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인생 최고의 캐스팅-31화 (31/105)

31. 네 말대로 변탠가 보지.

31.

“아니. 정말 변태예요? 스토커 짓을 허가해주는 스타가 대체 어느 나라 스타냐구요? 아니지, 이 지구에는 없는 일일 거야. 혹시 다른 별에서 왔어요? 뭐 슈퍼맨 이런 건가? 크립토나이트 갖고 오면 계약 할래요?”

정말 상상력 하나는 무궁무진한 여자였다. 쯧하고 혀를 한 번 찬 선유가 그녀에게 현실을 상기시켰다.

“이봐, 내가 슈퍼맨이었으면 진즉에 떼돈 벌었겠지. 와이어 없이도 하늘을 날고 슈퍼 액션이 가능하고 레이저눈빛으로 빔도 쐈을 테니까.”

“............. 그럼 대체 무슨 심보로 스토커 짓을 하라 그러냐구요.”

“글쎄... 네 말대로 변탠가 보지.”

“네?”

어처구니 없다는 소리를 내는 소민의 태도에 선유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소민이 그 뒤를 따랐다.

선유가 들어가는 곳에 따라 들어가려는데 먼저 들어간 선유가 문을 닫으며 고개만 내밀고 말했다.

“왜? 나 옷 갈아입는 것도 함께 하시려고? 그러든가.”

“미, 미쳤어요?”

“난 또 따라오길래.”

얄밉게 그렇게 대꾸한 선유가 문을 닫자 또 다시 선유에게 놀림당한 걸 깨달은 소민이 문을 한 번 노려보고는 훽 돌아 촬영장으로 돌아갔다.

“어? 아직 안가셨네요?”

준영이 촬영장에 서 있는 소민을 보더니 다가와서 그렇게 말했고 소민이 부루퉁하니 입술을 내밀고는 말했다.

“네. 한선유씨 스토킹 중이거든요.”

“네?”

“한선유씨가 도망가지 않겠다고 하긴 했는데 영 못 미더워서요.”

“형님이 한 번 말씀하신 걸 어기는 분은 아닌데...”

준영의 말에도 소민은 입술을 한 번 삐죽하고는 중얼거렸다.

“괜찮아요. 한선유씨도 스토킹하라고 허가해 줬으니까요.”

소민의 말에 준영이 뭔가에 맞은 듯 멍하니 소민을 바라봤다. 이 두 사람, 지금 하는 행동이 상당히 묘했다. 준영의 시선이 어느새 다른 의상으로 갈아입고 나온 선유에게 향했다. 선유의 분위기도 오늘 뭔가 묘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자~ 촬영 재개합시다!”

촬영을 재개 하자는 감독의 소리에 자리로 돌아가는 선유의 입에 웃음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 얼굴이 꼭 누구 골탕먹이면서 신난 것 같은 얼굴이었다.

“소민씨가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드나보네.”

그렇게 중얼거린 준영이 소민을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선유는 저 촬영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소민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막느라 고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새어나오는 웃음 탓에 여자 스텝들은 희귀하다는 선유의 웃음을 보며 꺅꺅거리고 있었다. 문제는 화보와는 맞지 않는, 그 어두컴컴한 배경에 대조되게 너무도 싱그러워 보이는 웃음 탓에 촬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런 선유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좇은 감독의 매서운 눈썰미가 소민을 향해 날아들었다.

“거기 아가씨. 일로 좀 와보지?”

자꾸만 웃어 NG를 내는 선유를 노려보며 아까 차 안에서의 장면이 자꾸만 반복되는 자신의 머리를 리셋하느라 골몰한 그녀의 귓가에 감독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릴 리 만무했다.

결국 그녀의 근처에 있던 스텝 중 하나가 그녀의 어깨를 흔들자 그녀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선유가 다시 한 번 허파에 바람을 뺄 기세로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다.

“저기... 감독님이 부르세요.”

“에? 저를요? 왜요?”

“전들 아나요. 감독님께 가보세요.”

스텝 역시 감독의 마음을 알 리 없으니 그렇게만 말할 뿐이었고, 어쩔 수 없이 소민은 주춤주춤 감독 앞으로 다가갔다.

“저... 부르셨나요?”

자신의 앞에 선 그녀의 모습에 감독은 선유와 그녀를 번갈아 쳐다보고는 물었다.

“한선유씨랑 무슨 관계입니까?”

“예?”

뜬금없는 감독의 질문에 소민이 얼이 빠져 그렇게 되물었고, 감독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아가씨가 현장 분위기를 망치고 있는 거 알아요? 아까는 웬 피켓 들고 현장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하더니 지금은 댁 쪽만 쳐다보면서 한선유씨가 웃고 있다구요. 이 분위기 이거 어쩔 겁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감독의 비판에 소민이 허리를 꾸벅 숙여 사과했다. 저 미친 똥개가 웃어대는 이유를 알지는 못했지만 일단 이 이목이 집중되는 자리를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다. 그리고 폴더마냥 계속 허리를 접어 대는 그녀의 그 모습에 선유는 계속해서 웃어댔다. 선유의 그런 모습에 소민은 숙인 고개를 돌려 ‘미쳤어요?’를 읊조렸고 그녀의 입모양을 읽은 선유는 아예 자신의 머리에 대고 손가락으로 원을 빙글빙글 돌려댔다. 선유의 정신나간 행동을 바라보는데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떨어졌다.

