 헌터들을 육성할 수 있을 것이다.”

연합을 이끄는 리더 백진섭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열 명의 정예 헌터들의 눈에 결의가 가득하다.

“대장님, 이런 고인물 던전을 고작 열 명으로 점거가 가능할까요……?”

한 헌터가 조금 불안한 듯 말을 꺼냈다.

하지만 백진섭은 전혀 동요조차 없이 답했다.

“걱정 마라. 너희들은 모두 레벨 5의 정예 헌터. 게다가 서울 헌터 연합에서 특별히 지원을 나온 헌터가 있다.”

그러자 저벅 한 걸음 앞으로 나오는 헌터.

“무려 레벨 12의 현존 세계 최강의 헌터, 김성남!”

어느새 기네스 기록은 레벨 7에서 레벨 12로 바뀌어 있었다.

그 짧은 시간 내에 이만한 레벨을 달성한 김성남은 자타공인 천재 헌터인 것이다.

“우오오오!”

“가즈아!”

그의 존재로 인해 헌터 연합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가자! 대한산을 정복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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