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한선유씨가 어떨까.... 하는데...
“뭐? 뭘 하고 있다고?”
대체 저 모양 저 꼴로 대체 어떻게 연애를 한다는 것인지 민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대체 어느 누가 저런 그녀를 좋아할 수 있을까. 어지간한 콩깍지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자신도 여자 친구가 있지만 영상통화로 본 그녀는 집에서조차 완벽했다.
연애를 하면 다 그런 모습인 줄로만 믿었던 그에게 자신의 누나가 연애를 하는데도 저런 모습이라니 가히 쇼크였다.
귀를 후비며 자신의 귀의 성능을 그리고 그녀의 말을 의심하는 민규의 반응에 소민이 다시 버럭 소리쳤다.
“하고 있다구!! 연.애!!!”
“대체 누구랑?”
“..........”
“누구랑 하냐니까? 누군지 나도 좀 보자.”
다시 아무 말도 없는 소민이었지만 연애를 한다는 소민의 말에 호기심이 불타오른 민규가 방문 입구에서 그녀의 곁으로 순간이동 하듯 다가와 앉았다.
대체 이런 몰골인 그녀와 누가 연애를 하는 것인지 궁금함으로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는 그의 동생을 한 번 슥 쳐다본 그녀의 곁에 민규가 다시 한 번 바짝 붙어 앉았다.
그런 그를 한 번 쳐다본 그녀가 수줍게 그에게 귀를 내어 달라 하더니 귓가에 뭐라 속삭였다.
그리고 그녀의 속삭임에 얼굴이 일그러진 민규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이 여자야. 내가 언제 일하고 연애하라 그랬냐? 사람하고 하라고. 사람하고.”
“아무 남자하고나 연애해도 되?”
“얼씨구~ 제발 어떻게 생겨도 좋으니까 주민번호 뒷자리가 1로 시작하는 생물체를 데려와 보기나 해봐라. 아니 대체 어느 집 남동생이 제발 누나 연애 좀 하라고 하냐? 다른 집은 보면 여자가 밤에 나가 싸돌아다닌다고 동생이 걱정을 한다는데. 우린 어떻게 된 게...”
말끝을 흐리며 그녀를 위아래로 스캔하는 민규의 시선에 기분이 상한 소민이 동생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야! 이 누님이 다 생각이 있어서 그렇지. 연애 그까이꺼 내가 하려고 하기만 하면 남자 100다스도 가능하거든?”
“100다스 같은 소리 하네. 100다스면 남자가 1200명인데 하루에 한 놈씩만 만나도 3년이 넘게 걸리는 그게 연애냐? 스쳐지나가는 행인이지?”
시니컬하게 대꾸하는 동생의 말에 소민의 입이 퉁퉁 튀어나와 그녀의 주특기 쫓아내기를 시전했다.
“시끄러. 나 이제 자야 되니까 나가. 내일 한소라씨 촬영현장 오는 거 체크해야 한단 말이야.”
“웃기셔. 저녁 촬영인데 그게 잠하고 뭔 상관이야.”
“잠을 자야 내일이 올 거 아니야!”
“예예. 알아 모십죠. 워크성애자님."
“뭐?”
“왜? 일하고 연애한다매? 일이 뭐야? 워크잖아. 그러니까 누나는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아닌 워크성애자지. 아, 그리고 집에 있어도 머리는 좀 감아라. 머리가 그게 뭐냐. 찰떡이 누나 머리보고 형님 하겠다.”
“저게!!!”
방을 나서며 자신을 약 올리는 민규에게 잡히는 대로 베개를 집어던졌지만 힘이 모자랐는지 목표지점에 도달하지도 못한 채 포물선을 그린 베개가 뚝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에이. 귀찮게.”
떨어진 베개를 주우러 가기조차 귀찮아 뒤로 그냥 누워버린 소민을 다시 일으키기라도 하겠다는 듯 그녀의 전화가 요란스레 울리기 시작했다.
귀찮음에 발버둥 치며 안 받으려던 소민이 겨우 전화를 들어 발신인을 확인고서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는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고 아까와 같이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네. 캐스팅 디렉터 채소민입니다.”
