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으악, 개가 말을 한다!
* * *
방송국에 나온 사람들을 쫓아낸 강철남은 PD와 나눴던 대화 때문에 문득 산에 들어오기 전 과거가 떠올랐다.
호기롭게 시작했던 사업에 실패했던 젊은 날.
돈이 떨어지자 정도 떨어졌는지 아내가 이혼을 선언했다.
“당신은 돈 때문에 나랑 결혼했니?”
“그럼, 잘난 내가 왜 땅딸보 탈모남이랑 결혼했겠어?”
“차라리 시간을 갖는 건 어때?”
“그럴 필요 없어.”
“…혹시 남자 생겼니……?”
강철남은 사람에 대한 순정과 믿음을 잃었다.
아내는 그가 재기하기 위해 최소로 필요한 돈마저 위자료니 뭐니 하며 이것저것 뜯어 갔다.
아이가 있었더라면 더 뜯겼을 것이다.
딩크족으로 살아온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실의에 빠져 장날 도박판을 전전하다가 우연히 개 시장에서 보게 된 멍구를 구조해 왔고 그렇게 그 둘은 가족이 되었다.
빚을 전부 갚게 된 날, 더 이상 도시에 미련은 없었다.
“멍구야, 나랑 산에 들어가서 살래?”
“멍!”
강철남의 산중 생활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 * *
정체불명의 약초를 먹고 20대로 젊어진 강철남.
푹 자고 일어나니 어쩐지 기름진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
산중 생활 전 신장암을 앓게 되며 기름진 건 생각만 해도 속이 부대꼈건만.
“컹컹!”
“멍구야. 너도 고기가 먹고 싶니?”
“컹컹컹!”
“그래, 이놈아. 고기 잡으러 가자.”
창고에서 활과 화살을 챙겨 길을 나선다.
허리를 숙였다 펴는데도 전혀 뻐근함이 없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반백 년 삶이 그리 길지만은 않거늘 살다 살다 이런 일을 다 겪다니 참.
“멍구야, 혹시 우리가 환각제를 먹은 건 아닐까?”
“머엉?”
멍구도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고질병으로 앓던 슬개골 탈구가 싹 씻은 듯 나았기 때문이다.
막혀 있던 한쪽 코도 뻥 뚫려 이전보다 멀리 있는 들짐승의 냄새도 곧잘 맡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한낱 개꿈이라 하더라도 잠시나마 이 환상에 취하고 싶었다.
“그르르.”
“왜 그러니? 혹시 저기 뭐가 있는 거냐?”
“멍.”
그렇다는 듯 작게 대답하는 멍구.
강철남은 활에 화살을 먹이고 자세를 낮추었다.
한참을 달렸을까 멍구가 허리를 낮추고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멍구가 멈춰 선 곳에서 정면을 바라보니 장끼 한 마리가 바닥을 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니, 멍구야. 이렇게 멀리 있는 꿩의 냄새를 맡은 거니?”
“멍.”
“하긴 나도 저렇게 멀리 있는 녀석의 깃털 하나하나가 세세하게 보이는구나. 그늘이 진 데다 거의 100m는 떨어져 있는데 말이다.”
8월 한여름의 산길을 달려도 숨 하나 차지 않았다.
이 기묘한 회춘이 점점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우선 저놈을 잡아 보자꾸나.”
강철남은 살을 먹여 둔 활을 들어 시위를 쭈욱 당겼다.
조금만 힘을 줘도 활시위가 팽팽하게 늘어났다.
“후아…….”
호흡을 가다듬고 선명히 보이는 장끼의 몸통을 향해 활을 쏘았다.
핑, 소리를 내며 빠르게 날아간 화살은 그대로 장끼의 몸을 관통하고 나무에 박혔다.
“잡았다!”
“컹!”
숨죽이고 있던 멍구는 기쁨의 춤을 추었다.
둘은 장끼가 쓰러진 곳으로 달렸다.
달리고 또 달리는데.
제법 멀다.
“생각보다 멀리 있었나 보구나. 제법 가까이 있는 줄 알았는데.”
“머엉.”
장끼가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보이는 거리.
그 정도면 100m 정도밖에 안 될 텐데 한 200m는 달려온 것 같다.
얼마를 달렸을까.
드디어 장끼가 쓰러진 곳에 다다랐다.
그런데 뭐랄까.
“이게 대체…….”
사이즈가 어마어마했다.
회춘하여 이제는 키가 180이 넘는 강철남의 키만 했다.
“아니, 세상에. 멍구야. 이게 장끼냐, 봉황이냐.”
“컹컹!”
멍구 역시 눈을 의심하듯 짖어 댄다.
“꿀꺽. 산에서 나는 것치곤 나쁜 건 없는 법이지.”
강철남은 장끼를 한쪽 어깨에 짊어지고 일어섰다.
무게가 한 60kg는 되는 것 같다.
그런데도 강철남의 허리는 부담이 느껴지기는커녕 퍽 가볍게 느껴졌다.
“어제부터 이 산에 신령님이 장난을 부리시는지 요사스러운 일들만 일어나는구나.”
