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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234화 (234/236)

234화

물론 그래 봐야 영혼들에 불과하다. 설령 벨 크라운이 그들을 조종한다 하더라도, 실체 없는 영혼인 그들은 우리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그 생각을 수정해야만 했다. 그들의 영혼이 빛나기 시작하더니, 그들의 몸이 생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통찰안으로 포착한 그 숫자는 정확히 475만.

심지어 그들 하나하나가 각 행성계에서 이름깨나 날린 영웅들.

그들이 죽음을 거슬러 ‘전성기’로 부활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의 전성기를 뛰어넘는다고 봐야 했다. 지금 그들에게 몸을 만들어주고, 힘을 나누어준 것은 벨 크라운이었으므로.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연병수를 돌아봤다. 그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내, 그가 기가 찬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하하, 형님, 설마 저들 전부를 상대해야 하는 겁니까?”

“나도 별로 그러고 싶진 않은데··· 그래야 할 거 같은데?”

“다들 뭘 그렇게 망설이고 있어?”

우리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라우라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들고 있는 활을 당겼다. 못 보던 능력. 화살 끝이 검보랏빛으로 일렁이는 걸 보아하면 어둠의 정령왕의 능력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화살은 거인에 의해 가로막히고 말았다. 방패는 박살 났지만, 화살 역시 그 힘을 상실했다. 간츠와 상당히 비슷한 외모를 가진 거인이었다.

어쩌면 그의 직계 혈족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간츠도 있네.’

잘 찾아보면 영령 소환을 통해 접했던 반가운 얼굴들도 보인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서 보는 것이라 그렇게까지 반갑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들이 거대한 해일처럼 우리를 향해 쏟아져 내린다. 당황한 것은 우리뿐만이 아닌 우리의 앞에 있는 행성 신들 역시 마찬가지. 그들은 당황해했지만, 이내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이내 말 그대로 ‘파묻히고’ 말았다. 물론 파묻혔다는 건 어디까지나 겉보기에 그랬다는 거고, 나름의 격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남은 영령들은 많았다. 그들은 우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나는 연병수의 팔을 붙잡고 공간이동을 사용했다. 어디 영화 에일리언 속에나 나올 것 같이 생긴 흉측하고 거대한 괴물이 허공에서 튀어나와 우리가 있던 곳을 덮쳤다. 괴물의 모습을 확인한 연병수의 눈이 둥그레졌다. 그는 괴물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미친, 차원의 마수, 오르테스 아닙니까?”

“그게 뭔데?”

“행성 하나쯤은 가볍게 먹어 치운다는 이계의 괴물입니다.”

“확실히 강해 보이긴 하네.”

입을 벌린 오르테스는 마치 블랙홀처럼 주변에 있는 것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것도 먹을 수 있으려나? 먹는 거 하나로는 자신 있는 놈인데 말이야.”

“예? 대체 무엇을···?”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허공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오르테스와 비교해도 조금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거대한 괴어, 레비아탄(Leviatan)이라 불리는 마수였다. 녀석은 당황한 듯 구슬프게 울었지만, 이내 깨달았다. 녀석을 묶고 있던 사슬 같은 것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것을.

“하지만 레비아탄이 오르테스를 이길 수 있을까요? 녀석은 고작 초월체 수준 아닙니까?”

엄밀히 말하면 녀석은 초월체 중의 초월체였다. 당시 기준 나를 위협할 정도의 세력이었던 변이체 연합에서 녀석 하나 때문에 동맹을 청해왔을 정도니 말이다. 물론 이 미칠 듯한 파워 인플레이션 속에서, 당시의 녀석은 잘 쳐줘 봐야 우주 해적, 요셰프 정도.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건 어디까지나 ‘당시’다. 지금은 차이가 있었다.

“지금의 녀석은··· 약하지 않아.”

레비아탄의 역할은 나의 영혼에 의해 지구에 모여든 기프트를 채취하고, 재생성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이 지구에 있는 존재들 가운데 가장 나와 근접했던 존재가 바로 그였다. 내가 신의 힘을 각성하면서, 나와 접했던 존재들이 마찬가지로 힘을 각성했던 것처럼, 녀석 역시 각성했다.

생각하는 사이, 오르테스는 레비아탄을 빨아들였다.

