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인생 최고의 캐스팅-4화 (4/105)

4. 내가 미쳤었지

그도 그럴 것이 제작사 사장이 스타작가인 정작가 드라마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데다가 그 드라마에는 한선유를 반드시 캐스팅해 기필코 대박을 터뜨려야한다 미리부터 압박을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캐스팅 디렉을 맡기려고 한 그녀가 반대입장이라니.

그렇다고 다른 캐스팅 디렉터한테 맡기는 건 불안했다.

사실 다른 캐스팅 디렉터들에게 맡기려고 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다들 고개를 저으며 거부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선유는 까칠하기 이를 데 없는 배우로 소문이 자자했다.

아니다. 단순한 까칠이 아니었다. 그는 까칠한 남자의 독보적인 존재라는 표현이 맞을 거였다.

심지어 예전에 그를 겨우 캐스팅했던 캐스팅 디렉터는 이 바닥을 완전히 떴다고 했다.

그게 한선유 때문이었다는 건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결국 그런 한선유를 캐스팅할 수 있는 건 업계 탑인 그녀뿐이라는 결론이었다.

그러니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절박했다.

그런데, 그런데...

“지성미는 개코, 넘치는 카사노바향이겠죠. 아니 요새 연예계 소식 안 듣고 안 보세요? 한선유씨 그... 뭐더라? 아! K본부 퀴즈 푸는 프로 나가서 1번 문제에서 떨어져서 방송 못내 보내고 급하게 다른 사람 섭외했다면서요?”

“아니, 그게 사실은...”

반박하려는 입장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 듯 소민은 조잘거리기 바빴다.

“그 섭외된 사람이 누구였드라? 하여튼!! 그 섭외된 사람은 또 끝판까지 갔다면서요. 이랬는데 지성미? 토끼가 사자 갈기 땋아주는 소리하지 마세요오~”

“그... 소민씨 그렇게 생각해?”

“녱!”

숟가락으로 머리에 경례까지 해보이며 그렇게 대답하는 그녀의 모습에 다들 망했다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와중에 그나마 젊은 음향감독이 머리를 굴렸다.

“혹시 소민씨 한선유씨 캐스팅이 어려운 사람이라 그렇게 얘기하는 거 아니에요?”

그 말에 소민의 눈썹이 미묘하게 찌그러졌고 그 찰나의 모습을 놓치지 않은 이들은 벌 떼처럼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듣고 보니 그런가? 사실 소민씨 캐스팅 많이 하긴 했는데 한선유씨 캐스팅 한 건 못 본 것 같은데?”

“연예계 바닥에 캐스팅할 사람이 한선유밖에 없는 거 아니잖아요.”

취한 와중에도 잘도 반박하는 소민이었지만 일대 다수의 싸움은 언제나 불리한 법이었다. 특히 취한 그녀의 상황에서는 더더욱.

“에이! 그래도 연예계 대표 얼굴마담이자 넘버원 배우인데...”

“게다가 소민씨 이 바닥에서 하루 이틀 일한 것도 아닌데 한 번도 컨택이 없었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지.”

“사실 소민씨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까였던 거 아니야? 그래서 자신이 없나?”

슬슬 그녀의 캐리어와 자존심을 긁는 그들의 말에 소민의 평온하던 숨소리가 다소 거친 쌕쌕대는 숨소리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아니거든요? 진짜 한 번도 해본 적 없거든요?”

그리고 그녀의 숨소리를 눈치 챈 그들이 전술을 바꾸는 것도 그만큼이나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래. 그렇겠지. 소민씨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그리고 우리 소민씨 능력! 다들 그렇게 몰라?”

다시 그녀를 띄워주는 듯 어르는 말에 다들 한 마디씩 보태고 나섰고, 사태의 결론은 다음 말로 이어지기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우리 소민씨가 이번에 한선유씨 캐스팅을 딱! 해줄 수 있는 거 아니야. 어? 우리 소민씨 다들 믿지?”

