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간접키스 그런 거 아니야
30.
“엄지?”
“그래요. 엄지손가락 도장이요.”
“나이가 몇인데 엄지손가락 도장이야.”
“에?”
잘 나가다 삐딱선을 타틑 선유의 말에 소민이 고개를 갸웃했다.
“요새 초딩도 손가락 도장은 안 찍어. 그 정도 장단 맞춰줬으면 이쪽에도 장단 좀 맞춰줘야지.”
“뭔 소리예요?”
“도장. 좋지. 근데 그 도장 말고.”
“그 도장 말고?”
“입술도장으로 하지.”
“뭐, 뭔 도장이요?”
“나이도 아직 젊은데 잘 안 들려? 입술도장으로 하자고.”
선유의 말에 소민이 기가 막혀 입을 딱 벌리고 있을 때였다. 순식간에 선유가 그녀에게 가까워졌다.
“뭐, 뭐하는 거예요.”
“뭐하긴? 도장 찍으려는 거지.”
선유가 다가오는만큼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는 소민을 향해 선유가 다가왔다.
“본인이 먼저 시작하고 동의까지 해놓고 이제와서 발뺌하는 거야? 아, 아니면 도망가란 소린가?”
“무, 무슨 얼토당토 않은 소리예요.”
“그럼 가만히 있어.”
그렇게 말한 선유가 조금 더 가까워졌고 물러날 데로 물러나 더 물러날 곳이 없는 소민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은 탓에 소민은 감촉만으로 선유의 손이 그녀의 손을 이끄는 느낌에 숨을 멈췄다.
그리고 잠시 후, ‘쪽’ 하는 소리가 나고 그녀가 눈을 뜨자 선유의 입술에 닿아있는 자신의 손가락이 보였다. 자신의 손가락에 느껴지는 선유의 입술의 감촉과 반대로 자신의 입술에서 느껴지는 선유의 손가락의 감촉. 이 둘 모두가 너무 생생해서 심장이 손가락 끝에도 입술에도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상태로 씨익 웃은 선유가 그녀의 손을 자신의 입술에서 떼내고는 말했다.
“도장.”
그렇게 말한 그의 손을 자신의 입술에서 떼어낸 소민이 더듬거리며 소리쳤다.
“뭐, 뭐하는 짓이에요.”
“도장 찍었잖아. 입술도장. 응큼하기는.”
“응큼한 게 누군데요!”
“단언컨대 지금 이 상황에선 눈까지 질끈 감은 그 쪽이지.”
“그러니까 입술도장이란 소릴 왜 해서 사람 식겁하게 만드냐구요.”
“도망가지 않겠다고 도장 찍어 준건데.”
“누, 누가 이렇게 도장을 찍어요.”
“그래서, 싫어?”
삐딱하게 고개를 꺾고 그렇게 말하는 선유의 눈빛이 너무도 뇌쇄적이어서 소민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 말이 없는 소민을 향해 선유가 다시 씨익 웃었다.
“안 싫은 걸로. 난 촬영이 남아서 이만.”
그렇게 말한 선유가 차에서 내리자 차에 홀로 남은 소민이 가슴에 손을 얹었다.
“미쳤어. 왜 이렇게 빨리 뛰어.”
심장이 뭐라 표현할 수 없이 빠르게 뛰어 숨이 찰 지경이었다. 그렇게 중얼거린 소민이 가슴에 얹지 않은 다른 손으로 입술을 만졌다. 선유의 손이 닿았던 입술이었다. 입술에 난로라도 있는 듯 뜨거웠다. 한참이나 입술을 어루만지던 소민이 순간 멈칫했다.
“잠깐만. 이 손이었나? 이 손이 한선유 입술에 닿았었나?”
자신의 입술에 갖다댔던 손을 뗀 소민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맞네! 이 손이네. 망했어! 망했다고!”
한동안 몸부림을 치며 절규하던 소민이 입술을 벅벅 닦아냈다.
“무효야. 무효. 이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 간접키스 그런 거 아니야. 아니라고. 누가 남의 손가락도 아닌 자기 손가락이랑 간접키스를 하냐고. 아니야. 아니야!”
그렇게 한참이나 무효를 외치던 소민의 눈이 투지로 불타오르더니 힘차게 선유의 자동차 문을 제꼈다.
“그래. 어디 이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한선유? 누가 이기나 해보자, 해보자고!”