“어··· 먹혔는데요?”

“······”

하지만 나는 이내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당황한 오르테스의 눈을. 이내 녀석의 몸이 부풀어 오른다. 녀석의 몸은 원래 몸의 서너 배 이상으로 비대해졌다. 당장이라도 풍선처럼 터질 것 같이 부풀어 오른 몸에, 영령들도, 행성 신들도, 그리고 우리들도 긴장 어린 눈초리로 바라봤다. 그리고 마침내··· 쾅! 마치 핵무기 수십 개가 폭발하는 듯한 굉음과 함께 터졌다.

그 속에서 꿈틀거리며 튀어나오는 레비아탄.

“진짜 살벌하게 생기긴 했네.”

원래부터도 살벌하게 생긴 녀석이 오르테스의 피와 살점을 뒤집어썼으니, 살벌함의 정도가 한층 더 상승했다.

“뭐, 그래도 든든하네요.”

나는 동감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령들은 레비아탄을 향해 달려들었다. 레비아탄은 마치 물고기가 펄떡이는 것처럼 우주 공간을 무대 삼아 마음껏 날뛰기 시작했다. 거인을 어린아이로 만들어버릴 만큼 거대한 녀석의 검붉은 동체는 스치는 것만으로도 영령들을 말 그대로 벌레처럼 짓밟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령의 숫자는 너무 많았다. 나는 손을 들어 거대한 블랙홀을 소환했다. 그러나 영령들은 블랙홀에 저항했다. 연병수는 우리에게 달려드는 천사족들에게 불덩어리를 날렸다. 천사들은 불덩어리에 맞아 그대로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나는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극한의 발도술. 거대한 검기는 곧 나를 향해 날아드는 검기에 부딪힌다.

거대한 검기는 검기를 갈라버리고, 그대로 검기를 날린 주인의 몸을 두 토막으로 갈라버렸다.

- 대단하···

“잊지 않겠습니다, 아자르.”

나는 그를 향해 경의를 표했다.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검성, 아자르. 지금 내가 사용한 극한의 발도술의 원주인이었다. 그러나 경의를 표한 것이 무색하게 둘로 갈라진 그의 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붙었다. 오히려 나보다 더 당황한 듯 그는 몸을 매만지더니, 이내 미소를 흘렸다. 나를 향해 재차 검을 들어 올리며 그가 입을 열었다.

- 즐겁구나. 원 없이 검을 부딪칠 수 있는 상대와 붙을 수 있어서.

“저는 별로 안 즐겁습니다만···”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연병수를 바라본다. 왜 조용해졌나 했더니, 녀석은 옐레나의 마법 공격을 가쁘게 막아내고 있었다. 초당 수십 개의 마법이 그에게 날아들었고, 그는 초당 수십 개의 마법을 사용해 그것들을 막아낸다. 그야말로 서로 한 치도 밀리지 않는 스승과 제자의 전투. 그들 간의 전투에 끼어들려던 영령 몇이 마법을 맞고는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 다가오면 너희들도 날려버린다.

옐레나가 싸늘하게 그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이내, 영령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서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나 정도의 그랜드 메이지는 오랜만이네.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군.’

지금 그녀의 말은 그녀가 연병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기억하는 그녀는, 저기 있는 그녀와 아예 다른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아자르도 그렇고··· 다른 영령들 역시 마찬가지겠지. 함께 했던 기억이 있었음에도 모두가 힘을 합쳐 몰래카메라를 하는 것도 아니고.

“믿는다, 병수야.”

그의 승리를 기도한 나는 시선을 돌려, 전함을 향해 달려드는 거인을 바라봤다. 간츠의 후손으로 짐작되는 거인은 몸을 비트는 것으로 전함의 주포를 피해내고는, 전함에 달라붙어 전함을 닥치는 대로 내리치고 있었다. 그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입증하듯, 그의 주먹이 휘둘러질 때마다 전함의 외골격이 찌그러지고 있었다.

