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변이체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들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의사를 전달받은 그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숫자는 정확히 70억. 물론 내 힘이 전해진 것은 변이체들뿐만이 아니었다. 플레이어들. 정확히 말하면, 지금 우주 공간에서 싸우는 플레이어들이 아닌 이미 죽어버린 플레이어들 역시 내 힘을 전달받았다.
“기억이 돌아왔습니까?”
퀸- 정확히 말하면 한때 퀸이었던 여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인간의 몸이라니, 기분이 묘하네요.”
천천히 자신의 몸을 매만지더니, 이내 걸치고 있던 옷을 하나하나 풀어 헤치기 시작했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몸이 변이되기 시작했다. 그녀의 어깻죽지에서 거대한 날개가 펼쳐진다. 그녀는 내게 손을 뻗었다. 미약한 온기가 전해진다. 그녀는 내 힘을 흡수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 내 힘은 무한대에 가깝기에, 바닷물에서 숟가락 한 스푼 뜨는 정도.
‘숟가락은 아니고, 양동이쯤은 되겠네.’
이미 변이를 일으킨 그녀의 몸이 한 번 더 변이되기 시작했다. 다시 변이됐을 때, 그녀는 온몸이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변이체의 흔적 따위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그녀가 바이러스를 완전히 컨트롤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가 발걸음을 뗀다. 그러자, 도시 전체의- 아니, 행성 전체의 기후가 변화한다.
하늘에서 소복소복 떨어지는 눈.
“당신에겐 항상 고마워하고 있어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퀸.”
“인간 시절엔 하예린이라는 이름이었어요.”
“예쁜 이름이네요.”
“우리 부모님이 이 모습을 보면 깜짝 놀라시겠네요. 뭐, 저들 중에 계시겠지만.”
변이체가 됐거나, 플레이어가 됐거나 둘 중 하나일 터. 실시간으로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는 변이체들 중에 그녀의 부모님 역시 섞여 있을 것이다. 그건 비단 그녀의 부모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겠지. 물론 시간대가 시간대인지라, 내 부모님은 섞여 있지 않겠지만···
“이 일이 모두 끝나면, 부모님을 다시 뵐 수 있겠죠? 친구들도 그렇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꼭, 그렇게 될 겁니다.”
물론 ‘이 전투에서 승리할 때’라는 전제 조건이 붙겠지만 말이다. 퀸, 아니 하예린은 눈을 뜬다. 그녀의 눈에서 선명한 초록색 안광이 번쩍였다. 그녀의 능력 중 하나는 다른 변이체들을 지배하고, 거느리는 것. 그 능력은 변이체들에 한해서는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지금, 그녀는 수십 억 변이체들을 지배할 수 있는 군주(Lord)의 자리에 올랐다.
이내, 그녀는 초록색 빛줄기와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우주 공간, 영령들과 변이체들이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영령들은 일당백의 ‘무쌍’을 찍고 있었다. 하기야, 당연하다.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인 그들과,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이었던 변이체들을 비교 선상에 놓을 수 없는 일.
그러나 변이체들은 그 숫자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거기다 퀸의 지휘까지 더해지자 오히려 영령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물론 영령들은 계속해서 부활했지만, 부활하는 건 변이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기라 생각했는지 영령전을 소환한 후 모습을 감췄었던 벨 크라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총으로 퀸을 노렸다. 그의 탄환은 단숨에 퀸의 머리를 박살 냈다. 그러나 나는 시간을 되돌려 퀸을 되살려냈다.
“웃기는군. 어째서 나를 적대하는 거지? 너희에게 힘을 준 것이 나라는 걸 모를 리 없을 터인데.”
어이없다는 듯한 벨 크라운의 물음에, 퀸이 실소를 금치 못하며 말했다.
“힘? 힘을 준 게 아니라, 실험을 한 거겠지.”
“이 우주를 구하기 위한 실험이었다. 너희에게 고통을 준 것은 그저 작은 희생이었을 뿐이다.”
“지랄하고 있네.”
퀸의 신랄한 욕설이 이어졌다. 그녀의 눈은 분노로 불타고 있었다.