“멍멍.”
이제는 돌아가는 길마저 긴장감이 감돈다.
구미호라도 튀어나와도 이상할 게 없는 전개다.
그때,
탁—
“아앗!”
잘 걸어가던 강철남의 발에 뭔가 묵직한 게 걸려 넘어지고 만다.
칡뿌리인가?
그렇다기엔 뭔가 물컹했다.
…물컹했다고?
“세상에, 씨X럴 뭐야 이게!”
발 쪽을 내려다본 강철남은 혼비백산했다.
산에 살면서 살모사나 독사는 흔히 봐 왔다.
그러나 몸통 굵기가 전봇대만 한 독사는 본 적이 없었다.
영화에 나오는 괴물 아나콘다도 이 정도로 터무니없이 크지는 않았다.
이건 마치 이무기의 현신이라 해도 믿을 정도다.
“크르르릉!”
“멍구야, 이리 오너라!”
잔뜩 경계하는 멍구와 꼭 붙은 강철남.
이 괴물 뱀이 어떻게 움직일까 잔뜩 긴장하고 있다.
그런데 어째선지 이 거대한 뱀은 꼼짝도 않고 있다.
“뭔가 이상한데.”
“머엉.”
마치 만리장성을 따라 걷듯 뱀의 몸뚱이를 따라 한참을 걸었을 때 마침내 뱀의 머리가 보였다.
자기 키만 한 뱀 대가리를 보자 흠칫했지만 뱀은 이미 죽어 있었다.
“대체 이 거대한 뱀은 뭐고 이 뱀을 죽인 녀석은 누굴까?”
강철남은 자기 앞마당 같은 대한산이 점점 정체불명의 던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멍구야.”
“멍!”
“이럴 때일수록 몸보신을 잘해야 한단다.”
“머엉?”
강철남은 사냥용 나이프를 꺼내 들어 뱀의 머리로 다가갔다.
이 정도 크기면 도끼로 하루 종일 내려쳐야 될 텐데 싶었다.
하지만,
썽둥!
고작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나이프를 휘둘렀는데, 뱀의 머리는 몸과 단숨에 분리되었다.
“세상에, 무슨 두부 자르는 느낌으로.”
“켁켁!”
멍구는 그 광경에 너무 놀라 사레가 들려 켈록켈록 댔다.
“영차.”
“머…머멍…….”
멍구가 설마 그거 먹게? 라는 눈빛을 보낸다.
“산에서 나는 것치고 몸에 나쁜 건 없단다.”
“컹…….”
물론 근거 없는 소리라는 걸 개인 멍구도 잘 알았다.
하지만 개 목숨 아낄 게 뭐가 있겠나 싶어 동의하는 멍구였다.
* * *
팔팔팔—
강철남은 끓는 솥에 거대 뱀 머리를 고아 둔 채 한숨 자고 일어났다.
부엌을 넘어 온 집안에 그득한 비릿한 냄새에 잠이 확 달아났다.
“어디 보자, 잘 익은 것 같구나.”
강철남은 뱀 대가리를 양푼에 옮겨 담고 국자로 기름이 둥둥 뜬 국물을 퍼 담았다.
뱀 대가리를 쪽 찢어 멍구의 밥그릇에도 공평하게 나눠 주지만 어쩐지 멍구의 표정이 좋지 않다.
“멍구야, 산에서 나는 것치곤…….”
“멍!”
멍구가 먹을 테니 그 소리 좀 그만하라는 듯 크게 짖었다.
아무리 자기가 개라도 뱀 대가리 비주얼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냠냠. 생각보다 담백하네.”
그런 멍구와 다르게 강철남은 거리낌 없이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래, 개 목숨이 별건가.
반려 인간과 함께 죽어 묻히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견생이지.
“와구와구.”
“아이구, 이쁘다. 우리 멍구 잘 먹는다.”
강철남과 마찬가지로 젊어진 멍구는 기름진 고깃국을 잘도 먹었다.
반찬으로 사냥한 꿩을 튀기기로 했다.
튀김 가루를 입혀 콩기름에 바싹 튀긴 꿩 튀김을 소금에 살살 찍어 입에 넣으니 육즙이 팍 터진다.
“맛 좋다! 이게 인생이지.”
“멍멍.”
튀김을 먹어도 속이 부대끼거나 하지 않는다.
젊어진 육체의 즐거움은 먹는 행복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밤 강철남과 멍구는 죽은 듯 잠을 잤다.
깊은 수면 상태에 들어간 그들의 몸속에서는 새로운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몸에 일어난 변화의 기운은 대한산에 널리 퍼져 나갔다.
그 기운으로 인해 갑자기 나타난 거대 뱀과 같은 괴물들은 공포에 떨었다.
그날 밤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었다.
* * *
아침이 밝자 강철남은 텃밭에 소변을 보았다.
“세상에, 땅에 구멍이 뚫리겠군.”
덜 잠근 수도꼭지 같던 오줌발이 미국에서 개발한 레이저건 같은 위력으로 뻗어 나갔다.
