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젊어지는 약초
이곳은 경상북도에 위치한 대한산.
햇볕이 불타는 8월.
황기태 PD가 취재차 이곳을 방문했다.
자연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는 ‘나는 자연사람이다’의 PD답게 산을 거침없이 오른다.
“야, 빨리 안 올라와? 이러다 해 지겠다!”
“헉, 헉. PD님이 너무 빠른 거예요.”
무거운 촬영용 카메라를 짊어 멘 채 겨우겨우 따라오는 카메라맨.
열정적인 PD를 따라다닌다는 건 무척 고된 일이다.
게다가 요즘 ‘나는 자연 사람이다’의 시청률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으니 황기태 PD의 아드레날린이 넘치는 게 당연하지.
“무거우면 내가 들까? 줘 봐.”
“됐어요, 그러다 떨어뜨리면 촬영이고 뭐고 말짱 도루묵이잖아요.”
“이놈 봐라. 그래도 명색이 방송 PD가 카메라 하나 안 들어 봤을까 봐?”
“그럼 들어 주실래요?”
“아니, 그냥 빈말이었어.”
“아 진짜!”
티격태격하면서 두 사람은 험준한 대한산을 오른다.
황기태 PD는 산길이 험할수록 기뻐했다.
산이 험하다는 것은 사람의 손때가 덜 탔다는 뜻이고 그런 산에 칩거해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분명 신기한 약초나 여지껏 처음 보는 버섯을 따 먹으며 살아갈 것이다.
또 벌집을 키운다거나 아침마다 냇물에서 소리를 뽑아내며 냉수마찰을 즐길지도 모른다.
여러모로 신선한 기행으로 시청률을 올려 줄 것이다.
“자, 힘내자고. 원래 험한 길일수록 정상이 아름다운 법이야.”
“정상까지 가기도 전에 죽을 것 같은데요.”
“앓는 소리 하지 말고, 파이팅!”
“하이딩.”
카메라맨은 맥 빠진 소리로 파이팅을 외친다.
시청률 따위는 관심도 없다.
방송이 대박 터진다고 자기한테 콩고물이라도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는 그저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간절할 뿐이다.
열정이 다소 과한 황기태 PD와 그 열정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카메라맨이 대한산의 중턱쯤 올랐을 때였다.
“멍! 멍멍! 멍멍멍!”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황기태 PD는 찾았다는 미소를 지으며 소리가 난 쪽을 향해 달렸다.
카메라맨은 한숨을 길게 쉬고 어쩔 수 없이 잰걸음으로 뒤를 쫓았다.
“찾았다! 딱 봐도 여기네.”
“헤엑! 헤에엑!”
두 사람은 옛날 공포 드라마 전설의 귀향에나 나올 법한 초가집을 발견했다.
한여름에 배를 까고 드러눕기 좋은 마루.
창호지를 바른 문풍지며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
열린 부엌문으로 보이는 아궁이.
한눈에 들어오는 정경이 목가적 그 자체였다.
“이건 문화유산으로 보존해야 할 정도인데.”
“그러게요, 마치 사극 세트장 같군요.”
감탄하는 둘이 멍하니 서 있는 동안 그들을 이곳으로 이끌었던 소리의 주인이 달려든다.
“멍! 멍멍멍!”
하얀 털을 가진 늙은 시고르자브종 한 마리가 호들갑을 떨면서 둘을 향해 마구 짖어 댄다.
마치 너희는 누구냐, 얼른 나가라, 라고 외치는 것 같다.
“안녕 백구야. 아저씨들은 나쁜 사람이 아니란다.”
“그럼 멍멍아. 나는 아저씨가 아니란다.”
“이 자식이 꼬투리를 잡고 있어.”
그럼에도 개는 경계를 풀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입질을 할 듯이 흥분해 날뛰고 있는 그때,
“이놈 멍구야! 왜 이리 소란스럽냐.”
웬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초가집 뒤편에서 들려왔다.
“또 들짐승 냄새를 맡았나, 대낮부터 지랄이구나.”
묵직한 작업화 소리를 저벅저벅 울리며 초가집 모퉁이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손에 정체불명의 약초를 들고 있는 그는 척 봐도 자연 사람 같았다.
탈모로 얼마 안 남은 머리숱.
170이 살짝 안 되어 보이는 왜소한 체구.
눈썹도 흐릿하고 눈빛도 유순해 보였다.
남자가 나타나자 멍구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남자의 다리 뒤에 몸을 숨긴다.
