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그거 무슨 말이야?
66.
자신과 임지유 사이에 꽃뱀처럼 취급당하는 소민을 볼 때는 그저 안쓰러운 마음 뿐이었는데 겨우 그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이번엔 사실 그게 아니다 하는 정정 기사에 제운이 소민을 좋아한다는 기사가 올라와 버렸다.
덕분에 오는 길 내내 제운의 전화기는 불이 날 듯 전화가 걸려왔고, 선유는 올라오는 기사마다 댓글을 달며 짜증을 냈었다.
“왜 제운쒸한퉤 난뤼야!! 그거 제운쒸가 한 거 아니죠오~ 그쵸오?”
소민의 말에 제운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그런 제운을 모르는 소민은 술김에 쫑알거리고 있었다.
“나 아는데!! 그궈 사장님이 한 거지롱!”
“그... 저희 사장님이 한 일이 맞긴 한데. 사실은 그게 다가 아니거든요.”
고백을 해도 이런 폼도 안 나는 몰골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바에야 빨리 끝내야 했다. 한 번 숨을 크게 들이 쉰 제운이 소민을 쳐다봤다.
“좋아해요.”
그의 대답에 유찬이 씩 웃었고, 선유는 그저 그를 노려봤다. 소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를료?”
“소민씨를요.”
“웨요?”
“네? 그냥 저를 볼 때 웃는 소민씨 모습이 좋아요. 그리고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소민씨 모습도 좋구요. 또 또...”
그의 답에 소민이 머리를 긁었다.
찰랑 거리는 긴 머리가 그녀의 손짓과 함께 난폭하게 왔다갔다했다. 복이 터져도 너무 터진 건지 재수가 지지리 없는 건지는 몰랐지만 소민은 지금 이 상황이 싫었다.
“있좌나요. 지금 눼 기분이 어떤지 아롸요?”
그녀의 말에 세 쌍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어떤데?”
“안 좋은 기부뇨.”
간단명료하지만 술 취한 게 역력하게 느껴지는 기분표현이었다. 덕분에 그녀가 왜 좋은지 고백 중이던 제운은 입을 다물 수밖에.
“안되겠다. 너 술 깬 다음에 얘기하자.”
술에 삼켜져 정신을 못 차리고 힘들어 하는 소민의 앞에서 자신의 치졸한 감정을 내보이기엔 그 모습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차마 뭐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를 달래 재우기라도 하려는 요량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그런데...
“야! 눤? 넌 안 미아눼?”
소민이 선유의 품에 안긴 채로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선유의 콧구멍을 찌를 기세로 삿대질을 해댔다.
“미안하게 생각해. 꽃뱀 취급당하게 한 거.”
선유의 말에 소민이 자신을 안고 있는 선유의 팔을 뿌리치더니 말했다.
“우끼시네! 눼가 언제 그거 물었냐?! 너! 왜! 사람 헤깔뤼게 그뤠! 간 준다더니 왜 안 줘? 간 눼놔!!”
그렇게 말한 소민이 더듬더듬 선유의 상의를 벗겨 올리는 시늉을 하자 당황한 선유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취했어. 일단 술 깨고 얘기하자. 술 깨면 사과를 하든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든 할 테니까.”
“돼써! 이씨! 입술로 도장도 찍고! 나한퉤 키쑤도 해놓고 도망가면서 무슨!!”
술김에 나오는 소민의 말에 유찬은 제운의 눈치를 살폈고, 제운은 헤쓱해진 표정으로 선유를 노려봤다.
“알았어. 미안해. 미안하다. 안 할게. 두 번 다시 안 할테니까.”
“웨?”
자신의 말에 그렇게 묻는 소민을 보며 선유가 반문했다.
“뭐?”
“웨 키쑤 두 번 안 하는데? 내가 잘 못해쒀? 별로야? 느끼미 엄쒀? 그뤠서 그뤠? 여자같지 않아서? 그뤠서 이름도 막 부루고 그르는겅가?”
소민의 말에 선유가 얼굴이 벌개져서는 말했다.
“아니야. 별로 아니라고. 여자도 맞고. 별로도 아니야.”
“그뤵? 그럼 좋와써?”
그 말에 유찬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선유를 바라봤고, 제운은 여전히 선유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선유는 그 가운데서 침묵을 고수했다.
“왜 그뤄는뒈. 시르면 실타고 해! 헤깔리게 그러지 말고! 간도 준다 그르드니 나뿐놈 !”
소민의 말에 심장이 순간 철렁했다.
“그건...”
“아!”
거기까지 말하던 소민이 고개를 들더니 제운과 유찬을 바라봤다.
“고마바요! 낼 봐요! 짤 가요!”
손까지 흔드는 소민의 모습에 유찬이 슬그머니 일어서 제운을 잡아 끌었다. 지금 여기 있어봐야 제운은 심장이 멍투성이가 될 게 분명했고, 그걸 바라진 않았다.
“형님. 소민씨 술 깨는 약이라도 사오죠?”
발을 떼지 못하는 제운을 향해 그렇게 말하자 그제야 제운이 움직였고, 선유는 손을 흔들며 몸도 같이 흔들고 있는 소민을 붙잡았다.