강철남의 소변은 밭에 골고루 뿌려져 뿌리에 스며들었다.
뽀드득— 뽀드득—
사람의 귀로는 들을 수 없지만 밭 아래 뿌리들은 소변을 마시고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방울토마토, 상추, 감자, 대파 등 사소한 반찬거리들의 유전자 구조가 달라지고 있음을 정작 강철남은 모르고 시원스레 소변을 쏘아 댔다.
“컹컹!”
“멍구야, 잘 잤니? 어이구 녀석. 더 튼튼해진 것 같구나.”
기분 탓이 아니라 멍구는 달라져 있었다.
외적으로 털이 풍성해졌고 근육이 더 붙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머엉.”
눈이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새로운 눈을 얻은 것이다.
멍구가 바라보는 강철남의 모습 옆에는 이런 창이 떠오른다.
[강철남
레벨: 35
힘: S
맷집: S
속도: S]
이 수치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멍구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강철남이 달라졌다는 것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자, 그럼 슬슬 점심거리 준비를 해 볼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화로운 하루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비명이 아니었더라면.
“사, 살려 줘!!”
산 아래에서 넋이 나간 듯한 절규가 들려왔다.
“이거 그때 그 PD 양반 아닌가?”
문득 그렇게 내뱉은 강철남은 스스로도 놀랐다.
어떻게 그걸 알아챈 걸까.
모습은 보이지도 않고 메아리가 부딪쳐 목소리에 색깔도 없었다.
그저 감각이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우와악!!”
발 구르는 소리가 두 개.
두 사람이다.
그렇다면 PD와 카메라맨인가.
강철남은 산을 내려갔다.
마치 땅을 접어 달리는 축지법처럼 짧은 보폭에도 주변의 풍경들이 빠르게 넘어갔다.
그 뒤를 재빠른 속도로 멍구가 따른다.
그때 갑자기 뿌연 안개가 그들을 에워쌌다.
“뭐지, 이 안개는.”
이것이 어느 수준 높은 몬스터의 술법이라는 것을 강철남이 알 리가 없다.
안개를 뿜어낸 몬스터의 정체가 바로 구렁이를 한 방에 죽인 이 대한산의 최강자인 것이다.
녀석은 갑자기 거대해진 강철남의 기운을 느끼고 그를 씹어 삼키기 위해 움직였다.
이 대한산 최강 몬스터의 간계는 강철남이 안개에 들어온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여보.”
“뭐?”
강철남은 눈을 의심했다.
이혼한 아내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대체 왜?
그리고 어째서 지금 타이밍에.
여기에 있을 리 없는 전처의 모습이다.
혼란에 빠진 강철남.
그 아내로 보이는 것이 몬스터가 강철남의 기억을 일부 마시고 둔갑한 것이라곤 꿈에도 모를 것이다.
“나, 당신이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어요. 우리 다시 시작…….”
퍼억!
“쿠엑!”
강철남의 갑작스런 공격에 아내의 모습을 한 몬스터는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물론 강철남이 몬스터의 정체를 간파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진심으로 아내라고 생각했다.
“이 썅년이!”
몬스터 따위가 강철남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자기를 배신한 전처를 보자마자 머리가 돌아 버린 강철남은 불꽃 같은 싸다구를 날려 버린다.
바닥에 쓰러진 몬스터는 당황했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개수작을 부려 본다.
“여, 여보! 갑자기 왜 이래요?! 저예요! 저!”
“그래, 이년아. 왜? 네 남친도 돈 떨어졌디?”
“쿠엑!”
사나이 강철남.
이 신선한 대한산에 부정한 기운을 몰고 오는 존재는 용서할 수 없다.
그대로 암바를 걸어 버린다.
“사, 사람 살려!”
“네가 사람이냐?!”
짐승만도 못한 년.
강철남은 그런 의미로 말했다.
하지만 몬스터는 자기 정체가 탄로 난 줄로 알았다.
“어떻게 안 것이냐, 인간?”
몬스터가 변신을 풀고 본래의 모습인 거대한 지네로 돌아갔다.
“이건 또 뭐야?”
방금 전까지 전처의 팔을 잡고 있었는데 지금은 웬 지네 다리를 움켜쥐고 있다.
“내 변신을 알아채다니, 역시 대단한 인간이군.”
“무슨 개소리야. 넌 뭔데?”
“이렇게 된 이상 정면 승부다, 키엑!”
본 모습을 드러낸 지네 몬스터가 턱을 들이대며 달려들었다.
그때,
“커어엉!”
옆에서 날아온 멍구가 지네의 목을 물어뜯어 죽여 버렸다.
“와그작! 와그작!”
“멍구야, 적어도 익혀 먹어야지.”
멍구는 확실히 확인 사살하고자 목을 잘근잘근 씹다가 지네의 피와 살을 삼켜 버렸다.
“멍구야, 맛있니?”
이 와중에 맛이 또 궁금한 강철남.
그런데 고개를 돌리고 퉤퉤 침을 뱉는 멍구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X나 맛없네, 철남이.”
“…….”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