벨 크라운의 몸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우주 공간 전체의 온도가 급격하게 낮아졌다. 근처에 있던 영령들은 물론, 변이체들의 몸 역시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그는 얼음을 깨버린 후, 지구를 끌어당겨 그녀에게 날려버렸다. 나는 순간이동을 사용해, 그녀의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지구를 막았다.
찰나의 틈이 생기자, 퀸은 그에게 얼음의 창을 날렸다. 그의 가슴은 얼음의 창에 꿰뚫렸다.
“내가 있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까지 나를 밀어붙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어. 하지만 이진서, 네가 잊고 있는 게 있다.”
“그게 뭡니까?”
“컴퍼니가 누구의 편이라고 생각하지?”
그는 엷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말처럼 컴퍼니의 전함, 수천, 수만 기가 이 지구로 이동하고 있는 것을 말이다. 물론 전함들을 제거하는 것은 내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 전함들을 다시 부활시키는 것도 벨 크라운에게 어렵지 않은 일. 결국 소모전으로 간다면, 내게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변이체들이 많다 하더라도 결국 그 숫자엔 한계가 있으니···
마침내 컴퍼니의 전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타난 모선 – 알로비스트와 파괴자의 크기를 뛰어넘는 거대 전함 수십. 그리고 그 뒤를 잇는 무수한 전함들. 변이체들도 영령들도, 행성 신들도··· 이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모든 이들이 멈추고 멍하니 전함들을 바라본다. 그 사이 전함들은 주포를 장전했다. 주포에 선명하게 맺히는 구체들.
“형님, 저것도 적입니까?”
“그런 것 같은데, 일단은 지켜보자. 옐레나님은?”
연병수는 자그마한 병을 들었다. 병 속에 자그마한 옐레나가 갇혀 있었다. 거의 손가락 크기만큼 작아진 그녀는 분하다는 듯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솔직히 무섭다는 생각보단,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부활하기에 가둬버렸습니다.”
“그걸로 해결이 돼?”
“오래 붙잡아 두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 전투에서 제외시킬 순 있을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전함들이 주포를 발사했다. 우리가 아닌, 벨 크라운이 있는 방향을 향해서. 그 순간, 나는 볼 수 있었다. 벨 크라운의 눈이 경악으로 물드는 것을. 주포는 인정사정없이 발사됐다. 전함들의 포화는 그야말로 엄청나서, 경로에 있던 영령들과 변이체들은 그대로 소멸돼 버렸다. 벨 크라운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사라진다.
나 역시 그의 뒤를 쫓았다. 그는 모선 – 알로비스트의 내부에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있는 백발의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어째서냐, 어째서 나를 배신한 거지, 마셀러스?”
마셀러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벨 크라운, 당신은 내 신이자 구원자였다. 당신의 계획을 위해 수많은 생명체들을 살해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동료들을 희생시킬 때조차도, 나는 당신을 믿고 동참했지.”
벨 크라운이 한결 누그러진 말투로 대꾸했다.
“그래, 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지?”
“그저 나는 깨달았을 뿐이다. 당신의 계획은 실패했고, 지금의 당신은··· 그저 과거의 망령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웃기지도 않는군. 내 계획이 실패했다고?”
“그래, 당신의 계획은 실패했다. 이성적으로 판단해라, 벨 크라운.”
벨 크라운은 실소를 터뜨리면서 그에게 총을 겨눴다. 마셀러스의 몸이 움직이는 것보다 조금 더 빨리 그의 총이 불을 뿜었다. 탕. 정확히 머리를 관통한 그의 몸이 쓰러진다. 물론 나는 그가 가만 죽게 놔둘 생각이 없었다. 시간이 되돌아갔고, 그의 총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방해하지 마라!”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적으로 변한 말투였다. 그의 분노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포기하십시오.”
“웃기지 마라.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무엇을 희생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내 몸을 빼앗은 찬탈자 주제에···!”
“당신에게 승산이 없다는 걸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에게 더 내놓을 카드가 없다면, 이것으로 상황은 종료일 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수백 년 넘게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내 승리는 ‘확정’이다.
“멍청한 것들!”