*
"소민씨, 수고했어! 역시 소민씨야!"
"그럼, 그럼. 소민씨가 누구야. 역대 최고의 캐스팅 디렉터 아니야."
"이번 드라마도 캐스팅 덕에 대박이로구나!!"
"아니, 근데 남들은 못하는 캐스팅을 어떻게 그렇게 잘 해? 무슨 비법이라도 있어?"
작은 술집 안, 떠들썩한 그 한 가운데 앉아 조용히 미소 짓고 있는 그녀는 조금 전 방을 런웨이 삼아 노란 츄리닝을 뽐내던 여자와 같은 여자라고 상상할 수 없는 미친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연예계에서 일을 해도 될 만큼의 비주얼을 자랑하지만 연예인은 아닌 그녀.
캐스팅 디렉터 채소민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신비주의 여배우이자 정통 멜로의 대가이자 로맨틱 코미디를 경멸한다던 한소라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몹시 궁금한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들을 향해 생긋 웃으며 그녀가 말했다.
"비법이 어디 있겠어요. 그냥 열심히 하는 거죠."
겸손을 가장하며 환하게 웃는 그녀의 속마음을 모르는 그들은 그저 그녀가 겸손하다며 또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댔다.
"그래, 그래. 열심히 하는 사람을 누가 이기겠어."
"열심 하면 또 우리 소민씨를 따라올 사람이 없지."
"자, 그럼 우리의 숨은 히로인, 소민씨를 위하여!!"
"위하여!!"
그렇게 몇 차례 아니 십 수차례의 잔이 돌았을 때는 당연지사 소민은 슬슬 취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정이라도 한 듯 그녀에게 자꾸만 술을 권하는 총감독 연출 감독, 음향감독과 제작사 팀장까지 그녀에게 쉬지 않고 잔을 채워주고 있었는데 또 그걸 거절하지 못한 그녀의 주(酒)사랑 때문이었다.
얼마나 술이 들어갔을까, 또 얼마나 그녀를 공중에 붕붕 띄워놓았을까.
거의 우주로 보내버릴 기세로 소민을 칭찬하던 그들이 슬슬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근데 말이야, 이번 건 끝나고 우리 올 하반기에 방송하기로 한 드라마 말이야.”
“어어, 그거어? 그 지성미 넘치는 남자향 물.씬! 난다는 그 정작가 드라마?”
어색한 연기 톤이 분명함에도 눈치 채지 못 할 만큼 취기가 올라온 소민의 귀에 박힌 것은 그 다음 말이었다.
“누굴 캐스팅해야 좋을 것 같아?”
캐스팅이란 그 단어 하나. 취한 와중에도 그녀의 귀에는 캐스팅이란 단어 하나가 아주 확성기로 누가 그녀의 귀에 대고 외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크게 들렸다.
“그러니까 말이야. 제작사 입장을 들어봐야 하지 않겠어?”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것인지 슬그머니 제작사 팀장에게로 화살을 돌리자 제작사 팀장이 슬쩍 한 번 노려보고는 큼큼 헛기침을 했다.
“그... 제작사에서는 한선유씨가 어떨까.... 하는데...”
“에에에이~~ 그건 아니죠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다음 순간 조금 꼬이는 발음으로 그녀가 반대 의사를 표현하고 나섰다.
“으음... 소민씨 왜 아니라고 그러는 거야?”
신음과 같은 소리와 함께 그녀에게 이유를 묻는 그들에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정작가님 드라마 망칠 일 있어요오?”
“왜? 왜?”
그녀의 말에 모두 귀를 쫑긋하고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눈꼬리가 휘어지도록 웃은 그녀가 홍합탕을 한 숟갈 떠먹고는 숟가락을 휘휘 그들의 눈앞에 저으며 말했다.
“한선유가 지성미? 푸핫! 심지어 지성미가 넘쳐요? 키키키키키키키”
그보다 더 웃길 수는 없다는 듯 그녀가 웃어 제끼자 탁자에는 그녀의 웃음소리를 따라 어색한 웃음소리가 맴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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