쐐기를 박다 싶은 그의 말에 모두들 열렬한 긍정을 표했고, 분위기에 취해 소민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야 말았다.

“그깟 한선유가 문제겠어요? 원하시면 브래드 피트도 캐스팅 해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들이 내민 것은 계약서였다. 그런 그들의 행동에 조금은 당황한 소민이 쭈뼛거리며 “근데 저 오늘 도장 없어요.”라고 말하자 총감독은 또 냉큼 이렇게 말했다.

“도장? 없어도 돼. 없어도. 지장 찍으면 되지 뭘.”

휘리릭 뚝딱 그렇게 그녀는 순식간에 분위기에, 술기운에 휩쓸려 그렇게 뚜벅 계약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

“내가 미쳤었지.”

소라의 촬영장에 온 소민이 멀찍이서 촬영을 지켜보다 그늘에 가서 앉아 그렇게 한숨을 내쉴 때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왔어?”

촬영 중 쉬는 타임인지 어느 새 자신 옆에 앉아 있는 혜민을 보고는 소민이 배시시 웃었다. 소라가 촬영하는 현장에 오는 또 다른 이유는 소민과 동갑내기인 여배우 혜민 때문이기도 했다.

주연으로 출연하는 소라도 까다로운 편이었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조연으로 출연하는 주연급배우 혜민 역시 까다로운 편이었다.

그런 혜민을 만났던 게 벌써 3년 전이었다. 그 후 혜민은 소민의 추천이라면 이상하리만치 쉽게 출연을 결심했고 이번 드라마도 마찬가지였다.

혜민이 소민의 웃음을 보며 말을 이었다. 소민이 저런 어정쩡한 웃음을 입에 문다는 것은 뭔가 있다는 뜻이니까.

“왜? 뭐 문제라도 있어?

“별 건 아니야.”

사실 별 일을 넘어 꽤 골치 아픈 문제였지만, 굳이 혜민 앞에서 앓는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요새 한선유 캐스팅 한다더니, 캐스팅 하기 어려워?”

눈치빠른 혜민의 말에 소민은 그저 씩 웃어보였다.

“걔가 원래 좀 캐스팅하기 까다롭기는 해.”

다 안다는 듯 말하는 혜민에게 소민이 놀랍다는 눈빛을 보냈다.

“한선유씨 잘 알아?”

“뭐, 예전에 작품 하나 같이 했었으니까. 단막극인데다가 연출도 그닥이어서 그다지 뜨지는 못했지만.”

“어떤 거?”

“뭐, 그냥저냥 가족극. 가족의 붕괴와 재화합을 다루는 그런 내용.”

“아, 그 작품. 한선유씨 캐스팅하려고 작품들 살펴보다 보고 이런 것도 찍었나 의아했었는데. 같이 했었구나.”

“그랬지. 근데 한선유가 그 작품한 게 의아했어?”

“그게 이미지가 영...”

말끝을 흐리는 소민의 말에 혜민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 이미지가 그런 반듯한 가족극형이 아니긴 하지. 근데 내 기억으로는 한선유가 그 작품만큼 몰입하려고 노력했던 작품은 없었던 것 같은데?”

“몰입하려고 노력했다니?”

한선유가 대외적으로는 몰입이 빠르기로 유명한 연기파 배우였기에 그 사실은 의외였다.

“뭐, 누구나 자기 몸에 안 맞는 옷을 걸치면 맞지 않는 법이지. 아마 한선유한테는 그게 그런 거 아니었겠어?”

“그런가....”

그가 어려워한 역도 있다니 새로웠다.

“근데 그 사람 많이 까다로웠어?”

“글쎄... 나야 촬영장에서만 만나니까 몰랐는데 그 때도 캐스팅 디렉터 통해서 캐스팅했다고 하더라구.”

“그랬어?”

“보통 캐스팅 디렉터 투입하는 경우가 꼭 그 사람이길 바라는데 캐스팅을 그냥 들어가면 물먹을 것 같은 경우잖아. 예전에 나처럼.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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