그의 눈이 금색으로 빛났다. 나는 그가 통찰안의 능력을 사용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비를 했다. 그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언어. 불길함이 느껴지는 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휘둘러진 검기가 그를 베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깨달았다. 늦었다는 걸. 이미 ‘문’이 열렸다는 것을.
“통찰안의 노예들이여, 바깥으로 나와 주인인 나를 위해 싸워라.”
문이 열림과 동시에, 안에서 망자들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이 낯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통찰안의 감옥에 갇혀 있던 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도 아니고, 수십, 수백, 수천, 수만, 수십 만··· 모선 - 알로비스트 내부를 빼곡하게 채운다. 벨 크라운은 마셀러스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통찰안의 망자들이다. 영령전에 있는 영령들과도, 내가 만든 그 조잡한 실험체들 따위와도 비교조차 안 되는 강자들이지.”
그들 중에는 처음 보는 ‘망자’들도 있었다. 느껴지는 존재감 아틸라와 비교해도 결코 아래가 아니었다. 아틸라가 말한 타 우주의 지배자들이 바로 그들인 듯 보였다. 알로비스트에 탑승해있는 선원들이 그들에게 플라즈마 총을 발사했다. 그러나 그들의 플라즈마 광선은 망자들의 몸에 닿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들의 눈이 일제히 금색으로 빛난다.
“전원이 통찰안 사용자들이지. 아무리 네가 강하다지만··· 뭐 하는 거냐, 네놈들?”
설명하다 말고, 그의 눈에 당혹감이 어린다. 그 통찰안의 사용자들이 나를 향해 무릎을 꿇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쓰게 웃었다.
‘곧 만난다는 게 이런 말이었습니까?’
마지막으로 아틸라가 걸어 나온다. 인간 형태의 아틸라는 유쾌하게 입을 열었다.
- 오랜만이군, 벨 크라운.
“아틸라! 어째서, 어째서 내가 아니라 이진서에게 복종하는 거냐?”
- 네놈이 스스로 통찰안의 힘을 포기했지 않은가. 이제 나는 네놈을 통찰안의 사용자가 아닌, 흔하디흔한 망자로 간주할 뿐이다.
아틸라의 비웃음은 모선 내부를 가득 채우는 듯했다.
“그놈의 망자 소리는···”
- 곧 보게 될 사이인데, 너무 까칠하게 굴지는 말자고.
“나를 통찰안의 감옥 안에 가두겠다는 거냐?”
- 노예들이 네놈에 대한 증오심으로 엄청나서 말이야. 저들 중 태반이 네놈에 의해 갇혔던 것 아니었던가?
그의 말처럼 통찰안의 망자들의 눈은 죽일 듯이 벨 크라운을 노려보고 있었다.
“멍청한, 주제도 모르는 것들··· 감히 나를 가둬?”
아틸라는 슬그머니 나를 바라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그들에게 힘을 전달했다. 벨 크라운은 마지막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온갖 힘을 쏟아내며 망자들을 죽이고, 죽이고, 아예 태양계 전체를 멸망 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어차피 내가 존재하는 이상, 그의 파괴 행각은 별 의미가 없었다. 결국 그는 모든 힘을 소진하고 말았다.
그 방증으로 영령전의 영령들 역시 역소환 됐다. 최후의 힘을 끌어모아, 벨 크라운은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를 쉽게 뒤쫓는 데 성공한 나는 감옥을 만들어 그를 가둬버렸다. 그는 마지막 발악을 했지만, 이미 힘이 많이 소진되어서인지 감옥을 부수거나 하지는 못했다. 그는 원통한 듯한, 억울한 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잘 생각해봐라. 이 우주에 더 필요한 인물은···”
“추해지지 마십시오.”
“······”
나는 그의 눈에서 체념의 빛을 읽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저항을 포기했다. 그리고··· 그는 내게 기프트를 빼앗기기 시작했다. 신의 영혼은 서로 끌어당기는 성질이 있다. 서로 힘이 비등할 때는 괜찮았지만, 균형이 기울자 급속도로 기프트를 빼앗기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마지막으로 추한 모습을 보였군. 이제 네가, 아니, 당신이··· 신입니다. 부디, 이 우주를 잘 번성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의 몸은 먼지로 변해 흩어졌다. 마지막 남은 그의 영혼 파편을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나는··· 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