그제야 황기태 PD와 카메라맨을 발견한 남자가 경계의 눈초리로 둘을 노려본다.
“누구요?”
“앗, 안녕하십니까! 저는 ‘나는 자연 사람이다’라는 TV 프로그램 PD 황기태라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해당 방송의 카메라맨입니다.”
둘은 고개를 푹 숙여 정중히 인사했다.
캐스팅에 앞서 첫인상은 중요하다.
계약을 따내기 위한 영업 사원과도 같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
“강철남이요.”
“저는 올해로 36입니다. 실례지만 연세를 여쭤봐도 될까요?”
먼저 출연자의 이름과 나이를 알아야 한다.
‘나는 자연 사람이다’의 주요 시청자층은 40대부터 60대.
출연자가 그 나이대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시청자들에게 대리 만족과 공감을 일으켜 줄 것이기 때문이다.
“52살이오만.”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딱 좋은 나이였다.
자연 사람 중에는 젊은 축에 속하긴 했지만 시청자 연령대와 겹친다.
“여긴 무슨 일로 왔소?”
“네, 저희 프로그램은…….”
황기태 PD는 방송에 관해 설명했다.
도심을 떠나 자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담고 싶다고.
직접 나물을 캐고 약초를 캐고 추위와 더위를 지혜로 이겨 내는,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삶을 간접 체험하게끔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했다.
산속으로 들어오게 된 사연과 깊은 휴먼 스토리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란 감성을 자극하는 멘트도 덧붙였다.
“아.”
“아?”
강철남은 황기태의 말을 듣고 아, 라는 한 마디만을 내뱉을 뿐이었다.
“저, 선생님?”
“나가쇼.”
“네?”
“나가시라고.”
강철남은 마루에 걸터앉아 곰방대에 불을 붙였다.
요즘 시대에 곰방대라니.
이제껏 이런 자연 사람은 없었다.
자연 사람이라 하더라도 읍내에 내려가 슈퍼에서 담배 정도는 사서 피웠다.
그런데 직접 담뱃잎을 만들어 피우다니.
게다가 조선 시대 풍경화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초가집 마루에서 곰방대를 물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그림이 나왔다.
무조건 잡아야 한다.
“선생님, 저희가 사은품과 출연료도 지급해 드리고 있습니다. 제 권한으로 책임지고 추가적인 사례를…….”
“다 필요 없으니 그만 가쇼.”
“어떻게 해야 촬영에 협조를 받을 수 있을까요?”
“협조 못 해요.”
“어째서인가요?!”
황기태가 꿋꿋이 버티고 안 나가려 하자 강철중은 연기를 길게 뿜으며 소리쳤다.
“귀찮으니까!”
“예?”
순간 황기태는 멍해졌다.
“내가 뭣 하러 이 산속까지 숨어들어 온 거 같소?”
“그야 자연을 벗 삼아…….”
“고전 시가 문제집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군.”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세상살이에 회의를 느끼셨나요?”
“뭐 회의? 무슨 말을 그렇게 어렵게 하쇼. 그냥 다 귀찮아서 그렇소.”
황기태는 할 말을 잃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개인 사정으로 미디어에 얼굴 노출을 꺼리는 경우.
방송사에 대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
심지어는 보상이 너무 적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경우.
사정이 다양했다.
그때마다 황기태가 모두 잘 구슬려서 촬영을 마쳤기에 지금의 방송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귀찮아서 싫다는 사람은 어떻게 꼬드겨야 할까.
“이보쇼 PD 양반.”
“네?”
“지금 어떻게 날 꼬드길까 생각하고 있죠?”
“드, 들켰나요. 하하.”
황기태는 사람 좋은 웃음으로 무마하려 해 본다.
“나는 사업에 실패하고 이혼을 했소. 자식들도 없고 말이오. 나는 그저 시간이라는 바다를 떠돌아다니는 부표가 된 거요. 앞으로 바라는 건 파도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다 곱게 가는 거요.”
강철남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황기태의 머리에 전구가 반짝하고 떠올랐다.
이혼이라는 말에 필이 꽂힌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는 키워드는 이혼율이 아니던가.
중년 남성의 이혼 스토리를 담으면 시청률은 물론이고 너튜브 채널 조회 수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 선생님의 사연을 방송에 실어 보내면 대박이 날 겁니다. 요즘엔 이혼 스토리가 대세입니다. 너튜브라고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가 있는데 이곳으로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결혼 생활과 사업 실패 이야기로 수익이 발생하면 종종 사례를 드리러 오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황기태는 자연 사람도 결국 사람이라 돈을 싫어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꺼낸 카드가 바로 돈으로 유혹하기였다.
