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인생 최고의 캐스팅-105화 (104/105)

105. WILL YOU...?

105

선유가 캐스팅 된 헐리우드 영화는 미국 박스오피스 2위를 달리고 있었다. 2주 뒤 한국에서 개봉할 예정이었고, 그 일로 선유의 위상이 달라짐은 물론이요, 새삼스레 그의 필모그래피가 재조명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배우가 해외에 나가서 단시간 내에 영화 흥행에 한 몫을 한 셈이었고, 유례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따라 소민의 어깨도 덩달아 으쓱해졌던 것이다.

선유가 메인으로 등장하는 포스터를 소민이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포스터는 작은 게 아니라 영화관 입구에 걸리는 전지만한 포스터였는데 소민이 영화관에 사정사정해서 얻어온 것이었다.

“흠, 내 남자. 멋있네. 멋있어.”

소민이 침대에 앉아 포스터를 보며 그렇게 혼잣말을 할 때였다.

“야!!! 너 이거 봤냐!!!”

민규가 노크도 없이 그녀의 방에 뛰어 들어왔다.

“야, 이게 노크도 안 하고.”

“노크할 시간이 어딨어!! 너 이거 봤냐고!!”

“뭔데?”

소민이 민규가 들고온 노트북을 받아 들었고, 민규가 재생한 영상을 보고는 입을 떡 벌렸다.

[미스터 한, 이 영화를 통해 거의 단숨에 일약 스타가 됐는데 일단 축하드린다는 말씀을 드리죠.]

[감사합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우리는 몰랐지만 한국에서도 꽤 유명했다고 하던데 왜 굳이 모험을 했죠?]

[음... 꿈이었으니까요]

[아하! 헐리우드 진출이 모든 배우의 꿈이긴 하죠.]

[아, 아니요. 제 꿈은 헐리우드 진출이 아니었어요.]

[에이~ 거짓말 마요. 솔직하게 굴어요. 그게 더 귀엽다구요.]

[솔직하게 정말 아니에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는 헐리우드 진출보다는 내 여자한테 혹시 껄떡댈지 모를 남자들한테 그 여자 임자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게 꿈이거든요.]

[음... 근데 그럼 왜 헐리우드에 왔죠? 그냥 반지 끼우면 끝나는 일 아닌가요?]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아요. 너무 예쁜 여자고 매력이 넘치는 여자라서 반지보다 빛날 게 분명하거든요. 그럼 사람들은 그 여자 손에 반지는 안 보고 그 여자만 볼테니까요. 그리고 전세계 사람을 홀리고도 남을 여자라서요.]

[OMG. 그 정도예요? 좋아요. 그럼 저희가 기회를 드리죠. 어디 한 번 선전포고, 해봐요.]

[그럼 실례를 무릅쓰고.]

토크쇼 진행자에게 그렇게 말한 선유가 화면을 보더니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기, 혹시 내 여자한테 껄떡댈지 모를 어떤 남자분께 말합니다. 그 여자, 임자 있어요. 내가 그 여자 인생에 캐스팅된 유일한 남자 주연입니다. 물론, 그 여자도 제 인생에 캐스팅된 유일한 여자 주연이구요. 그러니까 꿈 깨시라고, 다른 여자 찾으시라고 정중히 경고하는 바입니다.]

[워후! 아주 살 떨리네요. 그런데 미스터 한, 하나가 빠졌어요. 그 여자가 누군지를 밝혀야죠.]

[음...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은데요?]

[경고만 하면 뭐해요. 뭐에 대한 경고인지 명확하지 않은데. 온 동네 남자들이 그녀 앞에 줄을 서고 있다고 상상해 봐요. 웩!]

사회자의 말에 선유가 피식 웃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의 이름은 채소민이에요. 칸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한 적도 있는 채종환 감독님의 딸이죠. 음... 혹시 그녀의 얼굴을 아시는 분은 SNS에 좀 올려주세요. 제가 직접 올리면 제 여자한테 꽤나 욕 먹을 것 같아서요.]

유튜브 영상은 거기까지였다. 영상이 끝나고 소민의 정신도 같이 끝나버린 모양이었다.

“야, 너 전세계에 이름 팔렸어. 지금 한선유는 세상 둘도 없는 로맨티스트가 됐고. SNS에 네 얼굴 도배야. 너 어떡하냐?”

민규가 영상을 보고도 정신을 못차리고 멍해 있는 소민을 향해 그렇게 말했지만 소민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머리에는 방금 본 영상, 선유가 미국 토크쇼에서 이야기한 말만이 오버랩에 오버랩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린 소민이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신호음이 채 다 울리기도 전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한선유씨... 이게 지금...”

“어, 봤어?”

“어... 봤어... 요? 아니!! 왜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들어요!!”

“크게 만들어야지. 우주선에도 방송되면 좋겠는데 그건 어렵겠지만, 아무튼 채소민. 온 동네에 아니, 전세계에 지금 트윗되고 있거든. 채소민이 내 여자라고. 증명한 거야.”

“네?”

선유의 말에 그녀는 자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채소민을 사랑한다는 걸 증명하라면서. 한국에만 증명해서 성이 차겠어? 이제 내가 영화 찍고 유명해지면 전세계 돌아다니면서 내가 채소민꺼라고 말하고 다닐 거야.’

“설마...”

“전세계적으로 증명한 건데.”

그 말에 소민이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자랑스럽다는 듯 그렇게 말하는 선유에게 더 이상 따질 수도 없었다. 정말 할 줄은 몰랐는데 해냈다고 기특해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한순간에 유명인이 된 이 상황에 불평을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 래요. 고마워요. 증명.”

“그래서 채소민, 대답은?”

“네?”

“나 프러포즈 한 거잖아. 내 꿈을 이루려면 여주인공이 필요한데, 내 인생에 여주인공으로 캐스팅 돼 주겠느냐고.”

그 말에 소민이 피식 웃었다.

“이렇게 전화로 하는 데가 어디 있어요?”

“누가 그래? 전화로만 한다고? 아, 방송후반부는 못 본 거야? SNS 봐봐. 채소민 이름만 검색해봐도 알 거야.”

그 말에 소민이 인터넷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자 수많은 SNS의 내용이 떴다. 간혹 올라오는 소민의 얼굴 외에 모든 트윗은 한결 같았다.

‘will you marry me?’

“이게...”

“전세계적인 프러포즈를 받는 기분이 어때?”

“이러면... 내가... 뭐라고 답을 해야 하는 거예요? 너무 어마어마해서 이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냥 하겠다고, 내 인생에 출연해 주겠다고만 하면 돼.”

“그래요. 할게요. 한선유씨 인생에 평생 출연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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