제운과 유찬이 나가고 이미 술에 취해 몸을 못 가누는 소민을 억지로 안아 침대로 데려 가는데 소민의 입에서는 어느 새 흥얼 흥얼 노래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일부러 안 웃는 거 마쬬. 나에게만 차가운 것 마쬬, 아라요, 그뒈 마음을. 내게 빠질까봐 두려운 거죠. 그뒈는 그게 매려귀에요. 관심 없는 듯 한 말투 눈삧. 하지만 그뒈 시숴늘 놔는 안 보고도 느낄 쑤 이쬬. 지브로 들워과는 길윈과요. 그뒈의 어깨가 무거워 보여. 이런 나 당도란가요. 술 한 좐 솨주실래요.”
노래 가사에 피식 웃은 선유가 침대에 누운 그녀의 이마에 얹힌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말했다.
“술은 이미 잔뜩 퍼마시고서 뭘 또 사달래. 그만 먹어.”
“애이니 없따는 것 마쬬. 혹시 숨겨둔 건 아니게쬬. 미둬요, 그뒈의 말을 행여 있따 해도 양보는 시러. 시러시러! 그대는 그게 맘에 들어. 여자 마눌 듯 한 겉모습에 사시른 아무에게나 마음 주지 않는 그런 남자죠. 으흥으흥. 야이야이야이야이. 날 봐요. 우리마음 속이지는 마롸요. 날 기다렸다고 먼저 애기하면 손해라도 보나요. 야이야이야이야이. 말해요. 그뒈 여자 돼 달라고 말해요. 난 이미 오래전 그뒈 여자이고 시퍼쒀요.”
소민이 그렇게 당돌한 여자라는 제목을 가진 트로트 가수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대라는 단어마다 검지 손가락으로 선유를 짚었다.
“술 취했는데 노래는 또 왜 이렇게 잘 불러.”
제 마음을 짚어내는 듯 한 선곡에, 그리고 가사에 그와 그녀를 대입 시키는 그녀의 모습에 선유가 시선을 애써 돌리며 말했다.
“대다비나 하시죠, 그뒈!”
소민의 말에 다시 소민을 내려다 보며 선유가 자신을 향해 있는 소민의 검지 손가락을 엄마 손가락을 잡는 갓난 아기처럼 꼭 쥐었다.
“술김에 유혹하는 건 이해하겠는데 후회할 일 하지 마. 아무 남자한테나 그러지도 말고.”
씁쓰름한 선유의 말에 소민이 그에게 잡힌 손가락을 빼내고는 일어나며 그를 밀었다. 덕분에 선유가 푹신한 침대에 눕게 되자 소민이 날름 그 위로 올라탔다.
그런 소민의 모습에 선유가 신음소리와 함께 눈을 질끈 감았다.
“내려와. 지금 이 상황... 굉장히 위험하니까.”
선유가 그러거나 말거나 만세를 외치는 자세로 소민이 꺄악꺄악 비명을 지르며 말했다.
“야잇! 너랑 있으면 맨날 인생이 롤러코스터다!!”
“그러니까 평지에서 평탄하게 살려면 내려 와. 너한테서 멀어져 줄 테니까.”
“시러.”
선유의 말에 소민이 머리카락이 산발이 되도록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무슨 생각인지 그의 상의를 잡아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상의는 지금 그녀가 깔고 앉은 상태였고, 그녀가 가볍다고는 하나 깔린 티셔츠가 올라갈 리는 만무했다.
“간 준다매? 왜 안 주냐? 주기 싫어서 지금 티셔츠로 꽁꽁 숨겨찌!!”
옷이 생각대로 안 올라가자 짜증을 내며 그녀가 그의 가슴을 그녀의 손 주먹으로 팡팡 두들겼다. 몇 번 그러는 사이 선유가 그녀의 주먹을 잡았고, 주먹이 잡히자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고는 한참을 있었다. 왜 그러나 혹 오바이트라도 하려는 건가 그녀의 기색을 살피려 고개를 들어 소민의 얼굴을 살피려는데 다음 순간 소민이 휙하고 고개를 들었다.
“아! 하긴! 나 간 안 머거. 네 간 너 갖고 내 롤러코스터나 평생해라아~~!”
그렇게 말한 소민이 스르르 고개를 내려 선유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댔다 떼고는 그를 향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입술도장 찍어쓰니까 평생 내 롤러코스터야. 아무나 태우기만 해바라.”
그런 소민의 모습에 선유의 손이 뭐에 홀린 것처럼 그녀의 머리로 향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의 술주정은 이어지고 있었다.
해맑디 해맑은 목소리로 원래부터 그의 간이었던 장기를 자기고 자신의 것인 양 가지라고 하더니 이내 평생 롤러코스터나 되라며 종신 계약을 하는 그녀를 향해 선유가 반문했다.
“그거 무슨 말이야?”
그가 멍하니 그 의미를 묻는 순간, 휙하고 올라갔던 고개는 다시 푹하고 인사하듯이 앞으로 숙여졌고, 작게 쌕쌕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뭐야?”
선유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남의 심장은 널뛰기를 하게 만들어 놓고 태평하게 그의 상반신을 침대 삼아 잠이 든 채소민 때문이었다.
피식 웃은 그가 편하게 자라고 조심조심 그녀를 침대로 내리려다 이내 포기했다. 그가 움직이기만 하면 끙얼거리며 그를 꼭 끌어안는 그녀 때문에, 아니 그런 그녀의 온기가 계속 탐이 나는 자신의 욕심에 기꺼이 항복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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