“이 분위기 아가씨가 책임져요.”

“예?”

아니 아이를 낳았으니 책임지라는 전개도 아니고 저 미친 똥개가 웃어대는 분위기를 자신더러 어떻게 책임지라는 것인지 소민이 감독을 쳐다봤다.

“아가씨 때문에 촬영이 지연되고 있으니까 현장 일 좀 도우라구요.”

“아니... 제가 뭘...”

“도울 겁니까? 말 겁니까? 아니면 가서 한선유씨 못 웃게 하던가.”

딱 잘라 말하는 감독의 말에 선유의 웃음을 그치게 하기는커녕 그가 대체 왜 웃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그녀는 알겠다고, 돕겠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어떤 결과를 나을지는 꿈에도 모른 채.

“그러게 모르면 나한테 물어보고 할 일이지 왜 덥석 하겠다고 해서...”

“나라고 이런 거 시킬 줄 알았겠어요? 소품이나 옮기라고 할 줄 알았죠.”

선유가 메이크업을 마치고 나와서도 촬영이 딜레이가 되기에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리고 정확히 15분 후, 낯익은 아니, 낯선 피사체가 그를 향해 걸어왔다. 무슨 컨셉인지 짐작은 갔지만 그녀의 모습은 채소민이라는 그녀의 본래 모습은 완전히 지워진 채 진하디 진한 스모키 화장을 한 마녀 인형 같았다.

거기다가 저 뚱한 표정이라니 패왕별희라도 찍는 것 같은 화장에 절로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녀를 보며 자꾸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기려 피식거리는 선유를 향해 다가온 그녀가 일갈했다.

“댁 때문에 이렇게 된 거잖아요. 양심이 있으면 그만 좀 웃어요.”

“싫어. 웃긴데 웃지 말라는 건 무슨 심보지? 그리고 화장은 또 이게 뭐야.”

“자꾸 저 보면서 웃어대니까 감독님이 엉뚱하게 분노의 화살을 저한테 돌린 거 아니에요.”

그녀의 말에 그가 그녀를 쳐다봤다. 지금 이 여자는 감독이 왜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그녀를 여기에 세웠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한 게 분명해 보였다. 감독이 그녀의 모델 못지않은 포스와 자태에 반해 그를 핑계 삼아 그의 화보에 파트너로 무대 위에 올렸다는 것을 굳이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그로서도 통통 튀는 그녀와 촬영을 한다면 지루한 촬영이 조금은 재미가 있을 테니까. 아니 정정하자면 그가 여태껏 찍은 화보 촬영 중 가장 즐거운 촬영이 될 것이라는 것에 그는 전 재산이라도 걸 수 있었다.

“자! 촬영합니다.”

투덜거리다 그 말에 또 다시 빳빳하게 굳는 소민을 향해 선유가 손을 뻗어 어깨동무를 했다.

“왜, 왜이래요.”

“가만히 있어. 이래야 빨리 끝나. 지금 본인이 인간 소품이 된 마당에 빨리 끝이라도 나야 덜 힘들 거 아니야.”

선유의 말에 소민이 차렷 자세로 가만히 섰다. 그의 말대로 지금 그녀는 인간소품 그 자체였다. 그의 상대역이 되어서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된다고 했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에헤이! 울상 지으면 안 되지. 지금 컨셉이 뭔지 몰라요?”

“아니 아니, 아가씨! 좀 더 선유 쪽으로 붙어야지.”

“이봐요! 시선을 어디다 두는 거야. 내리 깔으라고.”

“그쪽은 마녀라고! 냉정하게! 포커페이스 몰라?”

푸대접도 이런 푸대접이 없었다.

반대로 아까까지 웃었던 사람은 어디가고 포즈를 잡으며 자신의 허리를 한 팔로 거뜬하게 휘감은 한선유는 온 몸에서 프로페셔널의 페로몬을 뿜어내고 있었다.

밀착하는 씬에도 어찌나 자유자재인지 아까까지 욕을 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역시 경험이 많은 사람은 다르다고 그녀는 속으로 조용히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아가씨,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시 갑시다?”

프로페셔널 해보였던 그의 평정이 깨진 것은 작가가 그렇게 말한 순간 이었다.

“아가씨, 그쪽, 이봐요 아니고 이름 있는 사람입니다. 적어도 촬영하는 대상의 이름은 정확히 아는 게 예의 아닙니까?”

“뭐요?”

선유의 말에 작가가 벙진 얼굴로 그렇게 되묻자 선유가 손을 허리에 얹더니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이봐, 작가양반, 어이 형씨 이러면 좋으시겠어요?”

실감나게 이봐, 작가양반, 어이 형씨 등의 호칭을 내뱉는 선유를 멍하니 바라보던 소민이 그의 팔을 가만히 잡아 당겼다.

“그만해요, 한선유씨. 제가 잘한 것도 없고, 이름 모르시는 것도 당연한 거예요. 인사가 늦었죠? 죄송해요. 채소민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자기 소개가 늦어서 미안하다고 죄도 없이 사과하는데 가만히 있으실 겁니까? 뭐해요? 사과 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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