그 말과 함께 소민이 발걸음을 화보촬영이 진행 중인 그 곳, 한선유가 있는 그 곳으로 향했다.
*
“으으으으 삭신이야...”
밤에 군것질거리나 사러 갈까 하고 집을 나서던 민규는 자신의 집을 향해 걸어오며 삭신타령을 하는 좀비 한 마리 아니 한 명을 보고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야. 채민규. 나 좀 데리고 가.”
게다가 어떻게 알았는지 저 서양귀신 코스프레는 자신의 이름마저 알고 있었다.
여차하면 밀치고 도망칠 자세를 취하면서 민규는 그 좀비 귀신 앞으로 슬슬 걸어갔다.
“누구세요?”
“죽을래? 장난하지 말고. 나 지금 진짜 겨우 걸어왔단 말이야.”
겨우 코앞에 가서야 자신의 누나임을 확인한 민규가 만신창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그녀를 부축했다.
“뭔 일이야?”
“골탕 먹이려고 시작한 짓에 나만 고생을 사서 했어. 그것도 아주 날로! 빅 고생을!!”
“뭐?”
자신의 누나는 원래도 이상한 구석이 있었지만 요 근래에는 더더욱 이상해지고 있었다. 평상시 같으면 누가 니킥을 날려도 모를 만큼 잘 시간에 앞치마를 차려입고 밥 차려주러 간다고 하더니 오늘은 이런 누더기 걸레가 되어서 돌아왔다.
자신에게 의지해서는 아예 복도 바닥을 자기 다리로 청소하며 걸어온 자신의 누나를 침대에 매다 꽂은 민규는 그대로 기절하다시피 잠이 든 자신의 누나 소민을 내려다 봤다.
커리어 우먼이라고 자부하던 그녀의 지금 몰골을 연예계 사람들이 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설 정도로 처참한 몰골이었다.
그녀의 찰랑찰랑 열라스팀했어요 하던 머리는 어디서 쥐어 뜯기기라도 한 것인지 마녀의 빗자루 마냥 사방을 향해 뻗쳐 있는 게 예전 스물하나의 뮤직비디오에 나왔던 썬더박의 머리같아 보였다.
거기다가 잘못 보면 눈이 어디서 줘터진 것처럼 보일 만큼 퍼렇다 못해 시커멓게 보이는 것이 지금 저 여자가 스모키 화장을 한 것인지 팬더인지 구분이 안 가는 것이 자신의 누나를 좀비로 착각한 데에 대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스스로 납득하는 중이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차마 그대로 둘 수는 없어서 대충 메이크업을 지워준 그가 한숨과 함께 그렇게 내뱉었다.
“으으으으으으... 잘 할게요.”
“뭐?”
“한선유. 너 이 놈 자식.”
“그렇게 힘들면 하지 마.”
“안 돼! 내 커리어가 무너진다!!”
마치 자신의 말에 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잠꼬대마저 리얼리티 예능 같은 그녀를 내려다 본 민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선유는 강적인 게 틀림없었다.
*
그녀는 다시 촬영 현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한선유의 옆에 딱 붙어 서 있었다. 그런 그녀를 선유가 내려다 보며 물었다.
“도망 안가겠다고 약속도 해줬는데 왜?”
“못 믿겠어서 감시하느라고요.”
“왜 못 믿는데?”
“그럼! 아까 한선유씨가 그렇고 그런 행동을 했는데 퍽이나 믿음이 가겠어요?”
“내가 뭘?”
“정말 시치미 뗄 거예요?”
“오해한 그 쪽이 이상한 거지.”
“몰라요. 아무튼 난 이제 내 방식대로 할 거예요.”
“그쪽 방식이 뭔데?”
“스토커요.”
“뭐?”
“젊은 나이에 잘 안들려요? 스.토.커.요.”
자신이 했던 말을 되돌려주면서 스타카토로 그렇게 말하는 소민을 보며 피식 웃었다. 왠지 모를 불길한 웃음에 소민이 애써 불안한 마음을 가다듬을 때였다.
“그래? 그럼 해 봐.”
“에? 뭐라구요?”
그녀가 자신의 청력이 의심되는지 양 귀를 손으로 호비작대더니 다시 그에게 반문하는 것을 보고 선유가 그녀의 귀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해 친절을 베풀었다.
“그 스토커 짓 인정해 줄 테니까 한 번 해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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