하지만 완전히 판을 깨뜨리는 화법이었다.
“멍구야.”
“멍!”
“전투 준비.”
“멍! 멍!”
강철남은 삽을 들었다.
멍구는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댔다.
“저… 선생님?”
“PD님 X 된 거 같은데요?”
“꺼져, 씨불롬들아!”
“멍멍멍멍멍!!”
삽을 높게 쳐든 강철남의 광기 어린 눈빛에 황기태와 카메라맨은 달음박질치며 산에서 내려갔다.
다시금 초가집에 정적이 찾아왔다.
“하마터면 귀찮아질 뻔했구나.”
“멍멍!”
“집 뒤에 웬 처음 보는 약초가 자랐던데 오늘은 이거나 푹 달여 먹자꾸나.”
강철남은 솥에 물을 붓고 아궁이에 불을 땠다.
산에서 흐르는 물에 약초를 살살 문질러 흙을 씻어 낸다.
물이 팔팔 끓자 손질해 둔 정체불명의 약초를 담갔다.
“끼잉.”
“왜? 걱정되니? 괜찮아. 끓는 물에 담그면 다 소독된단다.”
물론 근거 없는 소리다.
강철남은 그저 산에서 나는 거라면 빠꾸 없이 입에 들이박고 보는 성격일 뿐이다.
두 시간 정도 푹 달여서 약물을 퍼내고 약초는 반으로 잘라 멍구의 밥그릇에 절반을 덜어 주었다.
“산에서 자라는 건 모두 약이란다.”
“멍!”
강철남과 멍구는 약물과 약초를 먹고 그날 밤 꿀 같은 잠이 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강철남은 묘하게 가벼워진 몸으로 일어나서 문을 열고 아침 인사를 건네 본다.
“잘 잤냐, 멍구야?”
“커엉!”
커엉?
멍구의 짖는 소리가 이상했다.
아니, 이상했다기보다는 달라졌다고 해야 하나.
처음에는 호랑이라도 내려와 멍구인 척 연기를 하나 싶었다.
“멍구야?”
“커엉!”
놀란 마음에 마루로 상체를 뻗어 개집을 확인해 본다.
그곳에는 웬 커다란 늑대만 한 짐승이 듬직한 꼬리를 세우고 서 있었다.
보자마자 고놈 참 잘생겼다는 말이 나올 만큼 핸섬한 눈빛과 잘 뻗은 주둥이.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은빛 털.
사람 장딴지만 한 튼실한 네 다리.
“멍구야, 너 멍구 맞니?”
그러는 멍구도 강철남을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
마치 목소리는 철남인데 얼굴을 왜 다르냐는 의심이다.
결국 가까이 다가와 냄새를 킁킁 맡아 본다.
“컹컹!”
그러고는 꼬리를 흔들며 폴짝폴짝 뛴다.
반갑다는 뜻이다.
“일단 진정 좀 해 보자.”
멍구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는 순간,
이게 뭐지?
손에 주름이 하나도 없다.
지금 꿈을 꾸고 있나?
그럴 리가 없다.
자기 손을 핥는 멍구의 촉촉하고 따뜻한 혀가 느껴지니까.
“거울, 거울이 어딨더라.”
강철남은 창고에 짱박아 둔 거울을 찾으러 벌떡 일어났다.
그때,
쿵!
“으아악!”
문 천장에 머리를 찧었다.
이상하다. 분명히 자기 키로는 닿을 리가 없는데.
족히 키가 180은 넘어야 닿는 곳이다.
그러고 보니 일어서서 본 바깥 풍경이 달라 보인다.
마치 낮아진 것 같은…….
“거, 거울이!”
그는 창고로 뛰어 들어가 어딘가 짱박아 둔 거울을 찾기 시작했다.
한참을 찾다가 마침내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드러난 거울.
“켈록, 켈록.”
하얀 먼지가 서서히 걷히자 거울 속에서 강철남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답이 없던 탈모인이었던 강철남의 뚜껑을 덮은 풍성한 머리숱.
낫처럼 오뚝한 코.
화장품 모델같이 탱탱한 피부.
촉촉해진 분홍빛 입술.
눈썹은 짙고 눈빛은 잘 다듬은 창끝처럼 예리했다.
“이게 내 얼굴이라고?”
강철남은 놀라서 거울을 떨어뜨렸다.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진 거울 앞에 강철남이 털썩 주저앉는다.
그는 20대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