그러자, 전함에서 흑인이 빠져나왔다. 그의 몸엔 거대한 날개가 펼쳐져 있었다. 천사화. 천사가 된 제이드는 검을 휘둘러 거인의 목을 베었다. 그러나 목이 반쯤 베인 채로 거인 역시 주먹을 휘둘러 제이드의 몸을 직격했다. 다행히 제이드는 무사했다. 직후 날아온 이제원이 거인의 주먹을 대신 받아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고개를 돌린 채, 입을 벌렸다. 그들을 향해 용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검은 용의 입에서 발사되는 브레스. 그러나 브레스가 그들을 직격하는 일은 없었다. 내가 보호막을 사용해, 공격을 막아냈기 때문이다. 보호막을 뚫는 데 실패한 브레스는 주변에 퍼져, 오히려 거인의 몸에 닿았다.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거인의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 이 도마뱀 새끼가···! 역시 그럴 줄 알았다!

거인은 몸이 녹는 와중에도 전함의 갑판 일부를 드러내, 검은 용을 향해 날렸다. 물론 검은 용의 몸이 맞는 일 따위는 없었다. 마치 대비하고 있었다는 듯, 유려하게 공중에서 비행해 공격을 회피했다. 원통하다는 듯 구슬픈 울음을 흘린 거인의 몸이 그대로 녹아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생됐다. 그의 목표는 더 이상 전함이 아니었다.

눈이 돌아간 거인의 팔이 검은 용의 꼬리를 억세게 붙잡는다.

“쟤네 지들끼리 싸우네요.”

“원래 용족하고 거인족은 별로 사이가 안 좋으니까요. 뭐, 아무렴···”

분명 내분은 호재였지만, 애석하게도 전투의 승패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진서 씨,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도 저기랑 숫자 맞춰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제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숫자를 맞춘다고 해봐야···”

내가 힘을 전달해도, 모두가 행성 신처럼 싸울 수 있는 건 아니다. 물론 강해지긴 하겠지만, 영령들처럼 싸우려면 오랜 시간 기프트를 다뤄왔던 이들이어야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우리 그룹의 플레이어들이라고 해봐야, 다 합쳐봐야 수만 단위에 불과하다. 백만 단위를 ‘가볍게’ 뛰어넘는 영령들과 맞서기엔 그 숫자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그룹의 플레이어들이 모두 다 일당백의 전사들인 것도 아니고. 어설프게 숫자를 맞춰봐야 연비만 나빠질 뿐이다.

‘이래서는···’

“변이체들에게 힘을 주는 건 어때요?”

“변이체들, 말입니까?”

발라르에 의해 인위적으로 탄생한 존재들.

“변이체들이라면 지금 진서 씨의 힘을 감당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분명 틀린 말은 아니다. 일반인들과 달리, 변이체들은 기프트를 주입해도 버틸 수 있으니 말이다. 애초에 변이체들 자체가, 벨 크라운이 만들어낸 존재들이기도 하고. 나는 잠시 동안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면, 어느 시점으로 시간을 되돌려야 하나, 하고. 산산조각 난 행성을 향해 손을 든다. 지구의 시간이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갓 변이체 바이러스가 퍼져, 변이체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났을 때로 행성의 시간을 되돌렸다. 서울은 그야말로 아비규환(阿鼻叫喚). 플레이어로 살아남은 이들은 극소수고, 그 극소수도 살아남기 위해 도망치고 있다. 나는 새삼스럽게 되새김질했다. 갓 변이체 바이러스가 퍼졌을 때, 지구가 어땠었는지를.

암울한 거리를 한 명의 여자가 뛰고 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절망 어린 표정의 그녀는 나를 발견하고는 도움을 요청했다. 그녀의 뒤를 빠르게 쫓는 수백 마리의 변이체들. 하지만 통찰안을 사용한 나는 그녀의 영혼을 직시할 수 있었다. 인간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강대한 영혼. 그녀는 인간 시절의 퀸(Queen)이었다. 그녀에게 중얼거리듯 말한다.

“깨어나십시오.”

그녀의 몸이 멈춘다. 그녀를 쫓던 변이체들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말한 대상은 단순히 퀸뿐만이 아니었다. 퀸의 몸이, 변이체들의 몸이 일제히 빛나기 시작한다. 나는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의 몸에 실시간으로 기프트가 쌓여가는 것을. 그들이 점차 진화하기 시작한다. 하급 변이체, 중급 변이체, 상급 변이체, 최상급 변이체, 특수 변이체, 초월체···

그리고 초월체를 뛰어넘는,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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