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인생 최고의 캐스팅-6화 (6/105)

6. 너... 설마?

달리는 사람 예능 촬영 현장에 도착한 선유는 느긋하게 오프닝을 찍고 첫 미션 장소에 도착한 순간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연예계에 들어왔을 때, 자신의 자질을 알아보고 주변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배역을 줬던 감독이 새로 감독을 맡은 게 예능이라니 의외였지만 어쨌든 옛정을 생각해서 망가질 각오를 하고 나온 예능이었다.

그런데 자신을 알아본 감독 그리고 이 핏덩어리 같은 작가들이 이런 식으로 자신의 뒷통수를 칠 줄이야.

첫 미션장소로 도착한 곳은 새로 오픈한 놀이동산이었다. 물론 촬영을 위해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했기에 사람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사방 곳곳에 돌아다니고 있는 며칠 전 팬 사인회를 떠올리게 만드는 저 끔찍한 탈들이었다. 곳곳에 곰, 너구리, 여우, 뽀로로 탈 등을 쓴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의 이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PD가 미션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미션을 듣는 순간 그의 혈압은 더욱더 상승세로 치솟았다.

“지금 주위에 여러 귀여운 동물들과 캐릭터들이 다니고 있는 게 보이시죠? 자, 첫 번째 미션입니다. 저 동물들의 등 그러니까 동물 탈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의 등에는 다음 장소로 이동을 위한 힌트가 들어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뽑으신 동물들의 등을 확인하셔서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한 힌트를 찾으시면 됩니다.”

마치 팬 사인회를 일부러 떠올리게 하기라도 하겠다는 듯 진행되는 상황에 선유는 속이 부글부글 끓다 못해 졸아들 지경이었다. 그런 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게스트를 비롯한 프로그램 멤버들이 차례로 미션용지를 뽑아갔고, 그는 마지막 남은 용지를 받아들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이 게임은 개인전입니다. 상대방 동물의 등에 있는 힌트를 먼저 찾으셔서 제거하시는 것도 게임 진행에 흥미로운 요소가 되겠죠?”

얄밉게도 그렇게 말하는 PD의 말을 뒤로 하고 개인전이란 말에 서로가 뿔뿔이 흩어졌고, 구석으로 따로 떨어져 온 선유는 자신의 미션용지를 펴 보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토.끼?”

‘토끼’라는 두 글자.

그 두 글자가 말 그대로 자신에게 여기서 토끼라고.

어서 도망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VJ까지 쫓아다니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게다가 얼마 전 퀴즈쇼에서 예선 탈락과 다름없는 행동을 한 까닭에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가 돌대가리라고 소문이 났다.

“이딴 문제말고 다른 문제를 갖고 오라고 한 게 머리 나빠 문제 못 푸는 걸로 비칠지 어떻게 알았겠어.”

물론 그의 의도는 전혀 다른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이미 그의 그동안의 이미지에 맞춰 생각한 까닭에 충분히 기분 나쁜 경험을 한 그는 같은 일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면, 심지어 이건 퀴즈쇼도 아닌데 그런다면 얼마나 또 가십거리가 될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그는 뛰기 시작했다.

최선을 다해 뛰어 다니고는 있었지만 넓은 놀이 공원에 수많은 탈 중에 토끼는 보이지를 않았다. 찾아도 찾아도 보이지 않는 토끼를 향해 낮게 이를 갈아가며 얼마나 찾아 헤맸을까 너무 지쳐 잠시 식수대에서 목을 축이는 그의 뒤로 무언가 허여멀건 무언가가 지나갔다.

심상치 않은 느낌에 돌아본 그의 시야에 긴 귀를 팔랑이며 뛰어가는 토끼가 눈에 들어왔다. 행여나 놓칠 새라 전력질주로 토끼를 따라 뛰기 시작한 그의 뒤로 그의 미션이 토끼임을 눈치챈 듯 다른 게스트들과 멤버들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뜬금없이 표적이 되어가는 와중에도 그는 저 토끼가 팬 사인회장에서의 그 토끼인지 불쑥 치솟는 의문에 여전히 귀를 팔랑이며 달리는 토끼를 열심히 쳐다보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토끼의 탈은 본인이 갖고 있으니 그 여자가 토끼탈 대여점을 하거나 장사를 하지 않는 이상 똑같은 사람일리는 없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뒤쫓는 사람들에게 쫓기면서도 놓치지 않고 토끼를 잡아챈 그가 토끼 탈의 손을 끌고는 요리조리 도망을 치다 다른 이들을 따돌리기에 적합하다 생각한 관람차에 냉큼 올라탔다. 그리고는 행여나 누가 따라올 새라 문을 닫아버렸다.

관람차에 문이 닫히자 관람차는 올라가기 시작했고 뒤쫓던 이들은 하나 둘 다시 흩어지기 시작했다.

작은 관람차 안에 헉헉 거리는 그의 숨소리와 쌕쌕하고 탈 안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는 숨소리가 가득차기 시작했다. 한참을 헉헉 거리던 그가 마른침을 삼키고는 주변을 휘휘 돌아봤다.

“아. 이런 젠장. VJ도 못 탔잖아.”

따라오던 VJ도 못 탔는데 문을 닫아 버릴만큼 그는 이번 미션에 몰두하고 있었다. 게다가 얼마나 정신없이 달렸는지 이마에 땀이 배어나오고 있었고, 그 땀에 앞머리는 그의 잘생긴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야. 어떡하냐. VJ도 못 따라와서 지금 네 등을 까봐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겠네. 이거 어떻게 해야 하냐?”

그의 질문에 토끼탈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 몸짓에 그가 지친 듯 의자에 몸을 기대고는 말했다.

“그래. 그래. 여기선 일단 좀 쉬고 VJ만나면 등을 까보자.”

그 말에 토끼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의 옆으로 살며시 다가와 앉았다. 그리고는 그의 이마에 묻은 땀을 토끼탈 옷으로 닦아 주는 것이었다. 그런 토끼탈의 행동에 가만히 있던 그가 피식 웃었다.

“야. 됐어, 됐어. 내가 지금 네 앞에서 덥다고 할 처지냐. 지는 토끼탈 쓰고 뛰는 게.”

그의 말에 토끼탈은 선유의 맞은 편에 앉더니 토끼탈을 벗지도 않은 채로 화락화락 손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선유가 어이없다는 듯 픽 웃었다.

“야. 더우면 벗어. 어차피 지금 VJ도 없는데 뭘. 그리고 그래봐야 땀이 식겠냐?”

그의 말에 토끼탈은 순간 자신의 머리위에 쓰여진 탈을 양손으로 꽉 잡았고 그 모습에 선유의 표정이 급속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표정의 변화에 따라 토끼탈은 선유의 반대편 벽 구석 문 쪽 창가로 최대한 몸을 뺐다. 그 움직임에 선유의 표정이 더욱더 굳어지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너...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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